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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정 평론가의 더 갤러리 (16)] ‘Unclosed Bricks: 기억의 틈’ - 권혜원

“실수가 생산적…실수 없는 완성은 그냥 기획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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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614호 이문정(미술평론가, 컨템포러리 미술연구소 리포에틱 소장)⁄ 2018.11.19 10:17:04

(CNB저널 = 이문정(미술평론가, 컨템포러리 미술연구소 리포에틱 소장)) 하루를 보내는 동안 우리는 꽤 많은 장소를 방문하고 머무른다. 그것이 진지한 체험이든 가볍게 스쳐 지나가는 발걸음이든 우리가 만나게 되는 모든 장소는 매번 다른 인상과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와 관련된 모든 기억은 나와 우리의 정체성을 형성한다. 공간에서의 기억, 그곳에 우리가 남기는 흔적들이 모이고 모여 역사가 된다.

전시 ‘Unclosed Bricks: 기억의 틈’은 꽤 큰 시간의 격차를 갖고 있지만 동시대성을 공유하는 대학로의 건축물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를 추적한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벽돌’이 있다. 하나의 벽돌이 모이고 모여 하나의 건축이 되고, 특별한 장소를 만들어내는 것처럼 개개인의 삶의 흔적과 거시적인 역사적 흔적이 교차된다.

아르코미술관이 위치한 대학로 마로니에공원 일대는 한국 근현대의 흐름을 압축적으로 담아내는 이미지이자 장소다. 각각의 건축물들은 그것이 만들어졌던, 이제는 흘러가버린 한 시대를 반추하는 기억이지만 동시에 현재적 삶의 현장이기도 하다. 나아가 우리의 앞날을 예견하는 길잡이기도 하다. 그것은 가장 실존적이고 현재적이며 예술적인 장소이다. 개인적이고 사색적인 행위가 이뤄지는 동시에 집단적인 행위가 이뤄지는 지점이다. “벽돌에 대한 탐구와 역사적 추적”은 최종적으로 벽돌 하나가 상징하는 개인의 삶, 벽돌이 모여 만들어낸 우리들의 역사에 대한 탐구와 추적을 향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지워지고 잊혀졌던 이야기들이 되찾아진다. 새로운 이야기가 창조된다.

‘Unclosed Bricks: 기억의 틈’의 참여 작가인 권혜원은 특정한 장소를 매개로 지워진 개인과 우리(집단)의 기억(흔적)을 추적하고 ‘서사 구조’를 구축하는 작업을 꾸준히 진행해 왔다. 발전이라는 목표를 위해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개인 삶의 이야기와 기억들은 파괴되거나 삭제되었다. 자연스러운 공간적 관계는 침범된다. 권혜원이 되찾아내는 혹은 새롭게 만들어내는 서사들은 파괴되고 흩어진 관계들을 다독이고 변해야 하는 것, 사라질 수밖에 없는 것, 그리고 지속되는 것의 자연스런 만남과 공존을 이끌어낸다.

 

권혜원, ‘우리는 어딘가에 있다’, 오디오-비디오 인스톨레이션, 3채널 HD 비디오, 6채널 사운드, 12분, 2018, 도판 제공 = 아르코미술관, 노경 촬영

권혜원 작가와의 대화
“무중력 카메라가 우연히 찍은 듯한 이미지 추구”


- 아르코미술관 주제 기획전 ‘Unclosed Bricks: 기억의 틈’에 전시된 작품 <우리는 어딘가에 있다>(2018)의 제작 과정을 설명해 주길 바란다. 작품을 감상하면서 조금 긴장했다. 마치 이리저리 떠다니는 영혼이 건물의 안팎을 배회하며 마주하는 이미지 같았다. 작품을 계속 보고 있으니 나 역시 공간을 떠다니는 것 같았다. 건물 안을 헤매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전시 ‘Unclosed Bricks: 기억의 틈’을 위해 벽돌이란 건축 재료와 대학로의 건물들, 그리고 아르코미술관을 비롯한 주변 건축물들의 역사를 기념하는 작품 제작을 제안 받았다. 작품을 위해 ‘대학로 건축 투어’를 하고 문헌 자료와 설계 도면 등을 수집하고 공부했다. 그 과정에서 아르코 미술관이 위치한 대학로가 박길룡(예술가의 집), 김수근(아르코미술관, 아르코예술극장, 샘터사옥), 승효상(샘터 사옥)으로 이어지는 한국 건축가들의 각축장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건축물 자체를 중심에 놓고 작업을 시작했다. 작업에 들어가면서 신화적인 건축물들의 아름다움이나 가치를 이야기하지 않겠다고 결정했다. 그것은 이미 많이 논의되어온 확고한 역사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나는 재개발로 인해 없어지고 잊혀지는 공간들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왔다.

