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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커피숍·전시장 같은데 “이곳은 은행”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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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631호 선명규 기자⁄ 2019.03.18 10:09:54

우리은행은 크리스피크림도넛과 제휴한 ‘베이커리 인 브랜치’를 서울 잠실 롯데월드몰 지하 1층에서 운영하고 있다. 사진 = 선명규 기자

① 차+디저트 즐기는 은행지점 속속 등장

(CNB저널 = 선명규 기자) 서로 다른 문패 두 개가 위아래로 붙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고소한 커피향과 달큰한 빵냄새가 훅 풍겨왔다. 정면 주문대에선 방금 내린 커피와 달짝지근하게 코팅된 도넛이 점원 손을 떠나 손님에게 전달되고 있었다. 여기까진 일반적인 카페의 모습. 옆으로 시선을 돌리자 심각한 얼굴로 마주앉아 셈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디저트 즐기다말고 웬 숫자놀음이냐고? 이곳은 우리은행이 크리스피크림도넛과 제휴를 맺고 개점한 ‘베이커리 인 브랜치(Bakery In Branch)’ 매장이다.

지난 4일 서울 잠실 롯데월드몰 지하 1층에 위치한 이곳을 찾았을 때 입구에서 잠깐 멈칫했다. 하나의 문에 파랗게 ‘우리은행’과 빨갛게 ‘크리스피크림도넛’이라고 사이좋게 쓰여 있었기 때문이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안으로 들어가서야 알게 됐다. ‘한 지붕 두 가족’이란 것을. 명패를 나란히 붙여놨듯이 내부 공간에도 뚜렷한 경계 구분이 없었다. 도넛 매대가 눈앞에 일렬로 늘어섰고, 오른쪽 벽면을 따라 은행 창구 세 개가 나란히 자리했다. 매장 중앙과 통유리 창을 따라 마련된 테이블에는 손님들이 방문 목적에 상관없이 앉아 있었다.

손님을 구분해주는 것은 신호다. 진동벨이 울리면 커피나 음식이 나왔다는 것, ‘띵동’ 소리가 나고 번호가 화면에 뜨면 당사자는 창구로 오라는 것이다. 두 신호에 모두 반응하는 사람도 적잖다. 동생과 함께 이곳을 찾은 김지수씨는 “은행일을 보고나니 출출해져서 함께 간식을 먹고 가려한다”며 “굳이 다른 카페를 찾아 움직이지 않아도 돼서 편하다”고 말했다.

만물상으로 진화하는 은행들

‘베이커리 인 브랜치’는 우리은행의 두 번째 ‘컬래버레이션 점포’다. 1호점은 지난 2016년 동부이촌지점에 프리미엄 커피브랜드 폴바셋과 마련한 ‘카페 인 브랜치(In Branch)’이다. 우리은행 측은 “카페의 편안한 분위기로 체감 대기시간을 줄이는 동시에 공간 활용도를 높인 점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2016년 우리은행이 프리미엄 커피브랜드 폴바셋과 동부이촌동에 마련한 ‘카페 인 브랜치’. 사진 = 우리은행

시중 은행들이 커피 전문점 등과 개설하고 있는 이색 특화 점포의 특징은 공간 공유다. 명확한 영역 나눔 없이 카페인 듯 은행인 듯, 한 공간에 섞여 있다.

같은 날 서울 테헤란로에 위치한 NH농협은행의 ‘카페 인 브랜치(Cafe In Branch)’를 찾았을 때도 이 속성을 목격했다. 출입문 왼쪽으로 먼저 커피&초콜릿 전문점 ‘디 초콜릿 커피 앤드’가 나타났고, 오른쪽으로 깊숙이 들어가서야 객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길목에는 테이블이 쭉 늘어서 있었다. 차를 마시며 창구 대기 순번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서울 테헤란로에 위치한 NH농협은행의 ‘카페 인 브랜치’. 커피 주문대와 은행 객장 사이에 손님이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이 마련돼 있다. 사진 = 선명규 기자

경계물로 구획을 나누지 않는 이유는 공간 활용성 때문이다. 한 시중 은행 관계자는 CNB에 “유휴공간을 줄여 많은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게 만들면 찾는 고객들이 더 늘 것”이라며 “이는 결국 협업한 카페나 은행 모두 집객력을 높이는 기회가 된다”고 말했다.

