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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재계 최후카드? 두산家 박용만의 ‘대한상의’를 말하다

전경련 이어 경총마저…무너진 재벌의 ‘탈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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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96호 도기천 기자⁄ 2018.07.16 15:35:07

인도를 국빈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후(현지시간) 뉴델리 대통령 궁에서 열린 환영 만찬에서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과 인사하고 있다. 정부는 외교무대에서 대상상의를 유일한 재계 공식 파트너로 인정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CNB저널 = 도기천 기자)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사실상 ‘식물’ 상태가 된 가운데,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까지 내홍에 휩싸이면서 재계의 유일한 대변자로서 대한상의가 주목받고 있다. 정부는 주요 외교무대에 대한상의를 앞세우는 등 사실상 재계의 대표기구로 인정하는 분위기다. 두산가(家) 오너인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 또한 향후 재개될 남북경협에 주도적으로 대비하는 등 문재인 정부와 코드를 맞추고 있다. 경총과 전경련의 시대는 끝난걸까. 

 

재계는 지난 2년간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삼성 현대차 SK LG 포스코 롯데 GS 한화 KT LS CJ 두산 한진 금호아시아나 대림 신세계 아모레퍼시픽 부영 등 대기업들이 전경련을 통해 774억원을 걷어 최순실씨가 실소유주인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문재인 정부 들어 ‘재벌개혁’이 최대 화두로 떠올랐다.  


전경련은 정경유착 외에도 ‘박근혜 청와대’ 지시로 수십억원을 ‘아스팔트 우파’로 꼽히는 어버이연합·엄마부대·고엽제전우회 등에 지원한 것이 알려져 회복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 


최근 2년간 재벌총수들이 줄줄이 검찰·특검의 조사를 받았고 국회에 불려 나갔으며 이중 일부는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전경련은 작년 2월 차기 회장 선출을 위한 정기총회를 열었지만 10대 그룹 회장이 모두 고사해, 결국 허창수 GS그룹 회장이 ‘셀프 연임’을 결정했다. 

 

전경련은 한때 경제계를 대표하는 단체였지만 각종 정치스캔들에 휘말려 위상이 크게 실추됐다. 전경련 역할을 대신하던 경총마저 최근 내홍에 휩싸여 제구실을 못하고 있다. 손경식 경총 회장(왼쪽)과 허창수 전경련 회장의 최근 모습. 사진 = 연합뉴스

허 회장은 정경유착 근절과 운영 투명화 등 혁신안을 내걸었지만 정부와 국민, 기업 모두가 외면했다. 최근 남북·북미정상회담을 계기로 대북 경제협력이 최대 이슈로 부상했지만 전경련의 설 자리는 없었다. 


이런 가운데 전경련을 대신해 재계의 목소리를 대변해오던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까지 지도부가 내홍에 휩싸이면서 존재감을 잃어가고 있다.  


경총은 1970년 주로 노사문제를 담당하기 위해 설립된 전국적 조직의 사용자 대표기구다. 전경련,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 한국무역협회, 중소기업협동조합과 함께 소위 ‘경제5단체’ 지위를 갖고 있다. 전국 13개 시·도에 지방경영자협회를 두고 있으며 중소기업과 대기업 4000여곳이 회원사로 가입돼 있다. 


하지만 최근 비자금 조성 의혹과 회계처리의 불투명성, 지도부 내의 파벌 다툼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 3일에는 지도부와 파열음을 빚어온 송영중 상임부회장이 임시총회에서 해임되기에 이르렀다. 


경총은 송 부회장의 해임 사유로 ▲직원간 분열 조장과 사무국 파행 운영 ▲경제단체 정체성에 반(反)한 행위와 회장 업무지시 불이행 등을 제시했다. 상임 부회장이 임기 중 회원사들에 의해 경질된 것은 경총 설립 48년 만에 처음이다. 


경총은 차기 부회장 선정에 나섰지만 후임으로 거론되던 이동근 현대경제연구원장이 부회장직을 고사하면서 난항을 겪고 있다. 송 부회장이 지도부를 상대로 법적대응에 나설 가능성도 남아있다.  

