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94호 최영태 CNB뉴스 발행인⁄ 2018.06.29 12:24:47
요즘 북한 관련 책 읽기가 재미있다. 손닿을 수 없는 지역으로만 느껴왔던 북한이 이제 차표 끊어서 갈 수 있는 곳으로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북한 관련 책들의 출판도 봇물을 이룬 듯하다. 책 광고 중에는 ‘김정은을 알아야 세계 정세가 보인다’는 것도 있다.
그래서 김정은 관련 책을 여러 권 읽어봤다. 재밌고 신기한 얘기가 많다. 역시 책에 담긴 정보는 무궁무진하다.
헌데, 여러 책을 읽고, 관련 정보를 섭취하면서도 끝내 남는 의문이 있었다. 김정은과 관련된 여러 속속들이 정보들, 예컨대 △그의 어머니 고용희는 (출신성분이 좋을 수 없는) 재일동포 출신이라서 북한에서 본격적으로 성인(聖人)화 작업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고 △김정은은 형 김정철보다 성격이 대담한 편이라서, 외부 세계의 관측(장남 김정철 또는 배다른 자식인 김정남으로 권력이 승계되리라는 예상을 많이 한)과는 달리 어려서부터 일찌감치 아버지 김정일로부터 후계자로 낙점을 받았으며 △여동생 김여정의 어릴 적 이름은 김일순이었다는 등 김정은에 대한 소소한 정보를 책을 통해 섭취한들, 과연 우리가 북한이라는 나라-지역을 제대로 알 수 있겠냐는 의문이다.
김정은에 대한 세밀 분석도 의미 있지만…
김정은의 사생활이나 개인적 특징을 아무리 많이 백과사전식으로 알아챈들 과연 뭐가 그리 달라지겠냐는 의문이기도 하다. 책의 다음과 같은 구절들을 보면 이런 의문은 더욱 커진다.
김정은은 북한의 밑바닥에서부터 일고 있는 경제적 변화에 대응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중략) 이런 점을 감안하면 그는 개혁가일 수밖에 없습니다.(다니엘 튜더, 제임스 피어슨 저 ‘조선자본주의공화국’ 10~11쪽)
설사 북한에서 강경 정책에 이어 개혁 정책이 나오거나, 떠오르는 유망주가 어느 날 갑자기 축출된다고 해서, 그게 변덕스럽고 예측 불가능한 절대 독재자 김정은이 나라를 좌우한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같은 책 128쪽)
외부에서 보면 북한 같은 독재국가에서는 왕과 같은 독재자가 모든 일을 맘대로 처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상황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즉 북한에 경제적 변화가 일어났기에 김정은 위원장은 개혁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라서 변화 도모에 나선 것이며, 북한 정책이 이렇게 또는 저렇게 변한다고 해서 그걸 김정은의 변덕으로 여기지 말라는 당부다. 다니엘 튜더와 제임스 피어슨은 실제로 북한에 들어가 보고, 또 여러 책-자료들을 참고해 이런 조언을 내놓았다.
사회 상황과 독재자가 서로 영향을 미치는 바를 우리는 우리 역사에서 봐왔다. 고 박정희 대통령의 예를 보자. 박정희의 쿠데타와 통치와 독재 그리고 몰락은 ‘모두’ 그의 개인 심리 특징에서 비롯된 것인가? 그렇지 않다. 민주주의란 개념이 아예 입력이 되지 않은 박정희 개인의 특징이 있긴 했지만, 쿠데타도 그렇고 10월유신도 그렇고 그럴만한 상황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또한 그는 살아 있는 동안 왕으로 군림하고자 했지만, 1970년대 말 경제-정치 상황에 불만을 품고 궐기한 부마사태가 있었기에 종말이 앞당겨졌다. 김재규가 내밀한 술자리에서 총탄을 발사하기까지는 여러 상황이 앞서 진행됐지만, 부마사태라는 민중 저항이 없었다면 역사는 다른 코스로 갈 수도 있었으리라는 게 역사학자들의 평이기도 하다.
결국, 박정희 개인의 퍼스낼러티를 아무리 연구해봐야, 박정희라는 인물이 놓인 환경을 잘 모르면 개인 연구가 아무런 소득도 내지 못할 수 있다는 지적을 이끌어낼 수 있다.
