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방송에서 ‘바른 말 하는 경제학자’로 맹활약하고 있는 건국대 최배근 교수의 ‘이게 경제다’(샘앤파커스 펴냄 / 346쪽 / 1만 6000원)에서 눈에 띄는 점 중 하나는, 한국 경제의 폭망 시기를 IMF 외환 위기 때가 아니라 1992년부터 시작되는 이른바 ‘문민정부’ 시기로 옮겨잡고 있는 점이다.
책의 문장을 보자.
성장률은 1982~1991년간 연평균 11.2%에서 1992년 6.2%와 1993년 6.8%로 급락했다. 즉 경제성장률 하락은 외환 위기 이전부터 시작했다. 이처럼 외환 위기 이전부터 투자율이 급감하자 자본시장 개방 및 분별력 없는 금융 자유화를 추진했고, 그 결과가 모두가 알다시피 외환 위기였다. 즉 금융과 금융적 논리가 기업과 경제의 모든 측면을 지배하게 되어버리는 현상인 ‘금융화'의 파고에 직면해 금융 자유화가 적극 추진됐을 뿐 금융 안정성에 대한 고려는 부재했다.(70쪽)
내수 약화는 수출 의존 증대로 경제 구조를 전환시키고, 기업의 수출 경쟁력 강화 전략에 따라 임금 인상 억제, 비정규직 선호, 생산 자동화에 따른 고용 억제 등으로 국민소득 중 노동소득의 비중을 약화시킨다. 1990~2011년간 실질 GDP 증가율이 약 3배 증가하는 동 안 실질 임금은 약 1.6배 증가에 불과했다. 그 결과 국민총소득(GNI) 에서 가계소득의 비중은 1991년 68.5%에서 2011년 55.5%로 하락한 반면 기업소득의 비중은 12.6%에서 21.9%로 증가했다. 이렇게 외환 위기 이후 내수 취약성의 구조화와 수출에 목을 매는 경제 구조의 악순환이 형성되었다.
일반적으로 외환 위기 이후 발생한 것으로 알려진 비정규직 노동력의 사용도 이미 1990년대 초부터 진행되었다. 1992년 정부는 경제 불황을 해결한다는 명분으로 그동안 금지했던 근로자 파견 사업과 파견 근로자의 사용을 특정 직종에 한해 제한적으로 허용했고, 대법원에서도 '긴박한 기업 경영상의 필요성'의 범위를 확대함으로써 정리해고의 정당성을 인정하는 판결(1991.12.10. 선고 91 다 8647)을 선고했다.(73쪽)
‘경제는 산업화세력이 잘해’가 나온 근거
경제가 어려워지자 특히 재벌들의 요구에 따라 김영삼 정부가 자본자유화(해외에서 돈을 마구 조달해 와도 방치)를 아무 준비 없이 밀어붙였고, 당시 주류 언론들을 이를 ‘세계화’라며 찬양했다. 또한 재벌들이 싼 노동력으로 수출을 계속할 수 있도록 비정규직을 쓸 수 있도록 한 것도 당시 언론들이 “해외에서는 비정규직이 되는데 한국에선 왜 안 되냐?”고 노래를 부른 끝에 이룬 성과였다. 목소리는 주류 언론들이 냈지만, 최초 발신자는 ‘수출로 나라를 먹여살린다’는 재벌들이었고, 국민들은 이에 공감했다. “맞아. 나라가 발전하려면 더 허리띠를 졸라매고 비정규직이든, 해외 돈 들여오기든 세계화를 해야지”라는 동의였다.
그리고 그 결과는 처참한 IMF 외환 위기였다. 최 교수의 책을 읽으면서 놀라게 되는 점은, “아니, 1992~1996년이면 언론들이 ‘돈이 넘쳐난다’며 호황을 구가하던 시기 아닌가” 하고 당시를 되돌아보게 된다는 것이다.
