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로 기승을 부리는 초미세먼지로 인해 공기 정화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져가고 있다. 아울러 우리나라 사람의 일일평균 차량이용 시간은 외국에 비해 긴 1.2시간으로 나타나면서 차량 실내 공기 질 관리도 중요한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이에 최근 완성차 업체들은 자체 차내 공기청정 기능을 탑재한 모델을 출시하거나 다양한 옵션을 마련, 고객의 달라진 니즈를 충족시키고자 하고 있다.
현대·기아차, 공기질 측정-작동까지 알아서 하는 지능형 시스템
23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기아자동차는 차량의 미세먼지를 실시간 모니터링 해서 스스로 내부 공기를 정화하는 지능형 공기청정 시스템을 개발했다.
일반적으로 공조 필터의 집진 효율만 기준 이상으로 뛰어나다면 내기 순환만으로도 실내 미세먼지는 상당 수준으로 제거가 가능하고 외기를 유입시킬 때도 안심할 수 있다.
하지만 기존에 자동차에 적용된 공기청정 기능은 탑승자가 수동으로 켜고, 꺼야 하며, 미세먼지 농도에 관한 정확한 정보 없이 판단해야 하고, 또한 일정 시간 동안만 청정 기능을 작동하는 단순한 방식이다.
이에 최근 차량 내부에서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차량용 소형 공기청정기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소비자 시민단체의 실험 결과 시판 중인 모델 대부분이 광고에 비해 기준 이하의 성능만을 갖추고 있고, 심지어 절반 가량은 ‘불량’이라 할 정도로 문제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기아차의 지능형 공기청정 시스템은 미세먼지 센서가 차량 내부의 미세먼지 농도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 하여 수치가 ‘나쁨’ 단계로 떨어지면 자동으로 공기청정 기능을 작동시키고 ‘좋음’ 단계에 이르면 작동을 멈춘다. 또한 공기청정 기능이 작동될 때는 열려있던 창문을 자동으로 닫아주는 연동 제어도 함께 실행되도록 설정할 수 있다. 이와 관련된 정보는 차량 AVN(오디오+비디오+내비게이션) 화면이나 공조컨트롤 패널에 표시된다.
정확도·내구성 향상한 레이저 센서
지능형 공기청정 시스템을 개발한 현대자동차그룹 ‘후륜구동내외장설계팀’에 따르면 이 시스템의 두 가지 핵심 기술은 레이저 방식의 센서와 성능을 향상시킨 필터다.
지능형 공기청정 시스템에서 사용되는 센서는 일반 가정용 공기청정기나 기존 자동차용 공기청정 시스템, 그리고 휴대용 공기청정기에 적용되는 미세먼지 센서와는 측정 방식이 다르다.
미세먼지 농도는 센서 내부의 측정 공간에 장치된 광원이 내는 빛과 미세먼지가 만드는 그림자의 크기와 개수를 바탕으로 계산된다.
이때 일반 센서에 사용되는 광원은 LED인데 이번에 현대·기아차가 개발한 광원은 레이저다. 레이저는 LED보다 훨씬 강한 빛을 내기 때문에 센서가 더욱 정확할 수밖에 없다.
개발팀은 “검증할 기관이 아직 없어 구체적인 수치는 밝힐 수 없지만 자체 평가에서 월등히 높은 정확성을 보여줬다”면서 “국내 미세먼지 농도를 측정하는 한국환경공단, 에어코리아에서 사용하는 3천만 원 상당의 센서와 비교해도 신뢰도에 큰 차이가 없다”고 자신했다.
새로 개발한 센서와 일반 센서와의 차별점은 이것만이 아니다. 개발팀에 따르면 자동차는 거의 언제나 실외를 주행해야 한다는 특성을 고려하면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센서를 자동차에 적용할 경우 센서 렌즈부에 미세먼지가 부착되어 오염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
개발팀은 이런 약점을 보완한 센서를 개발했다. 설명에 따르면 이번에 개발한 센서는 구조적으로 측정이 이루어지는 센서 내부의 유속을 증가시켜 먼지가 쌓이지 않게 하는 독창적인 기술을 적용했다. 덕분에 운전자는 별도로 센서를 청소하지 않아도 반영구적으로 사용이 가능하다.