 

재계에서 전경련과 경총이 제구실을 못하면서 상대적으로 대한상의의 역할이 두드러지고 있다. 지난달 29일 대한상의와 중국국제경제교류센터(CCIEE)가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공동 주관한 ‘제1회 한중 기업인 및 전직 정부 고위인사 대화’에서 최태원 SK 회장(오른쪽부터), 윤부근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이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재계는 유일한 사용자 단체인 경총이 제구실을 못하게 되자 정부가 추진 중인 노사정책에 노동계와 시민단체의 목소리가 과다 반영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당장 이달부터 주당 최대 근로시간이 52시간으로 단축되면서 사업장 별로 여러 혼란이 발생하고 있지만, 재계가 대안으로 주장해온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아직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최저임금도 작년처럼 대폭 인상될 가능성이 높다. 노동계는 상여금·수당이 최저임금에 포함돼 최저임금 산입범위가 확대됐다는 이유로 내년도 최저임금을 올해와 마찬가지로 대폭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경총 내부에는 시대 변화에 부응하지 못해 ‘식물’ 상태로 전락한 전경련의 전철을 밟는 것 아니냐는 위기의식이 팽배한 상황이다. 


경총의 한 회원사 관계자는 CNB에 “가뜩이나 현 정부가 근로자 쪽에 치우쳐 있는데 경총이 제 역할을 못하면 정책이 한쪽으로 쏠릴 수밖에 없다”며 “기업인들 입장에서는 매우 어려운 시간이 계속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경총·전경련과 확연한 온도차


이런 가운데 주목받고 있는 곳이 대한상의다. 대한상의는 전체 회원사 수가 약 17만 곳으로 전경련, 경총과 비교도 안될 만큼 규모가 크다. 대·중소기업은 물론 지방기업, 벤처기업들까지 가입돼 있어 재벌대기업 중심의 전경련·경총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런 점에서 재벌개혁 이슈로부터 비교적 자유롭다. 


더구나 최근 남북화해 무드를 타고 보폭을 넓히는 중이다. 개성공단의 경우에서 보듯 남북경협이 중소기업들이 진출하기 유리한 특성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대한상의에 대한 기대감이 커졌기 때문. 대한상의는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국제상업회의소(ICC)를 매개로, 북한 조선상업회의소와 직·간접 접촉을 해온 경험이 있다. 

 

남북관계가 해빙기에 접어들면서 과거 남북경협의 경험이 있는 대한상의의 역할이 주목받고 있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이 지난달 26일 서울 중구 대한상의회관에서 열린 ‘남북경협 콘퍼런스’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 = 대한상의 제공

대한상의는 UN의 대북 제재가 완화될 경우, ICC를 통해 북한기업과의 접촉을 재개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또 정책자문단 산하 남북경협분과 활동을 강화하는 한편 과거 폐지했던 남북경협위원회를 부활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이를 위해 지난 3월과 6월 두 차례에 걸쳐 남북경협을 주제로 전문가 콘퍼런스를 개최했다. 남북관계와 관련한 행사를 연 것은 약 3년 만이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두산인프라코어 회장)도 적극적이다. 박 회장은 지난 4월 남북정상회담 때 판문점 행사에 초대됐는데 거기서 ‘일일 기자’를 자청하기도 했다. 당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앞으로 경협과 교류가 가능해지는 시기가 오면 정말 국가와 민족의 미래를 위해 함께 번영하는 길을 가도록 모두가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대북정책 해결사로 ‘등극’


그는 과거 여러 차례 북한 제품의 원산지 증명, 기후협약에 따른 배출권 남북 거래 등 구체적인 협력 방안을 거론한 바 있다. 지난달 26일 열린 남북경협 컨퍼런스에서는 남북 동질성 회복을 위한 민관협의체를 제안하기도 했다. 박 회장은 “대북제재 해제 전까지는 차분하고 질서있는 경협 추진의 여건 조성이 필요하다”며 “남북경협 민관협의체를 통해 이질적인 경제기반을 통일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행보는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과 코드가 잘 맞아 보인다. 


정부는 남북과 중국·러시아를 잇는 유라시아 철도 개설을 비롯, 북한 내 도로·항만·통신 등 기반시설(SOC) 건설, 광물자원 공동개발, 개성공단 2단계 사업을 포함한 경제특구 개발, 2007년 10·4선언에 기반한 각종 교류 확대 등을 구상하고 있다. 


