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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 빛바랜 문재인 공약…‘노동이사제’ 산으로 가나

정치권 무관심 속 불씨 살린 금융노조…주총 핫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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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628호 이성호 기자⁄ 2019.02.25 09:47:13

사진은 지난해 5월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금융공투본 출범식 및 출범 기념 ‘금융권 노동이사제 도입을 위한 토론회’에서 허권 금융노조 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는 모습. 사진 = CNB포토뱅크

(CNB저널 = 이성호 기자) 문재인 정부의 핵심 국정목표는 ‘더불어 잘사는 경제’다. 대기업 중심의 경제구조를 ‘사람 중심’으로 전환해 성장의 과실을 골고루 나누자는데 경제정책의 무게를 두고 있다. 이를 위해 양질의 일자리 창출, 최저임금제 보장, 본사의 횡포로부터 가맹점 보호, 대기업과 골목상권의 상생, 재벌지배구조 개편 등을 국정운영의 우선 과제로 추진 중이다. 이에 CNB는 문재인 정부의 주요 기업정책들을 분야별, 이슈별로 나눠 연재하고 있다. 이번 주제는 금융권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노동이사제’다.

금융권에서 주총을 앞두고 노조를 중심으로 ‘노동이사제’ 추진 움직임이 일고 있어 주목된다.

노동이사제란 노동자(근로자)가 기업 이사회의 이사로서 발언권과 의결권을 갖고 공식적으로 기업의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제도를 말한다.

KB금융지주 우리사주조합과 KB금융노동조합협의회는 오는 3월 정기주주총회를 앞두고 사외이사후보 주주제안을 진행했다.

참여연대, 경제개혁연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한국노총 등 4개 단체에 사외이사후보 추천을 받아 백승헌 변호사를 최종 사외이사후보로 결정한 것.

백 변호사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회장,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 대검찰청 검찰개혁 자문위원, 법무부 정책자문위원, 한겨레신문 사외이사, KBS 이사 등을 역임했고, 현재 사단법인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노조 측은 상법과 금융회사지배구조법상 요건을 갖춘 주주제안으로 선임된 사외이사만이 KB금융지주 이사회에서 올바른 독립적 지위를 갖고 지배구조 개선을 이룰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금융회사지배구조법에서는 6개월 이상 금융사의 의결권 있는 발행주식 총수의 1만분의 10 이상에 해당하는 주식을 보유한 자는 상법에 따른 소수주주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즉, 주주총회일의 6주 전에 서면 또는 전자문서로 일정한 사항을 주주총회의 목적사항으로 할 것을 제안(주주제안)할 수 있는 것.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기업은행지부는 노동 사외이사 후보를 공모하고 있다. 자료 = 기업은행 노조

더불어 IBK기업은행도 노동 사외이사를 추천한다.

중소기업은행법에 따라 전무이사와 이사는 은행장의 제청으로 금융위원회가 임면하게 돼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 사외이사 선임은 은행장 제청 없이 정부가 지정한 인물을 금융위가 임명하는 ‘낙하산’ 인사가 관행처럼 이뤄져 왔다는 게 IBK기업은행 노동조합 주장이다.

현재 사외이사 3인 중 1인의 임기가 18일 만료됨에 따라 노조 측은 이번 사외이사 선임부터 노동이사제를 추진한다는 방침으로 오는 22일까지 이사 추천 후보를 공모하고 있다.

찬·반 팽팽, 당정 미온적 태도

사실 엄밀히 따지자면 KB금융의 사외이사 후보 주주제안권 행사는 ‘노동이사제’와는 법적 실체에 있어서 다르다.

KB노조는 이번 사외이사 후보 주주제안을 ‘노동이사제’와는 다르다며 선을 긋고 있다.

주주들에게 불필요한 부정적인 선입견이 생길까 경계하는 모양새인데 KB노조 관계자는 CNB에 “금융회사지배구조법 등 관련 법령에 따라 보장된, 조합이 보유한 0.1%의 주주권 행사를 통해 정당하게 이사를 추천하는 것으로 이런 부문에서 ‘노동이사제’와는 개념 구분을 명확히 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강제화냐 아니냐의 차이라는 얘기인데 현재 국회에는 노동이사제 의무화를 담은 ‘상법 일부개정안’(김종인 의원 대표발의)과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박광온 의원 대표발의) 등이 각각 계류돼 있다.

상법 개정안의 경우 우리사주조합 및 소액주주들이 사외이사를 추천할 수 있고, 사외이사 후보추천위원회는 추천된 후보자 1인은 반드시 사외이사로 선임토록 했다.

