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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 전시] 나탈리 뒤 파스키에의 ‘불규칙한 정렬’

페이스 갤러리서 20년 경력 아우르는 회화·조형물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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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632호 김금영⁄ 2019.03.20 11:02:29

나탈리 뒤 파스키에 작가.(사진=김금영 기자)

(CNB저널 = 김금영 기자) ‘정렬’의 사전적 정의는 ‘가지런하게 줄지어 늘어섬’이다. 그런데 나탈리 뒤 파스키에의 전시에는 이 앞에 ‘불규칙한’이라는 상반된 단어가 놓였다. ‘사물들의 불규칙한 정렬’, 이 오류엔 어떤 이야기가 담겼을까?

페이스 갤러리가 나탈리 뒤 파스키에 작가의 개인전 ‘사물들의 불규칙한 정렬’을 5월 25일까지 연다. 이번 전시는 회화, 드로잉, 세라믹 작품 등 다양한 형태의 작업을 통해 작가의 20년 경력을 아우른다.

작품의 형태는 다양한데 이들 사이 오묘한 연결 고리가 보인다. 전시장 입구에 설치된 의자 형태의 오브제는 전시장 안쪽 벽에 설치된 그림 속 이미지와 느낌이 비슷하다. 또 다른 작품들도 마찬가지. 대부분의 그림 옆에 입체 조형물이 설치됐는데 마치 그림 속에서 튀어나온 듯 비슷해 보이는 이미지들이 많다.

 

나탈리 뒤 파스키에의 개인전이 열리는 전시장 입구에 작품이 설치된 모습.(사진=김금영 기자)

마치 작가가 의도적으로 그림과 조형물을 함께 작업한 것 같지만 실상은 20여 년의 세월 동안 작가가 자유롭게 작업해 온 결과물들을 그저 배치한 것. 그래서 두 작품의 색이나 조합 등이 비슷해 보이지만 완성된 시기가 10년 이상 차이가 나는 작품들도 있다. 작가 또한 배치 도중 발견되는 연결 고리가 흥미로웠다고 한다.

작가는 “각각 존재했던 작품들은 이번 전시에서 공간까지 하나의 그룹으로 묶이며 하나의 작품으로 재해석된다. 작품을 설치할 때 각 작품들 사이의 연관성을 깨달았다. 20년 동안 다른 시기에서 선택한 작품들이 특정 전시에서 어떻게 결합되는지, 그리고 이런 조합이 어떻게 다른 의미를 가지는지, 때로는 예상치 못한 무작위적인 정렬 속에 어떻게 공존하는지 관심을 뒀다”고 이번 전시의 주안점을 밝혔다.

 

나탈리 뒤 파스키에의 작품이 설치된 전시장.(사진=김금영 기자)

또한 그는 “전체적으로 봤을 때 동떨어진 작품들이 설치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조화를 이룬 작품을 보는 느낌을 받기를 바랐다”고 강조했다. 즉 작가가 불규칙적으로 작업해 왔던 작품들이 이번 전시에서 의외의 조화를 보여주며 정렬을 이루는 셈.

 

애초에 작가의 작업은 디자인부터 시작됐다. 1981년 에토르 소트사스를 주축으로 밀라노에서 설립된 멤피스 그룹의 창립 멤버로서 많은 디자인을 작업했다. 멤피스 운동은 전쟁 이후 획일화된 디자인, 그리고 상업적 마인드가 우선시된 기존의 디자인 세계에 저항하는 움직임의 일환이었다. 6년 뒤 해체됐지만 최근 멤피스의 획기적인 디자인이 다시금 재평가받고 있다. 작가는 “멤피스 멤버로 활동 당시 대중은 기존의 디자인에서 벗어난 멤피스의 새로운 디자인이 익숙하지 않아 받아들이지 못했다”며 “하지만 그로부터 시간이 흘러 멤피스 디자인이 유행하며 다시금 재조명받게 됐다”고 말했다.

 

그림과 입체 조형물이 설치됐는데 마치 그림 속에서 튀어나온 듯 비슷해 보이는 이미지들이 눈에 띈다.(사진=김금영 기자)

작가는 1979년 밀라노로 이주하기 전 아프리카의 가봉, 말리, 니제르를 여행하면서 1년을 지냈고, 그곳에서 텍스타일과 그래픽에 눈을 떠 가구와 텍스타일에 사용되는 자신만의 고유 디자인을 창출했다.

