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05호 정의식⁄ 2018.09.11 16:50:57
신한금융지주가 사모펀드 MBK파트너스로부터 생명보험회사 오렌지라이프(구 ING생명)을 인수하는 2.3조 원 규모의 빅딜을 성사시키며 리딩뱅크 경쟁에서 한 발 앞서 나가게 됐다. 신한금융은 이번 오렌지라이프 인수로 은행과 카드 위주의 포트폴리오에 생명보험 부문이 한층 강화되는 효과를 얻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노조와의 관계, 신한생명과 오렌지생명의 화학적 융합 문제 등을 제대로 풀지 못하면 실익이 없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구 ING생명 지분 59.15%… 인수가액 2.3조 원
지난 5일 신한금융지주회사는 서울 중구 세종대로에 위치한 신한금융그룹 본사에서 임시 이사회를 개최하고, 오렌지라이프(舊 아이엔지생명) 지분 인수에 대한 안건을 의결했다.
이사회는 라이프투자유한회사가 보유한 오렌지라이프 보통주 4850만 주(지분율 59.15%)를 주당 4만 7400원, 총 2조 2989억 원에 인수하기로 결의했다. 또, 주주가치 제고와 오렌지라이프 지분 인수에 대한 후속 단계 대비를 위해 2000억 원의 자사주 매입도 의결했다.
이사회 직후 조용병 신한지주 회장과 윤종하 라이프투자유한회사 대표이사 겸 MBK파트너스 부회장은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위치한 법무법인 태평양 사무실에서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했다.
신한금융 관계자는 “생명보험업은 국내 금융시장의 성숙도와 인구 고령화 등을 감안할 때 앞으로도 안정된 성장이 기대된다”며 “이번 인수로 그룹의 생보 사업 라인 강화를 통해 현재 은행/카드 중심의 그룹 사업 포트폴리오의 균형 성장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네덜란드 생명보험사… 사모펀드 거쳐 신한금융 품에
ING생명이라는 이름이 더 친숙한 오렌지라이프의 시초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본사를 둔 다국적 금융그룹 ING그룹이 지난 1987년 한국에 진출하며 세운 조지아생명보험이다. 이 회사는 1991년 네덜란드생명으로 사명을 바꿨다가 1999년 ING생명으로 재차 사명을 변경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며 모기업 ING그룹은 ING생명을 ‘급매물’로 내놓게 된다. 이후 2013년 사모펀드 MBK파트너스가 특수목적법인 라이프투자유한회사를 통해 이 회사 지분 100%를 1조 8000억 원에 인수했다.
인수 후 MBK파트너스는 부분상장을 통해 투자금을 회수한 데 이어 지속적으로 이 회사의 재매각을 추진했다. 주된 매각처로 거론된 곳은 KB금융과 신한금융, 하나금융 등이었다. 인수 협상이 막바지에 이른 지난 3일 이 회사는 사명을 ‘오렌지라이프’(OrangeLife)로 바꿨는데 이는 ING 브랜드의 상표권 사용 기한이 올해 말까지이고, ‘오렌지’가 네덜란드 왕가를 상징하는 색상이기 때문이다.
업계에 따르면 MBK파트너스의 희망 판매가는 약 3조 원 내외였다. 하지만 매수자들은 더 낮은 가격을 원했고, 결국 MBK파트너스는 가격을 낮추게 됐다. 대표적으로 2012년 KB금융은 지분 100%를 2조 2000억 원에 인수하려 했는데 이는 MBK파트너스가 생각한 가격과 격차가 많아 거래가 성사되지 못했다. 이미 상장과 배당 등을 통해 인수비용 1조 8000억 원 대부분을 회수한 MBK파트너스로서는 굳이 매각을 서두를 이유가 없었다.
올해 초 MBK파트너스는 가격을 2조 5000억 원까지 낮췄고, 신한금융이 2조 2000억 원 내외의 가격을 제시했다. 양측의 협상은 결렬되는 듯 했으나 이후 오렌지라이프의 주가가 반토막나면서 MBK파트너스는 희망 매각가를 2조 4000억 원대로 낮추게 됐다. 2조 3000억 원에 지분 59.15%를 매각하기로 양측이 최종 합의하면서 오렌지라이프는 신한금융의 14번째 자회사가 됐다. LG카드(현 신한카드·7조 2000억 원), 조흥은행(현 신한은행·3조 4000억 원)에 이은 신한금융 역사상 세 번째 빅딜이었다.
금융업계는 이번 매각이 양측 모두에게 윈-윈(Win-Win)이었다고 평가하는 분위기다.
일단 MBK파트너스는 가장 확실한 승자다. 이 회사는 이미 배당(6139억 원)과 기업공개(IPO)를 통한 일부 지분 매각으로 이미 투자 원금의 대부분인 1조 7000억여 원을 회수한 상태라 신한금융이 약속한 인수가액 대부분이 MBK파트너스의 순수익으로 간주된다. 59.15%를 2조 3000억 원에 매각한 터라, 나머지 지분의 가치까지 감안하면 약 4조 원 내외의 매각 차익을 얻은 것으로 추정된다.