요즘 은행에서 파는 것은 금융상품뿐 아니다. 경기도 일산서구에 위치한 NH농협은행 주엽지점은 영업점과 편의점을 결합해 운영하고 있는데, 구비한 상품이 다채로워 마트의 축소판에 가깝다. 그래서 이름도 ‘하나로미니 인 브랜치’다.

 

NH농협은행은 지난해 12월 일산서구 중앙로에 영업점과 편의점을 결합한 특화 점포 ‘하나로미니 인 브랜치’를 열었다. 사진은 하나로미니 내부 모습. 사진 = 선명규 기자

이곳에선 일반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간편식, 유제품, 생필품 등은 물론 잡곡을 포함한 농산물과 농가공식품을 취급한다. 한쪽에 마련된 축산 코너에는 한우, 한돈 등 고기를 ‘뽑을’ 수 있는 ‘스마트축산 자판기’가 자리 잡고 있다. 편의점처럼 24시간은 아니지만 영업시간도 길다. 은행지점 운영과는 별개로 연중무휴로 7시부터 22시까지 불을 밝힌다.

이대훈 농협은행장은 “하나로미니 인 브랜치는 농협 고유의 정체성이 반영된 점포로서 향후 지역의 대표적인 명소로 자리 잡길 기대한다”며 “앞으로도 이런 특화점포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② 쇼핑하고 전시회 관람…일상 속 잠깐의 일탈까지

작년 한 해 국민들의 평일 평균 여가시간은 3.3시간(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조사), 영화 두 편 관람하기에도 빠듯하다. 전쟁 같은 일과 속, 잠시 책도 읽고 아기자기한 소품도 구경하면서 쉼표를 찍을 방법은 없을까? 있다! 한낮에 일을 핑계 삼아 은행에 가는 것이다. 요즘 은행에 가면 서점도 있고, 보는 눈이 즐거운 편집숍도 있다. 이름 하여 ‘특화 점포’. 선택지가 넓어 취향 따라 기분 따라 골라가는 재미가 있다.

“일보러 왔는데 힐링돼요”

지난 6일 서울 서초구 강남대로에 위치한 KEB하나은행 강남역지점. 근처 스타트업 기업에 다니는 정씨는 “회사엔 공식적으로 일보러 온 것으로 돼있다”며 수줍게 웃었다. 볼일 마친 정씨의 시선을 붙든 것은 하얀 선반 위에 놓인 액세서리들. 그녀는 “머그잔이나 문구류 같은 소소한 소품들을 모으는 취미가 있는데 뜻밖의 장소에서 독특하고 다양한 제품들을 보니 힐링되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KEB하나은행 강남역지점 안에 들어선 ‘29cm’. 사진 = 선명규 기자

정씨처럼 바쁜 직장인에게 잠깐의 일탈을 허락한 이곳은 KEB하나은행 컬처뱅크 4호점. 지난해 10월 온라인에서 반응이 뜨거운 편집숍 ‘29cm’와 협업해 복합문화공간으로 꾸민 지점이다. ‘29cm’의 첫 오프라인 매장이라는 점에서도 화제가 됐다.

2~30대 직장인과 대학생 유동인구가 많은 강남역에 마련한 만큼, 젊은 눈높이에 맞춰 공간을 단장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먼저 감각적인 인테리어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고풍스런 가죽소파와 개성 강한 원형과 네모진 테이블이 좌우로 펼쳐져 있다. 원목, 철제 등 다양한 소재와 모양의 의자가 착석과 관람 욕구를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마치 고급 호텔의 로비 같은 인상이다. 그 오른쪽에 하나은행 객장이 있고, 왼쪽에 ‘29cm’와 커피 전문 브랜드 ‘앤트러사이트’가 자리하고 있다. 창구 순번을 기다리거나 주문한 커피를 마시는 이들 모두 ‘로비’를 이용할 수 있다.

