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 = 도기천 기자) 대기업집단 전문 데이터서비스 인포빅스가 최근 10대그룹 계열 90개 상장사(금융계열사 제외)의 반기보고서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이들의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은 총 21조2977억원으로 작년 상반기(45조8189억원)보다 53.52%나 줄었다.
유가증권시장(코스피) 상장사 전체로 범위를 넓혀봐도 비슷한 수준이다.
한국거래소와 한국상장회사협의회가 12월 결산 코스피 상장사 574개사(금융업 등 제외)의 연결재무제표를 분석한 바에 따르면, 이들 기업의 상반기 영업이익은 55조581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7.09% 줄었고 순이익은 37조4879억원으로 42.95% 감소했다.
더 큰 문제는 갈수록 흐름이 나빠지고 있다는 것. 10대그룹의 2분기 영업이익은 8조1093억원으로 작년 동기(21조9189억원)보다 무려 63%나 감소했다.
이런 실적 쇼크는 우선 미중 무역분쟁 격화로 세계무역이 위축되면서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 기업들에 타격을 줬기 때문이다.
또 세계 반도체 경기가 악화되면서 코스피 시가총액 1·2위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2분기 영업이익이 각각 55.63%, 88.56% 급감한 점도 산업 전반에 영향을 끼쳤다. 이로 인해 삼성그룹 상반기 전체 영업이익이 23조2704억원에서 7조9443억원으로 65.86%나 줄었으며, SK그룹은 13조3642억원에서 5조1942억원으로 61.13% 감소했다.
양대 반도체 기업이 가져온 ‘공포’는 공급과잉에 따른 D램 가격 하락에서 비롯됐다.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지난달 PC용 DDR4 8GB D램 거래가격은 전달(3.31달러)보다 11.2% 떨어진 2.94달러에 머물렀다. 지난해 7월 8.19달러로 정점을 찍었던 D램값이 1년만에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진 것.
삼성전자는 DS(디바이스·솔루션) 부문의 영업이익이 전체 수익의 70%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반도체 의존률이 높다. 더구나 ‘반도체 굴기(屈起)’를 선언한 중국 정부는 2025년까지 200조원을 투입해 반도체 자급률을 70% 이상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라 앞으로가 더 문제다. 미국과 중국 간의 무역분쟁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 또한 부담이 되고 있다.
삼성·SK, 비상경영 돌입
이에 삼성은 반도체 의존률을 줄이기 위해 AI·5G·바이오·전장부품 등을 미래먹거리로 설정한 상태다. 이 분야에서 향후 3년간 180조원(국내 투자 130조원)을 투자해 4만명 규모의 신규 고용을 창출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그룹을 이끌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비상경영을 선포하고 대대적인 사업혁신에 나선 상태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또한 돌파구 마련을 위해 조직 정비와 분위기 쇄신에 주력하면서 밖으로는 글로벌 광폭 행보를 펼치고 있다.
다른 기업들도 혹독한 세월을 보내고 있다. 한진그룹은 주력기업인 대한항공의 영업이익이 무려 81.96% 감소하면서 그룹 전체 영업이익이 3701억원에서 1367억원으로 63.07% 감소했다. 특히 2분기에는 영업손실이 1015억원 발생해 적자 전환했다. 여기에는 달러 강세에 따른 결제비용 증가, 인건비 상승, 경기침체에 따른 항공 수요 감소 등이 종합적으로 작용했다.
문제는 3분기에 실적이 더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 지난 7월 일본의 대 한국 수출규제(화이트리스트 제외) 이후 일본 불매운동이 불붙으면서 일본여행(항공기 이용) 수요가 70~80%나 줄었다. 이에 따른 실적충격이 아직 집계되지 않은 상태다.
한화그룹은 한화케미칼(-71.87%)과 한화(-63.90%)의 부진 속에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이 1180억원으로 작년 동기(4341억원)보다 72.81% 줄어 10대 그룹 중 가장 높은 감소율을 기록했다.
이밖에 롯데그룹(-32.01%), 신세계그룹(-30.66%), LG그룹(-22.82%), GS그룹(-21.99%)도 상반기에 두 자릿수의 영업이익 감소율을 기록했다.
북미시장 침체 불구 ‘약진’
이런 가운데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그룹 두 곳만 선방해 눈길을 끌고 있다.
현대중공업그룹의 경우, 중간지주회사인 한국조선해양의 흑자 전환 등에 힘입어 영업이익이 전년 상반기에 비해 22.87%(2335억원→2869억원) 증가했다. 조선부문 건조 물량 증가 및 환율 상승 효과가 작용한 덕분이다.
특히 현대차그룹은 원화 약세(달러 강세) 및 신차 효과가 동시에 작용하면서 10대그룹 중 가장 높은 성장세를 보였다. 기아차와 현대차 영업이익이 각각 250.13%, 85.64% 늘어난 데 힘입어 상반기 그룹 영업이익이 2조4559억원에서 3조427억원으로 38.55% 늘었다.
현대차그룹에 따르면 현대·기아차는 올 상반기 미국 시장에서 64만8179대를 판매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1% 증가한 수치다. 국내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대형 SUV 팰리세이드 등이 미국에서도 효자노릇을 한 덕분이다.
이는 미국 자동차 시장의 침체 속에서 일궈낸 성과라 더 의미가 있다. 올 상반기 미국의 전체 자동차 판매량은 841만7804대로 전년 상반기에 비해 2.4% 줄었다.
증권가에서는 팰리세이드와 더불어 신형 쏘나타의 판매 본격화, 엔트리급 SUV 베뉴와 제네시스 SUV GV80 출시 등의 모멘텀에 힘입어 3분기에도 실적 호조를 이어갈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현대차가 미래산업으로 사활을 걸고 있는 수소차의 전망이 밝다. 정부는 올해 1월 ‘수소경제 로드맵’을 내놓으며 수소차를 오는 2040년 620만대 수준으로 확대하고, 14개에 불과한 국내 수소충전소도 1200개로 늘리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현대차그룹은 작년 연말 ‘FCEV(수소차) 비전 2030’을 통해 2030년까지 7조6000억원을 들여 수소차 생산 능력을 연 50만대로 늘리고, 5만1000명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초대형 플랜을 공개한 바 있다. 앞서 2013년에 세계 최초로 ‘투싼ix 수소차’ 양산에 성공했으며, 지난해에는 보급형 수소차 ‘넥쏘’를 출시해 글로벌 시장에서 교두보를 확보한 상태다.
수소차, 한국경제 한줄기 빛
하지만 곳곳에 악재도 도사리고 있다. 우선 중국 시장이 문제다. 현대차의 올 상반기 중국 시장 판매량은 전년동기대비 28.4% 감소했고, 이 기간 기아차도 16.2% 줄었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분쟁으로 중국 내수시장이 위축되고 있는 상황이라 뚜렷한 돌파구가 보이지 않고 있다.
일본의 ‘화이트리스트’(우방국에 대한 수출 절차 간소화 대상) 제외도 타격을 주고 있다. 수소차 연료탱크 소재인 탄소섬유를 일본 도레이로부터 수입하고 있기 때문.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은 공식, 비공식으로 일본을 오가며 현지 부품 공급망을 점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관계자는 CNB에 “한일 경제 갈등, 미중 무역마찰 등으로 앞날이 불투명해지면서 현재 기업들이 피부로 느끼는 경기 수준은 2008년 금융위기(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사태) 때보다 심각하다”며 “이런 가운데 그나마 현대차가 글로벌 완성차 시장에서 선방하고 있는 점이 한국경제에 작은 빛줄기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