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 = 김영두 한국골프칼럼니스트협회 부이사장) 나는 허황된 말이나 거짓 정보를 부풀려서 떠벌리기를 좋아하는 허풍쟁이는 아니다. 증명할 수도 없는 ‘제일 어려운’ ‘가장 새로운’ ‘최고로 잘나가는’ ‘내가 으뜸으로 예쁘다’ 등의 최상급을 이용한 표현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올여름의 더위를 놓고 내 생애 최초로 만나는 최고의 더위라고 왜장을 쳐도, 찍자를 부릴 사람을 없을 것 같다.
대부분의 골프 모임은 대체로 첫눈이 내려 페어웨이에 흰 낭만이 덮이는 11월에 납회를 한다. 강추위와 폭설이 반복되는 12월, 1월, 2월은 라운드를 쉬고, 덜 녹은 땅을 뚫고 잔디의 새싹이 파릇하게 올라오는 춘삼월부터 신년 골프를 시작한다.
좀이 쑤셔서 한바탕 공을 패지 않고는 못 견디는 미친 골퍼들이야, 떼를 지어 눈밭도 누비고, 얼음도 지치면서 눈 골프, 얼음 골프도 하는 모양이지만, 한때는 나도 산전 수전 설전 빙전 수중전에 번개 치는 벌판으로도 나갔었지만, 그건 좀 넋 나간 골퍼들이나 하는 짓이니 젖혀두자.
미국의 텍사스가 고향이며 한국에서 10년 째 살고 있다는 그는, 지난여름에도, 지지난 여름에도 한국의 더위를 가차 없이 무시하는 실언을 남발했었다.
“우리 고향 텍사스의 여름 날씨에 비하면 한국의 더위는 아직 어린애죠.”
나는 텍사스에서 여름을 겪어보지는 않았으나, 그의 말에 미국 웨스턴 영화 속에서 창날 같은 햇살을 쏟아 붓는 태양 아래, 회오리쳐 솟아오르는 흙먼지를 뚫고 쨘 하고 말을 타고 등장하는 카우보이를 떠올렸고, 식물이라고는 가시가 요란한 선인장이나 드문드문 서있던 황량하고 건조한 사막을 연상하고는, 좀 덥겠군, 하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했다.
“한국이 훨씬 더워요. 서아프리카보다 덥고, 적도에 있는 가봉이라는 나라보다 덥고….”
산전 수전 설전 빙전 수중전 다 치른 내가
올여름 폭염에 라운드 포기하다니
텍사스 맨도 죽는 소리를 하며 한국의 올여름 더위에 항복의 흰 깃발을 들었다.
각설하고, 내가 연장자 축에 들기는 하지만, 그래도 비슷한 또래의 여성만으로 이루어진 골프 모임이 있는데, 다른 골프 모임이 그러하듯 한겨울의 3개월은 좀 참지만, 여름 골프는 한 달도 거르는 법이 없었다. 그래서 나도 매해 여름 라운드를 즐겼다. 솔직히 설명하자면, 한국의 삼복더위가 골프를 멈추어야 할 만큼 더운 적이 있었던가. 한국의 골프장 코스는 대체로 해발고도가 높은 산악 지역에 있어서 도시보다 기온이 3, 4도 낮고, 송림이 우거져서 그늘도 많다.
그리하여 나는 이 살인적인 더위에 용감하게 라운드를 나갔다.
추위 속의 라운드는 마구 껴입고 핫팩도 붙이고, 크크, 위장에 불붙일 위스키가 있으면 더욱 즐거웠다. 하지만 불에 달군 송곳으로 후벼 파는 것 같은 햇살, 가마솥에 들어앉은 듯한 푹푹 찌는 폭서는 옷을 벗어도 도움이 안 되고, 얼음을 가슴에 품어도 얼음이 바로 보글보글 끓었다.
여인이 원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속담이 있다. 옛날 여자들은 부당하고 억울한 일이 있더라도 관습에 얽매여 그저 묵묵히 참고 견디며 살다가, 극한상황에 다다르면 그간 쌓인 울분을 폭발시켰다. 이때 사무친 울분과 격정의 원성이 어찌나 높은지 오뉴월 불볕더위에도 서릿발을 내리게 할 정도라고 했다.
머,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아웃코스를 돌고 기권했다. 6팀 24명 중 낙오자는 나를 포함한 두 명이었다. 전날의 과음이, 수면부족이 한 라운드를 다 채우지 못한 변명이 될 수 있을는지. 속이 울렁거리고 숨이 가빠지는 일사병의 증상이 찾아와서 조용히 물러나와 목욕실의 냉탕에 몸을 담갔다. 그리고는 이 더위를 물리칠, 오뉴월 불볕더위에 서릿발을 몰아올 ‘독한 앙갚음’이 어디 없을까, 깊은 성찰의 혜안으로 찾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