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 = 이성호 기자) 문재인 정부의 핵심 국정목표는 ‘더불어 잘사는 경제’다. 대기업 중심의 경제구조를 ‘사람 중심’으로 전환해 성장의 과실을 골고루 나누자는 데 경제 정책의 무게를 두고 있다. 이를 위해 양질의 일자리 창출, 최저임금제 보장, 본사의 횡포로부터 가맹점 보호, 대기업과 골목상권의 상생, 재벌지배구조 개편 등을 국정운영의 우선 과제로 추진 중이다. 그러나 재벌의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되는 ‘일감몰아주기’가 해소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국회입법조사처 등에 따르면 대기업의 부당내부거래는 총수의 자녀나 친척 등이 경영하는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주거나, 전산·물류·유통 업종 등 자회사를 세운 후에 집중적으로 일을 주는 형태로 이뤄진다.
이 같은 행태가 지탄을 받는 까닭은 크게 2가지다. 먼저 일감몰아주기를 통해 지원을 받는 기업의 일거리가 많아지면 규모가 커지게 되고 배당이익이 늘어난다. 그 이익은 결국 오너일가와 최대주주에게 돌아가 부당한 부를 승계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도 있다.
이뿐만 아니라 일감몰아주기는 관련기업의 시장참여 기회를 원천적으로 차단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즉, 편법적인 경영권 승계에 이용될 뿐만 아니라 중소기업의 거래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지난 2013년 총수일가의 사익편취를 금지하는 규정을 담은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이 개정돼 2014년부터 시행되고 있다. 이 법에서는 대기업 오너 일가가 30% 이상 지분을 가진 상장사(비상장사는 20%)의 내부거래를 감시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다른 계열사와 거래할 시 타 사업자와의 합리적인 고려나 비교 없이 상당한 규모로 거래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으며, 내부 거래액이 연간 200억원 또는 연매출액의 12% 이상인 경우 위법성 여부를 따져, 위반 시에 관련 매출액의 5%내 과징금, 3년 이하 징역이나 2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현재 규제대상 기업은 삼성, 현대자동차, SK, LG, GS, 한화, 현대중공업, 신세계, 두산, 한진, CJ, 부영, LS, 대림, 미래에셋, 현대백화점, 영풍, 한국투자금융, 금호아시아나, 효성, OCI, KCC, 교보생명보험, 코오롱, 하림, 중흥건설, 한국타이어, 태광, SM, 셀트리온, 카카오, 세아, 이랜드, DB, 호반건설, 동원, 태영, 현대산업개발, 아모레퍼시픽, 메리츠금융, 넥슨, 삼천리, 한진중공업, 넷마블, 하이트진로, 유진그룹 등 46개 대기업집단에 속하는 203개 회사다.
지분율 높을수록 내부거래도 많아
이처럼 규제가 도입됐지만 역설적이게도 일감몰아주기는 여전한 상황이다.
공정위에 따르면 규제 대상 회사의 내부거래 비중은 2013년 15.7%(160개사)에서 규제가 도입된 2014년 11.4%(159개사)로 일시적으로 감소했지만, 2015년 12.1%(147개사), 2016년 14.9%(80개사), 2017년 14.1%(203개사)다.
내부거래 규모도 2013년 12.4조원(평균 0.08조원), 2014년 7.9조(평균 0.05조), 2015년 8.9조(평균 0.06조), 2016년 7.5조(평균 0.09조), 2017년 14조(평균 0.07조)로 줄어들지 않고 있다.
특히 총수일가 지분율이 높을수록 내부거래 비중도 늘어 부의 쏠림 현상이 심했다. ‘2017년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내부거래 현황’을 보면 총수일가 지분율이 20% 이상인 경우 내부거래 비중은 11.4%, 50% 이상은 18.4%, 100%는 66%나 됐다.
이 같은 수치는 현 법망을 피해가는 요소가 다분히 많음을 반증하고 있다. 실제로 효율성 증대효과가 있는 거래, 보안성이 요구되는 거래, 긴급성이 요구되는 거래 등은 관련법상 일감몰아주기 규제에서 아예 제외돼 있다.
