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 = 도기천 기자) 모바일 금융결제가 보편화되면서 금융시장이 지각변동을 겪고 있다. 금융소비자의 편의성이 커지고 있지만 기존 오프라인 금융시장의 생태계 혼란, 금융사고 우려 등 부작용도 커지고 있다. 플라스틱카드 시대의 수명은 얼마나 남은걸까.
지난 주말 직장인 김성오(54) 씨는 지인으로부터 ‘6410원이 입금되었다’는 내용의 문자메세지를 받았다. 메세지에 동반된 링크를 눌러보니 앱을 설치하라는 안내가 나왔고 안내대로 실행하니 자신의 계좌에 6410원이 입금됐다.
최근 화제를 일으키고 있는 모바일 금융서비스 ‘토스’ 얘기다. 토스는 지난 5월부터 ‘송금지원금’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토스에 신규가입하면 9만원의 지원금을 얻을 수 있는데, 이 돈은 자신에게는 송금할 수 없다. 핸드폰에 저장된 지인들 중 마음대로 선택해, 적게는 몇원에서부터 많게는 몇천원씩 나눠줄 수 있다.
송금받은 사람은 이 돈을 신용카드 결제에 사용하거나 은행계좌로 보내 현금화 할 수 있다. 단, 토스에 가입해야 가능하다.
실제 기자가 이 과정을 전부 실행해봤다. 앱을 깔고 개인정보를 입력하고 몇가지 동의를 하고 지원금을 받아 20여명의 지인들에게 나눠주는 데까지 20분이면 충분했다. 특히 송금은 전화번호부에 저장된 이름을 선택해 ‘보내기’ 버튼을 누르기만하면 끝.
그렇다고 토스가 자선사업을 하는 건 아니다. 토스는 신규회원 모집에 들어가는 마케팅 비용과 인건비를 줄여 지원금으로 나눠주고 있다.
이런 독특한 영업 방식 덕분에 지난달 말 기준 누적 가입자 수가 1300만명을 돌파했고 앱 누적 다운로드가 3000만건을 넘어섰다. 월 거래규모는 약4조원에 이른다.
이러다보니 은행, 보험, 카드사들이 앞다퉈 토스에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토스는 이들과 제휴를 맺어 수익을 올리고 있다. 플랫폼을 제공하는 대신 수수료를 챙기는 식이다. KEB하나은행, SH수협은행, 씨티은행, KB국민·삼성·우리·현대카드, 저축은행 등 30여개 금융사와 손잡고 입출금, 예·적금, 대출, 신용등급 조회, 저축보험 등 다양한 금융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토스머니와 연동된 토스체크카드도 자체적으로 보급하고 있다.
종류만 50가지…우후죽순 ‘페이’ 열풍
이같은 획기적인 금융시스템은 비단 토스만의 얘기가 아니다. 최근 몇 년 새 모바일 결제가 보편화되면서 핀테크(금융+IT) 업체가 꾸준히 늘고 있다.
최근 금융감독원이 공개한 간편결제 서비스 현황 자료에 따르면 포털, 오픈마켓, 유통기업, 카드사 등 43개사가 50종의 금융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신용카드나 계좌번호를 모바일기기나 PC에 등록해 간단한 비밀번호나 지문인식으로 상품을 구매하는 방식은 기본이다. 여기에 더해 송금·대출 등 은행업무를 접목하고 있으며, 아예 카카오뱅크처럼 은행업 인가를 받은 곳도 있다.
작년 말 기준 간편결제 서비스의 전체 결제금액은 80조1453억원으로 간편결제가 본격화하기 시작한 2016년(26조8808억원)에 비해 3배 수준으로 급증했다. 이용 건수 역시 23억8천만건으로 2년 전(8억5천만건)에 비해 크게 늘었다. 전체 가입자 수(중복가입 포함)는 1억7천만명에 이른다.
