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 = 도기천 기자)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지난 반년은 변화와 혁신의 시간이었다. 롯데 구성원들은 “6개월이 6년 같다”고 말한다. 대대적인 지배구조 개편, 한일 롯데 간의 관계 강화, 사상최대 투자·고용 추진 등 롯데의 운명을 좌우할 매머드급 사안들이 이 기간 동안 실현됐기 때문. 끝없이 도전의 바다를 항해하고 있는 롯데호(號)는 어디서 멈춰 설까.
신동빈 회장이 4월 5일로 경영에 복귀한 지 6개월을 맞는다. 신 회장은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게이트’에 연루돼 뇌물을 건넨 혐의로 실형 선고를 받으며 법정 구속됐다가 지난해 10월 항소심에서 구속 8개월 만에 집행유예로 석방됐다.
신 회장 출소 이후 롯데에서는 많은 일들이 있었다.
우선 신 회장은 롯데의 사업구조를 대폭 쇄신했다. 이는 수십년간 순환출자 꼬리표를 달고 다니던 옛 지배구조를 바꾼 일이기도 했다.
롯데는 2017년 10월 유통·식품 부문 42개 계열사를 편입한 롯데지주를 창립해 ‘뉴롯데’를 출범시켰다. 이후 롯데지주에 주요 계열사들을 합병하는 형태로 한때 수만 개에 달했던 순환출자 고리를 모두 해소했다.
하지만 롯데지주에 편입된 계열사들이 롯데의 주력인 유통·식품에 국한돼 있고 화학·금융 계열사들은 여전히 롯데지주 품에 들어오지 않아 ‘반쪽 지주사’에 불과했다.
이에 롯데지주는 계열사 지분 매입을 통해 롯데케미칼을 포함한 롯데 유화사를 자회사로 편입했다. 호텔롯데가 보유한 롯데케미칼 지분과 롯데물산이 보유한 롯데케미칼 지분을 대량 매입한 것. 시간이 걸리더라도 세금혜택이 있는 분할합병 방식을 택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지만, 신 회장은 약 5천억원의 세금 납부를 감수하면서까지 편입을 서둘렀다.
롯데케미칼의 지주사 편입은 유통·식음료 업종에 편중돼 있던 사업 포트폴리오의 다각화 뿐 아니라 그룹의 지주체제를 더 단단하게 하는 의미가 있다. 그동안 일본롯데홀딩스가 호텔롯데와 롯데물산을 통해 롯데케미칼을 지배해왔다는 점에서다.
롯데는 또 작년 11월에 지주사 체제 완성을 위해 롯데손해보험과 롯데카드 매각 방침을 발표했다.
공정거래법상 일반 지주회사는 금융회사 주식을 보유할 수 없는데 현재 롯데지주는 롯데카드 지분을 93.78% 보유한 최대주주다. 롯데손해보험은 신 회장과 호텔롯데 등 특수관계인의 지분이 절반을 넘는다. 따라서 관련법에 따라 지주사 설립 후 2년 이내에 이 회사들의 주식을 매각해야 한다.
이밖에도 올해 들어서는 롯데글로벌로지스와 롯데로지스틱스가 합병해 매머드급 종합물류회사로 새 출범했다.
사상최대 투자 “왜”
신 회장은 이같은 사업구조 혁신과 함께 대규모 투자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경영 복귀 직후인 작년 10월 롯데는 국내외 전 사업 부문에 걸쳐 5년간 50조원을 투자한다고 선언했으며, 올해에만 역대 최대인 약 12조원의 투자를 진행 중이다. 또 올해 1만3천명 이상을 채용하는 등 앞으로 5년간 7만명을 고용할 계획이다.
이중 대표적인 해외투자는 약 4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롯데케미칼의 인도네시아 유화단지 건설 사업이다. 롯데케미칼은 2017년 인도네시아 국영 철강회사의 소유 부지 50만㎡를 매입해 이 사업을 시작했지만 진척이 없었는데, 신 회장의 경영복귀 후 속도가 붙고 있다.
국내에서는 롯데백화점 인천터미널점에 대한 투자가 눈길을 끌고 있다.
인천터미널점은 지난해 약7000억원의 매출을 올린 알짜 매장이다. 지하 2층~지상 6층 규모로, 부지면적 2만9223㎡(8840평), 연면적 13만6955㎡(4만1429평), 영업면적 5만1867㎡(1만5690평)에 달하는 매머드급 쇼핑몰이다.
