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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칼럼] 노는 날 사이 ‘낀 평일’에 대기업 놀고, 중소기업 일하고…공휴일 합리화, 안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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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609호 최영태 CNB뉴스 발행인⁄ 2018.10.08 15:27:54

최영태 CNB뉴스 발행인

직장인에게 이번 주는 행복한 한 주일이다. 화요일(10월 9일 한글날)이 공휴일이기 때문이다. 월~금 닷새 중 하루라도 쉬는 날이 끼어 있으면 한 주의 근무가 너무나 잘, 리드미컬하게 흘러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즐거워야 할 오늘 10월 8일이지만, 막상 출근하고 보니 기분 잡치는 일이 두 가지나 연거푸 일어났다. 

 

‘낀 날’을 우울하게 만든 두 사건

 

거래처에 연락하니, 그 회사는 오늘 쉰단다. ‘노는 날 사이에 낀 일하는 날’이라 그냥 쉬기로 했단다. 나는 일하지만 대기업 거래처가 일을 안 한다니 결국 일을 못 하게 된다. 내가 이러려고 출근했나 하는 자괴심이 든다. “돈 잘버는 대기업은 쉬고, 돈 잘 못 버는 중소기업은 일하는구나”는 생각에 심술이 난다.

 

눈에 거슬리는 건 건너편의 빈 의자. “어, 저 친구 오늘 쉬나?”고 확인해보니, 월차를 내고 쉰단다. 낀 날을 정확하게 찝어내 연휴로 만드는 그 똑똑한 동료만큼 난 면밀하지 못했거나 “10월 8일 같은 낀 날에 쉬면 찍힐 거야”라고 겁을 먹었던 내가 또 한심하게 느껴진다. 
 

'낀 날'에 연차를 내서 쉬는 어느 개인의 달력. 개인의 능력이 좋아, 또는 회사의 형편이 좋아 10월 8일을 쉬는 경우는 10월 상달 초에 푸근한 연휴를 즐길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대부분은 잘 노는 남들을 바라봐야 하는 게 한국 공휴일 시스템의 현재 모습이다. 

 

내일 쉴 생각에 룰루랄라 출근했던 오늘이, 일도 제대로 못하고 상대적 박탈감만 느끼는 날이 돼버렸다. 이런 박탈감을 느끼는 근로자가 나 하나만은 아닐 듯하니, 우리의 휴일 시스템에 근본적으로 문제는 없는 건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대체공휴일이라는 제도가 최근 도입돼 지난 달 추석 연휴는 잘 쉬었지만, 나머지 한국의 공휴일 제도가 정말 ‘이게 최선입니까’인지에 대해 필자는 항상 의문을 품어 왔다. 

 

한국의 공휴일은 100% 날짜를 박아놓았기에 올해처럼 수요일(개천절)에 공휴일이 오기도 하고, 화요일(한글날)에 오기도 한다. 그야말로 복불복이다. 

 

법정 공휴일이 이틀인 한국(위)과 미국(아래)의 달력 페이지. 한국 공휴일은 10월 3일과 9일로 정해져 있어서 일하다 쉬고 또 일해야 한다. 반면 미국은 11월 11일이 날짜로 정해진 공휴일(베테런스 데이)이지만 대체 공휴일로 11월 12일을 쉬므로 연휴가 되고, 11월 넷째 목요일로 정해져 있는 추수감사절은 통상 그 뒤 금요일(블랙 프라이데이의 날)까지 쉬므로, 아주 재밌는 연휴를 두 번 즐길 수 있다. 기념할 날을 기념하되, 더 경제적이고 즐거운 건 어느 나라 쪽일까?

 

같은 공휴일인데 왜 미국인은 온국민이 웃고, 
한국인은 공휴일 때마다 웃거나 울거나 해야 하나?

 

헌데, 만약 여기가 미국이었다면, 아마도 개천절은 공휴일 법에 아예 “단군이 나라를 연 날은 10월 3일이지만, 10월 첫째 주 월요일을 공휴일로 정해 기념한다”고 정해놨을 듯 싶다. 미국의 공휴일이 대개 그런 식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개천절이 단군 할아버지가 나라를 연 날이라면, 미국의 프레지던츠 데이(Presidents’ Day)는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의 생일을 기념하는 날이다. 그의 생일은 2월 22일이지만, 영리하고 합리적이게도 미국 법은 프레지던츠 데이를 ‘2월 셋째 주 월요일’로 정했다. 그래서 미국인들은 미래의 달력을 뒤적거릴 필요 없이, 심플하게 “매년 2월 말에는 초대 대통령님 덕분에 연휴를 쉰다”고 살면 된다. 


