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20-621합본호 옥송이⁄ 2018.12.21 11:07:19
보험업계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어려운 약관 내용과 보험 설계사의 수수료 등을 과감히 벗어던진 ‘미니 보험’이 그 주인공이다. 그동안 소액보험은 중소형 보험사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하지만 경기 침체와 ‘짠테크족’의 증가로 인해 ‘알짜’ 보험 상품을 찾는 고객의 수요가 늘어났고, 대형 보험사들도 보험료를 크게 낮춘 미니 보험을 선보이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미니 보험의 종류가 주로 ‘암보험’에 집중돼 있어 다양화와 차별화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커피 한 잔 값이면 보험 들 수 있다고?
'짠테크'가 보험업계를 바꾸고 있다. 짠돌이와 재테크의 합성어인 짠테크는 소액을 모아 목돈을 만들고자 하는 젊은 층에서 특히 인기다. 보험업계가 이를 기회로 활용하려 나섰다. 이미 포화상태에 이른 기존 시장에서 벗어나, 고객층 확대 방법으로 미니 보험 출시에 뛰어들고 있는 것.
미니 보험은 소액의 보험료를 납부하는 간단보험 혹은 소액단기보험을 뜻한다. 보험 기간이 1~2년으로 기존 보험 상품들에 비해 짧고, 주로 비대면 채널인 인터넷을 매개로 상품이 판매되는 것이 특징이다. 그로 인해 ‘커피 한 잔 값도 안 되는’ 적은 비용으로 보험 상품을 가입하고, 보장받을 수 있다는 걸 업체들은 앞세운다.
기존 보험 상품의 경우, 어려운 약관 내용으로 인해 고객에게 약관을 설명해주는 보험설계사의 존재가 필수적이었다. 이 때문에 보험 설계사에 대한 수수료, 사무실 비용 등의 부대비가 고객의 보험료에 포함돼 청구됐다.
하지만 미니 보험은 인터넷으로 판매되기 때문에 이 같은 수수료가 생략되고, 소비자가 직접 원하는 보장 범위와 시기를 선택할 수 있다. 필요에 따라 가입하고 적은 보험료로 최대의 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 업체가 내세우는 장점이다.
“최소 월 180원부터” … 저렴한 미니 보험 각축전
현재 삼성생명, 처브라이프생명, DB손해보험, 라이나생명은 월 1만 원 이하 보험료로 가입할 수 있는 미니 암보험을 판매하고 있다. 기존 암보험처럼 모든 암에 대한 보험의 보장이 아니라, 필요한 특정 암 보험만 골라서 가입할 수 있는 상품이다.
보험업계의 한 관계자는 “미니 암보험은 저렴하게 필요한 것만 보장받고 싶은 고객들이 가입한다”며 “예를 들면 위암이 가족력인 탓에 위암이 걱정되는 고객이라면 위암만 골라서 보험에 가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업계 1위 보험사인 삼성생명도 지난 9월 미니 암보험 출시 대열에 합류했다. 해당 상품은 3년 동안 암 진단에 한해서 보장하는데, 1종과 2종으로 나뉜다. 1종은 전립선암, 유방암, 자궁암을 포함한 주요 암을 보장한다. 30세(89년생) 남성 기준 3년간 매년 7905원이다. 최대 500만 원까지 보장되며, 월 납입금으로 치면 약 658원이다.
2종은 발병률이 높은 위암·폐암·간암 3가지 암에 대해 보장한다. 보장 범위가 좁은 대신 보장금이 최대 1000만 원에 달한다. 30세 남성 기준 연간 2040원으로 월 170원이다. 1·2종 모두 연간 가격으로 계산해도 커피 한두 잔 가격밖에 되지 않는다.
미국계 생명보험사인 처브라이프생명은 올해 1월 ‘무배당 유방암만 생각하는 보험’을 출시했다. 유방암 발병을 걱정하는 여성들을 위한 상품으로, 암 진단금에 500만 원, 절제 수술비 500만 원, 합계 1000만 원이 지급된다. 20세부터 최대 60세까지 가입할 수 있는 5년 납입 상품으로, 월 환산 가격은 180원이다. 연간 보험료로 따지면 2090원이다.
DB손해보험 역시 지난달 5일 미니 암보험 상품을 출시했다. 위암플랜의 경우 30세 남자 기준 월 1500원, 여자 월 2800원으로 10년 간 보장받을 수 있다. 또한 기존 타사의 미니 보험과는 달리 100세까지 자동 갱신을 통해 보장 받을 수 있는 것이 차별점이라고 업체 측은 밝혔다.
