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 = 이성호 기자) 정부가 주택시장 안정을 위한 가격 억제 수단으로 공공택지 위주의 ‘분양가 상한제’를 민간택지 아파트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어 초미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분양가 거품이 빠져 서민 주거안정에 기여할 수 있다며 반색하는 의견이 나오고 있지만, 건설업계는 가격 통제로 인한 수익 악화 우려로 긴장하고 있다.
국토교통부가 민간택지 아파트에도 ‘분양가 상한제’를 도입하기 위해 관련법령을 손보고 있다.
분양가 상한제는 신규주택이 적정가격으로 공급되도록 하기 위해 분양가격을 택지비와 건축비를 합한 가격 이하로 제한하는 제도를 말한다. 지난 2015년 4월부터 공공택지에만 의무 적용되고 있다. 민간택지는 주택가격 상승 우려가 있는 지역에만 탄력적으로 운용토록 하고 있지만 그동안 적용된 사례는 없었다.
다만 간접적으로 통제해 왔는데 재건축단지 등 민간택지는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되지 않지만,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분양보증을 받기 위해선 선분양 단지들의 경우 인근 단지와 비교해 105% 내로(기존에는 직전 평균 분양가의 110%) 분양가를 결정토록 강화했다.
하지만 한계에 봉착했다. 최근 강남권 아파트들이 후분양을 통해 이 같은 분양가 규제를 피해가고 있어 이를 막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 요구되는 상황인 것. 사실상 4년 전 폐지된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가 수면위로 급부상하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분양가 상한제 확대는 어렵지 않다. 모법인 주택법을 건들이지 않아도 되기에 장기 휴업중인 국회를 거칠 필요가 없다. 즉, 국토부에서 하위법령인 시행령만 개정하면 된다. 40일간의 입법예고, 법제처 심사, 규제심사, 국무회의 의결 등을 거치면 곧 바로 공포·시행될 수 있어서 관련 업계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바가지 분양 근절해야”
이 같은 정부의 움직임에 앞서 시민사회단체들은 그간 분양가 상한제 재도입을 강력하게 요구해 왔다.
경실련은 분양가 상한제 폐지 이후 서울아파트 한 채당 3억원씩 상승했고, 문재인 정부 이후에도 2억원씩 올랐다며 더이상 집값 오름을 방치해서는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완공되지도 않은 아파트를 팔며 소비자 분양대금으로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선분양제를 유지코자 한다면 응당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해 바가지 분양을 근절, 소비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분양가 상한제를 제대로 적용하면 아파트 분양가가 절반으로 낮아진다. 실제로 경실련이 강남권(강남·서초·송파) 8개, 비강남권 8개 등 16개 아파트 단지에 대해 HUG가 승인해 입주자모집 때 공개된 분양가(토지비, 건축비)를 조사한 결과, 전용 84㎡ 기준 평균 분양가는 강남권이 평당 4700만원(토지비 3300만원, 건축비 1400만원)이었다. 비강남권은 평당 2250만원(토지비 1120만원, 건축비 1130만원)이다.
특히 건축비 최고가는 신반포센트럴자이(1630만원)로, 최저가인 개포 디에이치자이(710만원)의 2.2배다. 문제는 전국 어디에서도 대동소이한 건축비가 이 지역에서는 평당 1000만원(30평 기준 3억원) 가까이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사실상 민간 사업자들이 시세기준으로 분양가를 정하고, 토지비와 건축비를 자의적으로 나눠서 책정, 소비자를 속이고 있는 데도 분양가 자율화라는 명목으로 정부가 방치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상한제가 적용될 경우 아파트 토지비는 정부가 결정공시한 공시지가라는 전제로, 건축비는 정부가 고시한 기본형건축비가 되는데 2019년 기본형건축비는 평당 640만원이다. 이를 대입해보면 강남권의 분양가는 평당 2160만원으로 HUG가 승인한 금액보다 55%가 낮고 비강남권도 평당 1130만원으로 50%가 낮아진다는 분석이다.