신한금융도 승자다. 그간 취약하다고 평가되온 비(非)은행 부문 포트폴리오를 한층 강화하게 됐기 때문이다. 특히 오렌지라이프가 외국계 회사라 국내 보험사보다 국제회계기준(IFRS17)에 맞는 탄탄한 재무구조를 갖추고 있어서 장기적으로 신한금융에 플러스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금융업계 “리딩뱅크 탈환 위한 조용병 회장의 승부수”
무엇보다 신한금융에겐 이번 오렌지라이프 인수를 통해 지난해 KB금융에 내줬던 ‘리딩뱅크’ 자리를 되찾아오게 된다는 게 고무적이다.
지난해 신한금융은 최근 9년간 차지했던 당기순이익 1위 자리를 KB금융에 내줬다. 올 상반기에도 신한금융의 당기순이익(1조 7956억 원)은 KB금융(1조 9150억 원)에 못미쳐 인수합병을 통한 몸집 불리기가 절실한 상황이었다.
지난해 오렌지라이프의 순이익은 3402억 원으로, 지분율 59.15%를 감안하면 약 2000억 원의 당기순이익이 신한금융에 반영될 예정이다. KB금융과의 차이를 메꾸기 충분한 금액이다.
자산 규모로도 신한금융은 KB금융을 앞서게 된다. 6월 말 현재 신한금융의 총자산은 453조 3000억 원인데, KB금융은 463조 3000억 원으로 약 10조 원이 뒤처진다. 하지만 오렌지라이프의 자산 31조 5000억 원이 더해지면 대번에 자산규모는 484조 8000억 원으로 불어나 KB금융을 제치게 된다.
금융업계가 이번 빅딜을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이 리딩뱅크를 탈환하기 위해 던진 승부수”라고 분석하는 이유다.
신한금융 보험부문의 위상도 한층 강화될 전망이다. 국내 보험업계에서 신한생명의 자산 규모는 30조 7000억 원으로 8위인데 오렌지라이프는 31조 5000억 원으로 6위라 두 회사가 합치면 자산 규모는 약 62조 2000억 원으로 늘어난다. 5위지만 4위 NH농협생명(64조 4000억 원)과 큰 차이는 나지 않는다.
관건은 얼마나 빠르게 오렌지라이프를 신한금융의 일원으로 정착시키느냐다. 업계는 신한금융이 굿모닝신한증권(2002년), 조흥은행(2003년), LG카드(2007년) 등 굵직한 M&A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실적을 들며 화학적 결합에 능한 기업이라는 측면에 주목한다.
문제는 과거 사모펀드인 MBK파트너스가 ING생명을 인수한 후 전형적인 ‘쥐어짜기’ 정책을 실시, 전체 직원의 20%를 구조조정하는 과정에서 노사 갈등이 극심해졌다는 것. 또, 외국계 회사인 오렌지라이프와 국내 기업인 신한생명의 기업 문화나 영업 방식이 달라 화학적 결합에 좀더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다행인 것은 두 회사의 영업망이 크게 겹치지 않는다는 점. ING생명은 설계사 중심의 영업을 하며 대부분의 설계사는 남성이다. 영업망은 강남 지역을 중심으로 서울에 집중됐다. 반면, 신한생명은 설계사뿐 아니라 텔레마케팅(TM), 방카슈랑스 등 영업 채널이 분산돼 있으며, 영업조직이 경기 지역을 비롯해 전국적으로 존재한다. 두 조직이 화학적 결합에 성공할 경우 놀라운 시너지가 발생할 수 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전문가들 “인수가격 적정, 시너지는 미지수”
증권 전문가들은 대부분 인수 가격이 적정하다고 판단했지만, 향후 시너지 가능성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원재웅 NH투자증권 연구원은 “2조 3000억 원의 인수 가격은 주가순자산비율(PBR) 1.1배 수준으로 과거에 언급된 2조 5000억∼3조 원보다 크게 하락한 수준”이라며 “ING생명의 자기자본이익률(ROE)이 9∼10% 수준임을 고려하면 적정 가격”이라고 평가했다.
김인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오렌지라이프는 은행계 생보사와 달리 설계사 중심의 조직력이 강점이라 시너지 구축이 가능하다”며 “올해 1분기말 기준 지급여력(RBC) 비율이 440%로 업계 평균(245%)을 크게 넘어 추가 증자 가능성도 크지 않다는 점 등에서 인수가 긍정적"이라고 분석했다.
반면, 김은갑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처음 인수 가능성이 제기됐을 때 3조 원까지 언급됐던 가격을 많이 낮춘 점과 유상증자까지 걱정했던 상황에서 자체적으로 자금을 조달한 상황으로 바뀐 점 등은 긍정적”이라면서도 “인수 자체로는 이익 증가나 ROE 상승 효과가 크지 않다”고 분석했다.
한편, 신용평가사들은 이번 인수를 통해 신한금융의 자본 적정성이 다소 약화될 가능성을 우려했다.
국제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오렌지라이프 인수로 자본 적정성 부담이 다소 증가하겠지만 신한금융지주와 신한은행이 적절한 수준의 자본 적정성을 유지할 전망”이라면서 “오렌지라이프의 사업 규모가 크지 않아 신한금융지주가 감당해야 하는 추가적인 리스크도 크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나이스신용평가도 “단기적으로 자본 적정성 지표가 저하되겠지만 인수에 따른 재무 부담은 제한적인 수준”이라며 “오렌지라이프 인수로 금융그룹 사업 포트폴리오 다각화와 이익 창출 기반 강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