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 = 이성호 기자) 공익법인은 재단법인 또는 사단법인으로서 사회 일반의 이익에 이바지하기 위해 장학금·학자금 및 연구비의 보조나 지급, 학술, 자선에 관한 사업을 목적으로 설립된 법인을 말한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서는 공익법인에 대한 기부 활성화를 위해 일정 범위의 상속·증여에 대해 과세가액을 불산입해 세제혜택까지 제공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5월 기준 59개 공시대상기업집단(대기업집단) 가운데 36개 집단(삼성, 현대자동차, SK(에스케이), LG(엘지), 롯데, 포스코, 한화, GS(지에스), 현대중공업, KT(케이티), 한진, 씨제이, 두산, 부영, LS(엘에스), 효성, 영풍, 금호아시아나, KT&G(케이티앤지), 코오롱, OCI(오씨아이), HDC(에이치디씨). SM, 세아, 태광, 이랜드, DB, 호반건설, 태영, 동원, 한라, 아모레퍼시픽, 삼천리, 동국제강, 하이트진로)이 69개 비영리법인(공익법인)을 보유하고 있다.
이 공익법인들은 124개 계열사에 대한 지분을 가지고 있고 평균 지분율은 1.39%다.
공익법인이 지분을 보유한 피출자 계열사 수는 롯데그룹이 롯데상사, 롯데쇼핑, 롯데지주, 롯데칠성음료, 롯데케미칼, 대홍기획, 롯데역사, 롯데제과, 롯데캐피탈, 롯데푸드, 코리아세븐 등 11개사로 가장 많았다. 이어 삼성·포스코·금호아시아나는 각각 8개, 현대중공업 7개 였다, 금호아시아나그룹 소속 6개사 및 KT 소속 1개사는 공익법인의 지분율이 100%다.
공익법인이 지분을 보유한 계열사 124개 중 63.7%가 상장사였으며, 공익법인이 기업집단의 대표회사(지주회사) 지분을 보유한 경우는 36개 기업집단 중 29개 집단(80.6%)으로 파악됐다.
특히 공익법인의 규모는 계속 늘고 있는 추세다. 2015년 65개였던 비영리법인은 현재(5월 기준) 69개로 늘었고, 피출자 계열회사 수도 같은 기간 113개에서 124개로 증가했다. 평균 지분율 역시 0.83%에서 1.39%로 늘었다.
순기능 크지만 부작용도
하지만 현행 공익법인 제도를 손봐야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관련 규제가 거의 없어 총수 일가의 지배력 확대 및 사익편취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기업 규제를 총괄하는 공정거래법에는 이에 관한 별도의 조항을 두고 있지 않다. 이러다보니 오너 일가는 공익법인을 활용해 계열사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실제 공정위가 지난해 6월 발표한 대기업집단 소속 공익법인 운영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공익법인들은 총수일가가 이사장 등의 직책을 맡고 총수 2세가 출자한 회사 등 기업집단의 지배력과 관계된 계열회사 주식을 집중적으로 보유하면서 의결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공익법인 중 동일인·친족·계열사 임원 등 특수관계인이 대표자인 경우는 59.4%이고, 이사로 참여하는 경우는 83.6%이며, 이들 공익법인이 계열사 주식에 대한 의결권 행사비율은 93.6%에 달할 정도다. 공익법인이 총수일가의 지배력 강화에 악용하고 있다는 곱지 않은 시선이 쏟아지는 이유다.
반면 계열사 주식이 공익법인의 수익에 기여하는 바는 미미한 편으로 공익법인의 자산구성 중 계열사 주식은 16.2%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수익에 대한 기여도는 1.06%에 불과했다.
또한 공익법인 중 60.6%가 동일인 관련자와 내부거래가 있는 것으로 파악됐고 상품·용역거래의 경우 평균 내부거래의 비중이 18.7%에 달했다.
