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 = 김금영 기자) “이번 전시는 반쪽 자리 전시다.” 작가들이 입을 모아 말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함께 개성공단을 주제로 한 전시를 문화역서울 284에서 9월 2일까지 연다. 이 전시를 소개하는 자리에서 참여 작가들이 꺼낸 이야기다.
개성공단은 특수한 장소다. 2000년 6·15 공동선언 이후 남북교류협력 차원에서 남측의 자본과 기술, 북측의 토지와 인력이 결합된 공업단지 개성공단이 북측 지역인 개성시 봉동리 일대에 2004년 12월부터 본격 가동됐다. 하지만 2013년 북한이 근로자 철수 조치를 취해 가동이 중단됐고, 2016년 2월 정부가 개성공단 가동 전면 중단을 선언하면서 개성공단은 고비를 맞았다. 하지만 올해 남북정상회담으로 얼어붙었던 남북 관계에 평화의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개성공단에 다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가운데 개성공단을 주제로 한 전시가 열리니 단연 눈길을 끌 수밖에 없다. 전시의 취지는 이렇다. 박계리 총괄기획은 “한반도 평화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남북교류의 취지로 마련됐던 개성공단에 대해 우리는 외부적 시선에 의한 정치적 판단 정도밖에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즉 전시는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남측과 북측 사람들이 일상을 공유한 이 공간에 대해 왜 우리는 아무것도 모를까?’라는 질문부터 시작됐다는 설명이다. 박 총괄기획은 “한반도의 평화를 논하기에 앞서 남북교류의 시작점에 있었던 개성공단에 대해 아는 건 당연히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취지를 밝혔다.
전시는 개성공단이 만들어진 일련의 과정을 모두 예술로 보고 접근한다. 특히 개성공단에 관련됐던 사람들로부터 정보를 얻고, 인터뷰를 하거나, 자료를 제공받아 전시를 꾸리는 데 집중했다. 하지만 개성공단의 긍정적인 측면만 부각시키려는 것은 아니다. 개성공단이라는 장소가 지닌 특수성을 직시하려는 의도를 지녔다.
박 총괄기획은 “개성공단은 남북의 평화 공존을 위한 실험의 장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남측의 자본주의와 북측의 공산주의가 만나면서 충돌을 빚고, 갑과 을 모두의 욕망이 공존했던 공간이라는 특수성도 있다”며 “전시는 이런 각기 다른 욕망들이 어떻게 개성공단이라는 공간 안에서 공존할 수 있었고,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 살핀다. 또한 자연스럽게 개성공단 사람들의 일상 문화에 접근하고, 분단 트라우마를 직시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전시 기획 의도는 야심차다. 하지만 작가들 스스로가 토로했듯 한계점도 존재한다. 이번 전시엔 무늬만커뮤니티, 양아치, 유수, 이부록, 이예승, 임흥순, 제인 진 카이센, 김봉학프로덕션, 정정엽 등 다양한 분야의 작가들이 참여해 ▲개성공단 자료 ▲사람-개인과 공동체, 일상과 문화 ▲물건과 상품 ▲개성공단을 넘어서 총 4개의 주제 속 작업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하지만 이 가운데 유수 작가만이 유일하게 개성을 다녀왔다. 대부분의 참여 작가들은 개성공단에 대한 상상, 또는 개성공단에 다녀 온 사람들의 이야기, 자료 등을 토대로 작업할 수밖에 없었다.
정정엽 작가는 “전시 이야기가 처음 나왔을 때는 사명감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살짝 김이 빠진 느낌도 있다. 전시에 참여하면서 개성공단에서의 10년의 경험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느꼈지만, 실제로 그 사람들의 일상이 어땠는지 그 정서적 교감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또한 이번 전시는 남측의 미술가들로 꾸려졌다. 하지만 북측의 미술가들이 개성공단을 어떻게 이야기하는지도 알아야 진정한 전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우리끼리 ‘지금은 아직 반쪽 전시’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아쉬운 측면이 있지만 그래서 이 전시 이후가 더욱 궁금해지기도 한다. 박 총괄기획은 “이번 전시가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북한의 현대미술과 남한의 현대미술이 많이 다르고, 개성공단을 바라본 시선 또한 북측의 예술가들과 남측의 예술가들이 다를 것”이라며 “이번 전시는 일차적으로 개성공단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부터 시작하려 한다. 개성공단에 직접 갈 수 있는 상황이 생기더라도 우리가 먼저 보여주고 꺼낼 이야기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번 전시를 통해 콘텐츠를 만들고, 북측과의 교류에 힘써보려 한다. 추후 좀 더 가시화되는 성과가 있으면 말씀드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흥순 작가 또한 “개성공단에서는 일 이외 이야기를 하는 것이 금지됐던 것으로 안다. 그래서 미술을 통해 좀 더 서로의 마음을 터놓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번 전시를 준비했다”며 “서울처럼 큰 전시장이 아니더라도 아주 작은 공간이라도 좋으니 북측에 전시를 보여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라고 덧붙였다.
개성공단 가보지 못한 작가들의 한계
그 한계를 염원으로 푸는 과정
전시에서 주목되는 작품들이 있다. 이예승 작가의 경우 ‘30분의 차이 그리고 그 어딘가에’ 작업에서 개성공단이 지닌 허상과 실재 이미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여기서 30분은 평양과 서울 사이 거리를 나타낸다. 그는 개성공단에서 생산된 상품과 일상적 사물의 그림자들 그리고 구술 작업을 토대로 개성공단의 유토피아, 디스토피아적 요소를 드러낸 가상의 내러티브 공간을 전시장에 구현한다.