이에 경실련에서는 제대로 된 분양가 상한제와 분양원가 공개를 통해 적정원가, 적정이윤보다 과도하게 비싼 분양가를 통제하고, 지속적으로 주변시세보다 훨씬 낮은 주택을 공급해야 한다며 전면적인 분양가 상한제를 실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참여연대도 ‘제도의 틀’ 완비가 전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행 제도상으로는 엄청난 개발이익이 택지비에 포함되며, 모든 분양 주택에 실제 건축비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기본형건축비가 책정돼 있어 적절한 상한으로 기능하기 어려우므로 추가 보완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폭격 예고에 속 타는 건설업계
이처럼 분양가 상한제에 거는 기대가 큰 가운데 재건축 시장 및 삼성물산·현대건설·대우건설·대림산업·GS건설·HDC현대산업개발 등 주요 건설사들은 새로운 규제의 틀이 선명해 질수록 부담이 커지고 있다.
부동산114 조사에 따르면 올 하반기 전국 아파트 분양예정 물량은 임대 포함한 총가구수 기준 18만8682가구다. 그러나 실제 공급여부는 미지수다.
상반기 분양예정 물량 일부가 하반기로 미뤄졌고 HUG의 고분양가 사업장 심가기준 변경(직전 평균 분양가의 105%) 등으로 연기될 공산이 크다는 것.
또한 부동산시장 분석업체 부동산인포에 의하면 올 하반기 분양 최대어로 꼽혔던 강동구 둔촌동 둔촌주공 등 7월 이후 연말까지 서울에서 정비사업을 통해 총 1만1700가구가 일반분양될 계획이다.
부동산인포는 일단 분양가 상한제가 당장 분양가를 낮추는 효과는 있을 것으로 봤다. 하지만 서울의 신규 주택 공급에 근간이 되는 정비사업을 위축시켜 결국 신규 분양이 감소하고 2021년 이후부터는 서울 입주 아파트가 현저히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새 아파트의 희소성은 오히려 높아져 되레 가격이 상승할 수 있다는 얘기다.
건설업계에서는 전면적인 분양가상한제 시행이 민간부문 주택건설·공급의 과도한 위축 등의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한국주택협회·대한건설협회 등에서는 주택시장 과열은 일부 지역에서의 국지적인 현상임에도 분양가 상한제 적용을 확대하는 것은 주택 및 건설경기 침체, 주택시장 불안정성 증가 및 주택 품질저하 등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의견이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서는 분양가 상한제가 신규 분양 주택의 가격 억제를 통해 주변의 기존 주택가격에도 하향 압박을 가할 수 있다는 데 중점이 있으나 실제로 가격조절 효과는 그다지 크지 않다는 내용의 정책동향연구보고서를 내놨다.
HUG에 따르면 2017~2019년 서울에서 분양된 아파트 대부분의 현재 시세(분양권·입주권 매매가격 및 호가)는 당초 분양가 대비 최대 100% 안팎으로 상승했고, 가격 상승률은 대체로 주변 시세를 따라가는 흐름을 보였다는 것.
중장기적으로 분양이 줄어들어 주택시장에서 공급이 위축되고, 상대적으로 희소성이 부각되는 도심의 신규 주택들의 가격은 급등하는 등 시장 왜곡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라는 관측이다.
민간택지의 경우 HUG의 분양보증 과정에서의 고분양가 심사는 분양가 상승을 인위적으로 일시 억제할 뿐, 서민의 주거안정과 상관없이 수분양자의 시세 차익만 키워주고 주택시장에도 가격 안정 효과보다 후분양으로 내모는 부작용이 적지 않게 초래될 것이라는 진단이다.
아울러 후분양의 경우 별도의 분양보증이 필요 없어 HUG의 고분양가 관리를 회피하는 수단이 될 수 있는데, 향후 정부가 민간택지까지 분양가상한제를 확대 적용한다면 후분양 사업장도 대상에 포함될 것으로 예상했다.
서울 도심에서 대표적인 민간택지로는 재건축·재개발 단지를 들 수 있는데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되면 이들 단지의 일반 분양분 물량이 시세 대비 20~30% 낮아진 가격으로 분양될 수밖에 없다. 결국 수익 감소에 따른 사업성 추락과 조합원의 부담 증가로 인해 사업 추진이 사실상 어려워진다는 설명이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CNB에 “앞으로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되면 전반적인 공급량이 감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일반분양 수입이 감소되는 정비사업장의 경우 사업추진에 어려움을 겪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토지매입 후 분양 준비 중인 현장도 (분양이) 연기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속 타는 업계 분위기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