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 = 김수식 기자) 재계에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 일과 생활의 균형) 바람이 불고 있다. ‘삶의 질’을 중시하는 직장인들이 늘면서 생긴 말이다. 특히 대기업들은 탄력·유연·집중근무제를 앞다퉈 도입하고 있다. CNB가 기업들의 ‘워라밸 경영’ 실상을 들여다봤다.
삶의 질을 높이자는 워라밸 열풍이 유행처럼 번지면서 기업들도 이에 발맞춰 근무시간을 조절하고 있다. 대표적인 유형이 ‘근무시간관리제’와 ‘유연근무제’다.
근무시간관리제는 특정 시간을 정해 사적인 대화나 전화통화, 회의 등을 하지 않고 업무에 몰입하는 ‘집중근무시간제’와 근무시간대가 다른 점을 고려해 회의나 업무요청, 면담 등의 업무를 특정 시간에 집중하는 ‘협업시간제’로 나뉜다.
유연근무제는 개인의 여건에 따라 근로시간이나 형태 등을 조절할 수 있는 제도로, 기업조직에 유연성을 부과하려는 경영전략을 말한다. 근로시간을 법정 근로시간에 맞춰 자유롭게 조정하는 ‘탄력적 근로시간제’, 출퇴근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시차출퇴근제’, 총 근로시간 범위에서 출퇴근 및 근무 시간을 조정하는 ‘선택적 근로시간제’, 사업장 밖에서 주로 근로하는 ‘사업장 밖 간주근로시간제’ 등이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최근 대기업 144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집중근무시간제, 협업시간제 등 근무시간관리제를 운용중인 곳은 68.8%(99개사)나 됐다. 3곳 중 2곳이 기존 틀을 바꾼 것이다.
삼성전자의 경우 지난해 하반기부터 연구개발(R&D)직과 사무직을 대상으로 ‘선택적 근로시간제’를 도입, 시행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출퇴근 및 점심시간 유연화, 복장 자율화 등 다양한 근무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LG전자는 자녀를 둔 임직원을 대상으로 자녀 일정에 맞춰 오전 7시부터 10시까지 30분 단위로 출근시간을 선택할 수 있는 ‘플렉서블 출퇴근제’를 운영하고 있다.
SK그룹은 국내 대기업 최초로 격주로 일주일에 4일 근무하는 ‘주4일 근무제’를 도입했다.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기업도 근무시간 자율화에 나서고 있다.
생활용품기업 락앤락은 연휴와 주말 사이 낀 근무일을 공식 휴무일로 지정해 연차를 사용하도록 하는 ‘샌드위치데이 휴가’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이 외에도 다양한 유형의 근무제를 운영 중이다.
편의점 세븐일레븐도 ‘샌드위치 데이’에 쉬도록 하는 ‘징검다리 공동연차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화장품업체인 에네스티는 2010년 주4일제를 처음 도입한 후 2013년 전 직원으로 대상을 확대했으며, 종합교육기업 에듀윌도 최근 주4일제를 도입했다.
하지만 근무시간 자율화가 워라밸로 연결될 지는 의문이다. 일부 대기업의 경우 주4일제를 정착시키는 등 근무시간 자체를 줄이고 있지만, 아직 상당수 기업들은 근무시간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근무시간대만 조절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오전에 개인적인 일로 늦게 출근할 경우, 그만큼 늦게 퇴근해야 하는 게 유연·탄력근무의 골간이다.
‘근무시간 조정’이 워라밸 될까?
한 대기업 직원 A씨는 CNB에 “근무시간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어 업무효율성이 높아진 점은 있지만, 그렇다고 개인 시간이 늘어난 건 아니다”며 “주40시간을 채워야 하는 건 그대로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직장인 B씨는 “셧다운제(정해진 시간이 되면 컴퓨터 작동중지) 실시로 야근이 사라진건 맞지만 그렇다고 업무량이 줄어든 건 아니다”며 “집에 가서 회사업무를 보는 일이 다반사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노동계에서는 주당 근로시간 자체를 줄여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주 35시간 근무’ 등 선진국 수준의 근로조건 개선이 이뤄져야 워라밸이 안착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대기업 노조의 한 관계자는 “일주일에 12시간 이상 초과근무(연장근로)를 못하게 하는 주 52시간 노동제를 두고도 기업들의 반발이 극심한 상황이라, 모든 기업에 탄력·유연근무제가 도입되더라도 노동시간이 지금보다 줄어들지는 않는다”며 “법정 근로시간(주40시간) 자체가 줄어들지 않는 상황에서의 탄력·유연근무제는 노동자를 더 효율적으로 부려먹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