이 작가는 “지금은 아흔이 넘은 제 할머니가 이북에서 피난을 왔다. 그래서 이번 전시가 남달랐다. 뉴스를 통해 바라본 개성의 모습은 정치적으로 첨예한 긴장이 흘렀는데, 할머니가 들려준 개성은 할머니의 어린 시절 감성 속 인간적인 부분들도 있었다. 이 간극이 흥미로웠다”며 “또한 북측 사람들과 남측 사람들의 만남 속 형성된 다양한 내러티브와 할머니의 이야기가 맞닿는 지점들이 있었다. 한 개인의 이야기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가야 할 방향에 집중해서 개성공단의 시적인 내러티브를 표현하려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이부록 작가는 개성공단의 봉재 공장을 재현한 ‘로보다방-로동 보조물자 다방’을 보여준다. 여기서는 일렬로 놓인 재봉틀을 배경으로 “더 많이 오늘 생산하였는가?” “생산물의 질을 높이자!” “남과 북이 합심하여 최고의 품질을 보장하자” 등의 문구가 원색적인 색으로 표현돼 눈길을 끈다.
이 작가는 “남측 기업과 북측 노동자들이 협의해 만든 문구들이라고 한다. 여기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오묘하게 섞인 모습을 발견했다”며 “북측에서 개성공단을 ‘자본주의 교육장’이라고 칭했다는 내용의 기사를 본 적도 있다. 역으로 남측에서 공산주의를 바라본 시선도 존재한다. 사용하는 단어 하나조차 달랐다가 한 공간에서 말을 섞고 이념이 섞이는 지점이 개성공단에는 존재했다.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남과 북 사이 간극이 어떻게 좁혀졌는지 그것을 생각하면서 작업했다”고 설명했다.
정정엽 작가의 ‘정상(正常) 출근’엔 출근하는 여성들의 모습이 보인다. 정 작가는 “여러 자료 속 출근하는 개성공단 노동자들의 모습에서는 남과 북을 떠나 노동에의 열의가 공통적으로 느껴졌다. 이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손을 잡고 가거나 체조하는 등 귀여우면서도 건강한 노동자들의 일상문화를 담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작업은 거울로 이뤄졌다. 1950~70년대 사용됐던 오래된 거울이다. 정 작가는 “남과 북은 서로 만나고 싶은 마음 이면에 서로 무엇이 다를까 고민도 한다. 그런데 거울을 보면서 ‘우리는 생각보다 별반 다르지도 않을 것’이라는 상상을 했다”며 “거울을 문 형식으로 설치해 거울을 통해 서로의 모습을 바라보고, 문을 열고 나가 서로 만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고 말했다.
임흥순 작가의 영상 ‘형제봉 가는 길’엔 큰 관을 짊어지고 북한산을 오르는 한 인물의 모습이 보인다. 2016년 11월 23일 개성공단 기업 정상화를 염원하며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렸던 장례식 퍼포먼스를 달라진 장소와 시간, 상황 속에서 재현한 것. 임 작가는 “실제 개성공단을 볼 수 없는 상황에서 최대한 내가 있는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찾고 싶었다. 그러던 중 2016년 열렸던 퍼포먼스를 봤고, 개성공단에 입주했던 대표들을 만나 이야기도 들으면서 아주 조금이나마 개성공단에 있었던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며 “북한산의 형제봉을 오르는 모습을 통해 남북의 상황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려 했다”고 말했다.
여기서 독특한 점은 영상이 설치된 방식이다. 영상 2개를 보여주는 대형 스크린이 설치됐는데 각 스크린이 서로 등을 기댄 것 같이 설치돼 한 번에 두 영상을 모두 볼 수 없다. 그래서 왔다 갔다 하면서 영상을 봐야 한다. 임 작가는 “우리는 물리적인 거리는 가깝지만 남한에서는 북맹, 북한에서는 남맹에 이를 정도로 서로 잘 모르고 있다. 이 상황을 표현하기 위해 두 영상을 서로 등지게 했다”며 “하지만 이후 개성에서 전시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온다면 두 스크린을 서로 마주보게 설치하고 싶다”고 바람을 밝혔다.
가수 백지영의 “총 맞은 것처럼 가슴이 너무 아파” 가사가 흘러나오는 공간엔 최원준 작가의 ‘피륙의 결’이 상영되고 있다. ‘피륙의 결’은 천의 날실과 씨실이 만든 천의 흐름이라는 뜻의 옛 봉제 용어다. 논픽션과 픽션 장르를 오가는 이 영상에서는 봉제 공장에서 일하는 두 여자 주인공의 미묘한 관계를 보여준다.
문화적 오해가 발생한 남측과 북측 노동자 사이 긴장감이 흐르다가 나중엔 서로 오해를 풀고, ‘총 맞은 것처럼’ 노래를 함께 부르면서 친구가 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박 총괄기획은 “전시는 평화에 초점을 둔 것 같지만 서로 다름에 의해 발생될 수 있는 갈등 또한 지나치지 않는다. 오히려 이 갈등을 어떻게 풀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 그 지점에 대해 고민한다”고 말했다.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의 감회가 남달라 보였다. 개성을 다녀 온 기억을 아직 품고 있는 유수 작가는 “도라 전망대에서 개성공단 야경을 촬영한 적이 있다. 남과 북의 노동자들이 서 있고 뒤로 해가 지는 모습이 평화롭고 인상적이었다”며 “개성공단에서 사람들은 어려움도 겪었지만 서로 소통하며 어두움을 밝혔다. 평화와 소통의 상징이었던 이 통로가 지금은 막혀 있지만 다시 만날 미래를 꿈꾼다”고 말했다. ‘반쪽 전시’가 완전체가 되는 그날을 작가들은 염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