이 때문에 총수일가가 4% 미만의 지분으로 계열사 출자 등을 활용해 대기업집단 전체를 지배하는 구조가 지속되는 과정에서, 우회출자를 활용한 총수일가 지배력 확대에 공익법인도 한 몫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정이 이렇다보니 정부는 국회에 기제출한 공정거래법 전부 법률안에 대기업집단 소속 공익법인이 보유하고 있는 계열회사 주식에 대해 그 의결권 행사 상한을 특수관계인과 합산해 15%로 제한할 뿐 아니라, 내부거래에 대해 공시의무를 부과하는 내용을 담았다.
단, 공익법인이 특정 계열회사의 단독주주(100% 소유)인 경우에 대해서는 의결권을 제한할 경우 계열회사의 운영이 불가능해진다는 점을 고려해 예외적 행사 가능 대상으로 추가했다.
앞서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의원(중소벤처기업부 장관)·박용진 의원·이학영 의원·민병두 의원 등이 각각 대표발의해 국회에 계류 중인 ‘공정거래법 개정안’도 대기업집단 소속 공익법인의 의결권 제한을 골자로 하고 있다.
찬·반 팽팽…법안 통과 물음표
재계는 정치권의 규제 움직임에 대해 반발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의결권 제한과 같은 직접적인 조치보다는 공시의무를 강화하면서 동시에 ‘상증세법’, ‘공익법인의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 ‘민법’ 등 관련 법률에 따라 국세청 또는 감독관청의 관리·감독을 강화하는 등 간접적인 수단이 우선시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또, 의결권 제한은 과도한 재산권 침해가 될 가능성을 높아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것.
더불어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의 ‘공익법인 및 최대주주할증평가 관련 상속세제 개편방안’ 보고서에서는 오히려 공익법인에 주식을 출연할 경우 상속·증여세가 면제되는 주식 비율을 현행 5%에서 20%로 높여야 한다고 제안했다.
미국·독일·스웨덴 등 주요 선진국은 차등의결권 주식 발행·공익재단에 대한 주식 출연·지분관리회사 설립 등 다양한 방식으로 경영권을 승계할 수 있으나, 우리나라는 이러한 방법들이 원천적으로 차단돼 원활한 경영권 승계가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아울러 국회 정무위원회 논의 과정에서 총수일가의 지배력확장 목적과 관련 없는 공익법인의 사회공헌과 기부활동이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됐다. 사회적 역할이 있으므로 총수일가의 지배력 행사를 묵인해주자는 것. 한마디로 ‘까방권(까임방지권)’을 주자는 얘기다.
이처럼 찬·반이 엇갈리고 있는데다, 국회가 조국 법무부장관을 둘러싼 논란으로 공전하고 있어 법 개정 여부는 불투명하다. 이런 상황에서 공익법인을 그대로 놔둘 수 없다는 정부의 의지는 ‘2019년 세법개정안’에 담겼다.
자산 5억원 또는 수입금액 3억원 이상 공익법인은 모두 의무적으로 수익용·수익사업용 재산가액의 1%를 지출토록 한 것인데, 이는 본래의 취지인 사회공헌을 하지 않아 고유목적사업 지출비용이 0원으로 나타나는 등 오로지 총수일가 지배력 강화에만 공익법인이 활용되는 것을 차단키 위함이다. 이 역시 국회를 통과해야 하지만 현재 국회가 공전 중이라 입법 여부는 미지수다.
한편, 여야가 20대 마지막 정기국회 일정을 합의한 가운데 참여연대는 지난 19일 발표한 국회가 반드시 처리해야할 ‘2019 정기국회 개혁입법·정책과제’에 공익법인을 통한 재벌총수의 지배력 확대 방지 관련법 개정도 포함해 촉구했다.
참여연대 관계자는 CNB에 “공익법인이 목적과 다르게 총수일가의 이해를 위해서 활용되는 측면이 있고 말 그대로 공익적 활동을 해야 하는 것이 취지에 부합하므로 꼭 의결권을 행사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전제했다.
이어 “정부안인 15% 한도 내로 의결권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전면적으로 차단시켜야 한다”며 “백지신탁 등 여러 가지 방안이 있겠지만 원칙은 막아야 한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