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30호 옥송이⁄ 2019.02.28 18:03:45
중국의 ‘패션 만리장성’은 유달리 높다. 유명세로도 성공을 담보할 수 없다. 세계적인 SPA 브랜드 자라와 H&M도 최근엔 중국에서 맥을 못 출 정도다. 국내 대표 패션업체들도 중국 패션계에 도전장을 내밀었다가 쓴 잔을 삼키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하지만 재계 42위 이랜드가 중국 패션시장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거듭하면서 주목받고 있다. 비결이 뭘까. 이랜드의 남다른 중국 성공 스토리를 들여다봤다.
한국 대표 패션 기업으로 거듭난 이랜드, 중국 ‘큰 손’ 알리바바에게 러브콜 받기도
이랜드가 중국에서 잘나간다. 그동안 중국의 ‘패션 만리장성’을 넘기 위한 국내 기업들의 악전고투가 계속됐지만, 성과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하지만 이랜드는 달랐다. 중국에 진출한 이랜드의 20여 개의 브랜드가 지난해 일제히 흑자를 기록하면서, 홀로 괄목할만한 성과를 낸 것.
사실 이랜드가 중국에서 좋은 성과를 내고 있는 것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중국 진출 이후 꾸준히 좋은 성적을 거듭했고, 특히 곰돌이 캐릭터가 상징인 의류 브랜드 ‘티니위니’의 성공은 익히 알려진 바였다.
하지만 이랜드는 지난 2016년 재무구조 개선을 이유로 ‘효자곰돌이’ 티니위니를 중국 기업 브이그라스에 매각했고, 티니위니는 사실상 이랜드 손을 떠났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이랜드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기도 했지만, 이랜드는 지난해 20개 브랜드 전체의 흑자를 통해 ‘보란 듯이’ 성과를 낸 것이다.
실제로 중국에서 이랜드의 영향력은 작지 않다. 중국의 대표 상거래 업체인 알리바바가 운영하는 쇼핑몰 가운데 이랜드, 로엠, 스코필드 등 20여 개의 이랜드 브랜드관이 따로 운영되고 있으며, 지난해 중국 최대의 쇼핑절인 11월 11일 광군제(光棍節)에서는 하루 동안 4억 4400만 위안(한화 약 723억 원)의 매출을 달성하기도 했다.
이랜드는 알리바바가 상대하는 업체 중 50위 안에 들 정도로 성장해 명실상부 한국을 대표하는 패션 기업으로 거듭났다. 이랜드 측에 따르면 알리바바로부터 한국 기업을 위한 허브 역할을 제안 받기도 했다. 허브 역할이란 중국의 주요 이커머스 시장에서 물건을 팔 수 있도록 이랜드의 노하우를 전수하는 것으로, 이는 알리바바와의 오랜 인연을 바탕으로 신뢰가 형성됐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패션계 중국통(通) 된 이랜드 … 비결은 꽌시(关系)와 고급화 전략
이랜드가 처음부터 중국에서 주목받은 것은 아니다. 시행착오도 있었다. 일찍이 중국 시장의 잠재력을 알아보고 한중 수교 이후 1994년에 진출했지만, 진출 초반 중국의 시장 반응은 냉랭했다. 하지만 이랜드는 철저한 분석과 현지화를 통해 서서히 자리매김해 나갔다.
이랜드가 꼽는 현지화 전략 중 하나는 ‘꽌시(关系)’다. 꽌시는 ‘관계를 형성한다’는 의미로, 중국에서의 사업이나 사람 간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다. 이랜드는 중국 시장 관계자들과 꽌시를 쌓으면서 한편으론 지역마다 담당자를 선발해 도시마다 다른 기후와 문화를 철저히 분석했다.
특히 ‘패션연구소’를 설립하고 디자이너를 기용했다. 중국 고객 맞춤형 상품을 제작하기 위해서다. 별도의 디자이너가 있는 만큼 이랜드는 중국에서 ‘프리미엄’ 전략을 고수해왔다. 백화점 입점을 위주로 중국 내 영향력을 넓혀나갔다.
