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 = 이성호 기자) 14년째 제자리걸음인 주택 후분양제 도입. 하지만 현 정부가 칼을 빼들 모양새다. 조만간 후분양제 활성화 방안을 마련키로 해 촉각이 곤두서고 있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CNB와의 통화에서 “이달(6월) 중에 ‘제2차 장기 주거종합계획(2013~2022년)’의 수정안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수정안에 주목하는 이유는 후분양제 시행 방안이 포함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
앞서 국토부는 지난 1월 ‘2018년 주요정책 추진계획’을 통해 올해 상반기까지 제2차 장기 주거종합계획 수립 이후 5년간 변화된 주택시장 환경 등을 반영, 중장기 수급 전망과 주택시장 여건을 고려한 공공부문의 단계적 후분양 시행과 민간부문의 후분양 활성화 방안 마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곧 공표될 후분양 로드맵에서는 앞서 밝힌 대로 공공부문은 점진적으로 추진하되 민간영역은 건드리지 않는 대신 후분양을 할 경우, 공공택지 우선공급 등 인센티브를 주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아파트도 물품? ”직접 보고 사라”
국회 입법조사처 등에 따르면 현재 주택건설사업자는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에 따라 공급하는 주택의 입주자 선정 시 선분양 방식으로 할 것인지 아니면 후분양 방식으로 할 것인지를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
신규 공동주택시장의 경우 선분양인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은데 2016년 기준 주택도시보증공사로부터 분양보증을 받은 일반 주택수는 31.9만호, 주상복합주택은 3.2만호다.
반면, 주택도시기금이 지원하는 후분양 주택자금의 대출 규모는 2015년 기준 1370억원으로 호당 지원액을 고려하면 2000호 정도만 후분양 주택자금을 대출받아 건설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선분양은 주택건설사업자 입장에서 보면 건설자금을 조기에 확보하는데 편리하다. 또 주택수요자는 청약시점부터 완공 시까지 주택가격 상승으로 인한 편익을 누릴 수 있는 등 이해관계가 부합되기도 한다.
하지만 부작용도 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등에 따르면 선분양은 통상적으로 2~3년 소요되는 건축기간 중 발생하는 주택가격 변화 위험 및 건축비 조달을 위한 금융비용을 소비자가 부담하며, 소비자가 계약 시 실제 주택 품질을 확인할 수 없어 허위·과장 광고나 부실공사 등에 따른 피해에 취약한 점 등이 한계로 지적되고 있다. 분양권 전매의 폐해도 야기된다.
이에 후분양제 도입을 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 정부에서는 지난 2004년 ‘아파트 후분양 활성화 방안’을 확정, 시범사업 등을 거쳐 2008년부터 본격적으로 시행할 예정이었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등으로 인해 뜻을 이루지 못한 바 있다.
이처럼 14년간 제자리걸음을 이어오던 후분양제 의무화가 다시 불 붙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국정감사 때부터다. 당시 국토부 국감에서 김현미 장관이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공공주택 부문에서부터 주택 후분양제를 단계적으로 도입하겠다고 한 것.
조만간 발표될 제2차 장기 주거종합계획 수정안에 관심 모아지고 있는 이유다. 그러나 시민사회단체들은 속도가 더디다며 즉각적인 시행을 촉구하고 있다.
참여연대·경실련·주거권네트워크 등은 최근 2018 지방선거를 맞아 내놓은 ‘주거시민단체들의 8대 주거정책 요구안’에서 ‘지자체 산하 도시공사 후분양제 시행’을 포함시켰다.
선분양제는 부실시공뿐만 아니라 분양권 거래로 시장을 교란시키고 투기 수단으로 사용되는 등 각종 문제의 원인이 되고 있다며 지자체 산하 공사의 경우, 지자체장의 의지에 따라 후분양을 실시 할 수 있는 만큼 선분양을 중단하고 후분양을 실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특히 화성동탄 부실시공 이후 국토부 장관은 공공아파트 후분양제 도입을 약속했으나 이행하지 않고 있고 정부는 로드맵을 수립한다며 시간을 끌고 있다는 지적이다.
자금 흐름 막혀…군소업체 도산 우려
아울러 시민단체들은 국회도 압박하고 있다.
현재 국회에는 정동영 의원(민주평화당)·윤영일 의원(민주평화당)이 지난해 각각 대표발의한 ‘주택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제출돼 있다. 이 개정안들은 주택 건축공정이 전체의 80%에 도달한 이후에만 입주자를 모집할 수 있도록 하는 ‘후분양’ 제도 전면 도입이 골자다.
그러나 반론도 만만치 않아 현재 국토교통위원회에서 계류 중이다. 후분양을 강제화할 시 기업 자금조달 비용 증가분이 소비자에게 전가, 분양가격의 상승 및 소비자도 단기간에 목돈을 마련해야 하는 등 부담이 발생한다는 의견이 상임위에 접수된 상태다.
또한 자금조달능력이나 재무구조가 상대적으로 우수한 대기업 중심으로 주택시장이 재편돼 중소업체들이 시장에서 퇴출될 수 있고, 결국 주택공급 축소와 주택경기 침체를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돼 현재까지 법안 논의에 진척이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정부가 일단 공공부문부터 시작해 민간부문까지 유도해 넓혀 가겠다는 복안임에 따라 후분양 로드맵이 나오게 되면 아무래도 향후 입법 논의에 탄력이 붙을 것으로 보여 추이가 주목되고 있다.
주택건설업계에서는 선분양제가 익숙하기 때문에 의무화에 대해 긴장할 수밖에 없다. 먼저 대형건설사를 회원사로 둔 한국주택협회의 경우 지난 4월 후분양제와 관련해 공급 축소를 우려하면서 언젠가 하더라도 단계적으로 도입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한국주택협회는 건영, 경남기업, 극동건설, 금호산업, 남광토건, 대림산업, 대우건설, 대우산업개발, 동부건설, 두산건설, 롯데건설, 벽산건설, 부영주택, 삼부토건, 삼성물산, 서희건설, 신동아건설, 쌍용건설, 에스케이건설, 우방, 지에스건설, 케이씨씨건설, 코오롱글로벌, 포스코건설, 한라, 한양, 한진중공업, 한화건설, 현대건설, 현대산업개발, 현대엔지니어링, 효성 등이 회원사로 속해 있다.
중소·중견 건설사를 회원사로 둔 대한주택건설협회는 더욱 강경히 고개를 젓고 있다.
대한주택건설협회 관계자는 CNB와 통화에서 “중소 주택업체는 물론 소비자도 부담이 되고 일부 대형건설사 위주로만 사업이 재편될 것”이라며 민간영역 의무화에 대해서는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또 다른 협회 관계자는 “민간부문에서 후분양을 유도키 위해 과거처럼 공공택지를 우선 공급하는 경우에도 중견·중소건설사는 건설자금을 자체적으로 조달하기 어렵기 때문에 금융지원 등 실질적인 인센티브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현재 대부분 건설사들은 택지 매입 후 선분양을 통해 분양대금이 들어오면 택지자금을 갚아나가는 식으로 사업을 유지하고 있는데, 공공택지를 우선 공급해 준다 하더라도 공사기간만 2~3년, 택지매입 후 사업승인까지 받으면 4~5년이 걸려 이 기간 동안 순수한 자기자본으로 버티기는 어렵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