당시 언론들은 넘쳐나는 시중자금, 그리고 성공적인 문민정부의 경제정책을 칭찬했다. 당시 장사도 잘돼 용산에 PC를 사러갔던 필자는 점원으로부터 “직장 다니시는 분이세요? 거 월급 몇 푼 받아서 어떻게 사세요?”라는 걱정 소리를 듣기도 했다. 경제가 호황이니 당시만 해도 월급쟁이보다는 장사에 나서는 게 제대로 돈을 버는 길이었다는 사회적 상식이 점원의 입에서 마구 불거져 나오는 시기였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최 교수의 진단에 따르면, 즉 경제 수치에 따르면 1992년 이후 한국 경제는 망가지는 중이었는데, 한국 언론과 그리고 그 언론의 세뇌를 받는 한국인들은 “야, 이제 정말 대한민국이 살 만한 나라가, 세계적으로 잘 사는 나라가 됐구나! 시중에 돈은 넘쳐나고, 한국인은 너무 잘나서 이제 세계화를 하고. 한국이 세계 최고의 나라가 되는 날이 하루하루 다가오고 있구나”라는 환상에 빠져 살았던 게 김영상 문민정부 시대의 삶이었다. 그러나 이 ‘현실과 다른 백일몽’은 1997년 이후 IMF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산산조각이 났고, 그때부터 흐르기 시작한 낭자한 선혈은 지금도 멈추지 않고 있음을 우리 모두 안다.
세계적으로 정평있는 최고의 정론지 뉴욕타임스에 대해서도 미국의 한 필자가 이런 글을 쓴 걸 본 기억이 있다. “뉴욕타임스 경제 기사에 위기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나와 ‘미국 경제가 정말 큰일이 났구나’ 하는 생각을 미국인이 품도록 하던 특정 시기를 이제 과거 시점으로 잡아 경제 데이터를 보면 실제로 경제가 계속 좋아지고 있던 시기였음을 알 수 있다. 이래서 언론 기사는 함부로 믿으면 안 된다”는 요지의 글이었다.
결국, 미국 경제가 좋아지던 시절에 뉴욕타임스는 ‘경제가 망가진다’는 기사를 열심히 쓴 셈이고, 한국 경제가 망가지던 시점에 한국 언론들은 ‘이제 정말 좋은 세상이 왔다’고 태평가를 부른 셈이다.
뉴욕타임스의 ‘팩트와 다른 경제 기사’는,
한국 언론들의 그것과 같을까 다를까?
이러고 보면, 참으로 기사라는 것이 믿을 수 없는 존재가 아닐 수 없다. 현실(팩트)과 기사가 따로 놀 때가 있다니 말이다.
요즘, 일부 언론과 야당으로부터, 그리고 카카오톡을 통해 “경제 폭망”이니 “민주화 세력은 역시 경제에는 무능하니 정통 보수 세력의 경제 정책으로 회귀해야 한다”, “역시 경제는 산업화 세력이 잘 한다”는 등의 주장과 논의가 무성하다.
‘경제 폭망’ 관련 프레임은 현 정부의 출범 이래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으로 경제 완전 망가져” “소득주도 성장이라는 헛된 주장”부터 시작해 “실업자 숫자 사상 최대 증가” “몇 십 년만에 처음으로 전분기 대비 마이너스 성장”까지 지치지도 않고 계속된다.
정말로 경제 폭망이 우려된다면, IMF의 권고 즉 “세계 경제 상황이 안 좋아 역풍(headwind)이 불 수 있으니, 재정 여력이 있는 한국 정부는 추경 예산을 풀어 이에 대비해야 한다”는 주문에 따르도록 특히 언론이 주장을 펼쳐야 하지만, 그러지도 않으니 정말로 경제 폭망을 걱정해서 그런 논조를 펴는 것인지, 아니면 ‘폭망 그 자체는 좋으니(정권 교체를 위해) 계속 폭망이 유지돼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정말로 궁금하다.
야당 정치인이야 정치적 득실을 위해 그런다고 하지만, 진실-팩트를 추구한다는 기치를 내걸고 있는 이른바 보수 언론들이 이러한 프레임을 유지하고 있는 데서야 정말로 ‘한국 언론은 왜 존재하지?’라는 의문을 품게 된다.
