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 = 정의식 기자) 전기차 시장 주도권 장악을 노리는 글로벌 완성차 회사들의 경쟁이 플랫폼 확장 전쟁으로 불붙고 있다. 전기차 특유의 원가율 상승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폭스바겐, 토요타 등이 채택한 전략은 자사의 플랫폼을 외부기업에 ‘라이센스-아웃’(License-Out)하는 것. 규모의 경제로 원가절감을 도모한다는 구상이다. 현대차의 경우 내년에야 새로운 전기차 플랫폼 ‘E-GMP’를 내놓을 계획이고, 외부 확장계획은 아직 검토조차 되지 않은 상황이지만, 업계에서는 현대차도 비슷한 라이센스-아웃 전략을 선택할 것으로 보는 분위기다.
전기차(EV), 하이브리드 전기차(HEV), 수소연료전지차(FCEV) 등 친환경차의 판매량이 늘면서 완성차 업체들이 원가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신차 개발 비용과 재료비 등 원가율이 날로 증가하는 반면, 내연기관차에 비해 생산량이 많지 않다보니 ‘규모의 경제’를 이루지 못한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연간 약 30~35만대를 판매해야 손익분기점을 돌파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는 분위기다. 지난 2018년 3분기 테슬라가 보급형 전기차 ‘모델3’의 대량 양산에 성공하면서 순수 전기차 판매 실적만으로 약 6%의 영업이익률을 달성하며 손익분기점을 넘어섰는데, 이때 분기 판매량이 약 8만대 내외였기 때문이다. 연간 기준으로는 약 30~35만대 수준이다.
반면, 전기차 분야의 후발주자인 폭스바겐과 현대차그룹의 경우 지난해 약 7만대, 5만대의 전기차를 판매해 손익분기점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업계 추산으로는 폭스바겐의 경우 2020년, 현대차는 2021년에 손익분기점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문제는 테슬라에 비해 아직 폭스바겐이나 현대차 같은 기존 완성차 업체의 브랜드 파워가 부족한 상황이어서, 같은 물량을 판매했다 해도 비슷한 수준의 영업이익을 거두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같은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기존 완성차 업체들이 선택한 해법이 바로 ‘플랫폼 개발’과 ‘라이센스-아웃(Licence-Out) 전략’이다. 동일한 플랫폼을 자사, 혹은 타사의 브랜드에 적용해 더 많은 차량을 생산하고, 이를 통해 비용 절감을 꾀하는 아이디어다.
폭스바겐·토요타, 경쟁사·후보에 신기술 제공
자동차 업계에서 말하는 ‘플랫폼’을 간단히 설명하면, ‘자동차의 골격’이다. 엔진과 동력전달장치, 서스펜션, 조향장치, 제동장치 등 자동차에서 승객과 화물을 위한 각종 공간과 장치를 모두 제외한 뼈대다.
전기차 플랫폼이 필요한 건 지금까지의 전기차 대부분이 기존 내연기관 차량의 플랫폼에 배터리와 모터 등 전기차 관련 부품만 덧댄 형태였기 때문이다. 반면, 전기차에 최적화된 플랫폼을 새로 구축할 경우 각종 부품 배치가 효율적으로 이뤄지는 것은 물론 성능도 크게 향상된다. 무엇보다 플랫폼 자체를 타사에 라이센스-아웃하면 개발비 회수가 보다 빨라진다.
현재 이처럼 ‘자사 고유 플랫폼 구축 & 라이센스-아웃 전략’을 채택한 완성차 기업은 폭스바겐과 토요타, 2개사다.
먼저 폭스바겐은 지난 2018년 8월 전기차 전용 플랫폼 ‘MEB’를 공개했다. 빠르면 올해 말부터 MEB 플랫폼 기반의 전기차 ID. 시리즈가 생산될 예정이다. 모듈형 플랫폼의 강자인 폭스바겐이 자사의 내연기관용 모듈형 플랫폼 ‘MQB’를 전기차에 맞게 개선한 모델이다.
폭스바겐은 MEB로 적극적 라이센스-아웃 정책을 펼칠 계획이다. 지난 3월 스위스 제네바 모터쇼에서 헤르베르트 디스 폭스바겐 그룹 회장은 “MEB를 외부업체에 공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가장 먼저 MEB를 공급받는 외부업체는 독일 벤처기업 ‘이고 모바일’(e.Go Mobile AG)이다. 소형 전기차와 전기버스를 만드는 회사다.
이외에 중국에 FAW 폭스바겐, SAIC 폭스바겐, JAC 폭스바겐 등 3개의 합작사를 설립해 MEB 플랫폼 전기차를 생산하겠다는 계획도 공개했다. 2028년까지 누적 2200만대의 전기차 생산이 목표다.
토요타도 주력인 HEV 플랫폼의 외부 확장 정책을 추진 중이다. 지난 4월 토요타는 하이브리드 특허 2.4만개를 공개하고, HEV 플랫폼 비중을 현재의 13% 수준에서 25%까지 끌어올리겠다고 밝혔다. 이미 토요타는 자사의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스바루에 공급 중이고, 미쓰비시에 공급 예정이다. 최근에는 스즈키도 이 대열에 합류했다.
실제로 토요타는 이 전략으로 하이브리드 시스템의 비용 절감에 어느 정도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토요타가 미국에 출시한 SUV ‘RAV4’의 경우 동급 내연기관 트림과의 가격 차이가 2200달러 수준으로 덜어졌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이 차이는 4000달러 수준이었다. 반면, 현대차의 경우 같은 트림에서 내연기관차와 하이브리드 시스템의 가격 차이가 여전히 4500달러 수준이다.
현대차 E-GMP, 폭스바겐·토요타 따라잡을까?
현대차도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19’ 현장에서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Electric-Global Modular Platform)를 개발한다고 밝혔다.
E-GMP는 폭스바겐의 MEB와 달리 4륜구동을 채택한 것이 특징이다. 현재 현대차그룹이 생산하는 코나, 니로, 소울, 아이오닉 등의 전기차는 모두 전륜구동 방식인데, 3세대 전기차부터는 후륜 또는 4륜구동 방식이 성능상 우위를 점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에 따르면, 내년 초부터 2021년 중순 사이에 E-GMP 기반의 순수 전기차 양산이 시작될 예정이다. 현대차와 기아차 각각 15만대 규모, 합계 연간 30만대 규모의 양산이 예정돼 있다. 다만 E-GMP의 라이센스-아웃 계획 등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현대차 관계자는 CNB와 통화에서 “E-GMP는 내년 1월에야 개발 완료될 예정”이라며 “개발이 완성된 이후에나 활용 계획을 검토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유지웅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전세계적으로 폭스바겐의 MEB가 플랫폼 전략에서 가장 선두적인 포지션에 위치한 것으로 보이며, 현대차의 E-GMP 역시 선두권에 위치해있어 경쟁사보다 상대적 우위에 섰다”고 분석했다.
이어 “E-GMP를 공급하는 현대모비스가 그룹사가 아닌 외부로도 매출을 일으키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어 2020년쯤에는 윤곽이 어느 정도 드러날 것”이라며 “현대모비스의 최근 수주가 대부분 전기차 고객사 위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폭스바겐의 MEB 플랫폼 라이센스-아웃과 유사한 전략”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