실제로 알리바바에서 거래되는 이랜드 자체 브랜드 ‘이랜드’에서 판매되는 봄·가을용 트렌치코트 한 벌은 저렴하면 15만 원대에서 비싼 제품은 30만 원대에 달한다. 이랜드의 또 다른 인기 브랜드 ‘스코필드’의 트렌치코트는 40만 원 대에 이르기도 했다.
이랜드 관계자는 “이랜드의 중국 전략은 철저한 ‘고급화’였다. 현재 가장 인기 있는 대표 브랜드는 ‘이랜드’와 ‘스코필드’로, 스코필드 정장 한 벌의 경우 많으면 중국 평균 월급의 두 달 치에 이르기도 한다”며 “하지만 최근 중국 유통 시장이 변화하는 만큼 고급화를 펼치는 동시에 중저가의 SPA 브랜드도 병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랜드 측에 따르면 이랜드의 A급 매장 5000여 개만 오프라인으로 남기고, 나머지 매장은 온라인으로 전환했다. 중국 패션 트렌드에 발 맞춰 고급화를 남겨두면서도 미쏘, 스파오 등의 ‘중저가’ 라인을 ‘투트랙’으로 전개한다는 방침이다. 또한 14세 미만 청소년의 인구가 4억 명에 달해 ‘알짜’로 불리는 중국 아동복 시장에서의 규모도 늘려나갈 계획이다.
험난한 중국 패션 시장, ‘이커머스’가 미래다?
중국은 국토가 넓은 만큼 다양한 기후를 갖고 있다. 한국인과 중국인의 체형은 비슷하지만, 시장 환경이 다른 큰 이유다. 게다가 지우링허우(90년대 이후 출생자) 세대가 소비 주축으로 떠오르면서 ‘품질’은 물론 ‘개성’까지 중요해졌다.
이 같은 복합적인 요인으로 인해 국내 패션계의 2강 삼성과 LG도 중국 패션시장에선 두 손을 들어야 했다.
LF(구 엘지패션)은 중국에서 희비를 맛봤다. ‘희(喜)’는 프리미엄 의류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헤지스’가 이끌었다. 헤지스는 2007년 중국 진출할 때부터 한국과 동일한 수준의 가격을 유지했고, ‘프리미엄’ 전략으로 중국 시장에 집중했다. 결과적으로는 프리미엄 전략이 통했고, 현재 헤지스는 중국 내에서 270여 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반면 헤지스를 제외한 브랜드의 상황은 좋지 않다. 아웃도어 브랜드 ‘라푸마’가 대표적이다. LF는 지난 2010년 국내 아웃도어 열풍을 안고, 프랑스 라푸마그룹과 합작을 통해 중국 아웃도어 시장에 진출했다. 하지만 중국 아웃도어 시장의 더딘 성장 등의 이유로 라푸마는 2017년까지 7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고, 그해 부채는 자본을 넘어선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특히 삼성물산의 야심작 ‘에잇세컨즈’의 성적표는 초라하다. ‘8초 만에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겠다’는 뜻을 가진 삼성물산의 에잇세컨즈는 브랜드 출범 초기부터 중국 시장 진출을 목표로 했다. 중국인이 좋아하는 숫자 8과 ‘빨간색’을 브랜드 디자인에 사용한 이유다.
브랜드 출범 당시에는 인기스타 GD(지드래곤)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소비자들에게 폭발적인 관심을 받았다. 이 때문에 2016년 첫 상해 진출에도 좋은 성적표를 기대했지만, 지난해까지 약 2년 9개월 간 에잇세컨즈는 중국에서 손실을 거듭했다.
결국 삼성물산 패션부문은 에잇세컨즈의 확장대신 기존 시장 유지에 집중하기로 결정했다. 그 방법으로 오프라인 매장인 상해 1, 2점을 전면 철수하고, 온라인 중심으로 새롭게 구성했다. 이는 이커머스가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중국 유통환경에 맞춰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중국의 패션 시장을 가늠하기 어려운 건 맞지만, 확실한 것은 온라인 패션 시장이 중요해졌다는 점”이라며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지만, 중국 역시 이커머스 패션시장이 지속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의 경우, 기존 백화점이 없어지는 등 유통 구조가 확실히 변하고 있다. 따라서 온오프 전략을 병행해야 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