‘컬처뱅크’ 시리즈 계속

KEB하나은행은 2017년부터 ‘컬처뱅크’란 이름으로 다양한 문화 콘텐츠가 있는 특화 점포를 개설하고 있다.

앞서 공예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방배서래 1호점, 독립 서점계서 이름 난 ‘북바이북’과 힐링 서점 콘셉트로 꾸린 광화문역 2호점, 도심속 자연을 주제로 기획 상품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잠실레이크팰리스 3호점을 나란히 선보였다.

함영주 KEB하나은행장은 “금융서비스와 문화 콘텐츠가 만난 컬처뱅크는 지역주민들이 언제든 찾아와 이용할 수 있는 복합 문화공간”이라며 “앞으로도 지역 특색을 살린 다채롭고 새로운 공간을 선보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젊음의 열기가 있는 대중문화의 중심’. 홍대 일대를 이보다 잘 설명해주는 문장이 있을까? 청춘과 문화의 성지로 대표되는 홍대에 ‘유스(Youth) 고객을 위한 공간’을 표방하며 자신만만하게 도전장을 내민 곳은 KB국민은행이다.

KB국민은행이 지난해 4월 홍대 앞에 개관한 ‘KB락스타 청춘마루’ 외관. 사진 = 선명규 기자

‘문화 성지’ 홍대에 상징으로 올라선 ‘KB락스타 청춘마루’

하나은행처럼 이종 업계와 협업해 숍인숍 형태로 매장을 구성한 경우와는 조금 다르다. KB국민은행이 지난해 4월 홍대에 개관한 ‘KB락스타 청춘마루’는 원래 있던 은행 지점을 리모델링한 것이기 때문이다. 영업점으로 40여년을 일한 이곳이 이젠, 365자동화코너와 함께 각종 문화시설이 들어선 장소로 탈바꿈했다.

밖에서도 눈에 확 띄는 것은 ‘노랑계단’이다. 운동장의 스탠드처럼 건물 안에서 바깥을 비스듬히 바라볼 수 있는 구조로, 누구나 잠깐 앉아 쉬어갈 수 있다. 옥상에도 ‘노랑계단’이 있는데, 그 앞에선 버스킹(거리공연)이 열리기도 한다.

지하 1층부터 지상 3층까지 총 4개층으로 이뤄진 건물의 담음새는 풍족하다. 대학생들이 소모임을 갖거나 세미나 개최에 용이한 시설을 갖췄고, 유명 작가의 전시를 관람할 수 있는 전시장도 있다. 지금은 고양이 그래피티로 유명한 프랑스 아티스트 토마 뷔유의 전시가 진행 중이다. 이용료나 관람료 없이 내부 시설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으니,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을 수밖에 없다. 실제 ‘KB락스타 청춘마루’는 문 연지 한 달 만에 1만 명이 다녀갔다.

 

‘KB락스타 청춘마루’ 내부에 있는 ‘노랑계단’. 사진 = 선명규 기자

신한은행은 지난해 4월 홍익대학교 안에 지점을 열면서 한 쪽에 디지털갤러리를 만들었다. 재학생들의 미술작품을 전시하는 일종의 ‘전시장’이다. 학생들에게 디지털 액자를 통해 작품을 선보일 기회를 열어주고자 마련했다.

은행들의 이색 점포 만들기 열풍이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이제는 아이디어싸움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다른 분야와 단순히 협업하는 것만으론 이제 식상하다는 분위기”라며 “매출 하락에 허덕이던 백화점들이 손님을 끌어 모으기 위해 영업시간 종료 후에 문 닫고 와인바를 운영하는 것처럼 보다 파격적인 시도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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