무엇보다 총수일가가 직접 지분을 보유한 회사에만 규제가 적용되다 보니 규제 턱밑까지(상장 30% 이하, 비상장 20% 이하) 지분을 낮추는 등 편법이 발생하고 있고, 자회사의 경우는 제재를 받지 않는 등 사각지대가 존재하고 있다.
공정위에 따르면 규제대상이 아닌 총수일가 지분율 29~30%인 상장사의 내부거래 비중은 최근 4년간 매년 약 20% 수준으로 높다. 범위를 넓혀 총수일가 지분율이 20∼30%인 상장사는 사익편취 규제대상 회사와 비교 시 내부거래 비중은 작으나 평균 내부거래 규모는 2.9~3.9배나 더 크다.
사정이 이러다 보니 제도 개선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이어져 왔다.
현재 국회에는 지난 2016년 김동철 의원(바른미래당), 제윤경 의원(더불어민주당), 채이배 의원(바른미래당), 이언주 의원(바른미래당)이 각각 대표발의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계류 중이다.
김동철 의원안은 총수 일가 지분요건을 상장·비상장 모두 10% 이상으로 강화했고, 제윤경 의원안·채이배 의원안·이언주 의원안은 상장 여부를 불문하고 20% 이상으로 단일화 및 한발 더 나아가 지분율 산정 시 간접지분도 포함토록 했다.
‘규제 대상 확대’ 정부안 방향은?
하지만 이 개정안들에 대한 법안논의는 진척이 없는 상태다.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일단 재계에서는 지분요건을 완화하게 되면 총수일가의 사익편취 개연성이 낮은 기업까지 규제하게 된다는 입장을 상임위에 전달한 바 있다.
더불어 국회 정무위원회·입법조사처 등에 따르면 상대방의 일감몰아주기 거래로부터 특정 계열사가 이익을 취했다는 사실만으로 해당 계열사의 지분을 20%(상장사의 경우 30%) 이상 보유하고 있는 총수 일가에게 언제나 이익이 돌아가고, 그러한 이익의 귀속이 부당하다고 간주하는 것은 헌법상 과잉금지의 원칙에도 위배될 소지가 있다.
간접지분을 포함할 경우도 기밀유지·수직계열화·전문화 등 정상적인 목적으로 이뤄지는 모든 계열사 간 거래가 규제대상이 돼 기업 활동이 위축될 우려도 제기된다.
공정위조차도 지분율을 낮추면 개연성이 낮은 계열회사를 규제하게 된다며 고개를 가로저었고, 간접지분을 포함하는 경우 지분율 산정이 매우 복잡하고 지분율이 수시로 변동돼 규제효율성 측면에서 직접지분만을 대상으로 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
그러나 새정부 탄생 후 기조가 변했다. 재벌개혁의 일환으로 총수일가 사익편취 행위 및 부당내부거래 근절을 국정과제로 삼고 있는 것.
공정위는 최근, 60개 공시 대상 기업집단 소속 회사 전체(2083개사)에 대한 공시 실태 점검에 착수했다. 특히 쪼개기 거래 즉, 공시대상 대규모 내부거래의 규모 기준이 50억원 이상 또는 자본금의 5% 이상인 점을 이용해 거래액을 규모 기준 이하로 나눠 수회에 걸쳐 거래하는 등 공시 의무 회피 행위를 정밀하게 점검키로 했다.
특수관계인과의 내부거래 내역 등을 들여다본다는 것으로 일감몰아주기 근절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공정위는 궁극적으로 사익편취 규제의 실효성과 정합성을 확보키 위해 현 제도를 손질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규제대상 기업을 확대(상장 30%, 비상장 20%→모두 20%)한다는 방침 하에 공정거래법 전면개편 특별위원회 운영(2018년 3월~7월)을 통해 구체적인 제도개선 방안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CNB에 “지분율을 조정하는 것은 시행령만으로도 가능하지만 그 외 논의사항이 많아 현재 검토가 이뤄지고 있다”며 “앞으로 공정거래법 전면개편 특위(기업집단분과) 토론회를 개최, 이 자리에서 다양한 개선책이 나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공정위는 특위 논의 결과를 토대로 올해 안에 일감몰아주기 감시·통제장치 강화 등이 포함된 공정거래법 전면 개편안을 마련, 개정안(정부안)을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