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92호 선명규 기자⁄ 2018.06.18 11:36:40
(CNB저널 = 선명규 기자) 롯데백화점이 잠실점 에비뉴엘 아트홀에서 이달 1일부터 한 달 간 ‘We Draw Football’전을 연다. 다방면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이 그림으로 구현한 ‘축구’의 색다른 면을 엿볼 수 있는 자리. 축구천왕이 된 호날두와 메시 등 눈길을 끄는 작품이 많다. 오는 14일 개막하는 러시아 월드컵의 열기를 미리 체감할 수 있는 현장에 CNB가 다녀왔다.
“소리가 들리네요. 맥박이 빨리 뜁니다.”
1984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한국 대표팀을 이끈 김정남 전 감독은 관중의 뜨거운 환호를 들은 듯 연신 감탄했다. 축구를 주제로 작가 12명이 개성대로 완성한 작품 70여점을 둘러본 뒤였다. 과연 전시장은 실제 경기 못지않게 생동하는 작품들로 일렁였다. ‘축덕(축구덕후)’이 아니어도 감흥을 불러일으킬만했다. 축구와 축구선수를 모티브로 한 회화, 조형물, 피규어 등의 다양한 장르를 만나는 재미도 있기 때문이다.
전시는 역동적인 한국 대표 선수들의 모습으로 출발한다. 손흥민을 중심으로 기성용, 황희찬 등이 진격하는 장면이 인상적인 작품은 광작가의 ‘국가대표 2018.’ 들머리에서 전시를 대차게 관람하라는 강렬한 신호를 보낸다.
세계 축구사를 꿰고 있다면 미국 작가 다니엘 나리의 작품 앞에서 지식을 뽐내도 좋다. 지단이 마테라치를 머리로 들이받는 장면을 포착한다면 중수, 승부차기 실축 후 좌절하는 이탈리아의 로베르토 바조를 찾아낸다면 고수. 마라도나의 ‘신의 손’과 1970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브라질을 우승으로 이끈 펠레의 환호가 눈에 들어온다면 올드팬일 가능성이 높다.
실력으로 ‘탈(脫)인간계’에 있다는 호날두와 메시가 진짜 신(神)이 되면 어떤 모습일까? 붓질 작가는 이 세기의 라이벌을 수미산(세계 중심에 있다는 상상의 산)의 사방에서 불법을 보호하고 인간의 선악을 지켜보던 수호신으로 그려 선보인다. 작가가 ‘축국천왕도’를 통해 보여주고 싶은 것은 월드컵 우승을 향한 두 선수의 결의. 호날두와 메시는 소속팀에서 에이스로 활약하며 다수의 우승컵을 들어 올렸지만 월드컵과는 인연이 없었다.
전시에도 전반전-후반전 있어
프랑스 작가 얀 달롱은 선수들의 열정과 기개(氣槪)를 그림으로 구현했다. 요즘 유행하는 스마트폰 기능인 ‘슈퍼슬로우모션’처럼 몸짓 하나하나의 흔적을 선연히 남겼다. 작가는 “나는 고정된 그림을 움직이려는 야망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색의 진동성에 의한 최대의 역동성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스포츠 경기에 하프타임이 있듯이 전시 관람에도 숨고르기가 필요한 법. 김보미 작가의 서정성 짙은 작품은 역동적인 그림들 사이에서 잠시 긴장을 완화해준다. 순수미술을 전공한 작가는 풀과 나무와 새가 어우러진 들판에서 두 선수가 경합하는 모습을 통해 다분히 경쟁적인 스포츠가 가진 목가적인 미학을 표현했다. 질감이 마치 판화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작가는 아크릴 물감을 사용했다.
이번 전시를 위해 어렵게 모신 것도 있다. 1954년 멕시코 월드컵에 참가한 ‘황금다리’ 최정민 선수의 축구화와 1930년 ‘경평(경성·평양) 축구 대항전’에 쓰인 축구공이다. 유명 축구 콜렉터인 이재형 씨의 소장품. 이 씨는 세계 30여개국을 돌며 사재 20여억원을 들여 약 4만8000점의 축구 관련 유물을 수집한 걸어 다니는 ‘축구 박물관’이다. 1930년부터 2002년까지 역대 월드컵 기념우표세트, 2002 한일월드컵 안정환의 골든볼과 4강행을 결정지은 홍명보의 승부차기 공이 대표적인 소장품이다.
조의영 롯데백화점 문화마케팅팀 큐레이터는 CNB에 “대표팀 선수들의 열정이 새겨진 작품을 보고 월드컵을 관전하면 응원하는 재미가 배가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