이때 작가는 특히 주변의 사물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처음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대상도 주변의 꽃병, 탁자 등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물이었다. 거창한 뜻은 없다. 살아오면서 눈에 보이는 것들 자체가 작가에겐 흥미롭고 영감을 주는 존재였을 뿐. 그러다 본격적으로 1987년 그래픽적인 요소의 디자인에서 벗어나 회화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내 그림과 디자인에는 특별한 철학이 없다”

 

나탈리 뒤 파스키에의 초기 작업에서는 구상적인 요소가 돋보인다.(사진=김금영 기자)

그 자유로운 시간이 흐르면서 작가의 작업에 눈에 띄는 변화가 생겼다. 작가의 초기 회화는 명확한 구도와 형태를 기반으로 한 구상적인 측면이 강했다. “60~70년대엔 구상주의 회화 작업에 영감을 받아 많이 작업했다”는 작가. 그런데 근작에서는 현실적인 묘사에서 벗어난 추상적인 요소가 돋보인다. 탁자, 병 등 명확한 형태는 사라지고 대신 동그라미, 직선, 네모 등 추상적으로 변형된 도형이 화면을 채웠다. 작가는 “90년대 후반 스튜디오를 옮기면서 작업에 전환점을 맞았다”고 말했다.

작가가 본래 작업했던 스튜디오는 작은 규모로 빛이 잘 들지 않았다. 그러다 빛이 환하게 들어오는 더 넓은 규모의 스튜디오로 옮기면서 그림을 그릴 때 이전에는 고려하지 못했던 물체와 공간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이게 됐다.

 

최근 몇 년 동안 나탈리 뒤 파스키에의 그림은 추상적인 형태로 진화한 모습을 보인다.(사진=김금영 기자)

또한 회화 속 구조물을 직접 제작하는 데도 관심을 가지면서 그림에 한정됐던 작업의 폭을 점차 넓혀나갔다. 입체와 평면을 넘나들며 각각의 매력을 즐겼다. 입체 조형물을 보고 그림을 그릴 때는 빛, 각도 등을 고려했고, 캔버스에 먼저 그림을 그릴 때는 아무 제한도 받지 않고 마음껏 그림을 그렸다. 작가는 “작업을 오래 하다 보니 장르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이 생겼다”고 말했다. 이런 방식으로 작가는 작품뿐 아니라 전시장 전체를 추상적인 공간으로 변신시키는 시도까지 나아갔다.

이 일환으로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훔볼트 출판사와 함께 쿤스트할레 빈의 큐레이터 루카 로 핀토의 에세이를 실은 책을 출간했다. 작가가 디자인하고 제작한 이 책은 그가 오랜 시간 동안 몰두해온 것들의 근원에 대해 자세하게 탐구한다. 예술적이고 철학적인 영감에 의한 인용뿐 아니라 드로잉도 삽입됐다. 작가는 “이 책 자체도 하나의 독립적인 작품이자 전시다. 많은 양의 이미지와 이야기들을 넣을 수 있는 책은 정말 좋은 사물이다. 페이지마다 연관성을 고려해 이미지를 배치하고 이야기를 만드는 것 자체가 즐거운 과정이고, 이건 또 작품 소장의 의미와도 같다”고 말했다.

 

원색적인 느낌이 가득한 그림들에 대해 나탈리 뒤 파스키에는 “체계적 분석보다는 본능에 따라 색을 사용한다”고 자신의 작업을 설명했다.(사진=김금영 기자)

작가는 “내 그림과 디자인에는 특별한 철학이 없다”며 “난 철학자가 아니다”라며 웃었다. 원색적인 느낌이 가득한 화면을 그릴 때도 체계적 분석보다는 본능에 따라 자연스럽게 색을 사용한다고 한다. 하지만 작가의 이 자유로운 본능이 사람들을 매혹시켰다. 2017년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가 작가의 회화를 스카프 디자인으로 활용하면서 많은 관심을 받았다.

작가는 “에르메스가 내 그림 2개를 구입한 뒤 스카프를 제작했다. 그림으로부터 새로운 영감을 받은 것 같다. 남자친구와 함께 발렌티노 제품 디자인에 참여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작가는 에르메스의 스카프를 목에 직접 두르고 나왔는데, 이를 펼치자 스카프가 마치 하나의 캔버스가 된 듯 작가 특유의 도형과 색감들이 어우러져 있었다.

작가는 최근 디자인 작업도 다시 시작했다고 전했다. 평면, 입체는 물론이고 회화, 디자인 등 장르를 구분 짓지 않는 그의 자유롭고도 불규칙한 정렬 이야기는 계속 이어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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