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97호 이문정(미술평론가, 컨템포러리 미술연구소 리포에틱 소장)⁄ 2018.07.23 09:44:20
(CNB저널 = 이문정(미술평론가, 컨템포러리 미술연구소 리포에틱 소장)) 아르코 미술관은 한국의 중진 작가들에게 그동안(젊은 작가로서)의 활동을 정리하고 다음 방향을 설정할 수 있는 시공간을 제공하는 중진 작가 초대전을 기획해왔다. 미술관이 중진 작가들의 예술적 실험을 위한 하나의 플랫폼이 되는 것이다. 올해는 비누로 고대 그리스 조각이나 고전적 도자기를 재현하는 작업으로 유명한 신미경의 개인전이 열렸다.
여태까지 아르코 미술관의 중진 작가 초대전이 그랬듯 ‘아르코 미술관 중진 작가 시리즈 신미경 개인전 - 사라지고도 존재하는’(2018.7.5.~2018.9.9.) 역시 미발표작과 신작이 위주가 되었다. 전시장 1층은 막 발굴된 것 같은 폐허(유적지)의 상태를 보여주며, 2층은 폐허에서 발견된 유물(도자기)이 박물관에 전시되어 영원성을 획득하게 된 상황을 보여주는 듯하다. 2층에 전시된 도자기 중 일부는 비누로 조각된 도자기의 표면에 발린 금속(순은박 또는 순동박)이 실제로 부식되어 시간의 흐름을 더욱 직관적으로 체험하게 했다. 관객은 시간의 흐름을 마주하는 동시에 영원을 향한 인간의 갈망을 함께 경험하게 되며, 자연스럽게 소멸과 영원성을 생각하게 된다.
이번호 ‘더 갤러리’는 필자가 신미경 작가와 함께 했던 흥미로운 대화를 생생히 전하는 데에 집중하고자 한다.
- 꽤 오래 전부터 ‘신미경 = 비누’라는 공식이 성립할 정도로 비누는 신미경 작가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아이콘이 되었다. 사실 비누로 조각이나 도자기를 100퍼센트(%)에 가깝게 재현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작업 방법에 대해 간단한 설명을 부탁한다. 정말 많은 양의 비누가 필요할 것 같다. 재료의 공급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낱개의 비누를 사서 작업을 하는 것인지, 자체적으로 비누를 제작하는 것인지도 궁금하다.
“비누 캐스팅 작업을 시작했던 2003년 이전까지는 굳어있는 비누 덩어리를 일일이 갈아서 반죽한 후에 조각(입체 형태)으로 만들었다. 지금은 캐스팅(주조) 작업을 한다. 캐스팅을 통해 얻어진 형상을 다시 깎아 나가기도 하고, 많은 과정을 거친다. 캐스팅을 하게 되면서 작업의 형식이 발전적으로 전환되었고 관객이나 대중들의 참여로 완성되는 ‘화장실(toilet) 프로젝트’도 나올 수 있었다. 작업 초기에는 비누 회사에서 지원을 받아 시판되기 이전 단계의 커다란 비누 덩어리 혹은 재고품 상태의 비누를 제공받기도 하였다.”
- 이번 전시에서도 화장실 프로젝트를 선보이고 있다. 전시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는데도 많은 관객들이 참여했고, 벌써 꽤 많이 닳았다. 화장실 프로젝트와 관련해 가장 많이 이야기되는 부분은 관객이 참여해 작품을 완성하는 인터랙티브적인 성격도 갖고 있다는 것, 우리가 유물이라고 하는 것들의 상당수가 사실은 일상용품이었음을 생각하게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술의 역사를 살펴보면 일상의 물건들이 시간을 담아내면서 유물로서의 가치를 갖게 되었다. 그런데 필자의 경우, 이런 이야기를 하기 전에 존재의 소멸과 같은 보다 근원적인 이야기를 떠올리게 된다.