뉴욕 타임스가 실제로 경제 지표가 좋아지는 와중에서 미국 경제가 망가지고 있다는 기사를 여러 차례 썼다는 '역사 되돌아보기 평가'는, 언론 아니 인간의 착시 현상을 잘 말해준다. 경제 저 밑을 깊숙이 흐르는 경제 지표(숫자)보다는, 표피에 나타나는 시각적 경제 현상(흥청망청 돈이 많은 듯한)에 주목하기 쉬운 게, 즉 속보다는 겉모양에 더 미혹되기 쉬운 게 인간의 본성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단지, 이런 미혹이 ‘자기도 모르게’ 그런 거면 “인간이니 어쩔 수 없다”고 용서가 되지만, 특정 정치 세력을 도와주기 위해, 그리고 그 특정 정치 세력이 집권해야 해당 언론사의 돈벌이에 더 좋기 때문에 벌이는 작전이라면(국민 특히 서민이 경제 폭망의 와중에서 죽어나가건 말건에는 아랑곳않고) 그런 언론의 폐해는 정말로 단죄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요즘 최배근 교수의 인기는('이게 경제다'는 현재 베스트셀러), 일부 언론의 이런 못된 상업주의적 프레임을, 경제 수치를 근거로 깨주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돈 나오는 구멍’으로부터 자유로운 전문가
사실 언론이든 경제학자든 재벌에 해로운 얘기는 별로 하지 않는 이유는, 돈이 바로 재벌들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재벌발 논리라는 게 경제를 개선하기는커녕 더욱더 경제를 망치는 지름길이라는 점은, 앞에서 인용한 최 교수 책의 내용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경제가 안 좋으니 더욱더 임금 수준을 낮춰야 하고, 대기업들이 수출을 더 잘 할 수 있도록 한국 원화의 가치가 떨어지게 만들어야 한다’는 논리가 언론이라는 초대형 스피커를 타고 울려퍼지면서 국민의 신념으로 확립되면 될수록(논리가 내재화될수록), 국민은 더욱 낮은 임금과 더욱 높아지는 수입 물가 때문에 가난해지고 재벌은 더욱더 부자가 되면서 폭망을 향해 경제는 달려가게 된다.
2014년 출간돼 세계적으로 화제가 된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론’이 바로, ‘부자에게 돈이 얼마나 몰리는지를 보면 경제 대공황의 가능성을 점칠 수 있고, 현재 가진 자가 더 많이 가지는 현상이 위험 수위를 넘나들고 있다’는 논리를 펼쳐 대선풍을 일으켰던 것 아닌가?
‘1992년부터 이미 한국 경제의 폭망은 시작되고 있었다’는 최 교수의 분석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위험하다고 외쳐지는 대상은 위험하지 않고, 좋다고 외쳐지는 대상은 정말 위험할 수 있다’는 교훈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된다.
지금처럼 이른바 보수 언론들이 ‘경제 폭망론’을 외치면서 경고음을 울릴 때는 그 위험한 대상을 주시하게 되기 때문에 정말로 심각한 피해는 오히려 발생하기 힘들지 않느냐는 생각 때문이다. 교통사고에 비유해 설명하자면 언론이라는 증폭 스피커를 통해 “저 앞에 정말 위험한 놈이 나타나는 중이니 조심해라”는 구호가 울려퍼지고 있다면, 그 위험 쪽을 주시하게 되기 때문에 피해를 회피하거나 아니면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대책이 마련된다는 것이다. 이래서 ‘알려진 위험은 위험하지 않다’는 정리가 나오게 되는 모양이다.
정말로 위험한 건, 알려지지 않은 위험이다. 다시 교통사고로 비유하자면, 전방주시를 충실히 하고 달리는데, “느닷없이” 옆에서 나타나 내 차의 옆구리를 90도 각도로 박는 교통사고가 정말로 무시무시한 피해를 준다는 비유를 할 수 있겠다. IMF 이전, 즉 1992~1996년의 한국 경제 현실과 한국 언론의 보도가 이를 말해준다. 경제는 파국을 향해 나가고 있는데(즉, 90도 각도에서 큰 트럭이 멈추지 않고 달려오고 있는데), 언론은 장미 꽃이 활짝 핀 전방만을 바라보면서 ‘세계화 시대에 한국인이 갖춰야 할 글로벌 에티켓’을 열불나게 가르치고 있을 때야말로 IMF 외환 위기 같은 상상초월의 경제 大재앙이 무방비 상태의 측면을 강타하기 마련이라는 소리다.
지인으로부터 며칠이 멀다 하고 ‘경제가 폭망 중’이라는 카톡 뉴스가 전달돼 참으로 일일이 설명해주기도 피곤한 가운데, 그나마 최 교수처럼 숫자-팩트를 근거로, 또 ‘돈 나오는 구멍’(재벌들?)의 추천 사항과는 상관없이 실제 경제 상황을 얘기해주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는 점이, 참으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