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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 전시] 홍정욱 작가, 뻥 뚫린 원형 캔버스로 ‘그림’을 말하다

리안갤러리 개인전 ‘플라노’서 입체적 페인팅 작업 선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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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김금영⁄ 2019.05.29 11:09:50

홍정욱 작가.(사진=김금영 기자)

(CNB저널 = 김금영 기자)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건 새하얀 캔버스를 채운 그림 대신 원형, 오각형 등 다양한 형태의 입체 설치물이다. 작품이 설치된 위치 또한 보편적인 전시와 다르다. 벽 한 가운데가 아닌 위쪽 또는 계단의 옆쪽, CCTV가 설치될 법한 구석 등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작품이 발견된다. 그림이라기보다는 조각이라 불러야 할 법한 이 모든 벽과 설치물들을 홍정욱 작가는 ‘그림’이라 칭한다.

리안갤러리 서울이 홍정욱 작가의 개인전 ‘플라노-(plano-)’를 6월 29일까지 연다. 전시 타이틀인 ‘플라노’는 평면을 뜻하는 ‘플랜(plan)’의 연결형으로, 어떤 수식어가 붙느냐에 따라 의미의 확장 가능성을 지녔다. 예를 들어 ‘아이스크림’이라는 단어가 있다 가정했을 때 ‘맛있는’ 아이스크림, ‘노란’ 아이스크림, ‘차가운’ 아이스크림 등으로 정체성이 새로 부여되듯이.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면 보이는 작품들.(사진=김금영 기자)

확장의 가능성을 지닌 전시명은 작가의 작업 방식과도 연결된다. 그는 그림의 가장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사각’의 캔버스 형태와 이를 왜 항상 벽 한 가운데에 걸어야 하는가에 대한 본질적 의문을 제기한다. 즉 “예술은, 그림은 이런 형태여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이럴 수도 있다”는 식의 확장의 가능성을 궁리하는 것. 작가의 캔버스가 사각형이 아닌 원형, 오각형 등 여러 형태로, 그리고 회화가 평면이 아닌 입체적인 형태를 띤 연유다.

회화를 전공했다는 작가 또한 붓을 들고 그림을 그렸을 때가 있었다. 그는 “페인팅 작업은 대학교 4학년 때까지 했다. 그러다 본질적인 궁금증이 생겼다. 그 누구도 맨 처음부터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라 시키지 않았으나 당연하게 사각형의 캔버스에 그림을 그려 왔고, 그것을 회화라는 장르로 칭했다. 사각형 형태의 캔버스가 그린 뒤 보관이 용이해 쉽게 받아들여졌던 측면도 있다”며 “하지만 아주 먼 과거엔 사각형이 아닌 원 형태의 바탕에 그림을 그렸던 경우도 분명 있었다. 꼭 그림의 본질을 사각형의 캔버스로만 이야기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여기서 내 새로운 실험들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홍정욱 작가의 캔버스는 사각형의 틀로 제한된 형태를 지니고 있지 않다. 원형, 다각형 등 다양하다.(사진=김금영 기자)

입체적 형태를 지닌 자신의 작업을 작가는 ‘조각’이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는 “수많은 질문을 받는데 나는 내 작업을 ‘브러쉬로 그림을 그린다’고 설명한다. 평평한 종이도 세우는 순간 입체가 되지 않는가? 평면과 입체의 경계가 명확하게 나눠져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평면에 조각들을 겹쳐 입체적인 요소를 만드는데 여기엔 건축적 요소도 포함된다. 그렇게 공간 창출 방법까지 아울러 그림을 탐구한다”고 설명했다.

작가는 그림의 기본 재료인 캔버스와 틀을 사용하면서도 접근 방식에 변형을 가한다. 27개의 동일한 마름모꼴 틀로 이뤄진 ‘울테리어(Ulterior)’ 연작은 내부에 볼록한 형태의 틀을 부가해 캔버스 천 위로 그 선이 두드러지도록 한 작업이다. 회화이지만 울룩불룩한 3차원적 입체 형상을 지녔다. 이를 성신영 전시 디렉터는 “부조와 같은 회화 작업”이라 설명했다.

 

벽 한 가운데가 아닌 계단과 구석 등 예상치 못한 장소에 작품이 설치됐다.(사진=김금영 기자)

‘인필(Infill)’ 연작이나 ‘카코포니(Cacophony)’ 연작에서는 캔버스 천을 제거했다. 특히 ‘인필’ 연작에는 작가가 공들여 제작한 나무틀이 사용됐다. 작은 나무 조각들을 1mm씩 각도를 기울여 접착제로 붙여 연결해 타원형, 원형, 팔각형의 틀로 완성했다.