올해도 사람들의 주목을 끌었던 가장 첨예한 논쟁적 이슈 중 하나가 재개발이었다. 그것은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과거의 것을 부수거나 과거의 무언가를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박제하는 방식에 가깝다. <우리는 어딘가에 있다>는 - 현실적으로는 그럴 일이 거의 없겠지만 - 미래의 언젠가 공공성을 가진 미술관이나 예술극장이 본래 갖고 있던 역할과 기능을 상실한 뒤 지워졌던 과거의 목소리들이 그 공간을 다시 차지하게 된 상황을 실현한 것이다. 이를 표현하기 위해 공간을 무작위적으로 돌아다니는 카메라에 우연히 포착된 건물 내외부의 이미지를 담았다. 오작동처럼 보이는, 중력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카메라의 움직임을 만들려고 애썼다.”

- 바람소리 같기도 하고, 사람들이 흐느끼는 것 같기도 한 사운드가 긴장감을 배가시켰다. 촬영과 녹음이 한 자리에서 동시에 제작된 것처럼 이미지와 사운드가 매우 잘 어울렸다. 그런데 약간 무섭게 느껴지기도 했다.

“사운드는 스튜디오가 아닌 아르코 건물 내부에서 녹음했다. 철거민들의 역사, 인터뷰 등에 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스크립트를 만든 뒤 배우들에게 문장에 담긴 감정만 남긴 채 읽어달라고 요청했다. 일종의 버벌 퍼포먼스(verbal performance)이자 보이스(voice) 퍼포먼스라고 생각하면 된다. 미래에 모든 기록물, 심지어 언어까지 사라진다 해도 (철거민들의) 감정은 남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권혜원, ‘우리는 어딘가에 있다’, 스틸 이미지, ⓒ권혜원

- 3채널 비디오 작업이다. 세 개의 스크린은 하나의 화면이 되기도 하고 분할되어 각각의 이미지를 담아내기도 한다. 그런데 화면의 크기에 비해 관람자를 위한 의자가 가깝게 놓여 관람할 때 조금 불편했다. 전체 화면이 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번 작품의 경우 가로로 긴 화면의 비율이 중요했다. 일상적인이지 않은, 약간은 기묘하고 낯선 프레이밍(framing)을 원했고 3채널을 선택했다. 또한 화면(이미지)이 관객의 시야를 조금은 벗어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의자를 일반적인 관람 거리보다 조금 가깝게 두었다. 관객이 일정 부분 영상에 압도되길 원했다.”

- 카메라의 오작동이 포착한 이미지라고 하기에는 매우 세련되고 감각적이라 느껴진다. 철저히 계산되고 정제된 것처럼 보인다. 본인의 작업에 즉흥성이 얼마나 들어가는가? 그리고 작업의 계획 단계에서 결과물에 대해 어느 정도 예측하는가?

“나는 작업 과정(현장)에서 우연성이나 즉흥성이 극대화되는 것을 선호한다. 실수가 생산적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실수가 작업에 유의미한 영향을 끼치길 원한다. 실수 없이 계획대로만 진행한다면 기획안의 상태로 존재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것은 효율성이 극대화된 자본주의 시스템의 대표적인 모습이다. 특히 <우리는 어딘가에 있다>의 경우 콘티(continuity) 작업을 거의 하지 않았다. 카메라의 움직임은 어느 정도 계획했지만 촬영된 결과물을 결정하는 계획은 세우지 않았다. 실험의 연속이었다고 보면 된다. 최종 이미지는 편집 과정에서 결정했는데 (앞서 말했던) 작업 의도, 오작동과 기계적인 시선, 미래적인 분위기, 완성된 사운드와 어울리는지 등에 근거했다. 이 모든 과정과 그 결과물이 건물(공간)에 개입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작업했다.”
 

