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 = 선명규 기자) 삼성전자가 라면을 출시했다. ‘라면’이란 신상 스마트폰이 아니라 진짜 음식이다. 이름은 ‘갤럭시 라면’. 왠지 은하계에서 온 맛일 것 같은 이 라면의 존재가 얼마 전 소셜미디어를 통해 알려지면서 삼성이 분식 사업을 시작한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어떤 사연일까?
“갤럭시 라면? 진짜 저런 게 있어?”
5월 20일 오후 1시경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감성편의점 고잉메리. 계산대 앞에서 주문할 음식을 고르던 한 손님이 일행에게 이렇게 말했다. 과연 메뉴판에는 ‘갤럭시S10X냉초면맛’이란 이름이 존재했다. 봉골레맛, 국물떡볶이맛 등 나열된 라면 메뉴들 사이에 자리 잡고 있는 이름을 포착한 것이었다.
신기하다는 반응을 목격한 건 이날이 처음은 아니었다. 이미 한 달 전 온라인과 소셜미디어에서 한바탕 화제가 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땐 주로 ‘갤럭시 라면은 실존하는가’ 같은 진위 여부를 파악하려는 글들과 함께 호기심을 드러내는 이들이 많았다.
그럴 만했다. 삼성전자가 라이프 스타일 융합 플랫폼 기업 옥토끼프로젝트와 손잡고 이 라면을 선보인 건 4월. 하필 만우절과 가까워 ‘합성이네’ ‘만우절 특집인줄’ 같은 일축성 반응이 초반엔 대세였다. 하지만 의심이 사실로 밝혀지자 분위기는 급반전됐다. 봉지라면 형태로 온라인에 나온 지 얼마 안 되어 준비한 물량이 빠르게 소진됐다. 그때 미처 맛보지 못한 이들이 지금 찾는 곳이 고잉메리다. 옥토끼프로젝트가 론칭한 이곳에서는 갤럭시 라면을 조리해 판매하고 있다.
또 하나 화제가 된 건 표지에 그려진 짧은 만화였다. 이야기는 단순하게 진행된다. ‘팔 달린 삼성 갤럭시 S10이 라면을 뚝딱뚝딱 끓여 외계인들에게 내놓으면서 한 마디 한다. “bon appetit(맛있게 많이 드십시오)”. 한 그릇씩 건네받은 외계인들이 팔베개를 하고 가로누운 갤럭시의 화면을 보면서 후루룩 들이켠다.’ 은하계에서 온 것처럼 전에 없던 맛을 표현한 이 짤막한 스토리텔링이 입소문에 돛을 달았다. 이야기의 힘이 작용한 것이다.
갤럭시 굿즈 문화 창작소에 첫 등장
오프라인 매장에서 소셜미디어로 이어지는 역순의 추적기는 갤럭시 라면이 처음 등장한 곳에서 멈춰 선다. 삼성전자가 갤럭시 S10 시리즈와 이종 브랜드 간 협업 상품, 한정판 등을 소개하는 온라인 편집숍 ‘텐화점(10貨店)’이 소문의 진원지다. 숫자 10과 백화점을 섞어 이름 지은 이곳은 ‘갤럭시 굿즈’ 문화의 창작소 역할을 하고 있다.
신규 제품을 순차 공개하는 점이 흥미롭다. 삼성전자는 지난 3월 텐화점을 연 이후 매달 세 가지씩 새로운 상품을 선보이고 있다. 그렇게 4월에 나온 것 중 하나가 갤럭시 라면이다. 이달에는 아웃도어·패션·소품 브랜드들과 협업 제품을 내놨다. ‘하이브로우’와 테이블 겸 수납박스, ‘오아이오아이’와 짐쌕, ‘수향 캔들’과 양초 등이다.
여기에 나온 한정판 제품들은 소셜미디어에서 진행하는 이벤트를 완수해야 손에 넣을 수 있다. 돈 주고도 살 수 없기 때문에 오히려 소장욕구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삼성전자가 농심이나 오뚜기 같은 식품(라면) 전문기업과 손을 잡지 않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감성을 충족시키면 지갑을 여는 요즘의 소비 경향과 일상의 작은 상품에도 열광하고 수집까지 하는 ‘굿즈 문화’에 맞춰 텐화점 프로젝트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제품의 뒷이야기까지 소장하려는 소비 트렌드가 재밌는 혼종을 낳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