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20-621합본호 정의식⁄ 2018.12.21 15:55:49
K팝과 함께 K푸드의 인기가 날로 높아지는 미국 시장에 국내 식품‧유통업계를 대표하는 두 기업이 도전장을 내놨다. CJ제일제당은 약 2조 원을 들여 미국 냉동식품업체 쉬완스 컴퍼니를 인수했고, 이마트도 약 3000억 원을 들여 프리미엄 식품마켓을 운영하는 굿푸드 홀딩스를 인수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식품 시장으로 알려진 미국에서 K푸드의 입지를 넓히려는 이재현 CJ 회장과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의 도전은 성공을 거둘 수 있을까?
CJ, 쉬완스 인수로 미국 시장 교두보 확보
지난 13일(현지시각) 미국 로스엔젤레스(LA)에 CJ그룹 주요 경영진이 모여 ‘글로벌 경영전략회의’를 열었다.
이재현 CJ 회장과 박근희 부회장, 김홍기 CJ주식회사 대표, 신현재 CJ제일제당 대표, 박근태 CJ대한통운 대표, 허민회 CJ ENM 대표 등 그룹 주요 경영진 50여 명이 참석한 이날 회의에서 이 회장은 “앞으로 1~2년의 글로벌 성과에 그룹의 미래가 달려있다”며 글로벌 영토 확장과 역량 확보를 주문했다.
CJ그룹이 LA에서 전략회의를 연 것은 최근 CJ그룹이 과감하게 미국 투자를 늘리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CJ그룹은 올해 들어 미국에서 일련의 기업 인수합병(M&A)을 추진하며 차근차근 미국 시장 공략을 준비해왔다.
지난 8월 CJ대한통운이 미국의 식품 및 소비재 물류회사인 DSC로지스틱스의 지분 90%를 약 2314억 원에 인수한 데 이어, CJ제일제당은 미국의 냉동식품 제조업체인 카히키(Kahiki Foods) 사를 인수했다.
결정타는 쉬완스 인수였다. CJ제일제당은 지난 11월 미국 현지 특수목적법인인 자회사 CJ 푸드(CJ Foods DE Corp.)를 통해 미국 식품시장 2위 업체인 쉬완스 컴퍼니(Schwan's Company)를 인수하는 데 성공했다.
CJ는 쉬완스의 주식 99.98%에 해당하는 603만 6385주를 인수하기 위해 약 2조 881억 원을 투입했는데, 이는 CJ그룹의 M&A 역사상 최대 규모다. 이전까지는 지난 2011년 인수한 대한통운이 인수가액 1조 9800억 원으로 가장 큰 규모였다.
무려 2조 원이 넘는 투자를 강행한 것은 이 회사가 지난 1952년 설립된 이래 미국 전역에 냉동식품 제조 인프라와 영업 네트워크를 확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쉬완스는 ‘레드 바론’, ‘토니스’, ‘에드워즈’, ‘파고다’ 등 다양한 브랜드와 미국 내 생산공장 17개, 물류센터 10개를 보유하고 있으며, 5조 원 규모의 냉동피자 시장에서 네슬레에 이은 2위를 차지하고 있다. 파이와 아시안 애피타이저 시장에서는 1위다. 올해 매출액은 약 2조 3000억 원이며, 영업이익은 2460억 원 정도다.
CJ제일제당은 쉬완스 인수를 통해 그간 국내외에서 높은 인기를 누리던 ‘비비고’ 브랜드의 북미 진출을 적극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만두를 중심으로 한 간편식 브랜드인 비비고는 그동안 코스트코 등 미국내 일부 대형 유통채널을 통해서만 유통됐으나, 이번에 쉬완스 인수를 통해 확보한 물류‧유통‧영업망을 활용하게 되면 유통 규모가 한층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CJ제일제당은 “기존 만두·면 중심의 품목을 피자·파이·애피타이저 등 현지에서 많이 소비되는 카테고리로 확대하면서 한식을 접목한 다양한 신제품 개발도 가능해질 것”이라며 “한식의 맛으로 차별화한 아시안 푸드로 식품사업 포트폴리오가 확장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식문화가 유사한 인접국가인 캐나다, 멕시코 등으로도 K푸드가 확산될 것으로 예상했다.
이마트, PK마켓 LA 1호점 내년에 오픈
가정간편식 분야에서 비비고와 경쟁 중인 이마트 ‘피코크(Peacock)’도 PK(피코크)마켓을 통해 미국 상륙을 준비 중이다.
PK마켓은 현재 스타필드 등의 이마트 대형매장에서 운영 중인 프리미엄 ‘그로서란트(Grocerant)’ 매장이다. 그로서란트란 그로서리(Grocery: 식재료)와 레스토랑(Restaurant: 음식점)이 합쳐진 신조어로 지난해 국내 유통업계에 도입된 후 선풍적 인기를 모으고 있다. PK마켓은 이마트의 프리미엄 외식 체인 ‘피코크 키친’과 가정간편식 브랜드 ‘피코크’ 및 프리미엄 식재료 매장 등이 결합됐다.
