제591호 이문정(미술평론가, 컨템포러리 미술연구소 리포에틱 소장)⁄ 2018.06.11 11:38:56
(CNB저널 = 이문정(미술평론가, 컨템포러리 미술연구소 리포에틱 소장)) 필자에게 가장 익숙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아르코)의 신진예술가 지원 프로그램은 ‘한국 예술창작 아카데미’이다. 특히 시각예술 분야 참여 작가 성과 보고전은 늘 유심히 지켜보는 행사다. 작년(2017년)에는 7명의 작가가 선정되어 전시를 진행했다.
필자는 최근 연이어 신진 작가들을 지원하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었다. 필자가 참여했던 첫 번째 프로그램은 신진 작가와 중진 작가의 소통과 협력을 꾀하기 위해 마련된 ‘찾아가는 작업실’이었다. 2017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작가 중 한 명인 이완의 작업실에서 진행된 자유로운 대담의 자리였다. 신진 작가들이나 미술을 전공하는 학생들, 그리고 미술에 관심이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작가의 창조적 행위와 고민의 장소인 작업실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작가는 어떤 과정을 통해 작업을 완성해나가는지 궁금해 한다. 또한 어떤 이유로 작가라는 직업을 선택하게 되었으며 작업을 진행하면서 맞닥뜨리게 되는 난관은 무엇인지, 그것을 주로 어떻게 해결하는지 등을 듣고 싶어 한다. 이미 신진 작가 시절을 보낸 작가가 그 시절을 어떻게 보냈으며 어떤 노력들을 했는지에 관한 이야기도 도움이 된다.
실제로 ‘찾아가는 작업실’에서는 매우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질문과 답변들이 이어졌다. 필자가 참여한 또 다른 프로그램은 ‘예술가 네트워킹 아트 토크’였다. 이는 신진 예술가들이 현재 활동하고 있는 전시 기획자, 평론가, 작가와의 대화를 통해 정보와 의견을 공유하기 위한 것이었다. 라운드테이블에서는 ‘국내외 작가 지원 프로그램, 비엔날레, 기획자와 평론가의 눈으로 본 작가, 현재 미술의 주요 키워드’ 등과 같은 다양한 이야기들이 공유되었다. 이후 진행된 네트워킹 워크숍에서는 작가들의 고민과 관심사에 대한 보다 직접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위의 프로그램들은 필자에게도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이런 연유로 이번 호 ‘더 갤러리’에서는 언젠가 필자와 만날지도 모르는 젊은 작가들을 위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이야기의 일부는 ‘예술가 네트워킹 아트 토크’에서 필자가 했던 것이다. 물론 이것은 한 개인의 주관적인 의견임을 미리 밝혀둔다.
건강 챙기고, 좋아하는 주제를 잡아라.
‘왜 이걸 하는지’ 모르는 작가들 의외로 많아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뜬금없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건강관리를 잘하라는 것이다. 필자는 작가들과 만나면 꼭 물어보는 질문이 있다. ‘하루에 몇 시간 잠을 자는가?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는가?’이다. 물론 작가들의 답은 모두 다르다. 건강한 식습관과 운동, 규칙적인 생활 등이 건강한 삶을 100% 보장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그 확률은 높아진다. 많은 사람들이 작가는 자유롭게 시간을 보낸다고 생각한다. 일정 부분에서는 맞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원하는 대로 시간을 계획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불규칙한 생활을 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다음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발견하고 지속적으로 발전시키라는 것이다. 좋아하는 것이란 내가 주목하는 주제나 이슈가 될 수도 있고, 매체와 형식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진부하게 느껴질 정도로 기본적인 이야기다. 그래서 더 중요하다. 작가로서 첫 발을 내딛은 젊은 작가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그들이 어떤 작업을 하는지, 왜 하는지 명쾌하게 이해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필자가 이해를 못했거나, 작가가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전달하는 데에 익숙하지 않거나, 아니면 자신이 왜 이 작업을 하고 있는지 생각을 정리하지 못한 것이다. 예상 외로 세 번째 경우도 꽤 많다. ‘왜 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은 작업의 정당성과 가치, 동기 부여 등에서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답을 찾다 보면 자신의 관심사와 취향을 정리할 수 있다. 삶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을 확인할 수 있다. 시각적인 결과물뿐 아니라 작품이 담아내는 이야기(개념)가 중요하게 여겨지는 시대이다. 깊이 있는 자신만의 내러티브를 가지려면 좋아하는 것을 해야 한다.