물론 모든 공휴일이 이렇게 월요일로 정해져 있는 건 아니고, 크리스마스나 미국 독립기념일(7월 4일)처럼 날짜가 중요한 날은 그 날을 지키도록 돼 있다. 그래서 아예 용어가 있다. 독립기념일처럼 날짜를 지키는 공휴일은 ‘붙박이 공휴일’(fixed holiday)이고, 프레지던츠 데이처럼 요일을 지키는 공휴일은 '떠다니는 공휴일'(floating holiday)이다. 

 

미국의 붙박이 날짜 공휴일과, '월요일로 떠가는' 공휴일

 

붉은 색으로 표시된 공휴일만 날짜 지정식이고, 나머지는 모두 요일 지정식이라 1년에 여섯 차례는 무조건 연휴를 즐기도록 법제화돼 있는 미국의 공휴일들. 

미국 공휴일의 붙박이와 이동식 날짜를 한 번 정리해 보자. 


1월 1일 신정은 당연히 붙박이 공휴일이다.

 

1월 셋째 주 월요일은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의 탄생을 기리는 날이다. 그의 생일은 1월 15일이지만, 마틴 루터 킹 데이는 ‘1월 셋째 주 월요일에 쉰다’고 정해져 있다. 그래서 1월 후반엔 당연히 연휴가 다가온다. 

 

2월엔 앞에서 말했듯 ‘프레지던츠 데이’ 덕에 월말쯤에 당연지사로 연휴가 온다. 

 

△ 3~4월은 건너뛰고, 5월엔 전몰 장병을 기리는 메모리얼 데이가 있다. 5월 마지막 주 월요일인지라 5월의 마지막 주말은 무조건 연휴다. 

 

△ 6월을 건너뛰고 7월 4일은 날짜 붙박이 독립기념일이다. 불꽃놀이 보러 가는 날이다. 

 

△ 여름 휴가를 다녀온 뒤 맞는 9월의 첫 월요일은 노동절(Labor Day)인지라 9월 첫 주도 연휴다. 

 

미국 노동절의 퍼레이드 광경. 매년 9월 첫째 주 월요일로 지정돼 있으므로, 연휴를 맞아 이런 퍼레이드가 펼쳐진다. 반면 한국에도 5월 1일 노동절 휴무일이 있지만 월화수목금토일 중 어느 날이 될지는 '달력 신'만이 안다. (사진 = 위키피디아) 

 

10월 둘째 주 월요일은 북미 대륙을 ‘발견’했다는 콜럼버스를 기념하는 콜럼버스 데이(Columbus Day)이니 10월 초반에 또 연휴다.

 

11월 11일은 1차 대전 종전을 기념하는 참전 용사의 날(Veterans Day)이고, 이 날은 붙박이 공휴일이다. 

 

△ 기독교 국가인지라 벌써 11월 1일만 되면 캐럴이 흘러나오면서 연말 축제 무드에 돌입한다. 11월 11일 베테란스 데이를 논 뒤 본격적인 ‘연말 광란’의 첫 절정인 추수감사절(땡스기빙 데이) 공휴일이 오는데, 다른 떠다니는 공휴일이 모두 월요일인 데 반해 이날은 또 영리하게도 11월 넷째 주 목요일로 돼 있다. 통상 목-금-토-일을 노니, 다른 요일식 공휴일이 주는 토-일-월 연휴와는 느낌 자체가 다르다. 

 

땡스기빙 데이까지 미국인들은 열나게 쇼핑들을 하므로(땡스기빙 데이 날 보통 가족들을 만나니), 연말 1차 쇼핑 파도가 물러간 뒤인 금요일 날 대규모 땡처리 세일을 펼치는 게 바로 한국인에게도 잘 알려진 블랙 프라이데이(애프터 땡스기빙) 세일이다. 

 

12월 25일 성탄절은 당연히 날짜 붙박이지만, 땡스기빙 데이 열기가 휩쓸고 지나간 뒤 12월 15일쯤이면 거의 모두가 연말 축제 분위기에 돌입하므로 12월 한 달을 ‘해피’하게 지내고 새해를 맞는 게 미국인들의 생활 패턴이다. 

