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00호 정의식⁄ 2018.07.31 08:37:53
최정우 회장이 포스코의 제9대 회장에 취임했다. 전임 회장들이 이전 정부들의 각종 비리에 연루되며 때 아닌 경영 공백이 초래됐고, 차기 회장 선임 과정을 지켜보는 외부 시선도 곱지 않았다. 지금 포스코는 내실을 다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과제 속에 포스코 첫 재무통 회장으로 선임된 최 회장은 포스코 100년을 향한 비전으로 '더불어 함께'라는 키워드를 강조하며 개방과 소통의 경영 의지를 내비쳤다.
권오준 사퇴와 선임 과정의 잡음
최정우 신임 포스코 회장이 27일 취임했다. 최 회장은 지난 4월 18일 권오준 전 회장이 임시이사회에서 사퇴를 표명하고 물러난 지 약 석 달 만에 포스코의 새 선장이 됐다.
권 전 회장의 사퇴 선언은 갑작스러웠다. 지난 해 영업이익 4조 6000억 원이라는 6년 만의 최대 실적을 기록하고 3월 연임에 성공한 뒤 한 달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권 전 회장은 지난해부터 이어져 온 검찰 수사와 비리 의혹 폭로에도 "임기를 마무리하겠다"는 의지를 보여 왔고, 앞선 3월 31일 포스코 창립 50주년 기념일 당시에는 기자간담회 개최를 자청해 MB정부의 자원 비리 관련 논란을 적극적으로 해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권 회장은 사퇴를 결심했다. 이를 두고도 여러 가지 뒷말이 오갔다. 권 회장 본인의 임기 마무리 의지를 압도하는 내·외부의 압력이 있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2000년에 민영화 되긴 했어도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수장이 물러나고 말았던 '포스코 잔혹사'가 반복되면서, 정부의 입김이 지나친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앞서 제기된 검찰 수사 사안 외에 이제껏 감춰져 있던 사안이 새롭게 돌출된 것 아니냐는 의문도 나왔다.
포스코가 이처럼 각종 논란과 의혹, 수장의 궐석 등의 혼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차기 회장 선임이 시급했다. 포스코 CEO 승계 카운슬은 포스코에 제기된 여러 가지 의혹을 객관적으로 밝히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듯 외부 후보를 적극적으로 추천받는 모습을 보였다.
이 과정에도 잡음은 적지 않았다. 전임 권 회장이 포스코 CEO 승계 카운슬에 포함되면서 "전임 회장 입김이 작용할 수 있다"는 비판이 나왔고, 이에 권 회장은 CEO 승계 카운슬 회의에 참석하지 않기로 했다. 최종 후보 5인이 모두 내부 인사로 결정된 것에 대해서도 선임 과정의 폐쇄성 및 공정성에 관한 비판이 제기됐다.
크고 작은 논란 속에 최정우 회장이 포스코 제9대 회장에 선임됐다. 최 회장은 1983년 포스코에 입사해 포스코 감사실장, 재무실장, 포스코건설 기획재무실장 등 포스코 재무 분야를 두루 거친 재무통으로, 포스코 최초의 비(非)엔지니어 출신 회장이다. 또한 부산대학교 경제학과 출신으로, 민영화 후 첫 비(非)서울대 출신 회장이기도 하다.
최 회장은 정통 포스코맨 출신이지만 다른 후보들에 비해서는 사내 비주류로 분류됐던 인물이고, 전임 회장들과는 달리 정권과의 끈도 드러나지 않아 '포피아의 입김' 의혹에서는 자유로운 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현재 포스코와 전임 회장들이 얽혀있는 여러 불명예스런 현안과 관련된 이력 때문에 일부 정치권과 시민 사회의 거센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특히 최 회장이 정준양 전 회장 때 회장 직속 정도경영실장을 지냈고, 권오준 회장 아래에서는 포스코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했던 가치경영센터장을 역임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됐다.
신임 회장도 피할 수 없는 적폐 논란
여러 시민단체가 연대한 '포스코 바로 세우기 시민연대'와 정의당 추혜선 의원은 7월 9일 국회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최정우 포스코 차기 회장 내정자는 지난 10년 포스코 비리의 공범이자 정준양-권오준 전 회장 시절 적폐의 핵심이었다"며 최 회장에 대한 배임·횡령범죄 방조, 직무유기 등의 법률 위반 혐의를 제기하고 서울동부지검에 고발장을 제출했다.
당시 이들은 최 회장의 혐의 중 하나로 2011년 포스코가 인수액 100억 원 정도로 평가받던 에콰도르의 산토스CMI를 250억 원에, 영국의 페이퍼컴퍼니인 EPC에쿼티스를 550억 원에 인수했다가 2016년 산토스는 원래 주인에게 68억 원에 매각하고 EPC는 0원에 조용히 매각했던 예를 들며, 당시 최 회장이 이에 대한 감시·감독의 의무가 있는 직위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소홀했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같은 날 포스코는 이러한 주장이 허위사실이라며 이를 유포한 당사자에 대해 민형사상 조치 등 모든 법적 조치를 강구하기로 했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내고 강력한 대응 의사를 밝혔다. 예를 들어 산토스, EPC 인수를 주도했다는 주장에 대해 인수가 이루어진 2011년은 최 회장의 포스코건설 근무 시기와 맞지 않는다는 등 여러 혐의에 대해 반박했고, 따라서 이들의 주장이 최 회장 개인 및 포스코 전체에 대한 명예훼손, 회장 선임 절차에 대한 방해라고 포스코는 항변했다.