이중 이용자가 가장 많은 앱은 ‘삼성페이’다. SK텔레콤이 인수한 디지털 광고기업 인크로스에 따르면, 지난 7월 기준 삼성페이 순 이용자 수는 1081만명이다.
삼성페이는 오프라인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대부분 간편결제가 모바일, PC 등 온라인에서 이뤄지는데 비해 삼성페이는 삼성전자 갤럭시폰에 각종 신용·체크카드를 탑재해 오프라인에서 사용되고 있다.
갤럭시S 시리즈 사용자들이 삼성전용 앱스토어에서 삼성페이 애플리케이션을 다운받아 설치한 뒤 자신이 사용하고 있는 신용·체크카드들을 이 앱에 등록해 사용하는 방식이다. 플라스틱카드 없이도 카드사와 제휴된 전국 어느 가맹점에서나 기존 카드결재와 동일하게 사용할 수 있으며, 각종 멤버십카드를 등록해 포인트 적립·사용도 가능하다.
여기에는 삼성만의 독보적인 기술인 MST(마그네틱보안전송)가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95% 이상의 가맹점들이 마그네틱 카드 리더기를 결제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이 기기를 삼성페이와 호환시킨 기술이다. 따라서 가맹점은 별도의 기기 설치 없이 기존 단말기로 삼성페이 결제가 가능하다. 이에 따라 신한·삼성·KB국민·우리·현대·롯데·BC·하나카드 등 8개 전업 카드사 모두 삼성페이와 제휴를 맺고 있다.
토스·카카오, 카드업 진출 초읽기
온라인에서는 ‘토스’와 인터넷은행 ‘카카오뱅크’의 이용자 수가 가장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카카오뱅크는 이용자가 4000만명에 달하는 카카오톡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확장성이 무한하다. 시중은행들과 제휴를 맺어 서비스하고 있는 ‘카카오톡 친구송금’ 기능의 경우, 공인인증서나 보안카드 없이도 즉시 송금이 가능해 이미 ‘국민간편금융’으로 자리잡은 상태다.
토스 또한 P2P·펀드·해외주식·아파트관리비 등 생활금융서비스를 확대하며 빠르게 영토를 확장하고 있다.
특히 이들은 신용카드시장 진출을 노리고 있다. 카카오뱅크는 내년 초 신용카드 출시를 목표로 최근 삼성·신한·KB국민·씨티카드 4곳과 손을 잡았다. 직접 신용카드 라이선스를 취득하지 않고 카카오 브랜드는 사용하면서 결제망과 여신 등 카드업무는 제휴 카드사가 대신해주는 ‘상업자표시 신용카드(PLCC)’ 형태로 추진할 계획이다.
토스는 비씨카드와 지난 4월 토스머니를 쓸 수 있는 토스체크카드를 내놨지만 해외 결제와 신용결제가 안 된다는 한계가 있다. 이에 금융지주계열 카드사 두 곳과 협업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카드업을 자유롭게 영위하기 위해 과거 실패했던 제3인터넷은행 설립을 재추진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이들 외에도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이동통신 3사가 공동 브랜드로 출시한 본인인증 앱 ‘패스’도 최근 가입자가 1000만명을 돌파했다. 공인인증서 없이 핸드폰 결제로 가맹점을 간편하게 이용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유통대기업들은 자사 점포 등에서 간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모바일 카드로 고객을 유혹하고 있다. 신세계그룹의 ‘SSGPAY(쓱페이)’, 롯데그룹의 ‘L.pay(엘페이)’에 이어 최근 현대백화점그룹은 ‘H몰페이’를 선보였다.
먹이사슬 최상위는 ‘핀테크기업’
이처럼 핀테크 전성기가 도래한 가운데 부작용도 속출하고 있다. 우선, 지나친 출혈경쟁이다.
토스의 경우 매출액은 매년 급성장하고 있지만 영업손실은 2016년 228억원에서 지난해 445억원으로 두 배 가까이 커졌다.
