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친환경차 패권 경쟁에서 전기차에 한 발 밀린 것으로 평가되던 수소차가 서서히 상황 반전을 추진 중인 가운데 수소차 주도 기업들이 발빠른 합종연횡에 나섰다. 완성차 업체 중 수소차 대량 생산 능력을 보유한 토요타와 혼다, 현대‧기아차 3사 중에서 토요타는 BMW, 혼다는 GM과 각기 동맹을 형성한 상황. 이에 현대‧기아차도 최근 독일 폭스바겐그룹의 아우디와 손잡고 본격적인 수소차 시장 패권 경쟁에 참전했다. 때마침 정부도 수소차 생태계에 5년 간 2조 6000억 원을 투자하는 지원 계획을 공개해 바야흐로 수소차 시장은 결정적 전환기를 맞이한 분위기다.
궁극의 친환경차, 전기차에 밀리다
우주에서 가장 흔한 물질 ‘수소’와 산소를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고, 그 힘으로 모터를 돌려 주행한다. 당연히 이산화탄소나 미세먼지 등 오염물질 배출이 전혀 없고, 발생하는 부산물은 물뿐이다. 심지어 이 과정에서 오염된 외부 공기를 흡입해 청정 공기를 배출하는 공기 정화 기능까지 갖췄다. 수소연료전지차(FCEV, Fuel Cell Electric Vehicle)가 ‘궁극의 친환경차’로 불리는 이유다.
하지만 친환경차 주도권 경쟁에서 수소차는 오랫동안 부진을 면치 못했다. 지난해 전세계 전기차 판매량이 약 122만 대로 집계됐지만 수소차 판매량은 3000여 대에 불과했다.
앞으로의 전망도 밝지 않다. 블룸버그가 지난 5월 밝힌 보고서에서 전기차가 오는 2040년 전체 자동차 판매량의 절반을 넘어설 것으로 관측한 반면, 미국의 시장조사 업체 IHS 오토모티브는 2027년에도 수소차의 연간 판매량이 7만대 정도로 전체 자동차 판매량의 0.1%도 안될 것으로 예상했다.
수소차의 경우 일단 제조사 자체가 많지 않다. 테슬라, BYD 등 신흥 전기차 제조업체들은 물론 기존의 완성차 기업들까지 전기차를 만드는 기업은 많지만, 수소차의 경우 독자 생산 능력을 보유한 기업은 현대‧기아차와 토요타, 혼다 등 3사 뿐이다.
수소차 제조사가 많지 않은 것은 기술진입장벽이 전기차에 비해 현저히 높고 백금, 팔라듐 등 고가의 소재로 만든 부품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수소차의 가격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결정적 요인이다.
지난달에는 2013년 르노‧닛산과 포드, 벤츠 등이 결성했던 수소차 동맹이 전기차 개발로 방향을 선회했다는 소식까지 전해졌다.
이런 상황에서도 수소차는 여전히 전기차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대안으로 주목받는다. 충전 시간이 길고, 장거리 주행이 어려운 점 등 전기차가 가진 여러 문제점을 해결한 ‘포스트 전기차’가 될 잠재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3사 합종연횡… 현대차 파트너는 ‘폭스바겐’
현대차는 일찍부터 수소차 개발에 착수한 대표적 기업이다. 1998년 수소연료전지 개발을 시작해 핵심부품으로 꼽히는 연료전지 스택과 구동모터, 인버터 등의 독자개발에 성공했고, 지난 2013년 세계 최초의 양산형 수소전기차 ‘투싼’을 출시하면서 수소차 분야의 선두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이후 2014년 토요타가 최초의 세단형 수소차 ‘미라이’를 출시하면서 수소차 경쟁에 합류했고, 지난해에는 혼다가 ‘클래리티’를 출시해 3파전 구도가 형성됐다. 현대차도 지난 3월 차세대 수소차 ‘넥쏘’를 출시해 전열을 새로이 했다.
일본 2사와 한국 1사로 구성된 수소차 3사는 최근 들어 세력 불리기에 한창이다. 수소차 기술력을 다른 완성차 기업과 공유해 시장의 파이를 키우는 게 급선무라는 판단 때문이다. 먼저 토요타는 2013년 BMW와 연료전지 시스템 공동 개발 계약을 체결하고 2020년 상용화를 목표로 수소전기차 플랫폼을 개발 중이다. 혼다는 제너럴모터스(GM)와 합작법인을 설립해 수소연료전지 시스템을 공동 생산하기로 했다.
