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유명한 시민 운동가인 제레미 하이먼즈와 헨리 팀스가 작년에 펴내 아마존 베스트셀러 1위에까지 오른 ‘뉴파워 - 새로운 권력의 탄생’ 번역본이 출간됐다. 출판사(비즈니스북스)의 선전문구가 눈에 쏙 들어온다. 바로 ‘군주론의 시대는 끝났다. 이제 군중론의 시대를 맞이하라’다.
왕이어야 하는 시대 가고, 군중 이끄는 자가 승리
‘군주론’은 마키아벨리의 책이며, 이른바 마키아벨리즘(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최종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정략을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말하는 것일 게다. 마키아벨리즘이라고 하면 어두운 측면이 먼저 연상된다. 공개적으로-공정하게 경쟁해 권력 또는 목적을 달성하는 게 아니라 어두운 골방에서, 배후에서 비열한 전략을 짜서 그걸 성공시키는 걸 흔히 마키아벨리즘적 수단이라고 일컫기 때문이다. 따라서 위의 캐치 프레이즈가 말하고자 하는 건, 어두운 경쟁인 마키아벨리즘(군주론)의 시대는 끝났고, 이제 세상은 공개된 광장(SNS)에서 어떻게 더 많은 군중에게 어필할 수 있느냐에 따라 권력의 향배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캐치 프레이즈는 이렇지만, 그렇다고 이 책이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공박하는 그런 정치학적인 내용은 아니다. 이 책은, 개인이든 기업이든, 이제 SNS(소셜네트워킹 서비스)로 대표되는 ‘공개적인 소셜 광장’에서의 권력 쟁탈전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즉 보다 많은 주목을 받지 못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는 의미에서 주목할 만하다. 특히 구시대의 권력 획득 방식에 익숙한 기성세대가, 개인적 차원이든 아니면 기업적 차원이든, 어떻게 새로운 권력 획득 방식이 정착돼 가는 21세기에 뒷방 늙은이로 소멸돼가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는지, 즉 SNS 시대의 신권력 추구 방식을 어떻게 낡은 조직에 접목시켜 나갈지 구체적인 방향을 알려준다는 측면에서 주목할 만하다.
저커버그가 될 것인가, 잭 웰치가 될 것인가
이런 질문을 던져보자(아래 도표 참조). 요즘 잘나가는 인물로 페이스북의 창립 CEO 마크 저커버그가 있고, 좌충우돌하면서도 자신의 어젠다를 성취해나가는 트럼프 대통령이 있고, 역대 교황 중 인기 최고라 할 수 있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있다. 신권력 시대에 성공한 사람들이다.
반대쪽에는 잭 웰치 전 GE 회장, 베네딕토 전 교황 등이 있다. 잭 웰치 회장은 GE를 일류회사로 만들었지만 그 과정에서 하도 직원을 많이 잘라내 ‘중성자 잭(Neutron Jack)’이란 별명까지 생겼다. 여기서 중성자란, 건물은 그대로 놔둔 채 그 속의 사람만 깜쪽같이 죽이는 중성자 폭탄(neutron bomb)에서 따온 단어다. 베네딕토 전 교황도 낡고 보수적인 자세로 역대 교황 중 인기가 낮았던 축에 속한다.
도표에서 위쪽은 신권력 방식을 추구하는 집단이며, 아래쪽은 구권력 방식을 추구하는 집단이다. 구권력 방식이란 말하자면 이런 식이다. 좋은 대학을 나와 시험 경쟁을 통과해 최고 집단에 들어가 권력을 쥐는 방식이다. 한국의 경우라면 사법고시 패스라든지, 최고 명문대를 나와 메이저 언론사에 기자로 입사하는 방식 등을 꼽을 수 있겠다. 이런 구권력 모델에서는 진입장벽이 높고, 일단 그 장벽 안으로 들어간 사람을 추가 진입이 불가능하도록 장벽을 더 높이 쌓기 때문에, ‘성 안’으로 들어간 사람은 큰 권력을 누리지만, ‘성 밖’ 사람은 평생 찬 바람을 맞으며 형편없는 식사로 만족해야 하는 이른바 ‘풍찬노숙’의 인생을 보내야 한다.
신권력 방식이란 그런 진입장벽과는 아무 상관도 없다. 명문대학을 나온다고 꼭 성공하는 것도, 시험성적만 잘 받으면 인성에 문제가 있어도 승승장구의 계단을 밟아갈 수 있는 세상이 아니다. SNS에서처럼 누구나 진입이 가능하며, 위에서 찍어누르는 강압적인 방식보다는 참여자들이 알아서 참여하게 하고, 스스로 기여하게 하는 방식으로 권력을 행사하는 방식이다. 즉 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쳐다보게 하고, 그리고 움직이게 만드는 사람이 세상을 휘어잡는 신권력의 세상이다.
가치관은 달라도 권력추구 방식은 신권력적일 수 있다
도표에서 위아래가 어떤 권력 유형을 나눈다면, 오른쪽-왼쪽은 신권력적 가치관을 갖고 있으냐, 아니면 구권력적 가치관을 갖고 있느냐를 나눈다.