주체(지도자)와 환경(민중)을 모두 봐야
주체와 환경을 종합적으로 봐야 한다는 결론은 생물학적으로도 증명된다. 흔히 우리는 사람이 시각을 ‘갖고’ 태어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맞다. 사람은 사물을 볼 수 있는 훌륭한 시각 능력을 품고 태어난다. 그러나 신생아를 완벽한 어둠 속에 방치한다면, 즉 시각 유전자가 발현할 수 있는 상황 조건을 0로 만들어버린다면, 시신경은 제대로 성장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신생아로 태어나 부모의 보호를 받으면서 밝은 광선을 보기도 하고, 사물을 보기도 하는 훈련을 거치지 않고, 태어나자마자 안대를 채워놓고 눈으로 들어가는 빛을 차단하면, 결국 시신경은 발현되지 않기에 장님이 되어버린다는 사례를, 의학자들은 동물 연구 등을 통해서 밝혀냈다.
즉 아무리 좋은 ‘시각 유전자(본성)’을 지니고 있어도, 환경과의 상호작용이란 과정이 생략되면 장님이 된다는 소리다. 흔히 우리가 “그 사람은 천성이 원래 그래”라고 하는 말이 일부는 맞지만(왜냐면 천성이 가정환경 등과 서로 영향을 미치면서 발현되니까), 100% 맞다고 할 수는 없다(왜냐면 천성 중 가정환경 등의 불비로 발현되지 않는 것이 있을 수 있으니까).
이처럼 주체와 상황의 교향악이 인간 사회가 펼쳐지는 공식이라면, 우리는 현재 주역 자리에 올라와 있는 김정은 위원장의 특성-성격-개성을 파악하는 노력을 함과 동시에, 김 위원장이 활동하는 무대인 북한 사회에 대해 제대로 알아야 한다. 김 위원장의 특성-성격-개성을 우리는 지난 4월 27일 이후의 생방송 경험을 통해 알아나가고 있다.
4월 27일 생방송 이후 김정은을 보는 시각이 확연히 달라진 이유
이 생방송 이전과 이후의 우리 경험은 확연히 다르다. 그 이전에 우리는 국가정보원과 언론매체가 걸러서 보여주는 김정은만 봤다.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 이전의 김정은은 국정원-미디어가 ‘고르고 걸러서’ 보여준 인물로, 변덕스럽고 공포스러운 인물이었다. 반면 4월 27일 ‘생’방송 이후의 그를 우리는 우리와 똑같이 웃고 우는 인간으로서 바라보게 됐다. 걸러지지 않은 영상이기에 그의 면모를 비로소 처음 알게 되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되고, 그래서 4월 27일 이전에 김정은에 대한 많은 정보를 갖고 있던 북한 연구 학자들도 “생방송 이후 김정은이란 사람을 다시 보게 됐다”고 말하는 듯하다.
생물학에서 유전자와 환경을 모두 중시해야 하듯, 역사학에서는 영웅과 민중의 상호작용을 중시해야 한다. 영웅이 모든 걸 결정하고 민중은 아예 없는 듯 해석하는 ‘삼국지 식’ 또는 ‘고대 로마식’ 사관은 더 이상 현대 사회에서 용납이 안 된다. 그런데 우리 언론은, 방송은 지금도 김정은의 얼굴만 클로즈업해서 비추려 노력할 뿐, 북한 사람들을 생생하게 보여주려는 노력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예를 들어 북한의 시장경제 체제인 이른바 ‘장마당’(북한의 시장을 뜻하는 말)의 주역들인 ‘돈주’(부자)에 대해 우리는 도대체 뭘 알고 있는가?
김정은이 자랑하는 여명거리의 건설에도 돈주가 숨은 주역이었을 것이다.
피살된 김정남(김정일과 성혜림 사이의 아들)과 장기간 이메일 통신을 했으며, 그 결과를 ‘안녕하세요 김정남입니다’(2012년)라는 책으로 펴낸 바 있는 일본 언론인 고미 요지가 올해 새로 펴낸 ‘김정은 - 그는 과연 광기와 고독의 독재자인가?’의 201쪽에 나오는 내용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내세우는 정책의 배경에는 돈주의 돈과 동의가 있다는 소리다.
북한 돈주는 남한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올해 2월 출간된 ‘새로운 북한 이야기’는 박재규 경남대 총장 등 북한 전문 연구가 11인의 글을 모은 책이다. 출판 시점으로 볼 때 남북한 관계의 극적인 반전 ‘이전에’ 쓰인 글들이지만, 그래도 돈주에 대한 분석들이 꽤 있다.