“‘유물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되어지는 것이다’는 나의 작품이 담고 있는 중요한 의미 중 하나다. 유물로서 발견되면 물건이 원래 갖고 있던 기능성이 상실되고 흐르는 시간으로부터 분리된다. 더 이상 시간이 흐르지 않고 정지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시간성이라는 주제도 중요하다. 비누는 그것을 매우 선명하게 보여주는, 존재와 부재를 동시에 느끼게 해주는 거의 유일한 재료다. 비누는 일상에서 완전한 모습으로 존재하다가 급속도로 사라지는 매우 독특한 물건이다. 일상에서 우리가 사용하는 물건 중에 이처럼 닳아서 없어지는 것은 없다. 자신의 역할을 할수록 사라지는 물체라는 것이 참 신기하다. 그런 비누로 노동집약적인 조각이나 도자기를 만들어내는 나의 작업은 매우 극단적인 대조를 이루는 개념과 속성의 공존이다. 사라지는 것이 정체성인 비누로 영원성을 부여받은 가치를 담아내려는 노력을 보여주는 것이 심리적 충돌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비누를 주된 재료로 하는 작업을 20여 년 동안 지속하고 있는데, 비누는 다른 재료에 비해 시간의 흔적(aging)을 꽤 명확하게 빨리 보여줄 수 있다는 특성을 갖는다. 시간의 축적을 가시화시킨다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 마치 비디오를 빨리 돌려보는 것과 같은 효과를 보여준다. ‘화장실 프로젝트’처럼 비누가 닳거나 ‘풍화 프로젝트’처럼 풍화되면서 주변 환경이 비누에 다 스며들고 기록된다. 글씨로 기록하는 것과는 또 다른 차원의 기록물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나의 비누 조각들은 모두 하나하나의 역사이다.
비누로 서양의 고전 조각을 재현했던 것은 그야말로 서구 조각의 우월하다고 여겨지는 지위를 비틀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서양 조각을 모각하는 교육을 받았던 세대다. 그래서 견고한 서양 조각을, 돌(대리석)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가장 약하고 무르다고 여겨지는 비누로 만들어 절대적 권위를 다시 생각해보고자 했다. 시각적으로는 동일한데 그 속성은 완전히 다른 것을 만들어 절대적 진리라는 것을 흔들어 보고 싶었다. 처음에 서양 대리석 조각상을 보면서 비누 같다고 생각했다. 그 이후,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하다가 그러한 시선이 이방인의 시선임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면서 동양 작가이지만 서양성을 많이 습득한 작가로서의 시선이 담긴 작업을 보여주고 싶었다.
개인적 경험을 하나 더 말하자면, 내가 어렸을 때 부모님이 골동품 수집을 하셨다. 어머니와 함께 고풍스러운 물건들이 있는 골동품점에 갔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어린 아이였던 나에게 오래된 물건(유물)들을 만나는 일은 신비로우면서도 인상적인 것이었다. 이런 경험들도 내 작업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 본인이 만든 비누 조각은 인간이 사용하든, 자연의 기후 변화에 의해서든 외부의 작용에 의해 그 모습이 변한다. 한 장소(한 번의 전시)에서 외부 작용에 의해 형태가 변형된 비누 조각들은 어떻게 되는가? 혹시 다시 프로젝트를 진행해서 또 닳게 한다거나 하지는 않는가?
“외부의 작용에 의해 형태를 변화시키는 비누 프로젝트는 한 장소에서 한 번만 진행한다. 한 번 닳아지는 과정을 겪으면 완성된 것이므로 고이 보관한다. 예를 들어 이번 전시 기간에 아르코 미술관의 입구와 화장실에 설치된 비누 조각은 지금 만들어지는 과정 중에 놓여있는 것이다. 그리고 전시가 끝남과 함께 완성작이 된다. 이후에는 오직 전시만 된다. 관객이 만지거나 할 수 없다. 나는 닳지 않은 캐스팅만 완료된 상태가 미완성이라 생각한다. 누군가는 닳지 않은 온전한 조각상이 더 완성품 같고, 더 소중한 것 아니냐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에게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녹이고, 사용하고, 사라지게 하는 것이 의미 있다. 시간의 흔적이 담긴 비누 조각이야말로 유일무이한 작품이 된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유물을 다루듯 소중하게 보관한다. 나의 작품 중 닳아서 완전히 없어진 비누 조각은 없다. 완전히 소멸시키는 것이 나의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 신미경의 작품 앞에 서면 항상 향기를 맡게 된다. 이번 전시에서는 향기가 더 강해진 것 같기도 하다. 작품의 외형이 전통적인 미술의 형태를 하고 있기 때문에 간과하기 쉽지만 재료적인 면, 작품이 완성되는 과정, 관람의 방식 모두 매우 동시대적이다. 모든 작품이 향기가 나는가? 혹시 시간이 지나 작품의 향기가 약해지면 다시 첨가하는가?
