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이 맞닥뜨린 다양한 사회 문제의 해법을 찾기 위한 글로벌 정‧재계 엘리트들의 토론장인 다보스포럼이 올해도 스위스의 작은 휴양도시 다보스를 들썩이게 했다. 국내 여러 재계 인사들이 현장을 찾아 세계화의 실체를 진단하고 문제점과 해법을 고민했다. 가장 두드러진 활동을 벌인 재계 리더는 최태원 SK 회장과 황창규 KT 회장이었으며, 김동관 한화큐셀 전무, 김동원 한화생명 상무, 허세홍 GS칼텍스 사장 등 오너가 3‧4세 젊은 경영인들도 다보스에서 새로운 사업기회를 모색했다.
글로벌 리더 토론장… 트럼프 불참 여파로 열기↓
1월 22일부터 25일까지 4일간 스위스 다보스에서 진행된 제49회 세계경제포럼(WEF)이 예년보다 저조한 글로벌 리더의 참여 속에 막을 내렸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를 비롯한 64개국 정상과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 등 40여 개 국제기구 대표,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등 재계 거물급 인사 3000여 명이 참석했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 등 서방 7개국(G7) 정상들이 대거 불참한 공백을 메꾸지는 못했다는 평이다.
개막 기조연설에 나선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은 세금 감면과 규제 개혁을 통해 브라질을 기업하기 좋은 나라로 만들겠다는 세일즈 외교에 주력해 포럼의 주제인 ‘세계화 4.0’과는 결이 다른 행보를 보였고, 폐막일인 25일에는 주요 정상의 공식 폐막 연설도 없이 일정이 마무리됐다. 지난해 트럼프 대통령이 폐막 연설자로 나섰던 것과 대비되는 상황이었다.
트럼프 대통령과 스티브 므누신 재무장관 등 미국 대표단이 불참하면서 포럼의 주된 흐름은 ‘미국 성토’로 이어졌다. 미·중 무역갈등의 당사자인 왕치산 중국 국가부주석이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의 무역 정책을 비판했고, 독일과 유럽연합(EU) 등도 이에 동조했다.
특기할만한 건 이전부터 ‘부자들의 사교장’이라는 비판을 받았던 다보스포럼의 엘리트주의가 오히려 강화되는 추세를 보였다는 점이다. AFP통신은 자가용 전세 비행기 서비스 업체의 데이터를 인용해 다보스포럼 기간에 참석자들의 자가용 비행기 이용이 작년보다 더 늘었다며, 기후 문제의 중요성을 강조해온 포럼의 지향과 반대되는 행태라고 비판했다.
실제로 많은 참석자들은 토론 주제보다는 토론 주최자나 참여자들의 면면에 더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최저 6만 달러(6700만 원)에서 최고 60만 달러(6억 7000만 원)에 이르기까지 소정의 참가비만 내면 쟁쟁한 글로벌 명사들을 손쉽게 만날 수 있는 국제행사라는 다보스포럼의 특징 때문이다.
최태원 SK 회장, ‘사회적 가치’에 방점
오랫동안 다보스포럼에서 ‘사회적 가치’의 중요성을 설파해온 최태원 SK 회장은 올해도 이와 관련한 열띤 행보를 보였다.
최 회장은 24일(현지시간) 스위스 다보스 벨베데르 호텔에서 보스턴 컨설팅 그룹과 ‘기업 가치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주제로 한 세션을 개최하고 패널의 일원으로 참석해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기업의 역할을 토론했다.
이는 다보스포럼에서 SK가 직접 개최한 최초의 세션으로 기록됐다. 토론 패널로는 최 회장과 한스 파울 뷔르크너 보스턴 컨설팅 그룹 회장, 조 캐저 지멘스 회장, 조지 세라핌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 교수, 캐빈 루 파트너스 그룹 아시아 대표 등이 나섰고, 약 100여 명의 기업인‧투자전문가가 토론에 참석했다.
지난 2013년 다보스포럼에서 ‘임팩트 투자’ 세션의 패널로 초청받아 사회적 가치 추구에 관한 방법론을 제안했던 최 회장은 “그때 사회적 가치 추구 개념을 소개한 뒤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면서 사회적 가치 측정, 더블 보텀 라인(DBL) 적용, 사회성과 인센티브(SPC) 도입 등의 사례를 제시했다.
그는 “사회적 기업이 창출한 ‘착한 가치’를 측정하고 그에 따라 인센티브를 지원하는 SPC를 4년간 시행하고 있는데 사회적 기업들이 지원받은 금액보다 더 많은 재무성과를 만들어냈다”면서 “측정과 보상은 사회적 기업이 목표를 더 정확히 인식하게 하고 몰입도를 높여주는 효과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최 회장은 주유소를 ‘공유 인프라’로 개방한 사례를 소개하며 “기업의 유무형 자산을 이해 관계자와 공유해 부가가치를 키우는 시도가 많아져야 한다. 글로벌 기업들이 사회적 가치 확산에 동참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황창규 KT 회장 “5G는 대한민국이 주도”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다보스포럼을 찾은 황창규 KT 회장은 한국 기업인으로는 최초로 WEF 클라우스 슈바프 회장으로부터 다보스포럼 IBC(국제비즈니스위원회) 정기모임에 공식 초청받아 관심을 모았다.
