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1년 만에 일본 롯데홀딩스 대표이사 직에 복귀하면서 롯데그룹에 대한 지배력이 일층 확고해졌다. 한국에 이어 일본에서도 그룹 장악력이 커지면서 수년 간 이어졌던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과의 형제간 경영권 다툼이 사실상 마무리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호텔롯데와 일본 롯데제과 상장 등 지주사 체제 완성을 향한 지배구조 개편 작업도 한층 속도를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1년 만에 일본 롯데홀딩스 대표이사 직 회복
2월 20일 일본 롯데홀딩스가 도쿄 신주쿠에 위치한 본사에서 이사회를 열고 신동빈 회장의 대표이사 취임 안건을 통과시키면서, 신 회장은 약 1년 만에 일본 롯데홀딩스의 수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앞서 신 회장은 지난 2018년 2월 13일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게이트와 관련해 롯데그룹이 K스포츠재단에 출연한 70억 원이 부정 청탁을 목적으로 한 뇌물로 판단되면서, 징역 2년 6개월과 추징금 70억 원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이후 2월 21일 신 회장은 일본 롯데홀딩스 이사회에 대표이사 직을 사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는데, 이는 재판에서 구속되거나 실형을 선고받은 경영진이 이사회에서 사퇴하는 일본의 관례에 따른 것이었다. 일본의 경우 국내와 달리 기소된 피의자가 유죄판결을 받는 비율이 높아 이런 관행이 자리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신 회장이 사임하면서 일본 롯데홀딩스의 대표이사 직은 신 회장과 함께 공동 대표이사를 맡았던 쓰쿠다 다카유키(佃孝之) 사장의 단독 대표이사 체제로 운영됐다. 이 시기에 신 회장은 등기이사 지위만 유지했다.
약 8개월 간 구속 수감됐던 신 회장은 2018년 10월 5일 2심에서 뇌물 공여는 맞지만 박근혜-최순실 측의 강요가 있었다는 변호인의 주장이 받아들여지면서 징역 2년 6개월과 집행유예 4년 판결을 받아 자유의 몸이 됐다.
신 회장은 석방 후 바로 그룹 경영에 복귀했고, 이후 롯데케미칼 지주사 편입, 미니스톱 인수전 참여, 롯데손해보험‧카드 매각 추진 등 일련의 지배구조 개편 작업이 숨가쁘게 이어졌다. 이번 일본 롯데홀딩스 대표이사 복귀도 그 일환으로 여겨진다.
신 회장의 복귀와 함께 일본 롯데홀딩스는 다시 1년 전처럼 신동빈 회장과 쓰쿠다 사장이 공동 대표이사를 맞는 2인 대표 체제로 돌아왔다.
일본 롯데홀딩스 측은 “예측 불가능한 세계 경제와 디지털화에 따라 급변하는 사업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롯데를 성장시켜온 신동빈 회장의 경영수완이 절실하게 필요했기 때문”이라며 “컴플라이언스(준법경영) 여부를 법률가들과 면밀히 검토했고, 이사진도 경영활동을 전개하는 데 문제가 없다고 의견을 모아 대표이사 취임 안건이 통과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4년 간의 형제 다툼 마무리… 반전 ‘불가능’
신동빈 회장이 일본 롯데홀딩스 대표이사로 복귀하면서 형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과 지난 2015년부터 벌여왔던 롯데그룹 경영권 분쟁도 사실상 마무리됐다.
원래 롯데그룹은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두 아들 중 장남인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이 일본 사업을 맡고 차남인 신동빈 롯데 회장이 한국 사업을 맡는 구조로 승계가 이뤄질 예정이었으나, 지난 2015년 1월 신 전 부회장이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 직에서 전격 해임되면서 ‘형제의 난’이 시작됐다.
이후 신 전 부회장은 아버지 신격호 명예회장과 누나인 신영자 롯데쇼핑 사장을 한 편으로 삼고 반격을 시도했으나, 롯데그룹 경영권 쟁탈의 핵심이랄 수 있는 일본 롯데홀딩스 주주총회에서 4차에 걸쳐 패배하며 경영권 획득에 실패했다.
그러던 차에 지난해 2월 신 회장이 구속되고, 일본 롯데홀딩스 대표이사 직도 사임하자 신 전 부회장은 다시 한번 반격을 시도했다. 하지만 2018년 6월 29일 신 회장 부재 중에 열린 일본 롯데홀딩스 주주총회에서도 신 전 부회장은 패배를 맛봐야 했다. 그리고 지난 2월 20일 신 회장이 일본 롯데홀딩스 대표이사에 다시 복귀하면서 지배력이 한층 더 공고해졌다.
