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 = 정의식 기자) 5월 31일 현대중공업 주주총회에서 회사분할안이 가결되고, 6월 3일 새로운 지주사 한국조선해양이 출범하면서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해양 인수가 큰 고비를 넘어섰다. 신생 한국조선해양은 현대중공업과 현대삼호중공업, 현대미포조선 등 기존 3개 자회사와 인수가 진행 중인 대우조선해양까지 총 4개의 조선사를 거느리는 대한민국 대표 조선기업이 될 전망이다. 하지만 노조의 반대가 심각하고, 일본·중국·EU 등 경쟁국의 견제도 만만치 않아 여러모로 첩첩산중이다.
지난 3월 8일 권오갑 현대중공업 부회장과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이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관한 본계약을 체결하면서 시작된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해양 인수작업이 6월 3일 한국조선해양(KSOE) 출범으로 1부 능선을 넘어섰다.
5월 31일 현대중공업은 노조의 점거를 피해 주총장을 옮기는 등 우여곡절 끝에 임시 주주총회를 열고 법인분할(물적분할) 안건을 승인받았다. 이에 따라 현대중공업은 중간지주회사인 ‘한국조선해양’(존속회사)과 완전자회사인 ‘현대중공업’(분할 신설회사)으로 나뉘게 됐다.
이후 3일 한국조선해양은 서울 계동 현대빌딩에서 이사회를 열고 권오갑 부회장을 대표이사로 선임하고 본점 소재지 등의 안건을 승인했다. 존속법인인 한국조선해양과 분할 후 신설회사인 현대중공업은 이날 울산지방법원에 분할과 관련한 등기를 각각 신청했다.
한국조선해양이 출범함에 따라 현대중공업그룹의 지배구조도 일부 변경됐다. 그룹의 정점에 위치한 현대중공업지주는 조선 자회사들의 컨트롤타워 역할은 물론 연구·개발(R&D)과 엔지니어링 기능까지 전담하게 된다. 그 아래에는 조선·해양부문 중간지주사인 한국조선해양과 에너지부문 중간지주사인 현대오일뱅크, 산업기계 부문, 기타 서비스 부문 자회사들이 위치하게 되며, 현대중공업과 현대삼호중공업, 현대미포조선 등은 한국조선해양의 자회사가 된다.
대우조선해양도 인수 절차가 마무리되면 자회사로 합류하게 되므로, 한국조선해양은 대형 조선소 4개를 산하에 둔 초거대 조선기업으로 거듭나게 될 전망이다. 기존의 국내 조선산업이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빅3의 경쟁구도였다면, 앞으로는 슈퍼빅1(한국조선해양)과 빅1(삼성중공업)의 구도로 바뀌게 된다는 얘기다.
글로벌 1위 조선사 ‘명약관화’
2018년 말 기준 현대중공업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1114만 5000 CGT(표준화물선 환산톤수·점유율 13.9%)의 수주잔량을 보유한 ‘글로벌 1위’ 조선사다. 2위는 584만 4000 CGT(7.3%)를 보유한 대우조선해양이다.
두 회사만 합해도 총 수주잔량은 1698만 9000 CGT가 되며, 점유율은 무려 21.2%로 늘어나게 된다. 이는 3위인 일본 이마바리조선소의 수주잔량 525만 3000 CGT(6.6%)의 3배가 넘는 규모다.
최근 조선업계의 핵심먹거리로 높은 기술력이 필요한 분야인 LNG(액화천연가스) 운반선 시장에서도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의 점유율 합계는 약 68%에 달해 여러모로 합병회사의 경쟁력은 높을 전망이다.
특히 최근 IMO(국제해사기구)가 2020년부터 전세계 선박연료유에 대한 황산화물(SOx) 허용치를 기존 3.5%에서 0.5%로 제한하는 것을 결정하는 등 환경 규제가 강화되고 있는 것도 노후선박 교체 발주를 앞당길 것으로 예상된다. 글로벌 조선업계에 새로운 상승압력이 감지되고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한국조선해양은 이제 겨우 첫발을 뗐을 뿐으로, 아직 갈 길이 멀다. 한국조선해양의 출범 자체를 문제시하고 막으려는 세력이 많다.