북한 김정은 정권 또한 핵·경제 병진노선에서 경제개발 노선으로 전환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렇다보니 정부는 국내 민간기업의 역할에 기대를 걸고 있으며, 대한상의 또한 대북사업을 어려운 국내경제의 돌파구로 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4.27남북정상회담 만찬 때 재계 인사로 유일하게 박 회장이 초대됐다는 점은 이런 분위기를 반증하고 있다. 


양측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면서 청와대와 박 회장의 부인에도 불과하고 재계에서는 박 회장의 남북경제협력위원장 내정설이 회자되고 있다.  


외교무대에서도 대한상의는 과거와 달라진 위상을 과시하고 있다. 청와대는 문재인 대통령의 인도 국빈 방문(8∼11일) 때 경제사절단 선정을 대상상의에 일임했다.    

 

남북경협이 재개되면 대한상의가 기업들의 구심이 될 전망이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왼쪽)이 4.27남북정상회담 환영 만찬에서 현송월 북한 삼지연관현악단 단장(가운데), 가수 조용필씨와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 박용만 회장 페이스북

경제사절단에는 총 72개사가 선정됐는데 박 회장이 경제계 대표를 맡았다. 삼성전자 윤부근 부회장, 현대차 정진행 사장, SK루브리컨츠 지동섭 대표이사, LG전자 안승권 사장, 롯데그룹 이재혁 부회장, 포스코 성기웅 법인장, GS칼텍스 김형국 사장, 한화디펜스 이성수 사장 등이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또 두산 동현수 부회장, 이병호 대한항공 동남아 본부장, 박근태 CJ대한통운 대표이사, 김진현 CJ제일제당 부사장, 명노현 LS전선 대표이사, 김석준 쌍용건설 회장,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우오현 SM그룹 회장, 허영인 SPC그룹 회장 등도 포함됐다.


금융계에서는 김도진 IBK기업은행장,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 위성호 신한은행장, 손태승 우리은행장, 김병원 농협중앙회 회장, 박진회 한국씨티은행장 등이 동행했다. 


이는 전경련이 주도해 주요그룹의 총수 위주로 사절단을 꾸렸던 과거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이밖에도 정부는 최저임금 등 노동 현안에 대한 논의를 할 때도 재계의 유일한 공식 파트너로 대한상의를 택하는 등 힘을 실어주고 있다. 

 

재벌시대 막 내리며 조명 받아


이처럼 대한상의가 사실상 재계 ‘맏형’ 역할을 하고 있지만 한계도 있다. 


우선 회원사가 대부분 중소기업이라는 점에서 재계를 대표하는 창구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대기업의 참여가 활성화 돼야한다. 하지만 삼성그룹 등 주요 대기업들은 아직 대한상의에 들어가는 것을 주저하고 있다. 


정부의 노동정책에 있어 경총·전경련과 미묘한 온도 차이도 있다. 문 대통령이 각별히 챙기는 최저임금 문제 등 민감한 사안에 있어 대한상의는 경총에 비해 미온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정세현 인하대 겸임교수(경영학)는 CNB에 “전경련이 재벌 총수의 구속수감 때마다 ‘기업활동 위축’ 등을 내세워 우려 목소리를 내왔지만, 대한상의는 오너 리스크에 대해서는 일체 함구해 왔다는 점에서 대기업들 입장에서 보면 중량감이 떨어진다는 평을 받고 있다“며 ”하지만 역으로 보면 박용만 회장이 정치중립을 강조해온 점이 박근혜 정부 시절 외압에 휘둘리지 않고 회원사들의 신뢰를 구축하는 동력이 됐다”고 분석했다. 


한 대기업 임원은 CNB에 “경총·전경련이 임의단체다 보니 외압에 취약한 반면 상공회의소법을 따르는 대한상의는 상대적으로 행동이 자유롭고 운영의 투명성도 보장되기 때문에 각종 경제정책에 있어 더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장점이 있다”며 “대기업들의 지배구조가 오너 중심에서 전문경영인 중심으로 점차 개편되고 있기 때문에 과거 총수들의 친목모임 성격이었던 전경련의 역할은 세태 변화에 따라 자연스럽게 끝나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재벌의 시대’가 저물면서 자연스레 대한상의가 부상하고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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