이곳은 원래 신세계그룹 소유였다. 신세계백화점이 1997년부터 인천시와 20년 장기임대계약을 맺고 영업해오던 곳인데, 2012년 롯데가 인천시로부터 터미널 부지와 건물 일체를 9천억원에 매입했다.
이를 두고 신세계는 롯데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4~5년간 법정공방이 이어진 끝에 롯데의 승리로 끝났다. 이같은 곡절 끝에 올해 초 ‘롯데백화점 인천터미널점’이 탄생했다.
신 회장은 올해 첫 현장방문지로 이곳을 택했다. 식당가를 시작으로 각층을 돌며 영업 상황을 살펴봤고 직원들에게 고객을 위해 최상의 서비스를 구현해 달라고 당부했다.
신 회장은 이 일대를 롯데타운으로 조성하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인천터미널 부지와 주변 농산물도매시장 부지를 합친 총 13만5500㎡(약 4만1천여평)에 백화점, 복합쇼핑몰, 시네마, 주거단지 등으로 구성된 복합문화공간을 조성해 인천의 랜드마크로 만들 계획이다.
지배구조 완성 키는 ‘호텔롯데’
한편 롯데그룹의 말못할 어려움이었던 한국-일본 롯데 간의 관계가 다시 회복된 점도 신 회장의 성과로 꼽힌다.
롯데는 ‘오너일가-광윤사-일본롯데홀딩스-호텔롯데-한국롯데지주’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를 갖고 있다. 광윤사의 대주주이자 신 회장의 형인 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은 일본롯데홀딩스 정기주총에 무려 다섯 번이나 신 회장 해임안을 상정한 바 있다.
신 회장은 주총 표 대결에서 모두 승리하며 경영권을 지켜냈지만 이 과정에서 상당한 상처를 입었다. 또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돼 구속되면서 일본 롯데홀딩스 대표이사직을 스스로 내려놓은 바 있다.
하지만 지난달 일본 롯데홀딩스 이사회는 신 회장의 대표이사 취임 안건을 통과시켰다. 이는 일본과 한국을 아우르는 ‘1인 경영자’로서의 입지를 다시한번 확인하는 계기가 됐으며, 반대로 한일 분리경영을 주장해온 신 전 부회장은 설득력을 잃게 됐다.
이런 흐름은 롯데그룹의 숙원인 호텔롯데의 기업공개(IPO)에도 긍정적이다.
호텔롯데는 한국 롯데의 중간지주회사 격이자 일본 롯데와의 연결고리다. 일본롯데홀딩스가 대부분 지분을 갖고 있는 호텔롯데를 상장하게 되면 국내 일반주주의 지분율을 높아지게 돼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일본 기업’ 논란을 불식시킬 수 있는데다, 명실공히 한·일 공동경영체제를 확립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점에서 호텔롯데의 상장은 그룹 지배구조를 완성하는 열쇠가 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신 전 회장 측의 방해와 신 회장의 재판 등으로 상장계획이 멈춰선 상태다.
롯데 안팎에서는 신 회장이 호텔롯데를 상장한 뒤 롯데지주와 합병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CNB에 “롯데가 완전한 지주사 체제를 갖추기 위해서는 관련법에 따라 금융 계열사의 지분을 2년 내 정리해야 하는 문제가 남아있는데 이 부분이 얼마나 빠르게 해결되느냐에 따라 호텔롯데의 상장시기가 정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롯데손해보험과 롯데카드의 매각 진행에 따라 그룹의 앞날이 결정된다는 얘기다.
경영권 분쟁, 불씨 남아
하지만 신 회장과 롯데의 앞날이 지금처럼 순탄할지는 의문이다.
당장 뇌물 사건과 관련한 대법원의 최종 판단이 아직 남아 있다. 신 회장은 최순실씨 측에 수십억원의 뇌물을 건넨 혐의를 받고 있는데 지난해 1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을, 2심에서는 집행유예를 각각 선고받았다. 대법원 상고심 선고일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재판과 관련된 불확실성은 그의 행보에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하는 게 사실이다.
국민연금이 지난해 스튜어드십코드(자율지침)를 강화하며 주주행동에 나선 점도 부담이다. 현재 신 회장은 롯데지주, 롯데제과, 호텔롯데, 롯데쇼핑 등 모두 9개 계열사에 사내이사로 등재돼 있는데, 국민연금은 회사 경영진을 견제할 사내이사에 신 회장이 다수 등재돼 있는 점은 문제가 있다며 지속적인 반대 의견을 표시하고 있다.
신동주 전 회장과의 경영권 분쟁도 불씨가 남아있다. 신 전 회장은 잇단 주총 패배에도 불구하고 한일 롯데의 분리 경영을 계속 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