더불어 이 센서는 자동차 주행 상황에서 처하게 되는 영하, 고온, 강우, 강설 등의 가혹한 환경에서도 작동에 문제가 없도록 개발됐다.
효율 높이고 공기 유입량 유지한 필터
현대·기아차는 이와 함께 외부 미세먼지를 더욱 효과적으로 차단할 수 있도록 고성능 콤비필터도 개발했다.
현대·기아차는 현재 대부분의 차종에 ‘고성능 에어컨 필터’를 적용하고 있으며, 이를 전 차종으로 늘려가고 있다. 고성능 에어컨 필터는 기존에 수입차량에나 채용되어 온 콤비필터 이상의 미세먼지 제거 성능을 갖추고 있다. 이는 지름 1~3㎛ 이하 크기의 먼지를 94% 이상 걸러내는 수준으로, 지름 2.5㎛ 이하 크기의 초미세먼지(PM2.5) 대부분을 걸러낼 수 있다.
개발팀에 따르면 이번에 개발한 고성능 콤비필터는 기존 필터보다 집진층을 증대해 초미세먼지 포집율을 기존 94%에서 99%까지 높이는 데 성공했다. 이는 헤파(HEPA) 필터 등급 기준 E10에 준하는 성능이다. 차량에 적용되는 필터류 중 최상위 수준으로 효율을 대폭 개선했다.
중요한 것은 등급이 높은 마스크를 쓰면 숨을 쉬기가 더 힘든 것처럼, 필터의 집진 효율을 높이면서 공기와 유입량을 크게 줄이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개발팀은 구조적인 개선을 통해 공기 유입양은 크게 줄지 않고 필터의 성능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면서 원천 기술과 관련한 구체적인 내용의 언급은 피했다.
이러한 기술들을 바탕으로 지능형 공기정화 시스템은 미세먼지 수치 ‘매우 나쁨’ 이상 단계의 외부 환경에서도 최대 10분 이내에 실내 공기를 ‘좋음’ 단계로 정화할 정도의 우수성을 확보했다.
현대·기아차는 앞으로 출시되는 신차에 지능형 공기청정 시스템을 순차적으로 적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쉐보레, 전 차종 글로벌 기준 필터 적용
르노삼성, SM6에 이오나이저 탑재
다른 국산 완성차 업체들은 초미세먼지 포집률을 90% 이상 높인 필터를 적용하는 차종을 늘여나가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과거에는 차량 상품성 개선에서 에어컨 필터 성능은 우선적으로 언급되는 사항이 아니었지만 지금은 고객의 최우선 관심사 중 하나가 된 만큼 업체도 해당 성능을 강화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한국지엠은 쉐보레 차량 중 글로벌 포트폴리오에 들어가는 차량은 모두 동일한 필터 성능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해당 기준은 PM1.5(지름 1.5㎛ 이하) 수준의 초미세먼지 포집률 90% 이상이다. 단 글로벌 포트폴리오에 포함되지 않는 다마스, 라보 등 한국에서만 생산·판매되는 차량은 위 기준에 맞추지 않고 있다.
한국지엠 관계자는 “쉐보레 차량들의 경우 글로벌 기준으로 생산ㆍ판매하다보니 한국보다 모래바람이나 먼지로 인한 문제가 심각한 중국, 중동 등에서도 사용할 수 있어야 해 기준을 높여놓았다”고 설명했다.
르노삼성자동차는 1~3㎛ 초미세먼지 포집률 92%의 신형 에어컨 필터를 대부분의 차종에 적용하고 있으며, 아직 적용하지 않은 차종도 페이스리프트를 거쳐 적용할 예정이다.
특히 르노삼성은 중형 승용차 SM6에 차량 내부의 세균과 유해 물질을 제거하는 공기 정화 기능 '이오나이저'를 탑재했다. 이는 음이온을 발생시켜 활성화 산소를 제거하고 세균 번식 및 탈취 기능을 하는 기술이다.
