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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가 본 김상조의 진짜 모습은?

친(親)기업으로 유턴한 줄 알았는데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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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643호 도기천 기자⁄ 2019.07.08 11:09:49

지난 21일 청와대 브리핑실에 정책실장과 경제수석들이 이·취임사를 하기 위해 모여 있다. 맨 왼쪽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는 인물이 김상조 신임 정책실장. 사진 = 연합뉴스

(CNB저널 = 도기천 기자) 공정거래위원장에서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자리를 옮긴 김상조 실장을 두고 재계에서 설왕설래가 한창이다. 보기와 달리 유연한 인물이라는 평에서부터 재벌개혁의 시즌2가 시작된 것이라는 우려까지 여러 얘기가 나오고 있다. 주요 기업들은 여의도 주변과 기자들 입에서 나오는 얘기를 종합해 ‘김상조 보고서’를 만들고 있다. 그에 대한 정확한 평가가 힘든 이유는 발언들 사이의 온도차가 큰데다 실제 행보도 갈지(之)자라 방향을 점치기가 쉽지 않기 때문. 그의 진짜 모습은 뭘까.

“이번 정부마저 재벌개혁에 실패하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 “재벌개혁의 속도와 강도를 균형있게 맞추겠다” “재벌저격수라는 별명이 맘에 들진 않는다” “나는 재벌을 좋아한다. 재벌은 한국의 소중한 경제 자산이다”

지난 21일 청와대 정책실장에 취임한 김상조 실장이 공정거래위원장 때 공식·비공식 석상에서 한 발언들이다. 이를 보면 한 방향을 잡기 힘들다. 재벌개혁에 대한 강한 의지를 밝히는가하면 때로는 기업친화적인 모습을 보였다는 점에서다.

그를 오랫동안 지켜본 이들은 일단 원칙을 지키되 서두르지는 않을 것이라고 본다. 여기에는 김 실장 특유의 느긋함에 최근 악화된 경제상황이 함께 클로징 된다. 그가 취임 직후 기자들에게 “경제환경에 필요한 정책을 보완하고 우선순위를 조정해 나가겠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재계에서는 안도와 불안이 교차하는 가운데 중심축은 ‘안도’ 쪽으로 약간 더 기운 분위기다. 김 실장이 청와대 출근 첫날 기자들에게 “경제 정책의 성공을 위해서는 일관성과 유연성이라는 상반된 두 가지 기준을 조화시키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며 현실감각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큰 정책변화는 오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는 문재인 정부의 정책기조가 올해들어 기업친화적으로 바뀌었다는 점이 배경이 되고 있다.

지난해 연말 문 대통령의 복심으로 재벌개혁을 주도했던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퇴진하고,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까지 물러나면서 경제정책에 변화가 생겼다. 시장친화적 인물로 알려진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경제사령탑에 오르면서 이른바 ‘소주성’(소득주도성장)이 후순위로 밀려나고 ‘기업투자 활성화’를 전제로 하는 ‘혁신성장’이 주 화두로 등장한 상태다.

실제 변화는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홍 부총리는 취임후 첫 방문지로 충남 아산시 소재 자동차 부품업체를 찾은 것을 시작으로, 재계 인사들을 만날 때 마다 기업투자를 독려하며 제도적 지원을 약속하고 있다.

청와대 전략회의가 사상 처음으로 신세계 스타필드 코엑스몰 내 별마당도서관에서 열리기도 했다. 이는 골목상권 침해를 막겠다며 규제일변도로 내딛던 유통정책의 변화를 알리는 신호탄으로 해석됐다.

특히 재계 1위인 삼성그룹을 대하는 태도는 변화를 실감케 했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삼성 수원공장을 방문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간담회를 가진 데 이어, 지난 4월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을 방문했다. 당시 문 대통령은 “삼성의 원대한 목표 설정에 박수를 보내며 정부도 적극 돕겠다”고 밝혔다. 이 부회장이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게이트’에 연루돼 재판을 받고 있는 상황임을 감안하면 획기적인 일이었다.

이밖에도 영부인인 김정숙 여사는 지난 20일 10개 대기업의 최고경영자(CEO)급 인사들과 청와대에서 비공개 오찬을 가졌는데, 대통령 부인 신분으로는 이례적이다. 조용병 신한금융그룹 회장, 윤부근 삼성전자 부회장, 이형희 SK수펙스추구협의회 SV위원장, 오성엽 롯데지주 커뮤니케이션실장과 KB국민은행, 샘표, 한샘 등 10여개 기업 고위 임원들이 참석했다.

