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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 롤러코스터 ‘김영란법’…유통가 추석 변천사

시행 2년…달라진 명절선물 풍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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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606-607합본호(추석) 도기천 기자⁄ 2018.09.27 10:34:56

김영란법 시행 초기 당시 추석선물로 4만9000원에 판매하는 ‘민어굴비 세트’가 인기를 끌었다. 사진 = 연합뉴스

(CNB저널 = 도기천 기자)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시행 초기 반토막 났던 추석 선물 매출은 곡절 끝에 김영란법 이전 수준을 거의 회복했다. 올해부터 5만원 미만이던 선물 상한액이 농·축·수산물에 한해 10만원으로 상향된데다, ‘나홀로족’이 늘면서 백화점·마트가 모처럼 활기를 띄고 있다. 배송량 증가로 물류업계도 신이 났다. CNB가 김영란법 시행 후 2년 간의 유통가 변천사를 들여다봤다.


“그때는 정말 폐업을 심각하게 고민했죠. 김영란법 때문에 여전히 어렵긴 하지만 그래도 2년전에 비하면 주문도 늘고 많이 좋아졌어요.”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서 29년째 꽃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조혜영(세연이네꽃방 대표)씨는 당시를 회상하며 ‘죽다 살아난 기분’이라고 말했다. 김영란법이 막 시행됐을 때는 명절 특수는커녕 졸업·입학 시즌에도 매장이 썰렁했다고 한다.    


2015년 3월 국회를 통과한 김영란법은 1년6개월의 유예기간을 거친 뒤 2016년 9월 28일부터 시행됐다. 당시 추석은 9월 15일로 시행일 직전이었지만 추석 분위기는 꽁꽁 얼어붙었다. 시행령에는 식사비 3만원, 선물비 5만원, 경조사비 10만원 등 접대비용의 상한선이 구체적으로 명시됐다. 이를 어기면 쌍방 모두 접대 금액의 수십배가 과태료로 부과되며, 1회 100만원(연 300만원) 이상의 금품이 오간 경우에는 형사처벌 된다.  


적용대상은 공무원, 언론인, 교직원과 이들의 배우자였지만 파장은 전 국민에게 번졌다. 법 조문을 잘못 해석하면서 숱한 시행착오가 일어났다. 가령 기업인이 공무원에게 접대할 경우 상한액을 어기면 문제가 되지만, 반대로 공무원이 기업인에게 접대하는 건 처벌규정이 없다. 그럼에도 공무원들은 모두 지갑을 닫았다. 동창들 간의 소소한 술자리, 친척에게 보내는 경조사 화환까지 자제하면서 내수 경기가 꽁꽁 얼어붙는 듯 했다. 

 

2년전에는 무조건 몸 사려 


특히 당시 재계에서는 누가 첫 시범케이스가 될 지에 촉각을 세웠다. 금액상한선도 문제지만 ‘직무연관성’이란 모호한 잣대에 따라 법위반 여부가 결정되는 만큼, 대한민국 최초의 판례가 나와야 홍보·대관 활동을 재개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상한액을 지키더라도 직무연관성에 걸려 청탁 혐의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공무원을 상대로 기업의 입장을 알리는 대관팀이 해체됐고, 언론사를 상대하는 ‘홍보맨’들은 회사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식당들은 ‘2만9천원’짜리 저녁메뉴를 출시하기 시작했고, 백화점·대형마트에서는 김영란법 제한 금액에 맞춰 기존 선물세트에 들어가는 항목이나 용량을 줄인 ‘맞춤형 상품’을 내놨다. ‘4만9천원’짜리 ‘미니 갈비세트’가 등장한 게 이 즈음이다. 


하지만 올해부터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화훼업계와 농어민, 소상인들의 민원이 끊이지 않자 정부는 작년 말 농산가공품과 화환에 한해 가능 금액을 10만원까지 올렸다. 


이에 따라 지난 2월 설 명절부터 풍경이 확 달라졌다. 국내산 한우세트가 다시 등장했고, 참조기와 굴비세트도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롯데쇼핑·신세계·현대백화점 등 백화점 3사 모두 5만원~10만원 이하 선물세트의 판매율이 전체 명절선물 매출의 26~32%를 차지했다. 