 

11월 넷째 주 목요일로 정해져 있는 추수감사절 공휴일 다음날인 '블랙 프라이데이' 쇼핑에 나선 미국인들. (사진= 위키피디아)

 

1년에 여섯 번 무조건 돌아오게 돼 있는 미국의 토-일-월 연휴들

 

위의 정리를 봐서도 알겠지만, 미국에선 1, 2, 5, 9, 10, 11월에 ‘자동 빵으로’ 연휴가 돌아오니 일하고 쉬는 리듬이 아주 좋은 편이다. 그리고 연말의 땡스기빙-크리스마스 대축제를 향해 달린다. 그래서 미국에 살다보면 1년이란 세월이 수시때때로 찾아오는 연휴와 함께 리듬감있게 흘러간다. 노는 날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가 한국과 비교하면 현격하게 적다. 


반면 한국인은 매년 설날-추석 연휴가 어느 요일에 떨어지는지 촉각을 곤두세워야 하고(대체공휴일의 도입으로 최근엔 그 걱정도가 약간 떨어졌지만), 한글날과 개천절은 어느 요일인지를 확인하고 그 결과에 웃고 울고 한다. 거기까지는 뭐 그럴 수 있다고 쳐도, 오늘 필자의 경험처럼 “돈 잘 버는 대기업은 놀고 작은 우리 회사는 일하라지만 대기업이 노니 하는 둥 마는 둥 일해야 하고, 머리좋고 대담한 동료만 못한 나 자신의 머리 나쁨 또는 회사에 대한 소심함”을 느껴야 하니, 참말로 이런 공휴일 시스템이 최선인지 의심을 품지 않을 수 없다.


물론, 한국의 공휴일 시스템은 완성태가 아니다. 남북이 통일되면 중요한 과제로 국경일 시스템 정비도 해야 한다. 북한의 경우 태양절이니 광명성절이니 해서 김일성, 김정일의 생일을 국가 최대의 경축일로 삼고 있다.

 

사실 그간 한국에선 8월 15일을 놓고 건국절이니 광복절이니 해서 논란이 많았지만, 사실을 말하자면 한민족은 우리 손으로 제대로 근대국가를 건국한 적이 없다. 3.1운동 이후 임시정부를 상해에서 세웠다지만 영토가 없는 ‘상상 속의 건국’이었을 뿐이고, 1945년 이후 남북한의 건국이든 정부수립이든 외세(미국과 소련)의 간섭-지도 아래 이뤄졌을 뿐, 한민족의 손으로 한민족의 근대 국가를 세워 건국을 선포해본 경험은 없다는 것이 정답 아닐까. 

 

김일성 전 주석의 생일을 기리는 북한 최대의 명절인 태양절(4월 15일) 경축 행사. 남북한이 통일되면 경축일을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도 큰 과제 중 하나다. (사진 = 위키피디아)

 

통일 되면 공휴일 정리해야겠지만, 
그때까지는 지금처럼 일희일비 계속?

 

그간 한국의 민주화운동 등이 힘들게 나라를 만들어와서 지금의 잘 사는 나라가 됐지만, 그것은 과정으로서의 나라 바로세움이었지, 어느 특정한 날에 “우리 한민족이 이런 국민국가를 만들었다”고 대내외에 공표한 적은 사실상 없지 않았느냐는 되물음이다. 남한이든 북한이든 사실 한민족이 현재 사는 나라의 틀들은, 일본 제국주의가 만들었으며, 태평양전쟁 종전 뒤에 지난한 과정을 거치면서 나라를 바로세우려 노력해 왔지만 우리가 서구 선진국이나 미국 같은 형태의 근대 국민국가를 우리 손으로 만든 경험은 아직도 없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앞으로 통일이 되어 하나의 나라가 한반도에 설립될 때야말로 진정한 한민족의 국민국가가 처음으로 설립되는 것이며, 그때가 되면 ‘미국과 비교하면 덜 영리한’ 우리의 현재 공휴일 시스템 역시 손봐지지 않겠느냐는 엉뚱한 생각도 해본다. 남북한의 평화 유지와 통일이 필요한 이유는, 4년 전 “통일대박”으로 표현됐듯 경제적 이득만을 노리는 천민자본주의적 목적 이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는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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