SM6의 이오나이저는 두 가지 모드로 구분된다. ‘릴렉스 모드’는 공기 중 세균과 알레르기 유발 물질을 감소시키고, ‘클린 모드’는 이온을 방출해 건강에 좋고, 안락한 주행 분위기를 만든다. 여기에 자동 탈취 기능으로 깨끗하고 쾌적한 환경도 조성하며, 여름철 발생하기 쉬운 곰팡이 제거도 가능하다.
쌍용자동차는 지난해 출시된 G4 렉스턴 이후 최근의 코란도까지 PM2.5 초미세먼지 포집률 90~95%의 고성능 에어컨 필터 적용 차종을 늘려 나가고 있다. 쌍용차의 고성능 에어컨 필터는 지름 0.3㎛ 이하의 초초미세먼지도 80~90% 수준까지 걸러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지난 2월 출시한 차세대 전략모델 코란도에는 고성농 에어컨 필터 외에도 클러스터 이오나이저를 적용했다.
테슬라, 의료등급 헤파필터 장착 ‘생화학무기 방어모드’
수입차 브랜드 중에서는 전기자동차 전문 제조사인 테슬라의 공기정화 기능이 돋보인다.
테슬라는 플래그십 라인업 전 차종에 의료 등급의 헤파필터를 장착해 미세먼지는 물론 초미세먼지와 꽃가루, 박테리아, 바이러스 등의 실내 진입을 차단한다.
헤파필터는 가장 걸러내기 어려운 입자 사이즈인 0.3㎛의 초초미세먼지에 대해서도 99.75% 이상의 포집률을 갖추고 있다.
자동차에 헤파필터를 적용한 곳은 아직 테슬라 외에는 없는데, 이는 헤파필터가 다른 필터보다 저항이 커서 공기 유입량에 대한 부담이 크고 이는 공조장치에 더 많은 부하를 가하기 때문이며, 또한 자동차의 주행 환경에서 사용할 경우 수명이 짧다는 단점이 있다.
테슬라는 헤파필터 적용과 더불어 외부 공기 유입, 내부 공기 순환, 차량 탑승자 보호를 위한 실내 양압 생성 등 3가지 공기 조절 시스템 모드를 제공한다.
특히 테슬라의 공기 정화 시스템은 ‘생화학무기 방어 모드’라고 명명되어 극한의 상황에서도 차량 내부의 공기 품질을 유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다.
테슬라는 생화학무기 방어 모드의 효과를 실험으로 입증하기도 했다. 중국 베이징 대기오염 수준의 20배에 해당하는 가상의 대기오염 상황(PM2.5 초미세먼지 농도 1000µg/㎥)을 설정한 뒤 이 안에서 실내 뿐 아니라 외부 공기 정화에도 효과를 보였다.
그밖에 메르세데스-벤츠와 BMW는 콤비필터를 이중으로 적용해 헤파필터에 근접한 공기정화 성능을 추구하고 있으며, 볼보자동차는 실내로 유입되는 공기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해 유해물질 유입을 차단하는 ‘실내공기 청정 시스템’(IAQS)를 올해 초 출시한 V60 크로스컨트리에 기본 탑재했다.
한편, 차량 실내공기를 정화할 때는 초미세먼지 및 유해물질 외에 이산화탄소 농도도 신경을 써야 한다.
국립환경과학원 관계자는 “실외 공기 질이 나쁘다고 해서 내기모드를 장시간 유지한 채 운행하면 운전자 호흡으로 인해 실내 이산화탄소 농도가 증가하고 이는 운전자의 뇌에 공급되는 산소를 감소시켜 졸음운전을 유발하여 심각한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 “실외 오염이 심각한 날 불가피하게 차량을 운행할 경우엔 내기모드 20분, 외기순환 10분을 교대로 사용해서 운행하면 오염물질 노출은 줄이고 졸음운전도 방지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