 

김영란법 개정으로 농축수산물 선물 상한액이 10만원으로 조정됨에 따라 굴비, 한우세트 등이 다시 인기를 끌고 있다. 한 대형마트에 진열돼 있는 다양한 가격대의 선물세트들. 사진 = 연합뉴스

이번 추석에는 이런 분위기가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이마트가 추석 선물 예약판매 기간인 지난달 2일부터 이달 6일까지의 실적을 집계한 결과, 5만∼10만원대 선물세트 판매가 지난해보다 무려 109%나 늘었다. 매출액도 작년 대비 50% 가량 증가했다. 


롯데마트 역시 지난달 1일부터 27일까지 진행한 추석 사전예약 판매 결과, 농축산물 매출이 전년 대비 305%나 급증했다. 신세계백화점은 10만원 이하의 정육 소포장 제품을 지난해 추석 대비 50%나 늘렸는데도 모두 완판됐다. 김영란법 시행 이전에 인기를 끌었던 한우, 굴비, 사과·배 세트가 다시 효자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다. 


고가 선물세트의 판매량도 크게 늘고 있다. 이마트의 경우 10만원 이상 프리미엄 세트의 판매량이 작년 추석보다 65% 늘었고 평균 단가도 뛰었다. 10만원 이상 선물세트의 평균 단가는 19만3792원으로 지난해 평균 단가(17만2613원)보다 12%(2만1179원) 올랐다. 


김영란법 상한액이 늘긴 했지만 여전히 10만원으로 묶여 있음에도 고가상품의 매출 증가세가 두드러진 이유는 위축됐던 구매 심리가 완화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CNB에 “법 시행 후 처벌된 사람이 손에 꼽을 정도다보니 소비자들이 김영란법의 존재를 크게 인식하지 않는 분위기”라며 “과거 김영란법을 제대로 알지 못해 적용대상이 아님에도 몸을 사렸던 소비층이 자연스럽게 지갑을 열고 있는 것 같다”고 해석했다.  


이 같은 유통가의 호조세는 물류업계로 전이되고 있다. 명절선물 매출이 늘면서 물동량이 증가한 것.  


CJ대한통운·한진·롯데글로벌로지스 등 택배3사는 이번 추석 배송량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약 20~30% 가량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앞서 지난 2월 설 명절 기간에는 전년에 비해 25%가량 물동량이 증가했었다. 택배업계가 김영란법 완화의 반사이익을 톡톡히 보고 있는 셈이다. 

 

택배3사, 덩달아 ‘즐거운 비명’


한편으론 1인 가구와 ‘혼추(나홀로 추석)족’의 소비가 늘어난 점도 유통·택배업계를 고무시키고 있다. 


백화점 3사와 이마트·롯데마트·홈플러스, 동원·대상·CJ제일제당 등 식음료기업, GS리테일(GS25)·CU 등 편의점업계는 앞다퉈 ‘1인 트렌드’의 명절선물을 내놓고 있다. 혼술·혼밥족을 위한 ‘혼추 세트’, 자신에게 투자를 아끼지 않는 포미(For Me)족을 겨냥한 ‘셀프 기프팅 세트’, 가정간편식(HMR) 세트, 모둠전·불고기·잡채 등으로 구성된 ‘명절음식 DIY’ 등이 대표적이다. 심지어 ‘혼제(나홀로 제사)족’을 겨냥한 ‘미니 제사상 세트’까지 등장했다.   


이 분야 매출만 별도 집계한 통계는 아직 없지만, 유통업계는 1인용 세트의 판매량이 매년 20%이상 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같은 소용량·소포장 선물의 증가는 택배사들의 매출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편 김영란법 완화가 골목상권에는 별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다. 


유통대기업들은 생산지와의 직거래를 통해 대량으로 물량을 구입한 뒤 이를 금액단위별로 포장해 판매하고 있다. 하지만 재래시장은 이런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다보니 명절선물 판매와는 거리가 있다.


서정래 전 망원시장 상인회장은 CNB에 “재래시장에서는 선물용 보다 직접 소비하기 위한 구매가 대부분”이라며 “김영란법 완화의 영향을 거의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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