권혜원, ‘리빙 아카이브’, 스틸 이미지, vertical HD video, silent, 2009-2010 ⓒ권혜원

- 무빙 이미지(moving image) 작업은 러닝 타임(running time)이 있다. 전부를 보지 않으면 작품을 감상했다고 말할 수 없다. 또한 전시 기간 외에는 작품의 이미지를 충분히 접하기 어렵다. 상대적으로 작품을 상세히 설명하는 글을 읽었음에도 어떤 작품인지 감을 잡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이런 특징이 연구자나 관람자 모두에게 한계로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무빙 이미지의 경우 글을 비롯한 작품 외적 자료로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제한적이다. 영상은 무엇보다 러닝 타임 동안 관람하는 게 중요하다. 작가가 특정한 러닝 타임을 결정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물론 나의 작품을 그냥 지나치거나 부분만 감상하는 관객이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그렇다고 나의 작품을 그냥 스쳐 지나가는 그들을 염두에 두고 작업하지는 않는다. 일장일단이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어떤 작품이든 제대로 감상하고 분석하려면 일정 시간이 필요하다.”

- 조각이나 설치와 같은 작품들은 전문적 지식이 없어도 어느 정도 재료와 제작 과정 등을 유추할 수 있다. 그러나 미디어 아트(media art)는 그러기 쉽지 않다. 이것이 심리적 거리감을 느끼게 할 때도 있다. 권혜원의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 기술적인 부분을 얼마나 알아야 하는가?

“잘 알지 못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 같다. 지금까지는 감상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해 최대한 삭제해 왔다. 기술적인 면이 최종적으로 얼마나 드러나는가는 작품마다 다르다. 기술적인 면뿐만 아니라 조사, 연구 과정의 특별한 방법론도 마찬가지다. 만약 그것이 결과에도 일정 부분 드러나야 한다고 판단하면 관객이 인지할 수 있도록 어떤 방식으로든 반영할 것이다. 물론 어느 정도 드러내고, 어떻게 이해하게 하느냐의 문제는 쉽지 않은 일이다.”

- 오늘날 많은 작가들이 역사를 되돌아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진리처럼 믿어지는 역사에 질문을 던지거나, 지워진 역사를 찾아낸다. 역사에 상상을 더하고, 역사를 역사이게 만드는 권력은 무엇인지 고민하기도 한다. 권혜원의 작업 역시 일정 부분에서 역사와 기억을 주요하게 다룬다. 그런데 특정한 사건이나 인물, 시공간을 다루는 작업인데도 매우 은유적이고 시적이다. 이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혹시 본인의 작품 전반을 아우르는 메시지가 있는가? 그리고 이와 같은 작업은 언제부터 시작하게 되었나?

“역사(기억)와 관련된 최초의 작업이라 할 수 있는 ‘리빙 아카이브(Living Archive, 2009-2010)’는 내가 문래동 작업실에 머물 때 시작되었다. 나의 일상 공간, 주거 지역과는 매우 다른 문래동의 환경들이 재미있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진행된 것 같다. 작업을 위한 자료 조사, 수집을 정말 많이 하지만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그것을 미술관에 가져오거나 작품 안에서 보여주지는 않는다. 그것은 과정의 일부라 생각한다. 나의 작업이 그와는 조금 다른 지점에 머물길 바란다. 나는 건물의 물질적이고 비물질적인 모든 부분, 건물의 과거, 현재, 미래 모두를 사용하는 작업을 추구한다. 그런 사용법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정전(正典)화된 역사나 지식의 범위를 넘어서는 사용의 예를 만들어나가는 작업이라 보면 된다. 작업에 대한 태도는 계속 변화하고 있는 것 같다. 나에게는 작년부터 올해가 터닝 포인트였다. 그래서 더욱 한두 개의 태도나 목적을 말하긴 어렵다. ‘무빙 이미지 아티스트가 역사(과거)에 어떻게 개입할 수 있을까?’가 지금의 나에게 유효한 질문이다. 역사학자들과는 조금 다른 관점일 것이다. 지금과는 다른 상황, 다른 공간을 만들어내는 개입의 과정에서 무엇이 벌어지는지 지켜보고, 그것이 작업에 담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작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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