하지만 시민사회의 항의는 더욱 거세졌다. 이틀 뒤인 11일 포스코 바로 세우기 시민연대와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 등은 또 한 번 국회 정론관 기자회견을 통해 포스코의 자원외교 부실투자 등 비리 의혹에 대한 본격적인 검찰 수사를 촉구했다.
잠잠해지지 않는 비판 여론에 포스코는 12일 보도자료를 통해 외부의 비판 및 제안에 적극적으로 귀 기울이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자세를 바꿨다. 또한, 최 회장은 이날 '포스코에 러브레터를 보내 주세요'라는 글을 공개하며 "(포스코가) 새로운 50년, 세계 최고의 100년 기업을 향해 함께 나아가고자 한다"며 "50년 여정의 첫걸음을 떼기 전에 주주·고객사·공급사·포항·광양 등 지역 주민은 물론 국민으로부터 애정이 어린 제안과 충고를 듣고 새롭게 출발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 회장은 이를 위해 포스코 임직원 뿐 아니라 지역 주민·주주·고객사·공급사 등 이해관계자와 사외 각계각층의 다양한 제안을 전달 받고, 이를 9월 말까지 종합하는 과정을 거쳐 취임 100일 시점에는 구체적인 개혁 과제를 발표하고 이를 실행에 옮기겠다고 약속했다.
'최정우 표 포스코'의 키워드는 "더불어 함께"
최 회장은 이처럼 취임 전부터 포스코의 개혁과 발전을 위해 적극적인 개방과 소통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뜻을 내비췄다. 27일 취임식에서도 최 회장은 '더불어 함께 발전하는 기업 시민'이 되겠다는 의지를 앞세운 'With POSCO'를 포스코 그룹의 새로운 비전으로 제시했다.
구체적 개혁 방향으로는 ▲ 고객·공급사·협력사 등과 함께 가치를 만들어 나가는 '비지니스 위드 포스코' ▲ 더 나은 사회를 함께 만들어가는 '소사이어티 위드 포스코' ▲ 신뢰와 창의의 기업 문화를 함께 만들어가는 '피플 위드 포스코'를 제시했다.
우선, 최 회장은 현재 여러 불명예스러운 논란에 휩쓸린 포스코의 윤리경영과 사회적 책임 강화를 추진하기 위해 '기업시민위원회'를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여기에는 포스코 그룹의 경영진과 사외이사 외에도 외부 전문가를 참여시키겠다는 구상이다. 포스코의 개혁을 위해 적극적인 개방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최 회장의 개방 의지는 그룹 사업의 개편 방향을 소개하는 과정에서도 드러났다. 최 회장은 포스코 그룹의 신성장 사업 계획을 밝히면서, 포스코가 그동안 사업 추진 과정에서 철강 회사의 이미지가 너무 강해 많은 실패가 있었다는 점을 과감히 인정하고, 앞으로는 사업적 마인드를 가진 외부 전문가를 영입해 진취적이고 창의적인 조직문화를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와 더불어 포스코의 사회공헌 책임도 강조했다. 최 회장은 "기업도 시민과 마찬가지로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개념"이라며 "주주·임직원·공급사·협력사부터 일반 주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사회·경제적 가치를 공유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구체적으로 최 회장은 취임사에서 "(포스코 제철소가 있는) 포항·광양 지역사회에 벤처 밸리 등 자생적인 신성장 산업 생태계가 조성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또 1조원 규모의 벤처펀드를 조성해 경제 활성화와 미래 먹거리 창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중소 공급사와 혁신의 성과를 공유하는 베네핏 쉐어링(benefit sharing) 제도를 확대하겠다고도 약속했다. 이는 대기업의 고용·투자를 적극적으로 독려하는 현 정권의 기조와도 일맥상통하는 측면이라는 분석이다.
업계에서는 최 회장이 스스로 제시한 비전에서 가시적 성과를 실제로 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재계 한 관계자는 "최 회장은 후보 시절 다른 후보들에 비해 여권이나 사내 특정 세력의 지지를 받는다는 구설수가 적었다"며 "뒤집어 생각하면 가시적 성과를 보여 향후 안정적 경영을 위한 지지 기반을 확장해 나가는 게 시급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포스코의 첫 재무통 회장으로 선출된 만큼 성장과 확장보다 안정적으로 내실을 다지는 것이 우선"이라며 "이렇게 확보한 추진력을 바탕으로 포스코의 새로운 100년을 이어가기 위한 신성장 동력을 찾는 것이 궁극적인 임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