벤츠의 경우 자체 수소차 개발계획과 르노-닛산, 포드와의 협력 개발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어서 현대차가 손잡을 수 있는 대형 완성차 제조사는 사실상 폭스바겐그룹 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결국 현대‧기아차는 5월 20일 독일 폭스바겐그룹의 아우디와 수소전기차 관련 연료전지 기술 파트너십 협약을 체결하기에 이르렀다. 양사는 수소전기차 기술의 확산과 시장 활성화를 위해 특허와 주요 부품을 공유하고, 수소전기차 시장 선점과 기술 주도권 확보를 위해 앞으로 기술 협업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기로 합의했다.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은 이날 “현대차그룹은 전 지구적 환경 문제, 에너지 수급 불안, 자원 고갈 등 난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으로서 수소 에너지의 가능성에 일찍부터 관심을 기울여 왔다”며 “아우디와의 파트너십은 글로벌 수소전기차 시장의 활성화는 물론 수소 연관 산업 발전을 통한 혁신적 산업 생태계 조성에 새로운 전환점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피터 메르텐스 아우디 기술개발 총괄은 “수소전기차는 전동화 기반의 차량 중 가장 진화된 형태로, 잠재력이 큰 미래 친환경 기술 분야”라며 “현대차그룹과 같은 강력한 파트너와의 협업은 수소차 분야의 기술 혁신을 위한 현명한 방법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에 현대차가 수소차 파트너십을 맺은 아우디는 폭스바겐그룹 내에서 수소차 관련 연구·개발을 총괄하는 브랜드지만, 양사는 이번 협약의 효력 범위가 현대차그룹과 폭스바겐그룹 산하 모든 브랜드라고 밝힌 터라 다른 브랜드들도 현대차의 수소차 기술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자동차를 판매하는 폭스바겐그룹의 산하에는 아우디, 포르쉐, 람보르기니, 벤틀리, 부가티 등 유명 브랜드가 즐비하다.
양사의 기술 협업에서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는 건 현대모비스가 될 예정이다. 수소전기차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부품인 연료전지 스택, 수소 공급·저장 장치 등을 보유한 기업이기 때문이다.
업계는 양사의 이번 파트너십이 수소차의 보급 확대와 수익성 강화를 모색 중인 현대차그룹과 수소차 양산 모델 개발을 서두르고 있는 아우디의 전략적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로 풀이한다.
백운규 산업부 장관 “2022년 1만 6000대 보급 목표”
수소차 기술의 중요성을 뒤늦게 깨달은 때문일까? 그간 친환경차 영역에서 전기차 부문에만 지원을 집중했던 정부가 최근 수소차 생태계 구축에 거액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은 것도 현대‧기아차의 수소차 전략에 추진력을 보태는 변수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25일 서울 그랜드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수소차 관련 업계와 전문가 등이 참석한 가운데 ‘산업혁신 2020 플랫폼’ 2차 회의를 열었다. 회의에서는 민‧관이 전략적 협업을 통해 수소차와 수소충전소, 수소에너지 등 수소차 산업생태계를 조기에 구축하는 방안이 논의됐다.
먼저 정부와 업계는 올해 1900억 원, 내년 4200억 원 등 2022년까지 총 2조 6000억 원을 수소차 생산공장 증설, 수소 버스 제작, 버스용 수소 저장용기 개발, 스택공장 증설 등에 투자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올해 400개, 내년 480개 등 2022년까지 총 3800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계획도 공개됐다.
이외에도 산업부는 수소 버스 보조금 신설, 운송사업용 수소 버스 취득세 50% 감면 등 다양한 정부 지원책을 제시했다.
백운규 장관은 “정부는 현재 2022년까지 1만 6000대의 수소차 보급을 목표로 수소차에 보조금을 지원할 계획”이라며 “수소차 보급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2022년까지 총 4500억 원의 예산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핵심 기술력 강화 계획도 내놨다. 산업부는 2022년까지 백금촉매 저감 및 대체촉매 기술 개발과 스택 부품 완전 국산화 등 주요 부품소재 연구개발(R&D)에 1250억 원을 지원할 계획이다.
2022년까지 총 1000대의 수소 버스를 보급하고, 11월 출범 예정인 수소충전소 특수목적법인(SPC)을 지원해 수소충전소 국산화율을 40%에서 80%로 높이는 방안과. 수소 승용차와 버스 겸용 충전소 개발, 이동형 수소충전소 개발 등도 추진된다. 이동식 수소충전소 설치, 개발제한구역·연구개발특구 내 수소충전소 설치, 융복합충전소 설치 등을 위한 규제 개선도 내년까지 완료할 예정이다.
여기에 더해 2022년까지 수소 에너지를 경유나 액화석유가스(LPG)보다 저렴한 가격에 공급할 수 있도록 안정적인 공급·유통 체계를 구축한다는 계획도 제시됐다. 현재 수송용 연료 가격이 ㎞당 휘발유 155원, 경유 92원, LPG 83원인데 수소차 연료를 70원대로 낮춘다는 것. 이를 위해 산업부가 내년에 수소유통센터를 설립하고 재생에너지 잉여 전력으로 수소를 생산하는 P2G(Power to Gas) 시스템 실증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이번 결정이 고용과 전후방산업 육성 측면에서 수소차가 전기차보다 우월한 장점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임은형 삼성증권 연구원은 “정부 관점에서 보면 전기차는 고용 측면과 세금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 전기차의 부품수 감소, 배터리 업체의 중국시장 진출 제한을 감안할 때, 전기차 수요가 늘면 한국 자동차 산업의 고용인원 감소도 불가피하다”면서 “수소차의 경우 전후방 생태계에 미치는 효과가 기존 내연기관차와 비슷하게 광범위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충전소 설치에 비용이 크게 소요된다. 국내의 경우 약 20억 원 내외로 전국 약 180곳인 CNG(압축천연가스) 충전소를 수소차 충전소로 확보할 경우 약 4000억 원이 소요될 것”이라면서도 “전기차 충전소보다 더 막대한 금액이 소요되는 것은 사실이나 한국의 경제 규모, 정유업체나 화학업체와의 사업 연관성을 감안할 때 관련 업체 간의 협력으로 충분히 해결이 가능한 금액으로 판단된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