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 = 도기천 기자) 현대카드 정태영 부회장의 여동생 정모 씨가 오빠인 정 부회장을 상대로 제기한 민사소송에서 패소하면서 정씨가 올린 청와대 청원글의 신빙성에 의문이 일고 있다. CNB가 판결문을 입수해 논란의 실체를 들여다봤다.
정씨는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정 부회장의 ‘갑질 경영’에 대한 시정을 요구한다는 요지의 글을 올렸다. 정 부회장이 서울PMC(옛 종로학원)를 운영하면서 사익을 챙겼다는 것.
정씨는 청원 글에서 “정 부회장이 정당한 회계장부 열람을 막고, 감자를 통해 헐값에 내 지분을 인수하려 했으며, 나의 지분 가치에 따른 정당한 배당 또한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정씨는 앞서 작년 연말에 이같은 주장을 바탕으로 서울PMC을 상대로 ‘회계장부 열람 및 등사’를 요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서울PMC은 정 부회장이 지분 73.04%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정씨는 이 회사 주식 17.73%(18만7541주)를 갖고 있다. 따라서 사실상 정씨가 정 부회장을 상대로 한 재판이다.
하지만 정씨는 올해초 1심 패소에 이어 지난 23일 열린 항소심에서도 1심과 동일하게 완전 패소했다. 따라서 현재까지 430명 가량의 동의를 얻은 청와대 청원글의 진실 여부에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재판과 청원글에서 이슈가 됐던 부분은 크게 4~5가지다. 우선 정씨는 “정 부회장 측이 서울PMC의 회계장부 열람을 막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재판과정 등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정씨는 2017년 모든 회계장부를 회계사 2명과 함께 열람한 바 있으며, 2018년에는 열람을 요청한 사실조차 없었다.
이후 장부 열람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지만 1,2심 모두 패소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회계장부와 서류를 열람하거나 등사하는 건 중요한 일인 만큼 그 여부를 엄격히 판단해야 한다”며 “서울PMC 경영진의 위반행위가 존재할 수 있다는 합리적 의심이 들지 않는다”고 밝혔다.
“정 부회장이 가족들 명의의 차명계좌를 통해 회사의 자금을 운영하며 사익을 편취했다”는 정씨 주장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원고(정씨)가 제출한 증거를 볼 때 경영진의 부정행위 또는 그밖에 법령·정관 위반행위가 존재할 수 있다는 합리적 의심이 들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정 부회장의 위법행위를 입증할만한 증거가 없다는 얘기다.
재판부는 정 부회장이 회사 경비를 과다하게 지출했다는 정씨 주장에 대해서도 “여러 증거들을 볼 때 경영진이 비용을 과다하게 지출했다고 단정하기 어려우며, 오히려 2015년 학원사업 분할 이후 대부분 항목의 비용지출이 현저히 감소된 사실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정씨는 “주주들에게 정당한 배당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또한 사실과 다르다. 올해 초 서울PMC는 자산 매각과 부채 상환 이후 현금 배당을 통해 정씨에게 44억원을 배당했다.
감자를 통해 헐값에 자신의 지분을 인수하려 한다는 정씨 주장도 회사 측이 밝힌 바와는 다르다. PMC 측에 따르면, 감자를 통한 지분 매입을 먼저 요청한 이는 정씨였다. 하지만 부채로 인해 감자 진행이 어려웠다고 한다. PMC는 올해 초 건물 자산을 매각해 부채를 상환한 후 최근 이사회 결의를 통해 감자를 발표했다.
정씨는 또 PMC가 자신이 보유한 지분 가치의 80%에 해당하는 금액만 받고 지분을 정리하라고 강요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지난해 4월 개정된 세법에 따르면 비상장주식 평가 방법은 순자산 가치의 80%로 정하도록 돼 있다.
이런 앞뒤 상황들을 종합해 볼때, 정씨는 1심에서 완전 패소 뒤 2심을 앞두고 청와대 국민청원을 통해 반전을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청원글이 게시된 것은 지난 18일, 2심 판결은 지난 23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