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30호 윤지원⁄ 2019.03.07 08:34:34
갈수록 악화되는 미세먼지로 친환경 주거공간에 대한 수요가 커지고 있다. 건설업계는 건강한 주거문화와 주택 시장 트렌드 변화를 따라잡기 위해 미세먼지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다양한 시설 및 시스템을 신축하는 아파트에 반영하고 있다. 현대건설과 대림건설, GS건설, SH공사 등 여러 건설사들의 미세먼지 저감기술을 들여다봤다.
적어도 집은 미세먼지에서 안전했으면
봄이 반갑지 않다. 경보 수준의 미세먼지가 일주일 째 기승이다. 매일 재난문자가 울려댄다. 삶의 질이 심각하게 낮아졌지만 한반도에 사는 한 이 고통을 수년 내 벗어나기는 요원해 보인다. 이민을 진지하게 고려해보다가도 현실을 생각하면 가성비 좋은 공기청정기를 검색해보는 게 고작이다. 적어도 내 집 안에서만큼은 숨 쉴 걱정 않고 살고 싶다.
주택산업연구원이 지난 2016년 발표한 '2025년 미래 주택시장 트렌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실거주자들은 집을 선택하는 기준에 있어 ‘쾌적성’(33%)을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꼽았다. 숲이나 공원 등 녹지공간이 가까운 이른바 '숲세권' 아파트를 선호하는 트렌드가 대세인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1990년대 조사에서는 교통과 교육이, 2000년대에는 투자가치가 가장 중요한 집 선택 기준으로 꼽혔던 것과는 크게 달라진 결과다.
한편, 송파구는 지방자치단체로는 전국 최초로 올해부터 '미세먼지 저감아파트 인증제'를 실시한다고 4일 밝혔다. 100세대 이상 규모 공동주택 신축시 구가 자체적으로 수립한 기준에 맞는 미세먼지 저감 방안을 갖춘 아파트를 인증함으로서 환경 문제에 대한 지역사회의 관심과 미세먼지 저감 운동에 대한 민간 참여를 높이기 위한 정책이라는 설명이다.
'숨 쉴 공간'에 대한 절박함으로 증가하는 시장의 요구에 건설업계 역시 발 빠르게 대처하고 있다. 국내 건설사들은 자체적인 기술 개발이나 제휴를 통해 다양한 공기 청정 및 환기 시스템 등을 내세우며 아파트 수요자들의 마음을 잡기 위해 애쓰고 있다.
현대건설, 미세먼지 감지에서 환기 및 필터링 자동제어까지
건설업계가 신축 아파트에 도입하는 미세먼지 관련 방안은 크게 ▲미세먼지 현황 알림 ▲에어샤워 및 흡입 장비 설치 ▲미세먼지 포집율을 높인 공기 청정 시스템 및 환기 시스템 설치 ▲친환경 보일러 및 전기차 충전시설 구축 등이다. 각 건설사는 이러한 방안을 사물인터넷(IoT) 및 인공지능(AI) 등의 최신 기술과 접목해 자동화하고 쉽게 제어할 수 있는 다양한 솔루션들을 개발하고 있다.
현대건설은 미세먼지의 실내 유입 차단과 효과적인 제거를 위해 △감지/측정 고도화 △정보 전달 △저감장치 자동화 △제어기술/아이템 강화 △Hi-oT(하이오티 : 힐스테이트 사물인터넷 시스템) 연동 등으로 세분화한 5개 단계를 통합 관리하는 '토탈 솔루션'을 수립해 신축 아파트에 적용하고 있다.
현대건설은 단지 내 미세먼지 감지 센서를 통해 수집된 대기환경 상황을 이해하기 쉬운 디스플레이로 보여주는 '미세먼지 신호등'을 설치한다. 특히 이 미세먼지 신호등은 아이들이 뛰어노는 놀이터 부근에 주로 설치하며, 각 세대 내에는 미세먼지 외에도 온·습도 및 CO2 수치 등을 측정할 수 있는 통합 포터블 센서도 개발해 설치한다. 이러한 센서에서 수집되고 분석된 정보는 미세먼지 신호등은 물론 각 세대의 홈네트워크 월패드와 주민의 스마트폰 앱으로도 연동이 가능하다.
