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 = 손정호 기자) 게임업계의 경쟁이 치열지고 있는 가운데, 엔씨소프트가 인공지능(AI) 활용을 확대하기 위한 블루프린트를 공개했다. 이 게임사는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줄 아는 미래의 기술이 담긴 게임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런 땀방울이 담긴 내일의 게임은 어떤 모습일까. 그 현장을 다녀왔다.
“AI 기술을 활용해서 더 나은 게임을 만들 수 있습니다. 유저가 보다 편하게 게임을 플레이할 수도 있고, 개발자가 보다 손쉽게 어려운 과정을 단축시킬 수도 있어요.” (한운희 엔씨소프트 미디어인텔리전스랩 실장)
지난 18일 경기도 성남시 판교의 엔씨소프트 본사에서 ‘인공지능 미디어 토크’ 행사가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200여명의 취재진이 몰렸다. 인공지능은 마블스튜디오의 ‘어벤져스’ 시리즈에도 등장하는 등 여전히 중요한 미래기술로 꼽히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계의 연구도 활발한 상황이다.
한운희 실장은 엔씨소프트도 오랫동안 이를 준비해왔다고 강조했다. 그는 “2011년 태스크포스(TF)를 시작으로 점차 조직의 규모와 인원수를 늘려왔다”고 말했다. 한 실장은 이제 서서히 그동안의 노력을 눈 앞의 결과물로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엔씨소프트의 인공지능 조직은 2개의 센터와 5개의 랩(Lab)으로 구성돼 있다. 크게 AI센터와 NLP센터로 분류된다. AI센터 산하에는 게임랩, 스피치랩, 비전랩이 있다. 게임랩에서는 시뮬레이션과 기계학습을 통한 기획, 아트 지원 등의 업무를 한다. 스피치랩에서는 사용자 말의 내용과 감정을 인식하는 기술을 연구하고, 비전랩에서는 이미지와 동영상을 이해하고 만드는 작업을 한다. 실제 게임 플레이와 제작과정에 필요한 것을 연구하는 셈이다.
NLP센터는 언어랩과 지식랩으로 구성돼 있다. 자연어 처리와 대화 등 소통기술, 다양한 데이터 분석과 사용자 맞춤형 정보 전달 등을 추진하고 있다. 스스로 분석하고 결과물을 만들 수 있는 언어처리 기술에 대해 연구한다는 얘기다.
이날 엔씨소프트는 현재 보유하고 있는 AI기술 한가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바로 소설가 김영하의 스피치다. 이날 김 작가는 음성 오디오를 통해 “엔씨소프트가 게임과 스피치, 언어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인공지능을 연구하고 있다”며 “문학도 이 길에 함께 하는 날이 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 음성 메시지는 김 작가의 목소리를 사전에 녹음한 후, 연구실의 딥러닝 기술을 활용해 만든 것이다. 삼성전자와 애플의 최신 스마트폰에 들어있는 ‘인공지능 비서’를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엔씨소프트 ‘인공지능 배’는 어디로 향하나
인공지능은 큰 가능성을 갖고 있지만, 아직 초보적인 단계다. 이날 엔씨소프트의 인공지능 연구센터 수장들은 아직 이 기술이 당장 큰 매출을 만들지는 못한다는 점을 시인했다. 다만 앞으로 큰 가능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연구개발(R&D)을 해야만 게임사의 미래를 논할 수 있다는 데 뜻을 모았다.
이재준 AI센터장은 “현재 인공지능은 게임을 플레이하도록 돕기도 하고 개발과 검증, 테스트 과정에서 큰 역할을 하기도 한다”며 “‘블레이드 앤 소울’은 굉장히 많은 나라에서 서비스를 하기 때문에 다양한 언어의 대사들이 정확한지 확인하는 것도 큰 일이다. 하지만 AI 기술을 사용하면 편리하게 검증작업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게임을 만들 때 애니메이션 작업이 많다. 인물의 움직임을 표현할 때 수작업을 많이 한다”며 “모션 제작에 대해 기본적인 모델링을 하면, AI가 요구하는 동작을 스스로 만들어준다”고 설명했다.
보이스 서비스도 개발하고 있다. 이 센터장은 “게임에서 혈맹에게 전투 지원을 요청하는 것도 기술적으로 구현하기 힘든 일”이라며 “유저가 목소리로 명령을 하면, 게임 속 AI가 이를 시행하도록 연구하고 있다. 조만간 ‘리니지M’에도 이런 보이스 커맨더 서비스를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에 의하면 엔씨소프트는 현재 인공지능을 활용해 몇 가지 서비스를 하고 있다. ‘PAIGE(페이지) 2.0’은 인공지능 기술을 통해 야구 콘텐츠를 요약해 편집해주는 서비스다. 사용자가 응원할 구단을 설정하면 해당 구단과 선수에 대한 뉴스와 경기일정 등 다양한 읽을거리를 AI가 알아서 제공하는 방식이다. 경기가 끝나면 데이터 분석기술을 활용해 ‘WE차트’(실시간 승률변화 그래프) 등도 보여준다. 앞으로 ‘경기 압축 영상’도 자동으로 제공하도록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e스포츠 경기를 하는 AI도 있다. ‘블레이드 앤 소울’의 PVP(Player vs Player, 유저간 경기) 콘텐츠인 ‘비무’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비무 AI는 프로게이머 수준의 플레이가 가능하다. 엔씨소프트는 작년 9월 ‘블소 토너먼트 월드챔피언십’에서 ‘비무 AI 이벤트 매치’를 진행하기도 했다.
세계 9개 지역(한국, 북미, 유럽, 러시아, 중국, 일본, 대만, 태국, 베트남)의 대표팀이 참여한 이 대회에서 비무 AI는 각기 다른 버전이 한국, 중국, 유럽 선수와 3판 2선승제의 승부를 벌였다. 그 결과 수비형 비무 AI는 중국 하오란 선 선수에게 0대2로 패했고, 밸런스형 비무 AI는 유럽 니콜라스 파킨슨 선수에게 1대2로 졌지만, 공격형 비무 AI는 한국의 최성진 선수를 상대로 2대0 승리를 거뒀다.
이처럼 인공지능은 많은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현업부서 인재들과 교류하면서 R&D를 계속해야 한다는 게 이 센터장의 생각이다. 그는 “최근 방한한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도 AI를 중요하게 바라보고 있다고 강조했다”며 “이제 막 싹을 틔운 이 기술이 꽃을 피울 수 있도록 관심을 갖고 지원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NLP센터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NLP센터는 AI센터 산하 조직으로, AI센터에서 분화한 뒤 점차 독립적인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AI센터를 서포트하는 기능이 더 크지만, NLP센터만의 논리학적인 언어처리 기술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 그래야 일반인처럼 자연스러운 대화가 가능한 인공지능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장정선 NLP센터장은 “NLP센터에서는 플랫폼으로서 인공지능의 발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며 “AI가 미디어와 결합하면 어떤 것이 필요한지 관심을 갖고 있다. 사용자가 말을 걸면 최대한 자연스러운 대화를 할 수 있도록 만드는 일도 굉장히 어렵고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