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32호 옥송이⁄ 2019.03.27 15:40:47
은행권에 변화의 바람이 분다. 5대 시중 은행 가운데 신한은행과 KEB하나은행 두 곳의 사령탑이 전격 교체되면서다. KEB하나은행은 3월 21일, 신한은행은 26일 각각 신임 은행장 취임식을 갖고 업무에 돌입했다. 재미있는 건 두 신임 은행장의 공통점이다. 진옥동 신한은행장은 20년 가까이 일본에서 근무한 ‘일본통’이며, 지성규 KEB하나은행장은 2001년부터 중국과 홍콩에서 근무한 ‘중국통’이다. 두 사람 모두 60년대 생으로 젊다는 것도 같다. 닮은 듯 다른 양 사의 ‘새 판 짜기’를 살펴본다.
진옥동 신한은행장, “디지털 유목민 체제” “기축통화·신흥국 투 트랙” 강조
“디지털 유목민의 자세를 지녀야 한다.”
26일 서울시 중구 신한은행 본점에서 신임 신한은행장의 취임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새롭게 취임한 진옥동 신임 은행장은 “디지털을 담당하는 인력들이 디지털 유목민적 자세를 지녀야 한다”며 “진정한 디지털 기업으로 변모하기 위해서는 조직의 변신, 인재 채용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밝혔다.
진 행장은 은행의 인재 채용과 배치 방식이 디지털 시대에 적합하지 않음을 지적했다. 그는 “과거 은행은 상경계 출신을 뽑은 후 전환배치로 IT 분야에 보냈다. 만약 IT 업무가 잘 맞으면 IT 인재가 되는 식이었다”며 “이제는 IT에 기본적 소양을 갖춘 사람이 뽑혀 그들이 영업점에 나가 고객을 만나야 한다. 고객의 수요를 파악하고 개발해 시연하는 형태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진옥동 행장은 금융사 경력 가운데 18년 이상을 일본에서 보낸 일본통으로, 글로벌 전략에 대해서도 남다른 생각을 전했다. 일본 근무 시절 기축통화의 중요성을 체득한 그는 글로벌 분야를 ‘투 트랙’ 전략으로 전개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글로벌은 투 트랙 전개가 필요하다. 트랙 하나는 기축통화 지역에서의 전략, 두 번째 트랙은 국가 경제발전 속도와 더불어 금융 니즈가 발생하고 있는 신 국가에 대한 트랙”이라고 말했다.
이어서 “예전보다는 나아졌지만, 한국의 통화 안전성은 아직도 약하다. 크게 성장한 경제 규모에 못 미친다. 환율이 오르면 큰 타격을 받는다”며 “한국의 통화리스크를 감안해서 기축통화 지역에 똘똘한 채널을 하나 갖고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신흥국에 대한 트랙은 여러 신흥국에 분산투자 하기보다는 베트남을 중심으로 가능성이 있는 지역에 대한 투자 의사를 밝혔다.
진 행장은 “베트남이 의미 있는 성장을 하고 있어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며 “베트남에서 한국계 은행끼리의 성장보다는 베트남 로컬 은행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의 형태, 규모, 운영을 갖춰야 한다. 또한 가능한 곳에 선택과 집중을 통해 초격차를 벌리는 데 집중하겠다”고 전했다.
지성규 KEB하나은행장, “디지털과 글로벌” 양 날개 가다듬기
앞서 21일 서울시 중구 KEB하나은행 신사옥에서 취임식을 가진 지성규 신임 행장은 “KEB하나은행의 장기 비전은 신뢰받는 글로벌 은행”이라고 밝혔다. ‘디지털’과 ‘글로벌’을 지 행장 체제의 명확한 핵심 전략으로 내세운 것이다.
함영주 전 행장에 이어 2대 행장이 된 지성규 행장은 하나금융지주, 하나은행 경영관리본부를 거쳐 하나은행의 중국 법인인 중국유한공사 초대 은행장을 역임했다. 전략, 재무, IB, 기업·개인영업, 기획 등 은행 업무 전반을 경험했을 뿐만 아니라 시중 은행장 가운데 최연소(1963년생)다. 이 때문에 행장 교체를 통해 국내외 금융 환경에서 KEB하나은행의 유연한 성장이 기대된다는 평가다.
지 행장은 “누구의 도움이나 사용설명서 없이 바로 사용 가능한 최고 수준의 직관적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만들겠다”며 디지털 분야에 대한 포부와 구체적인 구상을 드러냈다.
먼저 지 행장은 디지털 전환과 ICT 부문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금융과 ICT의 경계가 해체되는 상황에서 미래 성장 동력을 얻기 위한 구조적 혁신은 숙명”이라며 "안정적이고 선진적인 디지털 전환으로 KEB하나은행을 ‘데이터 기반 정보회사’로 변모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서 “빅데이터를 이용한 고객 관리로 최고의 경험을 선사하고 업무 프로세스 혁신을 통해 행원은 물론 고객 경험을 증대시키겠다”고 덧붙였다. 또한 모바일을 상품 및 서비스의 핵심 채널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지 행장은 본격적인 ‘데이터 기반 정보회사’로의 전환을 위해 내년까지 1200명의 디지털 인재를 육성할 계획이다.
한편, 15년 간 중국 및 홍콩에서 근무한 만큼 해외 경험이 풍부한 지 행장은 글로벌 은행에 대한 의지가 크다. 그는 “투자은행(IB), 자금, 신탁, 기업금융 등 해외 관계사 협업을 강화해 하나은행을 세계적 수준의 글로벌 은행으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현재 KEB하나은행은 네이버 라인과 협업을 통해 인도네시아 모바일 페이 시장에 진출했고, 베트남에서는 현지 4대 국영 상업은행 중 한 곳인 베트남투자개발은행(BIDV) 지분 인수도 추진 중이다. 지 행장의 ‘글로벌’ 성장 목표는 KEB하나은행의 기존 진출 국가가 아닌, 아직 발이 닿지 않은 ‘신남방’ 지역 진출이다.
이는 국내 금융 시장은 포화된 만큼, 눈에 띄는 성과를 창출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대신 신남방 시장에서 새로운 블루오션을 개척하겠다는 계획이다. 중국 시장 개척 경험이 있는 지 행장의 특기를 살려 아세안을 중심으로 베트남, 필리핀, 캄보디아, 인도 등에 본격적으로 진출할 전망이다.
인사과정서 ‘잡음’ 겪은 신한·KEB하나, 신임 은행장 첫 과제는 ‘통합과 안정’
한편, 선임을 둘러싸고 이번 인사 과정에서 잡음을 빚었던 신한은행과 KEB하나은행 신임 수장들의 사실상 첫 과제는 조직 안정으로 점쳐진다.
신한은행과 KEB하나은행은 각각 ‘남산 리스크’, ‘채용 리스크’의 영향으로 인해 연임이 유력시됐던 전 행장들이 전격 교체된 바 있다.
지성규 신임 KEB하나은행장은 지난 25일 함영주 전 KEB하나은행장(현 하나금융지주 부회장)과 함께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을 찾았다. 이는 하나금융그룹과 금감원의 갈등 해소에 보탬을 위한 발걸음으로 분석된다.
진옥동 신임 신한은행장은 신한은행의 끈끈한 조직문화를 강조했다.
진 행장은 “‘고객 퍼스트’를 바탕으로 성공을 이뤘던 신한은행의 문화가 다시 살아나야 한다”며 “고객을 이익 창출 수단으로 봐선 안 된다. 은행은 고객의 자산을 증식시켜준다는 명제에서 바라봐야 하며,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리딩뱅크’가 실현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