뉴스를 통해 시대의 흐름을 파악하라.
흐름에 올라탈지 아닐지는 각자 선택이지만
자신이 흥미 있어 하는 무언가가 이 시대의 주류나 유행이 아니라면 어떻게 해야 하나와 같은 질문이 따를 수 있겠다. 당연히 본인이 원하는 것을 해야 한다. 작가로서 현 시대 미술의 주된 흐름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지만(모르는 것과 알고도 선택하지 않는 것은 천지차이다) 그것을 반드시 따라갈 필요는 없다.
‘유행을 따르지 않아 주목을 받지 못하게 된다면?’이라는 질문에 대한 필자의 답은 다음과 같다. 유행한다는 것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다는 이야기고 그만큼 경쟁이 치열하다는 이야기다. 어느 쪽이든 힘들긴 마찬가지다. 또한 본인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을 해야 어려움이 닥쳤을 때 해결할 수 있다. 내일의 일을 모르는 인생에서 하루를 살아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해야 하지 않을까? 근원적인 이야기이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유한하다.
시대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 중 하나는 뉴스를 보는 것이다. 정치, 경제, 연예, 문화예술, 스포츠, 어떤 주제의 뉴스든 좋다. 최대한 다양한 매체의 뉴스를 보길 권한다. 모든 뉴스에는 저널리스트의 관점이 담긴다. 하나의 주제도 관점에 따라 전혀 다른 기사가 나올 수 있다. 이 세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이 얼마나 많은지 경험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당신의 키워드는 무엇이고,
당신의 재료에는 어떤 스토리가 있나
이제 조금 더 구체적으로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다. 미술을 전공하는 사람은 대학교 재학 시절부터 자신의 작업에 어떤 이야기를 담아야 할지 고민한다. 필자가 학생들에게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는 ‘개념을 어떻게 잡아야 하나요?’이다. 그 첫 단추는 앞에서 말했던 흥미를 찾고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이고, 그 다음으로 유념해야 할 것은 다양성 속의 통일성이다. 이번에도 평범한 해답이라 느낄 수 있겠다. 그러나 이처럼 어려운 일은 없다. 다양성만 가득하면 산만해질 것이고, 통일성만 가득하면 지루해질 것이다. 미술계에서 주목받는 작가들의 홈페이지에 한 번 들어가보자. 그들이 발표한 각각의 시리즈는 서로 매우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 명의 작가가 이렇게 다양한 주제를 다룰 수 있을까 싶을 정도의 모습을 보이는 작가도 많다. 그러나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그 기저에는 반드시 전 시리즈를 관통하는 한두 개의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전체를 아우르는 통일된 키워드가 발견된다.
다음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매체에도 의미를 담으라는 것이다. 이것은 가장 전통적이고 익숙한 재료인 대리석, 흙, 나무, 혹은 유화와 수채화를 사용할 때도 마찬가지다.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신진 작가들이 자신이 선택한 재료를 이야기할 때는 주로 제작 방법과 과정에 대한 설명에 집중한다. 그러나 작품이 담고 있는 주제(개념)뿐 아니라 작가가 사용하는 재료에도 차별화된 이야기가 담긴다면 훨씬 입체적인 분석이 가능해진다.
마지막으로 제일 중요한 것 하나가 남았다. 모든 것은 본인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작가가 처한 상황이 다르고 예술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도 다르다. 정해진 하나의 정답은 불가능하다. 많이 질문하고, 듣고, 그 속에서 나만의 해답을 찾아내는 노력의 시간이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