22일 오후에 열린 다보스포럼 IBC 정기모임에서 황 회장은 100여 명이 넘는 글로벌 기업 CEO들에게 5G의 강점과 특성을 적극 설명해 ‘미스터 5G’라는 별명을 얻었다.
먼저, 황 회장은 “KT가 2018년 2월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세계 최초로 5G 서비스를 선보인 데 이어 2018년 12월 5G 주파수를 발사하고 올해 1분기 본격적인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며 “미국이나 중국이 아닌 대한민국이 더 나은 기술과 서비스, 인프라를 갖추고 5G를 주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5G는 빠른 속도와 함께 초연결성, 초저지연성을 가져 인류의 복지증진에 기여할 것”이라며 “네트워크가 아닌 지능형 플랫폼으로서 사회문제 해결의 열쇠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후로도 황 회장은 애플의 CEO 팀 쿡,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라파엘 리프 총장, 안토니오 구테헤스 유엔 사무총장,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구(IMF) 총재, 마츠 그란리드 세계이동통신사업자협회(GSMA) 사무총장 등 다양한 글로벌 리더를 만나며 5G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응우옌 쑤언 푹 베트남 총리 등 국가정상들도 만났다. 황 회장은 아베 일본 총리와 만나 “2020 도쿄올림픽에서 NTT도코모와 긴밀히 협력해 성공적인 올림픽이 되도록 협조하겠다”고 말했으며, 응우옌 쑤언 푹 베트남 총리에게는 “베트남이 동남아에서 가장 먼저 5G를 상용화하는 국가가 되는데 협력하겠다”고 전했다.
이외에 황 회장은 지난해 다보스포럼에서 제안했던 ICT에 기반한 ‘글로벌 감염병 확산방지 플랫폼(GEPP, Global Epidemics Prevention Platform)’의 활동 성과를 공유하는 한편, 감염병 사전 차단을 위해 비행선형 드론 ‘스카이십’을 백신 운송에 활용하는 방안을 발표해 주목을 받았다.
한화 동관‧동원 형제, 글로벌 인맥 쌓기 ‘집중’
이전부터 다보스포럼을 미래경쟁력 확보를 위한 중요한 행사로 보고 그룹 차원의 참여를 지속해오던 한화그룹은 올해도 오너가 3세 형제를 위시한 참가단을 파견했다. 이번 한화의 다보스 방문은 2010년 이후 10년째다.
올해는 김동관 한화큐셀 전무, 김동원 한화생명 상무, 김희철 한화토탈 대표, 김연철 ㈜한화 기계부문 대표, 김용현 한화자산운용 대표 등이 참가해 4일간 60여 차례의 비즈니스 미팅을 전개하며 200여 명에 달하는 글로벌 리더들을 만났다.
김승연 한화 회장의 장남으로 10년 연속 다보스포럼을 찾은 김동관 한화큐셀 전무는 필립 벨기에 국왕, 다렐 레이킹 말레이시아 통상산업부 장관, 쩐 뚜엉 아잉 베트남 산업무역부 장관 등 정계 인사들과 에너지 분야 기업인들을 만나며, 태양광 등 신재생 에너지의 확산 및 발전 방안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김승연 회장의 차남으로 올해 3번째로 다보스포럼에 참가한 김동원 한화생명 상무는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락의 CEO인 로렌스 핑크, 동남아시아 투자사 비캐피탈의 창업자 라지 갱굴리, 배 스완 진 싱가포르 경제개발청 회장 등을 만나며 해외 투자 및 디지털 혁신 전략에 대한 글로벌 추세를 파악하는데 주력했다.
한화는 글로벌 기업들의 각축장인 다보스포럼에서 브랜드 알리기에도 집중했다. 현지 사무실 등 다보스의 주요 거점 두 곳을 마련하고, 건물 외벽에 한화(HANWHA) 브랜드를 노출하고, 미팅 때마다 한식과 다과를 제공하는 등 전세계에서 모인 글로벌 리더들에게 한화 브랜드와 한국 문화를 알렸다.
재계 관계자는 “올해는 분위기가 다소 가라앉은 감이 있지만 다보스포럼이 글로벌 리더들과 인맥을 형성하고 식견을 넓힐 수 있는 흔치 않은 글로벌 이벤트라는 점은 예년과 같다”면서 “한화그룹의 동관‧동원 형제에 이어 올해는 허세홍 GS칼텍스 사장도 다보스를 찾았는데, 앞으로도 오너가 3‧4세들의 다보스포럼 참여가 이어질 것”이라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