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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세에 발목 잡힌 총수들

“세율 지나쳐” vs “대물림 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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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639호 이성호 기자⁄ 2019.06.03 09:38:04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5월 20일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에서 진행된 고 구본무 회장 1주기 추모식에서 헌화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CNB저널 = 이성호 기자) 구광모 LG그룹 회장 약 9000억원, 조원태 한진칼(한진그룹) 오너 일가 약 1600~2000억원. 최근 갑자기 상속세를 내야 할 처지에 놓인 주요 재벌그룹 오너들의 상속세 예상액이다.

상속세란 사망으로 인해 그 재산이 가족·친족 등에게 무상 이전되는 경우 당해 상속재산에 대해 부과하는 세금이다.

과세표준에 따라 ▲1억원 이하 상속재산의 경우 10% ▲1억원~5억원 이하= 1000만원 + 1억원 초과 금액의 20% ▲5억원~10억원 이하= 9000만원 + 5억원 초과 금액의 30% ▲10억원~30억원 이하= 2억4000만원 + 10억원 초과 금액의 40% ▲30억원 초과= 10억4000만원 + 30억원 초과 금액의 50%의 상속세율이 각각 적용된다.

예를 들어 100억원을 물려받았다면 10억4000만원에, 30억원 초과 금액인 70억의 50%를 더한 45억4000만원을 상속세로 납부해야 한다. 더불어 주주의 경영권 프리미엄을 고려해 최대주주 등의 주식에 대해서는 할증평가(10~30%)까지 추가로 더해진다.

이러한 상속세 부과체계와 관련해 재계에서는 할증까지 붙어 실질적으로 상속세 최고세율이 65%까지 달한다며 볼멘소리가 높다.

따라서 현 상속세 제도는 경영 불확실성을 가져와 회사의 해외 이전, 국부 유출, 외국계 투기세력의 경영권 공격 등 부정적인 영향을 불러올 수도 있다. 재계에서 ‘현실적 수준으로 세율을 낮춰야 한다’는 주장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이미 한국경영자총협회(이하 경총)에서는 기존 상속세 명목 최고세율 50%를 25%로 인하하고 승계에 추가적인 부담을 지우는 경영권 프리미엄에 근거한 지배주주 주식의 할증 평가 폐지를 담은 경영계 의견서를 국회 상임위에 제출한 상태다.

손경식 경총 회장은 지난 3월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와 만난 자리에서 “고율의 상속세 때문에 기업인들이 많이 위축돼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며 “명문 장수기업들이 대를 이어서 발전할 수 있도록 상속세율 인하나 요건 완화와 같은 입법이 필요하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재계는 아울러 가업상속공제 요건 및 대상 확대도 촉구하고 있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 따른 가업상속공제 제도는 중소·중견기업의 장기간 축적된 기술·경영 노하우의 안정적 승계를 지원하기 위해 마련됐다.

여야 완화 법안 제출했지만

즉, 일정 요건(영위기간 10년 이상)에 해당하는 가업으로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을 제외한 매출액 3000억원 미만의 기업의 상속에 대해 최대 500억원까지 상속세를 예외적으로 공제해 주고 있다.

하지만 가업상속공제를 받게 되면 10년 동안이나 업종·지분·고용 유지 등 엄격한 사후관리조건을 충족시켜야 하는 탓에, 국세청 등에 따르면 가업상속공제제도 이용 실적은 2011년 46곳, 2012년 58곳, 2013년 70곳, 2014년 68곳, 2015년 67곳, 2016년 76곳, 2017년의 경우 91곳(건당 공제액 24억5000만원, 전체 공제금액 2226억원)에 불과하다.

 

지난 8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문재인 정권 2년, 재벌개혁은 어디에’ 토론회 모습. 사진 = 이성호 기자

이러한 까닭에 국회에서는 여·야를 막론하고 개선 법안이 속속 제출되고 있다.

김규한 의원(자유한국당)이 지난 1일 대표발의한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안은 가업상속공제 한도를 최대 500억원에서 1000억원으로 상향하고, 사후관리 기간을 10년에서 5년으로 단축하며, 가업용 자산의 처분가능 비율을 10%에서 20%로 확대하는 것이 골자다.

같은 당 정갑윤·송언석·이진복·박명재·추경호·곽대훈 의원 등도 가업상속 대상 완화와 적용 확대를 담은 개정안을 각각 국회에 제출했다. 또한 이종구 의원(자유한국당)은 최대주주 등이 보유한 주식에 대한 할증평가 특례를 폐지해, 납세자의 세 부담을 경감하고 기업의 원활한 경영권 승계를 지원하려는 법안을 냈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앞서 ‘가업상속 및 자본시장 과세체계 개선 TF’를 꾸리기도 했고 윤후덕 의원, 이원욱 의원 등이 가업상속공제의 매출액 요건을 5000억원 미만, 1조원 미만으로 각각 올리고 피상속인(선대 경영인) 계속경영기간 요건을 현행 ‘10년 이상 계속경영’에서 ‘5년 이상 계속경영’으로 완화토록 하는 상속세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부의 대물림’ 도와주냐” 반발도

한편,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은 매출 3000억원~1조원 사이 상장기업(공기업 제외) 중 대주주가 개인인 78개사의 경우, 가업상속공제 대상을 현행 매출 3000억원 아래에서 1조원으로 확대하면 총 1조7000억원의 상속세 감면을 받게 되고, 이는 자본 증가로 이어져 매출은 52조원, 고용은 1770명 증가하게 될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하지만 반대의견도 만만치 않다.