김정은은 시장 확산을 허용함으로써, 정권 기관과 민간 돈주가 연합하여 북한 국내에 축적된 외화를 벌어들일 수 있는 환경을 적극적으로 조성했다. 이러한 조치를 취한 핵심 이유는 그러한 정책이 궁극적으로 수령 상납을 증가시킬 수 있기 때문이었다. (박형중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대다수 돈주들은 국가로부터 신변안전을 보장받기 위해 막대한 양의 공채를 사거나 기부금을 헌납하고 있으며, 북한 당국은 돈주들 간의 기부금 경쟁을 유발하여 당과 수령, 국가에 복종과 충성을 유도하고 있다 (중략) 돈주들은 (중략) 한국 사회의 시장 세력들과 비교가 될 수가 없으며 (중략) 이런 현실을 이미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북한 체제가 붕괴되는 것보다 남북 분단의 영구화를 바라고 있다. 돈주들이 계속해서 지금과 같은 부를 기대하고 지속적인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분단과 북한 체제라는 조건이 반드시 필요하다. (조재옥 경남대 정외과 교수)
북한의 현 정세는 정권과 돈주의 연합 상태라는 진단이며, 돈주들은 한국의 재벌과 비교하면 자신들은 비교 자체가 안 되기 때문에 현 분단 사태의 지속을 원한다는 진단도 뒤따른다.
돈주가 돈을 대줘야 여명거리 같은 김정은 위원장의 치적도 가능한 것이며, 돈주들이 거부하는 만큼 전면적 통일 역시 쉽지 않을 것임을 알 수 있다. 오로지 김정은 혼자 원해서 여명거리 같은 이른바 ‘평해튼’(평양의 신시가지를 뉴욕 맨해튼에 비유해 부르는 말. 실제로 평양 사람들이 이렇게 부른다고 함)이 태어나는 게 아니고, 돈주 집단과 뜻이 맞아야 그런 실적도 가능하다는 얘기다.
재벌총수의 경제 기여만 인정하고,
노동자의 기여는 인정하지 않는 사회
그러나 철지난 영웅 사관에 잘 빠지는 한국인들은(특히 이른바 엘리트들), ‘박정희 덕분에 산업화가 됐다’며 이치에 맞지 않는 소리를 잘도 해댄다. 개발독재라는 시스템을 동원한 게 박정희뿐이 아니고 남미-동남아의 여러 나라에서도 그런 개발독재 시스템이 동원됐지만 한국-싱가포르는 성공했고, 남미 여러 나라는 실패했다면 독재자의 개발독재 노력만큼이나, 아니 그보다도 더 중요할 정도로 인민-노동대중의 노력에 포커스를 맞춰야 할 텐데 한국 엘리트들의 인식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태반이다.
그렇기에 재벌 회장들에 대해선 ‘경제성장에 기여한 바를 참작해’ 집행유예를 잘도 내려주면서, 노동자에 대해선 ‘경제성장에 기여한 바를 참작’하는 경우가 거의 없이 엄벌에만 처하게 되는 모양이다. 실제로 경제성장을 이뤄낸 것은 현장의 노동자와 개발자-연구자인데, 이런 노력(환경)은 무시하면서 주체(재벌총수)의 노력에만 모든 점수를 몰아주니, 한국의 ‘재벌주체사상’이라고나 할까?
사정이 이렇다면, 우리 언론들은, 최소한 공영방송은, 북한의 돈주 등 북한 사람들의 실상을 알려주려 노력해야 한다. 지금처럼 김정은이 어떻고, 장성택은 어땠으며, 최룡해는 실각됐다가 복권됐으며, 리설주-현송월이 어떻고 하는 얘기로만 허송세월해서는 안 된다. 그런 사람들에 대해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북한의 인민들이 실제로 어떻게 살고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를 정확히 알려줘야 한다는 것이다.
남한의 발전상만 알게 되면 북한인들이
반체제 봉기를 일으킬 거라고? 이미 다 안다는데?
