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 = 문규상 법무법인 대륙아주 변호사) 올해 사법부 70년을 맞았으나 현실은 지난 정부 시절 벌어졌던 사법 농단과 재판 거래 의혹으로 검찰 수사가 막바지로 치닫고 있습니다.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뿌리 채 흔들리고 있다는 질책과 아울러 개혁의 목소리가 크게 울리고 있습니다.
적어도 여태까지 판사들은 재판 기록과 씨름하는 고단하고 엄격한 생활의 연속에서 성직자처럼 살았다고 자평해 왔기에 높은 법대 아래의 힘없는 서민들은 서슬 퍼렇고 추상같은 판결에 억울한 부분이 있어도 크게 불만을 터뜨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사법 농단과 재판 거래 의혹에서 드러난 민낯은 성직자처럼 살았다는 자평이 무색해집니다. 더구나 조사단이 사법 행정권 남용 의혹과 관련하여 추가로 공개한 8건의 문건 중 눈길을 확 끌어당기는 보고서가 있습니다.
2015년 9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의 법원행정처에서 소위 ‘승진을 포기한 판사(승포판)’들의 문제로 ‘출퇴근 시간 미준수, 재판 업무의 불성실한 수행, 배석판사에 대한 부적절한 언행’ 등을 꼽으며 ‘사법부 경쟁력의 급격한 약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담긴 보고서를 작성한 사실이 공개되었습니다.
‘승포판’에 대한 문제 제기는, 통상 차관급인 ‘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승진하지 못한 지방법원의 부장판사들이, 인사에서 밀려 민사 합의재판부에서 대부분의 판사라면 맡기 싫어하는 소액사건 또는 민사단독 사건의 항소심을 맡게 되는데 그들 중 일부 판사들이 불성실한 재판 진행으로 사법 신뢰를 갉아먹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고법 부장판사 승진 제도’는 올해 폐지되었지만 서울 등 여건이 좋은 근무지역과 선호도가 높은 보직에서 탈락한 판사들의 입장에서는 재판을 열심히 할 아무런 유인이 없어진 셈입니다.
이들은 1심에서 어떠한 결과가 나왔든 제대로 심리하지 않고 무조건 ‘항소기각’을 하거나, 사건을 신속하게 처리하지 않고 시간을 질질 끌어 당사자들의 원망을 사거나, 불성실하고 고압적인 자세로 일관하여 사법부에 대한 불신을 초래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판사는 탄핵 또는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파면되지 아니하며 징계 처분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정직, 감봉 또는 기타 불리한 처분을 받지 아니하는 등 헌법상 신분보장이 엄격하므로(헌법 제106조 제1항) ‘승포판’이 되려고 마음먹는 순간부터 무엇이 두려울까요.
물론 여기서 문제 삼는 ‘승포판’은 평생 재판만 하겠다는 자세로 전관의 입김도 먹히지 않는 법과 양심에 따라서만 재판하는 ‘선의의 승포판’은 제외되고, 앞에서 제기한 문제의 ‘불량 판사’만 해당될 것입니다.
‘승진 판사’ 중에도 불량 판사가 많다는 현실
그러나 이미 ‘승포판’으로 낙인찍힌 판사들만 불량 판사가 아니라 법원 내부에서 유능한 판사로 분류되어 차관급에 상당하는 대우를 받는 ‘고등법원 부장’ 중에서도 상당수의 불량 판사가 발견되고 있고 이들이 내린 판결에 대해 당사자들은 도무지 승복할 수 없다고 하는 사례가 많이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최순실로부터 시작하여 박근혜 전 대통령, 더 나아가 이명박 전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1년 6개월 넘게 이어지는 적폐청산 재판 때문에 다른 일반 재판에도 엄청난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최순실이나 박근혜 재판이 시작되면서 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부는 기존에 진행되던 사건들을 다른 재판부에 재배당할 수밖에 없게 되고 이를 재배당 받은 재판부는 기존의 사건에 재배당 받은 사건들이 더해져 자연히 사건 처리가 졸속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예를 들면 피고인이나 변호인 측에서 아무리 의견서나 변론요지서 등을 통하여 증거를 제시하고 사실관계를 다투어도 재판부는 일방적으로 사실인정을 하고, 피고인이나 변호인이 제시한 반대증거에 대해서는 판단조차 하지 않는 바람에 도저히 승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불평을 듣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상고심인 대법원에서는 대법관 1명이 연간 3000건에 이르는 사건을 처리할 정도로 부담이 많다는 이유로 ‘사실 오인’을 다투는 ‘채증법칙위배’의 상고 이유는 더 말할 것도 없고, 쟁점이 많은 법률 문제와 관련된 상고 이유조차 제대로 된 기각 이유를 설시하지 않고 ‘상고 이유 없다’는 단 1줄로 된 ‘부동문자’로 기각해 버리면 도대체 어디에서 하소연을 해야 하는 것인지 답답함을 넘어 사법부에 대한 불신마저 듭니다.
재판은 당사자들로부터 승복을 받아야만 제대로 된 재판이 될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불량 판사’는 ‘승포판’에서만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소위 말하는 ‘엘리트 판사 집단’에서도 언제든지 발견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 주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공자 “국방-경제보다 신뢰가 먼저”
공자가 제자 子貢이 정치에 대하여 묻자 “국방(足兵), 경제(足食)보다 백성들의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고 하시면서 백성들의 신뢰를 잃으면 나라가 존립할 수 없다(民無信不立)”고 대답하신 말씀이 떠오릅니다(論語 顔淵 편).
정치뿐만 아니라 사법부도 국민들의 신뢰를 바탕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가슴깊이 새겨 당사자들로부터 재판 결과에 대한 승복을 받아내기 위하여 엄청난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법무법인 대륙아주 문규상 변호사: 1978년 서울대 법대 졸업. 1987년 검사로 임용돼 ‘특수통’으로서 전두환 전 대통령의 비자금 수사와 ‘강호순 연쇄 살인사건’ 등을 맡아 성과를 냈다. 2006~2008년 국가청렴위원회(현 국민권익위원회)의 초대 심사본부장, 2009~2014년 대우조선해양 부사장, 2018년 9월 한국해양진흥공사 초대 투자 심의위원 위촉. 2013년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원 석사과정 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