일단 기초·일괄·인적·물적공제 등으로 실제 상속세 과세자가 많지 않다는 점이다. 경제개혁연대가 2018 국세통계연보의 상속세 신고현황을 분석한 결과 2017년 상속세가 결정된 인원은 약 7000명으로 전체 상속인(약 23만명) 중 3%만이 상속세를 납부하고 있고 최종적인 실효세율은 최근 5년간 14.2% 수준에 불과하다.

 

게다가 상속세 완화는 일부 상위계층을 위한 ‘부의 대물림’ 지원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등에 따르면 ‘가업상속’이 ‘기업상속’으로 변질돼 ‘공제’가 세금 부담 없이 자녀에게 기업을 물려주는 통로가 된다는 우려가 있다. 또 가업상속공제 대상 기업은 큰 부담 혹은 의무 없이 혜택만을 받는다는 점에서 기업간 형평성 논란이 제기될 수 있다.

5월 8일 국회에서 열린 ‘문재인 정권 2년, 재벌개혁은 어디에’ 토론회에서 노종화 금속노조 법률원 변호사는 토론문을 통해 “최근 경총 등에서 상속세 부담이 너무 커 가업 승계가 되지 않는다는 주장을 펴고, 정부는 가업상속공제 확대 시도 등으로 화답하는 움직임이 있다”며 “그러나 정책효과에 대한 구체적인 검토 없이 쉽게 완화를 도모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노 변호사는 “지금은 정부와 여당이 편법 상속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규제할지를 고민해야 하는 때이지 상속세 인하를 논할 때가 아니다”고 덧붙였다.

시민사회단체들도 눈에 쌍심지를 켜고 예의주시하고 있다.

경제개혁연대는 “세율 인하로 가업 상속이 용이해질 수는 있겠지만 사회계층간 이동을 어렵게 해 장기적으로 오히려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릴 가능성이 더 높다”며 “부작용을 고려하지 않은 채 진행되고 있는 상속세율 인하 논의는 매우 무책임하다”고 꼬집었다.

참여연대에서는 가업상속공제 대상을 비상장기업·중소기업으로 축소하고 최대 500억원까지 공제한도를 줄여야 한다는 내용을 포함한 ‘2019년 세법개정안 의견서’를 기획재정부에 제출해놓은 상태다.

참여연대 관계자는 CNB에 “매출액 3000억원이면 중소기업은 물론 중견기업까지 포함돼 있고 특히 주식을 통해 소유권을 나누는 상장기업에게까지 혜택을 주고 있어 가업상속이라는 취지가 무색하다”고 고개를 저었다.

이어 “도입 당시 공제비가 1억원이었지만 현재 500억원까지 오른 상황에서 극히 일부인 상위계층을 위해 추가로 문을 넓히는 것은 과도한 특혜”라며 “오히려 축소시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처럼 곱지 않은 시각이 많다보니 국회에는 상속세를 더욱 강화시키는 법안도 올라와 있다.

유승희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지난 3월 대표발의한 ‘상속세법’ 개정안은 현행 매출액 3000억원 미만 중소중견기업을 매출액 2000억원 미만으로, 최대 500억원 공제 규모를 100억원으로 각각 축소하는 내용을 담았다.

앞서 법안을 낸 박광온 의원(더불어민주당)안도 가업상속공제의 매출액 요건을 2000억원, 공제 규모도 최대 300억원으로 줄였다. 박주현 의원(민주평화당)안은 가업요건을 10년에서 15년 이상으로 상향하며, 공제한도를 30억원으로 줄이도록 했다.

이처럼 찬·반이 엇갈리고 있는 가운데 기재부는 가업상속공제와 관련해 매출액 요건과 공제한도는 건드리지 않되 사후관리요건을 다소 풀어주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추이가 주목되고 있다.

2017년 기준 매출액 3000억원 미만 중견기업은 3865개사로 전체 중견기업 중 86.5%가 해당 구간을 차지하고 있어 현 제도에서도 대다수가 공제를 받을 수 있고, 지난 2014년 가업상속공제 한도를 최대 300억원에서 최대 500억원으로 확대한 바 있기 때문이다.

정부·여당이 가업상속 완화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고, 야당도 이를 반기는 입장이지만, 재벌개혁을 주요 정책기조로 삼아온 문재인 정부 입장에선 자칫 지지층의 반발을 불러올 가능성이 높은 카드라는 점을 무시하기 어렵다.

재계와 시민단체의 첨예한 대립 국면에서 문재인 정부가 과연 적절한 타협점을 찾아낼 수 있을지 이해관계자들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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