공운법 개정안도 공기업·준정부기관의 비상임이사 중에 근로자대표나 시민단체가 각각 추천한 사람이 1인 이상씩 포함하도록 명시했다.

국회에 따르면 대주주의 독단경영에 대한 사외이사의 견제·감시 중요성이 강조됨에 따라 근로자가 경영에 참여해 내부 견제를 통해 기업 경영의 투명성과 금융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해 노동이사제가 필요하다는 것이 노조 등 찬성 측 입장이다.

그러나 반대 측에서는 근로자의 경영 참여로 인한 의사결정 지연과 투자위축 등을 우려하고 있다. 기업의 의사결정이 신속하게 이뤄져야 하는 사안에 대해 노조의 동의 때문에 늦어지거나 공격적 결정을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

또한 근로자대표 및 시민단체의 추천을 받은 사람을 반드시 비상임이사로 포함시킬 경우 이사회의 정치적 중립성 여부 등의 문제로 논란이 발생할 소지가 있다는 의견도 상임위에 제시돼 있다.

잠자는 법안…히든카드는 ‘주총’

이처럼 찬·반 양론이 팽팽한 가운데 국회에서의 개정안 논의는 2년이 넘도록 휴업 상태다.

정부에서도 적극적이지 않다.

당초 노동이사제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하고 2017년 금융행정혁신위원회는 ‘금융행정혁신 보고서’를 통해 국정과제에 따라 금융공공기관에 노동이사제를 도입할 것을 금융위원회에 권고하기도 했었다.

공공기관이 아닌 KB국민은행·KEB하나은행·NH농협은행·신한은행·우리은행·한국씨티은행 등 민간금융사는 명칭을 ‘근로자추천이사제도’로 해, 이해관계자간 심도 있는 논의 후 도입을 적극 검토할 것을 추천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까지 금융위에서는 미온적 태도를 보이고 있고, 금융감독원에서는 혁신과제로 포함시키긴 했지만 추진 동력이 미흡한 상황이다.

이와 같이 의무화가 요원한 가운데 노동이사가 이사회에 입성하기 위해서는 현행법상 소수주주권을 행사해 주총 관문을 넘어야 한다.

KB노조는 이번이 3번째 도전이다. 지난 2017년 11월 임시주총과 2018년 3월 정기주총에서 각각 하승수 변호사와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를 근로자추천 이사로 추천했지만, 주총에서 부결된 바 있다.

KB금융의 단일 최대주주인 국민연금(9.5%지분 보유)의 경우 찬성과 반대를 각각 한 번씩 했고, 지난해의 경우는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사 ISS(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s)가 KB노조의 주주 제안 사외이사 선임과 관련해 반대를 권고했었다.

당시 ISS는 “회사의 설명에 따르면 HR보다는 재무, 법, 소비자 보호 분야의 전문성 보강이 시급하다”며 “KB금융 전체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어떤 계획을 하고 있는지가 분명히 제시되지 않았다”며 반대 의견을 밝힌 것.

ISS는 전 세계 기업의 주주총회 안건을 분석해 의견을 제시, 외국인 투자자들이 의결권을 행사 시 이를 참고하기도 해 영향력이 있다.

이번에도 은행권에서는 민간은행의 외국인 지분이 약 70%에 육박하는 현실임을 감안할 때, 이익 추구 관점에서 이들(외국인 주주)에게 설득력을 얻어 내는 것이 관건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KB노조에서 미는 사외이사 후보가 삼수 끝에 성공할지 여부는 지켜봐야 한다.

KB노조 관계자는 “노동이사제가 통과돼 법적으로 의무화가 된다면야 모르겠지만, 결국 소수주주권으로 힘겹지만 부딪혀 보는 수밖에 없다”며 “현재 외국인 대주주 및 국내외 의결권 기관들을 대상으로 설득 작업을 꾀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정이 이런 가운데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이하 금융노조)에서는 이제는 정부가 응답할 차례라고 꼬집고 있다.

금융노조는 “관치금융과 낙하산 인사, 금융지주 회장들의 수많은 범죄와 협동조합 자주성 말살, 수많은 사례들에서 확인되듯이 노동자 경영참여의 필요성은 금융산업에서 특히 절실하다”며 노동이사제 제도화를 적극 촉구하고 있다.

KB금융과 기업은행의 사외이사 제안이 그간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노동이사제’ 의무화에 있어서 상당한 진척을 가져올 수 있을지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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