지난 3월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지역에도 이마트가 진출했지만, 규제 없이 무한경쟁이 펼쳐지는 미국 등 선진국 시장에 역점을 두려고 한다”며 “미국 서부 지역을 중심으로 PK마켓 현지 오픈을 준비 중이다. 한식을 비롯해 중국, 일본, 태국, 인도네시아 음식 등 현지인들이 좋아할 만한 아시아 식품 콘텐츠로 승부를 걸어보겠다”는 포부를 밝힌 바 있다.
이때 정 부회장은 PK마켓(가칭)의 미국 현지 오픈을 내년 5월로 예상했고, 지난 8월에는 이마트가 미국 LA에 위치한 복합상업시설과 임대차 계약을 체결했다. 이후 지난 7일 이마트가 미국 서부지역을 거점으로 운영 중인 식품유통기업 ‘굿푸드 홀딩스(Good Food Holdings)’를 인수한다고 공시하면서 PK마켓의 미국 진출은 초읽기 모드에 들어갔다.
이마트는 미국 자회사 ‘피케이 리테일 홀딩스(PK Retail Holdings Inc.)’가 출자한 주식 100%를 주주배정 유상증자 방식으로 약 3240억 원에 취득한 후, 이 회사를 통해 굿푸드 홀딩스의 지분 100%를 3073억 9500만 원에 인수하기로 했는데, 이는 이마트 최초의 해외 기업 인수 사례로 기록될 예정이다.
굿푸드 홀딩스는 식재료를 주로 판매하는 프리미엄 스토어 ‘브리스톨 팜스’와 ‘메트로폴리탄 마켓’, 건강‧뷰티 상품을 판매하는 ‘레이지 에이커스’ 등 3개 유통 브랜드를 보유한 지주회사로 LA와 시애틀, 샌디에이고 등 미국 서부 지역에서 총 24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연 매출은 6700억 원 규모이며, 임직원 수는 3100명 내외다.
이마트는 인수 후에도 현지 경영진을 그대로 유지, 운영할 방침을 밝혔는데, 이는 미국의 대도시 상권에서 20~40년간 실제로 매장을 운영해온 경험을 활용해 PK마켓의 미국 진출을 성공시키기 위함으로 분석된다. 이마트는 내년 5월 오픈할 PK마켓 LA 1호점이 현지에서 성과를 거두면 잇따라 2호점, 3호점을 오픈한다는 계획이다.
전문가들 “CJ는 재무부담, 이마트는 최초 도전 장벽 넘어야”
비슷한 시기에 미국 시장 진출을 선언한 두 식품‧유통기업의 성공 가능성을 두고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다양한 전망이 엇갈린다.
우선 CJ는 기존의 유통 체인을 최대한 활용해 단기간에 시장 점유율을 올리는 전략을 선택했다. 식품 제조업체다 보니 마트‧할인점 등의 식품 코너에 최대한 많이 배치돼 고객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쉬완스를 인수한 것도 현지 생산물량은 물론 유통채널을 많이 확보하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이를 통해 CJ는 비비고 브랜드의 미국 시장 점유율을 늘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김혜미 바로투자증권 연구원은 “쉬완스를 통해 당장 가공식품의 매출 규모를 약 70% 늘릴 수 있을 뿐 아니라 쉬완스가 보유한 인프라를 통해 비비고 등 CJ제일제당 브랜드를 미주 시장에 빠르게 침투시킬 것으로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다만 지나친 자금부담으로 CJ제일제당의 재무구조가 악화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2조 원이 넘는 인수대금 중 1조 5000억 원은 CJ헬스케어 매각 대금으로 조달하고, 남은 약 5500억 원은 쉬완스 자체 차입으로 조달한다는 계획이지만, 차입금 증가로 신용평가사들의 신용등급이 하향되거나 이자 비용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것.
반면, 이마트의 경우 유통 체인 자체를 인수하는 전략을 선택했다. 아시아인과 부유한 백인 중산층이 많이 거주하는 미국 서부 지역에 직접 매장을 열고 프리미엄 식품 및 매장으로 자리잡겠다는 전략이다. 단시일 내에 시장 점유율을 늘리기는 어렵지만, 특화된 매장으로 연착륙할 가능성은 충분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남성현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마트의 이번 인수는 첫째 미국 시장 진출 본격화, 둘째로 현지 시장에서 소싱 및 물류 그리고 운영노하우를 획득하려는 목적으로 해석된다”며 “미국 할인점 시장은 소비경기회복과 맞물리면서 약 5~7% 수준의 성장이 이뤄지고 있어서 국내 시장보다 영업 환경이 우호적이며, 굿푸드 홀딩스 영업실적이 흑자를 기록하고 있어서 나쁘지 않은 선택으로 평가된다”고 분석했다.
반면, ‘최초의 미국 시장 도전’이라는 점에서 난관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중국 시장에서 철수한 경험도 부담 요인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이마트의 현지 소싱 및 운영 노하우가 아직은 부족하고, 과거 중국 시장 실패 사례처럼 유통망 확대를 위한 공격적 투자는 위험성이 높다”며 “당분간은 공격적 확장 전략보다는 현지 시장의 분위기와 특성을 연구‧분석하는 기간으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