재계에서는 5차에 걸친 주총 표 대결에서 모두 패배한 신 전 부회장에게 더 이상 내놓을 카드가 없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신 회장이 종업원지주회 등 일본 롯데홀딩스 주요 주주들의 확고한 지지를 받고 있어서 신 전 부회장의 반전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
최근 신 전 부회장이 신 회장에게 화해의 메시지를 보낸 것도 이런 상황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1월 29일 신 전 부회장의 홍보대행사는 신 전 부회장이 지난 21일 신동빈 회장에게 “한동안 이런저런 이유로 가족 간의 정을 나눌 수 없었음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서울 성북동 집에서 열리는 설날 가족 모임에서 얼굴을 직접 마주하고 가족으로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고 알렸다.
신 전 부회장은 “친형으로서 초대하는 것”이라며 “사업 이야기는 하지 않을 것이며, 가족끼리 그동안 나누지 못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우리 형제가 다툼을 계속 이어 나가며 아버지(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께 큰 심려를 끼치고 있다. 아버지가 살아계시는 동안 다시 한번 형제가 손잡는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이 그 무엇보다 큰 효도가 될 것이다”라며 화해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에 대해 신동빈 회장과 롯데그룹 측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가족 간 얘기를 공개적인 보도자료로 배포하는 것은 순수한 동기에서 나온 행동이라고 보기 어렵다”면서 “이 때문에 형제간 순수한 정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쉽지 않은 호텔롯데 상장… 성공하면 ‘역대 최대’
신동빈 회장이 일본 롯데홀딩스 대표이사에 복귀하며 한국과 일본, 양국에서 그룹 지배권이 공고해짐에 따라 신 회장이 이전부터 추진해온 지배구조 개편 작업이 한층 추진력을 얻을 전망이다.
지배구조 개편의 핵심은 한국롯데와 일본롯데의 관계를 재정립해 각자 독립적인 지배구조를 갖추는 것으로 여겨진다. 호텔롯데의 한국 증시 상장과 일본 롯데제과의 일본 증시 상장이 추진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로 롯데그룹은 신 회장의 일본 롯데홀딩스 대표 복귀에 대한 입장문에서 “앞으로 호텔롯데 기업공개와 일본 제과 부문 기업공개가 적극적으로 추진되고 양국 롯데의 시너지 효과도 더 높아질 것”이라며 “롯데그룹은 안정적인 경영활동을 통해 경제발전과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는 한편 급변하는 시장에서도 뒤처지지 않고 성장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추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롯데그룹은 올해 중 호텔롯데의 상장을 적극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는 일본 롯데홀딩스가 19.07%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등 호텔롯데 지분의 99.28%가 일본 주주들 소유지만, 기업공개를 통해 국내 자본 비중을 늘리고, 이후 호텔롯데와 롯데지주와 합병을 통해 명실상부한 지주사 체제 구축을 마무리한다는 것. 이렇게 되면 롯데그룹은 이전부터 ‘아킬레스 건’으로 지목되던 국적 논란을 잠재울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신 회장의 바람과 달리 상황은 순탄치 않다. 호텔롯데의 국내 증시 상장은 99.28%의 지분을 보유한 일본 주주들의 한국 롯데에 대한 장악력을 낮추는 조치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 주주들이 상장에 동의하려면 상장을 통해 높은 밸류에이션 평가를 얻을 수 있다는 전망이라도 확고해야 하는데, 그것도 여의치 않다. 호텔롯데 매출의 82%를 점유하는 면세사업이 지난해 최대 매출을 기록했지만 인천공항 1터미널 등 주요 사업장 특허 심사에서 연이어 탈락해 올해 전망이 불투명하다는 분석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텔롯데 상장이 성사될 경우 역대 최대의 큰 공모가가 책정될 거라는 전망이 나온다. 지난 2016년 호텔롯데가 상장을 추진할 당시 예상 기업가치가 약 20조 원 이상, 공모자금 약 6~7조 원 내외였기 때문이다.
박종선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올해 호텔롯데가 상장할 것이라는 예측이 있는데, 호텔롯데가 상장하면 공모 규모는 약 6조 원으로, 2010년 삼성생명의 4조 8881억 원을 뛰어넘는 역대 최대가 될 전망”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