 

관련해 작가는 “우리는 일반적으로 그림을 볼 때 캔버스의 넓은 부분만을 한정적으로 바라본다. 그 전면성을 환기시키고 새로운 각도와 시각으로 그림을 바라보게 해보고 싶었다”고 의도를 밝혔다.

 

27개의 동일한 마름모꼴 틀로 이뤄진 ‘울테리어(Ulterior)’ 연작.(사진=김금영 기자)

 

홍정욱 작가가 ‘플랜’ 대신 ‘플라노’를 꺼낸 이유

 

작품 한 가운데에서 포즈를 취한 홍정욱 작가.(사진=김금영 기자)

천이 제거돼 뻥 뚫린 가운데 공간엔 각기 다른 톤의 색상과 형태로 겹쳐진 유리 도형 등을 배치했다. 투명한 유리의 특성으로 인해 단지 틀 안에 갇힌 것이 아니라 외부와도 이야기가 연결되는 느낌이다. 이토록 캔버스 틀에 제한받지 않고 그림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끌어내는 것이 작가의 작업 목적이다.

유리가 아닌 발광 아크릴과 LED 조명을 사용한 작품도 있다. 성신영 전시 디렉터는 “이는 작가가 색채와 빛의 조합을 실험한 것으로, 빨간색의 형광 아크릴과 파란색 조명이 충돌해 내·외부로 형상을 부연하는 보라색 후광이 만들어진다. 이 오묘한 보라색 조합에서 본래의 빨강과 파란색은 보일 듯 말 듯한 미묘함을 자아낸다”고 밝혔다.

 

전시장 천장 쪽에 작품이 설치된 모습.(사진=김금영 기자)

다양한 도형과 색채의 부조와 입체적 회화로 구성된 설치작품 ‘카코포니’는 관객의 시선을 아래, 위 그리고 오른쪽, 왼쪽 등으로 이끈다. 일반적 작품 설치 장소가 아닌 벽의 주변부, 외곽에 설치돼 관객에게 새로운 지각 경험을 하도록 이끈다. 그래서 작가의 전시는 그냥 감상을 하는 게 아니라 마치 숨은 그림 찾기를 하는 독특한 느낌을 준다.

작가는 “작업을 통해 어렵고 거대한 담론을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본질이라는 건 사실 크게 어려운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것들, 시간이 없다고 그냥 지나치려는 것들을 다시 돌아보고 이야기하는 것, 그것이 본질을 살펴보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며 “조각 작품처럼 그림을 다루는 시도는 미술사에 있어 왔다. 그 과정에서 그림의 기본인 점, 선, 면을 버리고 완전 조각, 설치 분야로 간 경우도 있는데 나는 이를 버리지 않고 융합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래서 작가의 작업실엔 드로잉 도구뿐 아니라 끌, 톱 등 다양한 재료들이 있다. 항상 새로운 작업을 시도하기 위해.

 

천이 제거돼 뻥 뚫린 가운데 공간에 각기 다른 톤의 색상과 형태로 겹쳐진 유리 도형 등이 배치됐다.(사진=김금영 기자)

자유로운 작가의 작업 방식은 예술계뿐 아니라 과학계에서도 관심을 받고 있다. 과학 분야의 전문가들과 협업한 작품을 아모레퍼시픽 전시에서 선보이기도 했다. 작가는 “이 또한 흥미롭다. 똑같은 작업을 작가, 과학자가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더라. 작가가 예술적 측면에서 회화의 본질에 접근한다면 과학자는 기술적인 측면이 어떻게 반영됐는지 탐구한다”며 “나 혼자서만 신나는 작업은 의미 없다고 생각한다. 기존에도 내가 조형적 파트, 과학자가 기술적 파트를 맡는 협업을 전개한 바 있는데 앞으로도 좋은 기회가 있다면 형상기억합금을 작업에 사용해 협업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작가는 이 탐구 과정을 발전이 아닌 ‘진화’라고 표현했다. 자신의 작업의 토대를 이룬 그림을 버린 것이 아닌 굳건하게 지키고 있으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쌓아가는 것. 그것이 작가가 말하는 진화다. 그냥 ‘회화’가 아닌 ‘홍정욱의’ 회화가 앞으로 어떻게 진화할지 지켜볼 일이다.

 

홍정욱 작가는 캔버스의 사각 틀과 평면에서 벗어난 입체적인 형태의 그림을 선보인다.(사진=김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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