단순히 정보만 알리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이처럼 실내외 미세먼지 농도를 비교하고, 상황에 따라 실외 공기의 실내 유입을 차단하거나 반대로 실내 공기를 외부로 배출하는 등 환기 시스템을 자동으로 제어하는 데에 적용한다. 또한 주방의 후드는 물론 시스템 에어콘 같은 냉·난방기를 환기 시스템과 연동시켜 제어한다.
특히 현대건설은 아파트의 세대 환기 시스템에 초미세먼지까지 차단할 수 있는 HEPA(헤파) 필터를 장착해 미세먼지를 효과적으로 제거할 수 있게 했다. 현대건설 측은 "현재 환기시스템에 헤파 필터를 적용하는 기술 연구에 성공했다"며 "PM0.3㎛의 미세먼지를 99.97% 포집 가능하다"고 밝혔다.
청정 기능 갖춘 환기 시스템, 구현하기 어렵다고?
건설업계 한 관계자에 따르면 2006년부터 시행된 실내공기질관리법에 의해 아파트마다 의무적으로 설치되어 있는 세대 환기 시스템에 현대건설처럼 초미세먼지까지 거르는 필터를 적용하는 것이 그다지 간단한 기술이 아니다.
세대 환기 시스템은 창문을 열지 않고도 외부 공기를 실내로 충분히 유입시켜 습도 및 온도를 조절하면서 유해한 물질을 걸러내는 시스템이다.
황사처럼 창문 환기로 유입될 수 있는 외부 유해 물질을 차단하면서도 실내에 충분한 양의 산소를 유입시킬 수 있어야 하므로 일정 수준 이상의 풍량을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적절한 풍량을 확보하지 못하면 실내 이산화탄소(CO2) 농도가 높아지고, 이는 미세먼지 이상으로 건강에 위험하다.
환기는 이동형 공기청정기를 사용할 때에도 반드시 신경 써야 할 주의사항이기도 하다. 실내를 밀폐한 상태에서 생활하면서 공기청정기만 가동하면 미세먼지 농도는 낮아질지 몰라도 산소는 줄어들고 CO2 농도는 높아진다.
이런 조건 때문에 환기 시스템에 사용되는 기존 필터는 PM2.5㎛ 수준의 초미세먼지까지 걸러낼 정도로 촘촘하지 않다. 만약 이 필터를 촘촘한 헤파필터로 교체할 경우엔 그만큼 풍량을 높이기 위해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고, 일상의 쾌적함을 방해할 정도의 진동과 소음이 발생할 수 있다.
대림산업·GS건설, "공기청정기 따로 필요 없다"
대부분의 건설사들이 내놓는 미세먼지 솔루션은 대기질 분석과 알림 시스템에 기본적인 통신 및 IoT 기술을 접목시키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환기 시스템 개선이 가장 근본적인 미세먼지 저감 대책일 것"이라면서도 "아파트 건설에 참여하는 환기업체 상당수가 연구개발(R&D) 투자의 여력이 없고 대형 건설사들도 기술 개발에 소극적인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때문에 현재 이를 해결한 기술을 갖춘 국내 건설사는 현대건설을 포함해도 많지 않은 실정이다.
대림산업은 세대 내 환기 시스템에서 초미세먼지까지 제거 가능한 청정 기능을 효과적으로 결합하는 기술을 미국 예일대학교와 공동 개발했다. 관련 특허를 2016년 7월에 등록해 국내 건설사들 가운데 가장 빨랐다.
대림산업의 공기 청정형 환기 시스템에는 헤파필터 H13이 장착돼 있다. 시중에 판매되는 가정용 공기청정기들 가운데 이보다 높은 H14 등급의 헤파필터를 장착한 제품은 거의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 시스템의 공기청정 능력은 믿음직하다고 볼 수 있다.
대림산업 측은 이 환기시스템이 PM2.5㎛의 미세먼지를 99.99% 차단하고 PM0.3㎛의 미세먼지도 99.95%까지 없앨 수 있다고 밝혔다.
이러한 공기 청정형 실내 환기 시스템은 각 방과 주방, 화장실 등이 거미줄처럼 연결되어있기 때문에 중앙에서 미세먼지가 제거된 깨끗한 공기를 각 방으로 보낼 수 있다. 커버리지가 십여 평에 불과한 이동식 공기청정기를 방마다 사서 자리를 차지하게 두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GS건설도 외기 유입식 환기 시스템에 공기 청정 기능을 더하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GS건설은 자회사인 자이S&D와 1년여 간 공동 개발한 'SYSCLEIN'(시스클라인)의 출시 계획을 지난달 20일 밝혔다.