노조 “법인분할 원천 무효” 주장
가장 격렬한 반대자는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2사의 노동조합이다. 이들은 대우조선 인수는 물론 이를 위한 현대중공업의 법인분할을 막기 위해 실력 행사를 서슴지 않고 있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지난 31일 현대중공업의 주주총회를 막기 위해 주총 예정 개최지였던 울산 동구 한마음회관을 27일부터 점거했다. 주총 당일 회사 측이 장소를 울산 남구 울산대학교 체육관으로 옮기자 이번에는 해당 장소로 진입을 시도했고, 이 과정에서 두 장소에 많은 피해를 남겼다.
대우조선 노조도 인수작업의 필수절차인 옥포조선소 현장실사를 온몸으로 저지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원래 6월 첫째주 안으로 실사를 마무리한다는 방침이었지만, 노조 측의 저지태세가 완강해 실사가 이뤄질 가능성이 크지 않다.
실력 행사와는 별개로 2사 노조는 ‘주총 원천 무효 소송’ 등 법적 투쟁을 통해 인수를 무산시키겠다는 전략이다.
지역 시민사회와 정치권도 노동계와 한 편이 되어 인수작업을 저지하고 있다.
3일 현대중공업 노조와 민주노총 울산본부는 울산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주총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하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일부 대주주와 사전 모의, 장소를 변경해 날치기 처리한 주총은 원천 무효”라며 “무효로 할 때까지 투쟁하겠다”고 강조했다.
더불어민주당 울산시당 노동위원회도, 정의당 울산시당, 김종훈 민중당 의원(울산 동구) 등도 노조 측 주장에 동조하고 있다.
더 심각한 반대세력은 해외에 있다.
글로벌 조선업계 1·2위의 합병이다보니 국내 공정위는 물론 미국과 EU, 일본, 중국 등 주요 국가 당국의 기업결합 심사를 모두 받아야 하는데, 조선업 분야에서 한국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일본과 중국은 물론 EU까지 심사를 까다롭게 진행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어서 승인을 낙관하기 어렵다.
노조, 해외 기업결합 심사 적극 활용 계획
특히 일본은 지난해 11월 우리 정부의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공적자금 투입에 대해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했을 정도로 견제 심리가 크다. 일각에서 한국의 방위산업 성장을 억제하는 차원에서 조선산업 기반을 약화시켜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올 정도다. 실제로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은 군함과 잠수함 등 각종 군수물자를 생산하는 핵심 방위산업체다.
지난 1월 16일 일본의 칼럼니스트 와타세 유우야는 “일본 정부는 한국의 방위산업 약체화라는 보복 조치를 철저히 해야 한다”라는 제목의 칼럼을 통해 “한국 방위산업 육성정책의 근간인 수출을 저지하고, 한국 방산기업의 일본 내 상업 행위를 제한 또는 금지하는 한편, 한국 정부의 산업정책을 통한 공적자금 투입 등을 WTO에 적극적으로 호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같은 상황을 노조 측은 적극 활용할 계획이다. 국제 노동계의 연대투쟁을 통해 인수절차를 무산시키겠다는 전략이다. 이에 업계에서는 자칫 노조의 국제연대가 경쟁국가의 심사 과정에서 인수합병을 반대하는 근거로 악용될 가능성을 우려하는 분위기다.
한 업계 관계자는 “노조의 주장은 결합승인을 막아내 현재의 빅3 구조를 그대로 유지하자는 것인데, 이미 그건 과도한 출혈 경쟁으로 인한 채산성 악화를 야기해 조선업체들을 어렵게 했다”며 “공적자금을 13조나 퍼부은 상황인데도 해법이 없어서 정부와 기업이 내놓은 대책을 막고 해외와 연대해서 현상유지를 이끌어내는 게 과연 바람직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