김정은-북한 관련 책을 읽으면서 확인하게 되는 점 하나는, ‘북한 사람들은 남한에 대해 잘 알지만, 남한 사람들은 북한에 대해 거의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 사람들은 중국에서 들어오는 USB 저장장치를 통해 남한의 드라마와 K팝에 대해 잘 안다고 한다. 사실 일본에 대해서 잘 알려면 ‘일본인이란 이렇다 저렇다’ 하는 일본인론(論) 책을 몇 권 읽는 것보다는, 잘 만들어진 일본 드라마 한 편을 제대로 보는 것이 훨씬 더 유익하다. 론은 론일뿐, 론을 통해 일본인 개개인을 파악할 수는 없지만, 드라마에 나오는 유형화된 인간을 봄으로써 “아, 일본에는 이렇고 저런 사람들이 사는구나”라고 쉽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동안 우리는 잘못된 북한인론(論)만을 교육받아 왔다. 다니엘 튜더, 제임스 피어슨은 책 ‘조선자본주의공화국’에서 이런 얘기를 한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논평가들은 북한이 개방을 하게 되면 북한 사람이 한국의 우월한 삶의 질에 대해 '알아버리게' 될 것이기 때문에 북한 정부로서는 경제 개혁을 결코 추구할 수 없다고 말하는데, 북한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게 바로 북한 주민의 정권 전복 의지로 연결되는 건 아니다.(201쪽)
팩트 무시하고 제멋대로 상상해 말하는 평론가들
한국의 TV 논평가들은 “북한 사람들이 남한의 발전상을 모르기 때문에 저러고 살지, 알기만 하면 바로 체제전복 움직임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멋대로 가정하지만, 실제로 북한 사람들은 몰래 본 한국 드라마 등을 통해 이미 남한 실정을 거의 다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그런 앎이 정권 전복 의지로는 연결되지 않는다는 게 저자들의 얘기다. 도대체 우리는 이런 엉터리 평론가들(북한에 가본 적도 없고, 북한 사람들을 만나본 적도 거의 없지만 말은 잘하는)이 엉터리로 만들어낸 얘기에 세뇌 당하면서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이 잘사는 모습을 보여주기‘만’ 하면 북한 사람들이 뻑가서 다 넘어올 것이라는, 현실과 전혀 부합되지 않는 상상 속에서 살아왔기에, 우리는 지난 ‘이명박근혜 정권’ 기간 동안 국방 예산에는 엄청난 돈을 쏟아 부어 미국 군산복합체와 그와 연관된 정상배들의 배만 불려주면서도 안보는 향상되지 않아 연평도에 포탄이 떨어져 사람이 죽고, 전쟁이 일어날까봐 벌벌 떨며 살아온 것은 아닐까?
북한 사람들이 한류를 통해 남한 사람들의 생얼굴을 본다면, 우리도 한시바삐 북한인들의 생얼굴을 봐야 한다. 그래야 “만나기 전보다 만나고 난 뒤에 더 당혹스럽고 더 싫어지더라”는 황당한 경험을 하지 않을 수 있다.
“만나니 달라지더라”는 신은미의 경험담
또 북한인들의 생얼굴을 만나는 경험을 아주 재밌을 수도 있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재미동포로서 북한 여행을 다녀온 경험을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2012년)로, 이어 3년 뒤 ‘재미동포 아줌마 또 북한에 가다’(2015년)로 펴낸 신은미 씨의 두 번째 책에 보면 이런 얘기가 나온다.
이은상 작사, 홍난파 곡으로 유명한 가곡인 ‘성불사 깊은 밤에…’의 현장인 성불사(황해북도 사리원시)를 관광하고 돌아오면서 신은미 씨의 남편과 북한 현지 관광 안내원 박영길의 대화다.
남편: “갈라진 조국에서 그동안 떨어져 산 우리의 얘기 등 밤새 이런저런 얘기하면서 말이야. 아마 그럴 수 있다면 나에게는 최고의 관광이 될 거야. 성불사 같은 곳 백 군데를 다니는 것보다 더.”
박영길: “형님, 참 이상하디요. 형님도 똑같은 말씀 하시네요. 일전에 호텔에서 유럽 관광객과 얘기를 나누다가 그 사람한테 ‘이번 여행 중 어디가 제일 좋았냐’고 물었더니 평양 지하철이라는 기야요. 기래 제가, ‘당신네 나라에는 지하철이 없냐’고 물으니까 하는 말이, 지하철을 타보지 못해서가 아니라 만원 지하철에서 평양 사람들과 부딪혀가며 서로 쳐다보면서 웃고 하던 그 경험이 이번 여행에서 최고로 좋았다는 겁니다. 아니 기게 뭐가 좋다고, 참……. 리해가 안 갑니다.”
