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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이재현 CJ 회장의 이유있는 속도전

잃어버린 4년 벼랑 끝 전술로 되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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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620-621합본호 도기천 기자⁄ 2018.12.31 09:45:09

이재현 CJ 회장이 2017년 12월 서울대학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장모 고 김만조 박사 빈소로 들어서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CNB저널 = 도기천 기자) 지난 2016년 광복절 특사로 풀려난 뒤 조용한 경영행보를 펼쳐온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6년 만에 미국 현지에서 계열사 CEO들을 모아놓고 글로벌 전략회의를 열어 주목된다. 이번 회의는 그룹 인수합병 사상 최대 규모로 미국 식품회사를 인수한 직후에 열렸다는 점에서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이 회장은 지난 수년간 삼성-CJ가(家) 집안분쟁, 박근혜 정부의 탄압, 병마와의 사투, 수감 생활, 그리고 경영복귀와 사업재편 등 파란만장한 일들을 겪었다. 그는 새해에 또 어떤 드라마를 만들어갈까.

“살고 싶습니다. 살아서 CJ를 세계적인 글로벌 생활 문화 기업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이것이 선대 회장의 유지를 받드는 길이고, 국가와 사회에 헌신하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2014년 8월 항소심 최후진술)

병마와 싸우며 ‘살고 싶다’던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마침내 지난 13일(현지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그룹 주요 경영진과 함께 ‘글로벌 경영전략회의’를 열었다. 해외 사업장에서 계열사 CEO들이 대거 참여한 가운데 회의를 연 것은 2012년 베트남과 중국에 이어 6년 만이다. 이날 회의에는 박근희 부회장, 김홍기 CJ(주) 대표, 신현재 CJ제일제당 대표, 박근태 CJ대한통운 대표, 허민회 CJ ENM 대표 등 50여명이 참석했다.

CJ그룹에 따르면 이 회장은 “CJ의 궁극적 지향점은 글로벌 넘버 원 생활문화기업”이라며 “앞으로 1∼2년의 글로벌 성과에 그룹의 미래가 달려있다는 절박함으로 임해달라”고 당부했다.

 

서울 중구 소월로 CJ그룹 사옥. 사진 = CNB저널

특히 그는 “2019년 더는 물러설 수 없는 중요한 시기로, 절박함을 갖고 특단의 사업 구조 혁신과 실행 전략을 추진하라”고 주문했다. 일부 미진한 사업을 두고서는 “필사의 각오로 분발해 반드시 이른 시일 내 글로벌 초격차 역량을 확보해야 한다”고 다그치기도 했다. 위기와 절박함을 호소하며 사실상 배수진을 친 것이다.

투자·구조조정 ‘투트랙’ 속도

재계에서는 이번 회의를 기점으로 CJ의 ‘글로벌 시즌2’가 본격화된 것으로 보고 있다.

CJ는 최근 물류 기업 DSC로지스틱스를 인수하고, 미국 냉동식품회사 슈완스를 그룹 인수합병 사상 최대 규모인 2조원에 인수하는 등 미국 사업 확대를 본격화하고 있다.

CJ제일제당은 LA와 뉴저지 등에 5개의 생산기지를 구축하고, ‘비비고 만두’에 이어 다양한 가정간편식 제품을 생산하며 영향력을 넓히는 중이다. 특히 2018년 초 냉동식품업체 카히키를 인수한데 이어 슈완스를 인수, 냉동식품 생산기지를 22곳으로 늘리는 등 현지 투자에 속도를 내고 있다.

CJ CGV는 리갈 시네마 등 북미 지역 극장 체인과 제휴를 맺고 ‘스크린X’·‘4DX’ 등 자체개발한 기술력을 기반으로 특별 상영관 진출을 늘리고 있다.

CJ ENM은 최근 할리우드 유력 스튜디오인 유니버설·MGM과 함께 현지 영화 자체제작에도 돌입했다. e스포츠 중계와 예능·콘텐츠 제작·유통을 위한 1천평 규모의 e스포츠 전용 스튜디오도 열었다.

미국에 이어 불모지인 동유럽시장에도 눈독을 들이고 있다. 현지 최대 홈쇼핑 업체 스튜디오모데르나 인수를 검토 중인데, 인수에 성공하면 첫 거점을 마련하게 되는 셈이다.

앞서 이 회장은 2017년 5월 경영 복귀 후 굵직굵직한 사업재편을 성사시켰다. CJ제일제당은 2017년 11월 기존 바이오, 생물자원, 식품, 소재 등 4개 사업부문을 바이오와 식품으로 통폐합했으며, 12월에는 CJ대한통운 지분을 추가로 확보해 단독 자회사 구조로 전환했다.

 

CJ대한통운은 플랜트·물류건설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CJ건설과 합병했으며, CJ오쇼핑은 CJ ENM에 합쳐졌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순환출자 구조도 ‘이재현→CJ→CJ제일제당→CJ대한통운’에서 ‘이재현→CJ→CJ ENM’으로 단순해졌다.

인고의 세월…기사회생한 이 회장

이처럼 이 회장이 경영복귀 후 짧은 기간에 ‘투자’와 ‘구조조정’이라는 투트랙 전략을 구사하며 그룹 혁신에 속도를 내는 이유는 뭘까?