김상조표 예측가능 ‘동전의 양면’

이런 분위기로 인해 재계 안팎에서는 재벌이 ‘개혁 대상’에서 ‘경제 주역’으로 포지션이 바뀌었다는 말까지 나온다.

따라서 김 실장이 홍남기 부총리와 함께 ‘경제라인 투톱’으로 부상한 것을 두고도 급격한 변화보다는 정부의 우클릭 기조가 이어질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김 실장 스스로도 “김상조가 정책실장으로 가면 왜 기업의 기가 꺾일 것으로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재계, 노동시장과 더 적극적으로 소통할 것이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재벌총수들과도 만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재계는 일단 안도하면서도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대기업의 일감몰아주기 실태를 들여다보고 있는 대목에서는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공정위는 최근 LG그룹의 물류를 책임지는 판토스, 현대자동차그룹 계열 물류회사인 현대글로비스를 상대로 내부거래 현황을 조사하고 있다.

김 실장이 유연하다고하지만 원칙론자라는 점도 부담을 주고 있다. 그는 취임 직후 “공정경제는 혁신성장을 위한 토대라고 누누이 강조해 왔고, 공정거래위원장으로서 일하면서 한편으론 거칠다는 얘기를 듣고 한편으론 느리다는 평가도 받았지만 그 가운데 길로 꾸준히 가는 것이 공정경제에 이르는 일이라 생각하며 일해 왔다”고 밝혔다. 이는 문재인 정부의 트레이드마크인 ‘사람 중심 경제’의 끈을 놓지 않겠다는 의미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초기 대기업 중심의 경제구조를 ‘사람 중심’으로 전환해 성장의 과실을 골고루 나누자는데 소득주도성장을 선포한 바 있다. 이를 위해 양질의 일자리 창출, 최저임금제 보장, 본사의 횡포로부터 가맹점 보호, 대기업과 골목상권의 상생, 재벌지배구조 개편 등을 추진해왔다.

이는 기업들 입장에서는 하나같이 불편한 주제들이다. 김 실장의 발언을 예사롭지 않게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편으로는 ‘김상조 카드’를 여권 지지층 결집을 위한 ‘총선용’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기업친화적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재벌개혁이 느슨해졌다는 시민사회의 지적을 수용한 ‘두 마리 토끼’ 전략이라는 해석이다.

실제 김 실장은 재벌의 편법·불법상속, 지배구조, 내부거래 등을 지적해온 시민단체 출신이다.

1999년부터 참여연대 재벌개혁감시단장을 맡아 소액주주운동을 이끌었으며, 2006년부터는 경제개혁연대 소장으로 일하며 재벌을 비판해왔다. 삼성그룹의 경영승계와 관련된 각종 소송을 주도했고, 롯데·신세계 등 유통대기업들의 일감몰아주기, 골목상권 침해 등에 대응해왔다. 2017년 대선 때는 문재인 캠프에 합류, 캠프 산하 ‘새로운 대한민국 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아 ‘J노믹스’ 경제민주화 부문을 설계했는데, 이는 현 정부 재벌정책의 뿌리가 됐다.

이런 과정들로 인해 문재인 정부의 한축을 이루고 있는 시민사회 진영의 신망이 두텁다.

유연성·일관성, 동시 부응해야

여러 상황을 종합해 볼때, 결국 기업들이 ‘김상조식(式) 예측가능성’을 각자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경영전략의 방향이 정해질 것으로 보인다.

재계 고위관계자는 CNB에 “그분(김상조)이 그간 보여준 모습을 보면 정책적 태도가 예측가능하다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한번 예고된 사항은 끝까지 진행하는 원칙론자라는 점에서 우려되는 부분도 있다”고 털어놨다.

또다른 재계관계자는 “매를 맞을 부분이 있다면 맞겠지만 이 과정에서 충분히 소통이 이뤄질 수 있겠다는 긍정적인 기대감이 있다”며 “기업의 입장을 최대한 어필하되, 기업인 스스로 법테두리를 지키며 선을 넘지 않고 대화해 나가는 게 ‘김상조 사용법’ 아니겠냐”고 말했다.

김 실장의 유연성과 일관성, 얼핏보면 상반된 두 가지 명제에 슬기롭게 부응하는 게 기업경영에 최상이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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