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28호 옥송이⁄ 2019.02.20 09:14:08
지난 2016년 ‘깔창 생리대’ 논란에 이어 이듬해 ‘유해성’ 논란까지 불거지면서 한국 사회에서 생리대에 대한 관심이 급증했다. 여성에게 반드시 필요한 ‘생필품’임에도 불구하고 비싼 가격은 물론 몸에 유해하다는 분석까지 나오면서 생리대에 대한 논란은 잦아들 기색을 보이지 않고 있다. 생리대 파동이 빚어진 지도 약 1년 반이 흐른 지금 한국 생리대 시장과 여성 소비자들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짚어봤다.
생리대 파동 이후 달라진 여성 소비자들
가임기 여성들은 짧게는 20년, 길게는 40년 동안 한 달(21~38일)에 한 번씩 월경을 한다. 대표적인 월경용품은 일회용 생리대. 삽입식 생리용품인 탐폰도 있지만, 한국에서는 사용을 다소 꺼리는 분위기라 대다수의 한국 여성들은 일회용 생리대를 사용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가임기 내내 일회용 생리대를 사용한다고 가정하면, 한국 여성들은 폐경까지 총 1만 1000여 개의 일회용 생리대를 사용하게 된다. 이처럼 일회용 생리대는 한국 시장에서 절대강자로 군림해왔지만, 생리대 파동 이후 소비자들의 믿음에는 크고 작은 균열이 생겼다. 이는 최근 생리대 시장의 변화는 물론 소비자들의 이용 행태 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 먼저 생리대 파동 이후의 소비 변화에 대해 여성 소비자들과 대화를 나눠봤다.
# A씨 : 생리대 유해물질 논란으로 인한 생리대 파동은 어찌 됐건 약이 된 것 같다. 돌이켜 보면, 그 일을 계기로 내 몸에 더 관심을 가지고 사랑하게 됐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단 한 번도 ‘일회용 생리대가 생필품이기에 저렴해야 한다’ 혹은 ‘성분이 좋아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해당 논란을 겪으면서, 내 몸에게 정말 미안했다. 이후 건강한 성분의 제품을 찾기 시작했고, 현재는 대기업 제품 대신 중소기업의 ‘유기농 생리대’를 사용하고 있다.
# B씨 : 생리 컵을 사용한 지 1년이 다 돼 간다. 해외 사이트를 통해 직구했고, 현재까지의 사용 후기를 총평하자면 ‘정말 만족’이다. 생리대 때문에 피부가 아프거나 가려운 것도 사라졌고, 특히 생리통도 크게 줄었다. 하지만 생리 양이 많을 때는 밖에서 생리 컵을 비우기가 어려워서 생리대를 같이 사용하는 식으로 쓰고 있다. 생리 컵의 경우 한 번 구매하면 2년 정도 사용하는 만큼 경제적이어서 앞으로도 계속 쓸 생각이다.
# C씨 : 생리대 논란 이후 여성들이나 생리대 업체들에도 변화가 생긴 것 같다. 저 같은 경우 월경 혹은 생리대 언급에 대해 스스로 당당해졌고, 월경 용품 선택의 폭이 이전보다 다양해졌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지난해 말과 올해 초에는 처음으로 ‘그날’ 대신 ‘생리대’라고 언급하고, 월경이 ‘아프다’는 것을 강조한 생리대 광고가 등장했다. 변화의 시작이자 방증인 것 같다. 저는 얼마 전부터 면 생리대를 쓰고 있는데, 번거로울 때는 유기농 생리대와 번갈아 쓰고 있다. 앞으로는 재사용이 가능한 생리 컵을 사용할 의향도 있다.
실제로 관련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소비자들의 변화가 확연히 드러난다. 이탈리아 위생용품 전문 브랜드 ‘콜만’의 지난해 8월 설문조사에 따르면, 생리대 파동 이전 한국 소비자들의 생리대 선택 기준은 '착용감'이 1위, '흡수력'이 2위로 파악됐다. 하지만 생리대 파동 이후에는 ‘커버(유기농 순면 사용 여부)’나 ‘흡수체(화학흡수체 사용 여부)’ 등 안전한 성분을 우선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생리대 4강 체제 변화 … P&G는 한국 일회용품 생리대 시장 철수하기도
생리대 시장 구조에도 변화가 감지된다. 지난 2016년까지는 유한킴벌리(57%), 엘지유니참(21%), 깨끗한나라(9%), 한국P&G(8%) 4개 기업이 생리대 시장 점유율의 95%를 차지하고 있는 4강 구도였다.