GS건설 측은 시스클라인에 대해 "전열교환기 방식과 이동형 공기청정기 기능을 더한 차세대 공기청정 시스템"이라며 "간단하게 설명하면 '시스템 에어컨 형식의 환기형 빌트인 공기청정 시스템'"이라고 소개했다.
시스클라인은 먼저 환기 시스템에 강화된 필터를 설치해 외부 유입 공기를 1차로 거른다. 이 공기는 다시 천정에 설치된 외기 도입형 빌트인 공기청정기의 다중 필터를 통과하면서 청정공기로 바뀌어 집안 곳곳에 공급되고, 동시에 밀폐 공간에서 발생한 이산화탄소와 습기는 환기 시스템을 통해 배출된다.
GS건설은 시스클라인에 적용된 필터가 H14 등급의 헤파필터로 PM0.3㎛의 미세먼지를 99.995% 수준까지 제거할 수 있다고 밝혔다.
에어 샤워·광촉매 페인트 등 솔루션 다양해
환기 시스템의 공기 청정 기능을 강화하는 기술에는 한계가 있더라도, 미세먼지 관리에 유용한 다른 솔루션들도 존재한다.
외부에서 활동하다가 실내로 들어가기 전 옷이나 머리에 묻어있던 미세먼지와 세균 등의 오염물질을 제거할 수 있는 설비가 대표적이다.
현대건설, 삼성물산, 현대엔지니어링 등은 공동현관이나 각 세대 현관에 '에어 샤워 부스'를 설치하고 있다. 에어 샤워 부스는 압축 공기를 분사해 밖에서 묻어 들어온 먼지와 세균을 털어주고, 이렇게 털어낸 오염물질은 바닥의 흡입 매트에서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인다.
서울주택도시공사(SH)가 지난해 향동지구 아파트에 적용한 미스트 분사 기술도 여러 건설사들이 도입하고 있다. 옷이 젖지 않을 정도의 미세한 물입자(미스트)를 분사해 외부에서 단지 내로 들어오는 사람이나 차량에 묻은 미세먼지 및 공기 중의 미세먼지를 낮추는 방법이다.
SH공사는 이밖에도 미세먼지 중 질소산화물과 황산화물을 흡착해 분해하는 성질이 있는 광촉매 페인트를 건물 외벽의 도색 마감재로 사용하는 방법을 일부 아파트에 시범적으로 시공하고 있다.
SH공사 산하기관인 도시연구원이 개발한 광촉매 페인트는 이산화티타늄처럼 빛을 매개로 화학반응이 촉진되어 유기화합물을 분해하는 물질을 주원료로 한 친환경 페인트다.
SH공사에 따르면 아파트 외벽에 광촉매 페인트를 시공하면 공기 중의 미세먼지를 흡착하고, 자동차 배기가스에서 배출된 질소산화물이 햇빛에 의해 이산화티타늄과 화학반응을 일으켜 이산화탄소와 물만 배출된다.
SH공사 측은 아파트 1개 동의 외벽이 대략 1000㎡ 정도의 면적이라 가정하고 연간 3.4kg의 미세먼지 저감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밝혔는데, 이는 산림청 통계 기준으로 나무 100그루가 1년 동안 저감하는 미세먼지 양과 맞먹는다.
광촉매 물질은 아파트 외벽용 페인트 외에도 다양한 용도로 활용될 수 있다. 충남 천안시는 아스팔트 도로 표층부에 광촉매 도료를 정밀하게 코팅해 미세먼지를 줄이는 시범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천안시는 광촉매 포장을 활용한 질소산화물 저감 효과 실험 결과 약 20분이 경과한 후 42.8%의 질소산화물이 감축하는 효과를 보였다고 밝혔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미세먼지는 재난에 준할 정도로 심각하다는 인식이 커진 만큼 미세먼지 감축 솔루션은 방화·내진설계만큼이나 건설에서 필수적인 요소가 되고 있다"면서 "대형 건설사들이 브랜드 명성을 걸고 개발한 다양한 기술들이 주거 문화의 전반적인 수준과 입주민의 삶의 질을 높일 것"이라고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