“화학적인 비누들은 그 향이 굉장히 오래 남아있다. 원래도 향이 강한데, 거기에 향을 오래 유지시킬 수 있는 성분을 첨가해서 지속성을 높인다. 그래서 나의 초기 작업은 제작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향이 남아 있다. (캐스팅한) 최근의 작업들은 천연 비누여서 시간이 지나면 향이 (상대적으로) 약해진다. 향기가 나게 하는 것도 작품의 중요한 개념과 연결되기 때문에 강약이 다르더라도 나의 비누 조각은 대부분 향이 있다. 단, 시간이 흘러 향이 약해지더라도 다시 첨가하지는 않는다.”
- 1층에 설치된 ‘폐허 풍경’(2018)은 단일한 하나의 오브제를 선보이는 것이 아니라 열린 건축적 공간을 만들어낸다. 폐허는 ‘사라짐(소멸)과 그로 인해 새롭게 발생되는 미학적 의미’라는 주제를 보여준다. 시각적으로는 독일 낭만주의 회화가 연상되기도 한다. 또한 매우 문학적인 내러티브가 떠오르기도 한다. 상상의 여지가 더 많아진 것 같다. 전시를 기획한 차승주 큐레이터는 이번 전시에서 관객들이 인문학적인 상상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특별히 염두에 두었던 시각적 이미지나 철학적·문학적 이야기가 있는가?
“그렇지는 않다. 내가 그 동안 다녔던 많은 장소들에서 보았던 이미지들을 결합시켜 매우 보편적이고 개념적인 폐허의 이미지를 만든 것이다. 폐허가 주는 메시지, 상징으로서의 폐허를 표현했다. 물론 작품의 부분들을 뜯어보면 구체적인 시기나 지역을 생각나게 하는 건축적 요소들을 발견할 수도 있겠지만, 특정한 무언가를 재현하려고 한 것은 아니다. 유물로서 보호받는, 그래서 그 형태가 완벽히 보존된 도자기 작업과 폐허가 공존하는 공간 구성을 통해 서로를 반영하는 대비와 조화의 공존을 이끌어내고자 했다. 폐허 풍경이 나에게 중요했던 이유는 폐허는 사라지는 것과 존재하는 것의 접점에 있기 때문이다.”
- 오늘날 작가들은 자기 작품의 의미를 열어놓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다양한 해석을 위해 작가 스스로 작품에 대한 설명을 하지 않는 경우가 있을 정도다. 그에 비해 신미경의 작업은 작가의 메시지가 명확해 보인다.
“메시지가 선명하다고 느끼는 것은 미술인으로서 전문적 지식을 토대로 나의 작업을 보기 때문일 것이다. 대부분은 메시지를 찾아내지 못한다. 매우 표피적인 피드백이 많다. 창의적인 해석이나 피드백을 그렇게 많이 받아보지 못했다. 대부분의 경우 ‘비누로 만들어서 신기하다, 어떻게 이렇게 만들 수가 있었을까?’ 정도였다. 물론 이런 반응도 의미 있다. 그러나 나의 작업에 대해 내가 예상치 못한 새로운 이야기가 조금 더 나왔으면 좋겠다. 그래서 더욱 이번 전시에서는 개념을 창출하고 의미를 생성하기 위해 노력했다.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지고자 했다. 함께 질문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담론이 형성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