하지만 이 4강 체제가 깨졌다. 지난 12월 생리대 ‘위스퍼’로 유명한 한국P&G가 국내 시장 진출 30년 만에 일회용 생리대 시장 철수를 결정하면서다. 한국P&G가 생리대 사업을 접는 배경은 불확실한 사업성이 가장 큰 이유로 지목되지만, 생리대 파동의 논란 역시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실적이 줄어든 것은 한국P&G뿐만이 아니다. 시장조사 업체 칸타월드패널에 따르면 지난해 1분기 기준 4개 업체의 일회용 생리대 시장 점유율은 약 73%까지 떨어졌다.
또한 지난해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17년 생리대 생산 실적은 전년 대비 12.3%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고, 생리대 생산 상위 5개 업체(4개 업체+웰크론헬스케어)의 매출은 15.6% 줄었다.
일회용 생리대 대세는 ‘유기농·친환경’
압도적인 비율을 차지했던 일회용 생리대 시장이 흔들림에 따라, 관련 업계도 소비자의 요구를 반영하고 다양한 상품 출시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키워드는 단연 ‘안전성’이다.
올리브영에 따르면 지난해 히트 상품 가운데 위생용품 부문의 순위에서 변화가 있었다. 2017년에는 일반 생리대가 순위권이었지만, 지난해에는 나트라케어·유기농본·잇츠미 등 1~3위 제품 모두 ‘유기농 생리대’ 브랜드가 차지했다. 또한 위메프의 지난해 1~7월 기준 유기농 생리대 매출 역시 전년 동기 대비 340.16%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처럼 외국·중소기업 출신의 유기농 생리대가 선방하자, 기존 업계들도 앞다퉈 유기농 생리대 제품과 브랜드를 내놓고 있다.
유한킴벌리는 지난해 1월 친환경 생리대 브랜드인 ‘라 네이처’를 본격 출시했고, 깨끗한나라는 릴리안의 타격을 덜어내기 위해 ‘메이앤준’을 내놓았다. LG유니참은 ‘쏘피유기농 100% 커버’와 친환경 원료 생리대인 ‘라베르플랑’을 출시했고, 웰크론헬스케어는 유기농 생리대 ‘그날엔 순면 유기농’을 선보였다.
면 생리대·생리컵 등 … ‘재사용 생리대’ 사용도 크게 늘어
또 다른 대세는 재사용이 가능한 월경 용품이다. 면 생리대와 생리 컵이 그 주인공들이다. 이 둘은 다시 사용할 수 있어 환경 친화적일 뿐만 아니라, 가격 면에서도 합리적이다. 면 생리대는 한 번 구매하면 2~3년, 생리 컵 역시 2년 동안 사용할 수 있다.
면 생리대 중 가장 유명한 제품은 지엔이헬스케어의 ‘한나패드’다. 한나패드는 생리대의 겉면과 흡수면까지 모두 100% 유기농 순면을 사용했으며, 무 표백·무 염색 순면으로 피부에 닿아도 안전하다.
생리 컵의 경우 국내에서 생산 및 제조된 적이 없어 정식 수입조차 불가능했지만, 지난 2017년 식약처가 생리 컵의 국내 판매를 허가했다. 이후 생리 컵의 국내 출시가 이어져 H&B스토어나 인터넷에서 더욱 손쉽게 구매할 수 있게 됐다. 또한 국내 업체 엔티온이 개발하고 태진실리콘이 만든 ‘위드컵’은 지난해 5월 허가를 받고 마트 및 H&B스토어에서 판매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최근 여성용품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성분’이다. 생리대 파동 이후 각 회사들은 홈페이지를 통해 여성용품에 사용된 성분을 공개하고 있을 정도”라며 “특히 유기농, 무첨가, 안심처방 등 성분에 신경을 쓴 제품 판매가 늘어나고 있다. 앞으로도 소비자들이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는 여성용품의 판매와 수요는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