이는 과도한 마케팅 비용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지난 4월 자동충전 설정 시 최대 5만원 상당의 네이버페이 포인트를 1년 동안 지급하겠다는 내용의 이벤트를 펼친데 이어, 5월부터는 신규가입시 9만원의 송금지원금을 주고 있다.
카카오는 기존 무료였던 ‘내 계좌로 송금’ 기능을 이번 달부터 유료화 했다. 이 역시 마케팅 부문의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서다.
기존 카드시장의 생태계가 붕괴되고 있는 점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카드사들은 정부의 가맹점 수수료 인하, 카드론 증가율 연7% 이내로 제한 등 여러 규제로 수익성이 크게 악화된 상태다. 이런 가운데 삼성페이, 토스, 카카오 등 핀테크 업계는 기존 카드사들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이미 삼성페이로 인해 플라스틱카드 시대는 역사 속으로 저물고 있다. ‘플라스틱’은 카드사와 소비자를 이어온 오랜 끈이었지만 모바일에 잠식당하고 있다. 여기에다 모바일 기반 인터넷은행인 카카오가 신용카드 출시를 예고한 상태다.
따라서 최악의 경우, 주 수익원인 현금서비스 시장을 내주게 될 수도 있다. 실물카드가 사라지면 이 시장이 고스란히 모바일 대출업체로 넘어가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카드업계 일각에선 카카오, 토스 등 핀테크 기업들과의 제휴가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모바일 플랫폼을 활용한 당장의 마케팅 효과는 있겠지만, 멀리 보면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CNB에 “모바일 금융업체들의 성장으로 과거에 비해 카드론·현금서비스 등 여신 수익이 크게 줄어든 상태인데도 정부는 가맹점 수수료 인하 정책으로 카드사들을 압박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이다보니 돌파구를 찾기 위해 모바일 쪽으로 눈을 돌리고 있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핀테크 업체들에게 카드업의 주도권을 뺏길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상생대책 마련해야”
특히 카드시장의 지각변동은 카드사들 만의 문제가 아니다. 카드사들과 연계된 밴(VAN)업계도 큰 타격을 받고 있다.
밴사는 카드사를 대신해 결제 승인을 중개하고 가맹점을 관리하는 회사다. 통상 가맹점에서 카드를 결제하면 카드사는 해당 매장에 대금을 지급하고 수수료를 받는다. 이 과정에 밴사가 끼어 있다.
밴사는 고객이 결제를 취소하거나 서명 위조 등 사고가 발생할 경우를 대비해 고객이 서명한 영수증을 수집, 이를 카드사에 제출해 전표 수거료를 받는다. 또 결제 통신망과 단말기를 보급하고 관리한다. 가맹점을 모집해서 카드사와 연결시켜 주는 일도 밴사의 주요업무다. 한마디로 매장과 카드사를 연결해주는 일종의 ‘중간유통상’인 셈이다.
하지만 모바일 결제가 보편화 되면서 점차 종이전표(무서명)가 사라지고 있다. 이에 따라 카드사들은 밴사에 지급하는 ‘전표매입 수수료’를 내리고 있다. 한마디로 ‘핀테크기업(모바일)-카드사-밴사-밴대리점’ 순으로 먹이사슬이 형성되고 있는 구조다.
혹시 모를 금융사고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핀테크 기업들은 고객과 금융사를 연결해주는 중개인 역할을 하기위해 고객의 모든 금융정보를 갖고 있다. 하지만 금융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규제는 느슨한 편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CNB에 “금융당국이 은행·카드·보험사들에 대해서는 각종 규제를 통해 소비자들을 보호하고 있지만, 4차산업혁명을 내세운 혁신기업(핀테크업체)에 대해서는 관대한 편”이라며 “카카오가 정보통신기술(ICT)을 기반으로 운송업에 진출하려다 기존 택시업계과 큰 충돌을 빚은 사례에서 보듯, 혁신성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시장생태계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하게 분석해 서로 상생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