이를 두고 재계에서는 박근혜 정부 시절 혹독한 시련을 겪으며 4년 가까이 경영 시계가 멈춰 선데 대한 반작용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이 회장은 2013년 7월 배임·횡령 등 혐의로 구속 수감된 이후, 자신은 물론 CJ그룹까지 인고(忍苦)의 세월을 보냈다.

구속 직후 요독증이 심해져 부인 김희재씨의 신장을 이식받는 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에도 거부 반응과 감염 등으로 회복이 늦어져 3년 넘게 서울대병원을 오가며 재판을 받았다. 또 손과 발의 근육이 위축되는 삼성가(家)의 희귀유전병 ‘샤르코-마리-투스’(CMT)의 증세가 악화돼 걸을 때 특수신발 등 보조기구를 이용해야 했다. 2016년 8월 광복절 특사로 풀려난 뒤에도 건강문제로 1년 가까이 회사로 돌아오지 못했다.

이 회장이 재판을 받고 있는 동안 부친인 고(故) 이맹희 명예회장과 숙부인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유산상속을 두고 송사를 벌였다. 두 사람은 용인 선영에서 지내온 선대 회장의 제사를 따로 모실 정도로 대립했다.

이 명예회장은 생전에 “나 때문에 아들(이재현)이 더 고초를 겪는 것 같다”며 자책했다고 한다. 그는 2014년 2월 소를 취하하면서 “죽기 전 5분 만이라도 건희를 만나고 싶다”고 했지만 끝내 소망을 이루지 못한 채 이듬해 세상을 떠났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CJ그룹은 박근혜 정부의 타깃이 됐다.

2012년 대선 때 CJ계열의 방송·영화들이 당시 후보였던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불리하게, 상대후보(문재인)에게 유리하게 작용한 점이 화근이 된 것.

 

손경식 CJ 회장이 지난 1월  박근혜 전 대통령 국정농단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손 회장은 이날 법정에서 “청와대 조원동 경제수석비서관으로부터 이미경 부회장의 경영일선 후퇴를 요구받았다”고 폭로했다. 사진 = 연합뉴스

당시 CJ E&M(CJ ENM의 전신)의 개그프로 ‘SNL 코리아’는 수차례 박 전 대통령을 희화화했으며, CJ E&M이 제작·보급한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생각나게 하는 영화’라는 세간의 평가를 받았다. 2013년 12월 개봉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소재로 한 영화 ‘변호인’ 또한 CJ 가 제작에 참여했다는 점에서 대통령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박 전 대통령은 2014년 3월 청와대 영빈관 열린 규제개혁장관회의에서 노대래 당시 공정위원장에게 국내 영화산업의 독과점 문제에 대해 바로 잡으라고 특별지시 했는데, 이는 국내상영관 수 1위인 CJ CGV와 영화 제작·배급사인 CJ E&M을 겨냥한 조치였다.

또 박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은 공정거래위원회 측에 CJ엔터테인먼트(CJ E&M의 전신)를 검찰에 고발해 달라고 압력을 행사했다.

이재현 회장의 외삼촌인 손경식(79) CJ 회장과 누나인 이미경 부회장도 큰 고초를 겪었다. 이들은 대통령과 재계 인사들 간의 간담회, 대통령 해외순방 경제사절단 등에서 배제됐으며, 심지어 퇴진 압력까지 받았다.

올해 초 국정농단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손 회장은 “2013년 7월 조원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으로부터 이미경 부회장의 경영일선 후퇴를 요구받았다”고 폭로했다.

이 부회장은 공정위 조사, 국세청 세무조사 등 CJ에 대한 압박이 계속되자 2014년 9월 경영에서 물러나 미국으로 출국했으며, 손 회장은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손 회장에 따르면 당시 이 부회장은 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보행조차 어려울 정도로 건강이 악화됐다고 한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CJ는 수년간 그룹차원의 투자계획을 세우지 못했고, 경영은 계열사별 자율에 맡겼다. 이러다보니 중국의 사드 보복 등 중대사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글로벌 영토 확장 어디까지?

이 회장이 경영복귀 후 그룹 쇄신에 속도를 내고 있는 뿌리에는 이 같은 ‘잃어버린 4년’이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CJ 사정에 밝은 한 재계 관계자는 CNB에 “이 회장은 1995년 ‘문화 CJ’를 세계에 선포하면서 한류 열풍을 주도했고, 중국 시장에서 엄청난 성과를 거뒀다”며 “한창 꽃을 피우던 시기에 건강문제와 재판, 정권의 압력 등으로 긴 공백기를 가진 만큼 지금은 더 마음이 급해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지난 2010년 “2020년까지 그룹 매출 100조원, 영업이익 10조원, 글로벌 매출 비중 70%를 넘어서는 ‘그레이트 CJ’를 완성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그가 2016년 8월 사면 직후 “치료에 전념해 빠른 시일 내에 건강을 회복하고 사업으로 국가와 사회에 기여하는 것을 인생의 마지막 목표로 삼겠다”며 그룹 재건의 의지를 강하게 나타낸 것은 약속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데 대한 절박함으로 읽힌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지나친 ‘과속(過速)’에 대한 우려도 존재한다. 미국 식품유통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글로벌 1위 유통기업인 아마존이 물류시스템을 하루 다르게 진화시키는 상황에서 후발주자인 CJ의 고전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다가올 새해는 이 회장의 절박함에서 탄생한 열매가 어떤 결실을 맺을지 결정되는 한해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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