저자들은 신권력 시대에 가장 환영받고 가장 많은 권력을 차지-동원할 수 있는 사람들은 도표의 우상단에 들어가 있는 사람들이며, 이들을 ‘군중 지도자’라고 명명한다. 열린 SNS 시대에 가장 많은 권력을 차지하면서 새로운 운동을 일으키면서 상층 권력을 누릴 수 있는 인물들이란 의미다. 군중 지도자의 예로는 미국에서 크게 성공한 사회운동가들, 프란치스코 교황, 그리고 후보 시절의 오바마 직전 미국 대통령 등의 이름이 올라가 있다. 오바마 이름 앞에 ‘후보 시절의’라는 조건이 따라붙는 데는, 그가 선거 유세 시절에는 SNS를 활용한 첨단 선거 기법으로 군중을 대거 동원하면서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라는 엄청난 위업을 이룩해냈지만, 백악관에 입성한 뒤에는(즉 구권력 최상부에 일단 들어간 뒤에는) 신권력 추구 방식을 버리고 구권력 방식에 안주함으로써 결국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는 의미가 들어가 있다. 후보 시절의 패기만만했던 오바마는 군중 지도자였지만, 백악관 입성 뒤의 오바마 대통령은 가치관적으로는 신권력적이었지만 추구하는 권력 모델은 구권력적이었기에 우하단의 ‘응원단장’ 카테고리에 들어가 있다.
도표에서 상단에 오른 인물들을 21세기에 성공한 또는 성공할 사람들로 본다면, 특히 주목되는 것은,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회장, 그리고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다. 도표에서 알 수 있듯 저커버그 회장은 신권력 모델(페이스북)로 대성공한 사람이지만, 그의 가치관은 신권력과 구권력 사이에 정확힌 걸터앉아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가 추구하는 가치관이 구세대적인지, 신세대적인지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미국 대선에서 페이스북을 교묘하게 활용함으로써 트럼프를 도왔다든지, 트럼프의 이른바 ‘러시아 커넥션’에 페이스북도 관여했다든지 하는 혐의들이 제기되고, 논란 끝에 페이스북 측이 그 중 일부를 시인하는 사태에 이르렀다는 사실 등을 이 책은 제시함으로써 저커버그의 회색적인 측면을 보여준다. 그러나 어쨌든 신권력모델을 추구해 페이스북을 세계 굴지의 기업으로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저커버그는 대성공한 사람이고, 앞으로도 페이스북의 영향력이 어디까지 미칠지 알 수 없다.
가치관은 '크레믈린적'이지만 트위터는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트럼프의 힘
저자들이 소개하는 ‘도표 상단의 성공한 사람들 명단’ 중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그는 가치관적으로는 미국의 극우파들의 인기를 끌 정도로 독재적-독선적 측면을 보인다. CNN 같은 진보적 매체와의 공개적 말싸움을 서슴지 않으며, 자기 딸과 사위를 중요한 자리에 앉힐 정도로 청렴결백-공평무사 등의 가치관과는 상관없는 행태를 보인다. 반면 그는 트위터 멘션을 날림으로써 주요 지지자(가난한 백인들)들을 대거 동원해내는, 즉 SNS 신권력 시대에 딱 맞는 권력 추구 방식으로 지난 미국 대선에서 여론조사 결과들을 뒤집는 파란을 일으키며 세계 최고 권력자의 자리에 올랐다. 추구하는 가치는 20세기적이되, 동원하는 방법은 21세기적인 묘한 결합의 인물이 바로 트럼프이며, 온갖 파문에도 불구하고 그의 재선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신권력 시대의 성공 모델로서는 1) 후보자 시절의 오바마처럼 신권력 가치관과 방법으로 군중을 대거 동원해 내거나 2) 가치관은 모호하지만 페이스북이란 신권력적 플래트폼을 개발함으로써 성공하는 게 최고겠지만, 이미 마음이 구권력 가치관으로 형성돼 있는 트럼프 같은 사람이라면(사실상 대부분의 구세대 또는 현재 한국 사회의 권력자들은 대부분 이 유형에 속한다), 최소한 트럼프처럼 신권력적 방식을 구사함으로써 기왕에 확보한 권력을 계속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말해준다는 점에서 이 책의 의미는 크다고 하겠다.
앞으로 계속 승승장구할 개인-기업이 되려면?
그래서 이 책의 10장은 ‘권력 혼합의 기술’을 말해준다. 21세기에 진정으로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21세기에서도 계속 상층부에 자리잡고 싶다면, 한국인들이 빠져 있는 이른바 ‘스카이 캐슬’ 모델에서 빠져나와(좁디좁은 진입장벽을 최고 성적으로 계속 뛰어넘어야 한다는 점에서 한국의 ‘스카이 캐슬’ 모델이야말로 가장 구권력적이랄 수 있지만, 이 모델은 이미 효용성이 끝났거나 곧 끝날 것으로 보인다) 한다는 현실의 명령을 이 책이 제시하는 여러 사례들을 통해 읽을 수 있다. 그래서 10장은 ‘구권력과 신권력을 혼합한 이상적 혼용모델’에 대해 설명하며, 21세기에 진정으로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사회운동적 측면에서) 또는 계속 성공하는 비즈니스 모델로 생존-성장하고 싶다면 “신권력 언어와 구권력 언어를 모두 유창하게 구사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제러미 하이먼즈, 헨리 팀스 지음 / 홍지수 옮김 / 비즈니스북스 펴냄 / 456쪽 / 1만 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