생활밀착형 실속 상품들도 출시
미니 암보험 외에 저렴한 가격으로 생활에서 필요한 미니 보험을 선보이는 사례도 있다.
현대해상은 2300원으로 가입할 수 있는 모바일 스키 보험을 출시했다. 스키철이 다가오면서 해당 상품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에이스손해보험은 대표적인 이웃 간의 갈등 요소인 ‘층간소음’에 주목했다. 분쟁으로 인한 피해를 보상해주는 상품으로, 아파트 등 공동주택에 거주하는 18세 이상이면 누구나 가입할 수 있다. 일시납으로 780원을 납입하면 1회에 한해 50만 원을 보상받는다.
한화생명은 지난 4월 ‘영플러스 재해보험’을 선보였다. 재해로 인한 사망, 재해 장해, 재해소득 보장이 주된 내용이다. 1종(순수보장형)과 2종(스포츠자금형)으로 구성됐다. 30세 여성 기준, 1종에 10년간 가입할 경우 월 3800원의 보험료가 책정된다.
한화생명 관계자는 “미니 보험은 적은 보험료로 필요한 곳만 보장받는 실속형 생활밀착 상품”이라며 “당시 휴가철을 앞두고 레저를 즐기는 젊은 층의 재해 노출이 높을 것으로 판단하고 ‘틈새’를 노린 상품으로 출시했다”고 전했다.
‘암보험’에 치우친 韓 미니 보험의 숙제는 다양화·차별화
이처럼 올해 많은 보험사들이 미니 보험 상품을 선보였지만, 아직 국내 미니 보험의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 많다. 생활 밀착형 상품들로 중무장한 해외의 미니 보험들과 달리 국내의 경우 ‘미니 암보험’에 치우쳤기 때문이다. 2030세대를 고객으로 흡수하기 위해서는 저렴한 가격뿐만 아니라, 다양한 생활밀착형 미니 보험으로 차별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국의 경우 소액으로 보장받는 이색 미니 보험이 많다. 대표적인 미니 보험은 ‘반송 보험’이다. 온라인에서 물건을 살 때, 반품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될 경우 가입한다. 실제로 물건을 반품하게 되는 경우, 운송비를 포함한 모든 비용을 보험사에서 지급한다. 반송보험의 최저가 보험료는 1위안으로, 원화 200원 정도다.
중국의 미니 보험을 주도하는 업체는 ‘종안보험(众安保险)’이다. 종안보험은 알리바바와 텐센트, 핑안보험(平安保险)이 투자해 설립한 중국 최초의 인터넷 전용 보험사다. 종안보험은 비대면 보험사이기 때문에 한국의 카카오톡과 같은 메신저 ‘웨이신(微信)’과 인터넷을 통해 상담하고 상품에 가입할 수 있다.
종안보험에는 일상에서 겪었을 법한 어려움에서 착안한 미니 보험들이 많다. ‘보이스피싱 사기 자금손실 보험’은 전화나 문자를 매개로 한 피싱 사기가 늘어난 점에 주목했다. 부모 세대는 물론 학생 등 다양한 연령층에서 피해가 늘어나자, 이로 인한 금전 피해를 줄이기 위해 출시됐다.
이 외에도 ‘드론보험’, 대리운전을 이용할 경우 뜻밖의 사고에 대처할 수 있도록 보장 받는 ‘대리운전 보험’, 망가진 타이어를 사진 찍어 보내면 새 타이어를 구매하도록 상품권으로 보상받는 ‘타이어보험’, 한화 약 1800원 비용부터 시작하는 ‘개인 법률비용 보상 보험’ 등이 있다.
일본의 미니 보험도 생활과 밀접하다. ‘치한보험’은 치한으로 오인 받거나, 치한으로부터 공격을 당했을 때 변호사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 ‘무덤보험’은 천재지변이나 사고로 조상의 무덤이나 비석이 손상될 때 보험사에 수리비를 청구할 수 있는 보험이다. 지진이 잦은 탓에 무덤 및 비석 피해가 많은 점에 주목했다.
이 외에도 공연 티켓이나 여행 비용을 보상해주는 보험 등이 실생활에 파고들면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국내 보험업계 관계자는 “사실 미니 보험은 소액인 탓에 수익 창출에 도움이 되진 않지만 고객들이 부담 없이 가입할 수 있어 신규 고객을 늘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아직 국내 미니 보험의 종류가 다양하지는 않지만 유망한 분야이므로 조만간 성장해나갈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