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 = 이성호 기자) 문재인 정부는 대기업 중심의 경제구조를 ‘사람 중심’으로 전환해 성장의 과실을 골고루 나누자는 소득주도성장과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비한 혁신성장에 경제정책의 무게를 두고 있다. 이를 위해 규제개혁, 양질의 일자리 창출, 재벌지배구조 개편 등을 국정운영의 우선 과제로 추진 중이다. 이에 CNB는 정부·국회의 주요 기업정책 이슈들을 연재하고 있다. 이번 주제는 보험상품 표준약관의 작성주체를 금감원에서 보험협회로 이관하자는 개정안을 둘러싼 논란이다.
활동을 재개한 국회 정무위원회가 최근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김종석 의원(자유한국당)이 대표발의한 ‘보험업법 일부개정법률안’도 안건으로 다뤄 눈길을 모았다.
깨알 같은 보험약관을 누가 만드는 게 맞을까?
이 개정안은 보험상품 표준약관의 작성주체를 현행 금융감독원에서 사업자단체인 생명보험협회와 손해보험협회로 변경함이 골자다.
현재 생보협회에는 한화생명, ABL생명, 삼성생명, 흥국생명, 교보생명, DGB생명, 미래에셋생명, KDB생명, DB생명, 동양생명, 메트라이프생명, 푸르덴셜생명, 신한생명, 처브라이프생명, 오렌지라이프생명, 하나생명, BNP파리바카디프생명, 푸본현대생명, 라이나생명, AIA생명, KB생명, NH농협생명이,
손보협회에는 메리츠화재, 한화손해보험, 롯데손해보험, MG손해보험,흥국화재해상보험, 삼성화재, 현대해상, KB손해보험, DB손해보험, 코리안리재보험, 서울보증보험, AXA손해보험, 에이아이지손해보험, 더케이손해보험, 농협손해보험이 정회원사로 가입돼 있다.
개정안은 또 ▲보험협회가 표준약관을 제정 및 변경시 이해관계자로부터 의견을 들어 금융위원회에 신고 ▲금융위는 신고 받은 표준약관을 공정거래위원회에 통보 ▲금융위는 표준약관이 법령에 위반되거나 보험계약자 등 권익을 침해할 경우 보험협회에 변경할 것을 명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내용을 담았다.
이번 개정안의 탄생은 업권간 형평성 문제에서 비롯됐다.
은행·금융투자업 등 타 금융업 관련 법률에서는 사업자단체인 협회가 표준약관을 작성토록 규율하고 있지만, 보험업권에서는 금융감독원이 표준약관을 직접 작성·제시하고 있다. 이에 다른 금융업과 동일한 체계로 정비토록 함이 법안 제안사유다.
정무위에 따르면 찬성 측은 여타 금융업권과 마찬가지로 보험 분야에 있어서도 표준약관을 사업자단체(협회)가 작성토록 함으로써 자율과 창의를 촉진할 수 있다는 의견이다.
금융위도 보험상품 개발 자율성 강화를 위해 다른 금융업권과 같이 보험협회가 표준약관을 작성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시행 준비 기간으로는 6개월 이상의 기간이 부여될 것으로 보고 있다.
“보험사 아닌 소비자에 중심 둬야”
그러나 반대가 만만치 않다.
참여연대에서는 은행·증권·보험의 3대 금융권역 중 유독 보험 분야의 소비자 분쟁이 압도적인 현실을 감안할 때, 표준약관의 작성 주체를 금감원에서 보험협회로 바꾸는 것은 금융소비자 보호에 명백하게 역행하는 행위라고 꼬집고 있다.
보험업감독규정에서는 ▲보험분야에서 유독 소비자 분쟁이 빈발한다는 점 ▲보험상품의 구조가 복잡하고 전문적이어서 소비자 단체 등의 견제가 유효하게 작동하기 어렵다는 점 ▲타 금융권역에 비해 보험사업자에 대한 보험협회의 자율규제 기능이 잘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 등을 복합적으로 감안해 보험 표준약관을 금감원이 주관토록 규정하고 있다는 전제다.
참여연대 측은 보험사의 책임성이 강화됐거나, 보험협회가 사업자들로부터 최소한의 독립성을 확보해 사업자에게 포획된 대리인이 아니라 사업자에 대한 자율규제자로 발돋움했다는 증거가 확보되기 전까지 현행 체제를 유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즉, 협회가 자율규제기구(Self-Regulatory Organization, SRO)에 걸맞은 공정성·책임성 시현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무위 법안소위에서도 일부 의원들은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보험상품의 장기성, 높은 분쟁발생률, 정보나 힘의 비대칭성 등 보험산업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금감원이 보험상품 표준약관을 작성하는 현행 유지가 바람직하다는 것.
보험협회가 이익집단이라는 점에서,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해 보험약관 관련 당국의 책임성을 당부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다.
찬·반이 팽팽하다 보니 절충안도 나왔다.
표준약관 심의위원회를 협회에다 두고 그 구성자에 소비자 대표를 참여시키거나 실손보험·자동차보험, 분쟁이 높고 장기성 보험 상품의 경우 현행처럼 금감원에서 하고 나머지 부문은 협회에 맡기는 방안도 제시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보험업계 자율성 보장보다는 금융소비자 보호에 더 무게추가 쏠려 있어, 향후 법안 논의에 진전이 있을지는 지켜볼 일이다.
김종석 의원실 관계자는 CNB에 “수정안을 만들기로 했지만 이견 차이가 심해 현재 법안심사소위에서 보류 중인 상태”라며 “금융위에서도 몇 가지 절충 대안을 내놨지만 이에 대해서도 부정적 의견이 강하다”고 밝혔다. 법안 통과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