남편: “영길이, 바로 그거야. 여행을 가서 그 나라의 명승지를 보는 것도 즐겁지만 그보다 더 흥분되고 의미 있는 일은 그 나라 사람과 앉아 세상 살아나가는 일 등을 얘기하며 시간을 보내는 일이야.”
‘명승지보다 사람이 더 재밌다’는 이 말은, 서로를 뿔 달린 괴물로 인식하도록 세뇌 당해온 남북한 사람들, 특히 북한 사람을 한 인간으로서 구경도 못 해본 남한 사람들에게(북한 사람들은 USB로 남한 실제 사람들 구경을 많이 해왔다니) 진짜로 맞는 말일 수 있다.
지금처럼 아직 왕래가 자유롭지 않고, 여러 제약이 앞으로도 남아 있는 상황에서는, 한국의 공영방송 등 언론들이 북한 사람들의 살아가는 생생한 모습을 다큐 프로그램 등으로 소개해줌으로써 인식의 차이를 줄여나갈 필요가 있다.
평양 지하철 구경이 제일 재밌다는 이유
유럽인뿐 아니라 재미동포도 ‘평양 지하철 구경’을 가장 재미있어 하는 이유는, 그간 미디어가 전달했던 것과는 너무 다른 풍경을 평양 지하철에서 보게 되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런 게 바로 대민접촉이요, TV 프로그램 중 휴먼 스토리 또는 살아가는 이야기가 인기를 끄는 이유이기도 하다. 남북한 사이의 70년 묵은 이질감이 없어지는 결정적 계기는, 바로 북한 사람들의 휴먼 스토리가 우리 방송을 타는 순간이 될 것 같다. 그렇게 개인의 이야기를 보여준 뒤라야, 북한 사람들을 ‘북한인’이라는 집합으로서가 아니라, ‘그 사람’이라는 개인으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집단으로서 인종을 바라보는 시선은 차갑고 무섭다. ‘중동전쟁으로 300명 사망’이라는 뉴스에는 무덤덤했던 사람이라도, ‘중동의 4세 어린이 000의 비극’이라며 구체적인 사람의 이름을 들어가며 나오는 보도에는 눈길을 준다. 사람을 집단의 성격으로 파악하느냐, 아니면 따뜻한 피가 흐르는 나와 똑같은 개인으로 보느냐에 따라 이렇게 반응은 달라진다.
EBS ‘한국기행’이 북녘 시골 보여줄 그날
아직까지 우리는 북한 사람들을 ‘북한인’이라는 집단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그 집단의 이미지는 공포스럽다. 그렇게 교육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재미동포 아줌마 신은미 씨 역시 북한인에 대해 이런 이미지를 갖고 있어 남편이 제안하는 북한 여행을 꺼렸지만, 북한에 여행 가 설향이, 현수(모두 관광 안내원) 등의 개인을 만나고, 이들에게서 같은 민족으로서 정을 느끼면서 ‘수양 가족’ 관계를 맺은 다음에는 북한 사회에 대한 공포가 현저하게 줄어드는 경험을 책으로 전해준다. 남한 사람들 대부분이 TV를 통해서라도 이런 간접 경험을 할 수 있어야 남북경협이든 뭐든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지, 지금처럼 북한인 전체를 ‘머릿속에 존재하는 하나의 가공 집단’으로 상정해서야 협조보다는 오해가 더 잘 일어날 수 있다.
가뜩이나 북한 사람들에게는 KBS가 인기 매체라고 한다. 다른 상업 방송과는 달리 광고가 없고 해서인지 북한 사람들의 선호도가 높다는 것이다. 생전의 김정일도 KBS의 팬임을 밝혔고 그 이유를 묻는 남한 사람의 질문에 “나는 국영에 익숙해서요”라고 답했다는 내용이 ‘조선자본주의공화국’ 58쪽에 나온다. 국영 방송 KBS가 북한인의 휴먼 스토리를 정기적으로 방영해 남한인에게는 북한인에 대한 ‘개인적’ 이해를 돕고, 북한인에게도 ‘남한 TV가 우리를 다 방송해주네’라는 기쁨을 느끼게 해주는 모습을 하루 빨리 보고 싶다.
기왕에 KBS에는 각 지역의 밥상을 찾아가는 ‘한국인의 밥상’(최불암 진행) 같은 좋은 프로그램이 있고, 외진 곳의 삶을 담는 EBS의 ‘한국기행’ 같은 프로그램도 있다. 국영 방송이 비로소 국가의 발전에 기여하는 새 모습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