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 = 정의식 기자) 최근 대우건설과 현대엔지니어링이 잇따라 해외에서 대형 프로젝트를 수주하자 수년간 부진했던 해외수주가 되살아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해외 수주는 올해도 부진의 늪을 탈출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 심지어 최근 들어 사우디-이란 사이의 분쟁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자칫 그나마 확보한 대형 프로젝트마저 좌초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지난 15일 대우건설이 나이지리아에서 5조원 규모 액화천연가스(LNG) 설비 공사를 수주했다는 낭보가 전해졌다.
대우건설이 포함된 SCD(사이펨·치요다·대우건설) 조인트벤처(JV) 컨소시엄이 11일(한국시간) 나이지리아 라고스에서 발주처인 ‘나이지리아 LNG’와 나이지리아가스공사 플랜트 설비 7호 트레인(NLNG 트레인7)에 대한 투자의향서(LOI)를 체결한 것. 프로젝트의 전체 사업비는 약 5조원(43억달러) 규모로 이 가운데 대우건설의 지분은 1조5000억∼2조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대우건설은 이번 사업에서 이탈리아 사이펨, 일본 치요다화공건설 등과 컨소시엄을 구성하면서 설계·조달·시공(EPC) 이외에 기본설계(FEED)까지 담당하는 원청 사업자로 참여했다. 국내 건설사 가운데 EPC 공사를 도급 형태로 수주하는 경우는 많았지만 원청사로 들어간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어 16일에는 현대엔지니어링이 인도네시아의 새 수도 이전지 ‘발릭파판’에 건설되는 2조6000억원 규모의 정유공장 시공 계약을 따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인도네시아 국영석유회사 ‘페르타미나(PT Pertamina)’가 발주한 동(東) 칼리만탄주 ‘발릭파판 정유공장 고도화 프로젝트’를 수주, 시공 계약을 체결했다고 16일 밝혔다. 이 프로젝트는 전체 39억7000만달러 규모의 플랜트 공사로, 이 가운데 현대엔지니어링의 지분은 21억7000만달러(한화 약 2조6000억원)다.
발릭파판 정유공장은 현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에서 북동쪽으로 약 1000km 떨어진 보르네오섬 동칼리만탄주에 지어진다. 지난달 26일 발표된 인도네시아 신(新)수도 부지와 불과 20km 거리다.
이처럼 9월 들어 대규모 해외 프로젝트 수주 성공 소식이 잇따라 전해지면서 건설업계 일각에서는 그간 부진했던 해외 사업이 재부흥의 조짐을 보이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국내 주요 건설사들은 하반기 중동, 아프리카 등에서 추진 중인 대형 프로젝트의 수주 여부를 놓고 결과 발표를 기다리고 있다.
현대건설의 경우 상반기 낙찰 의향서를 받은 이라크 바스라 유정 해수공급시설 사업(25억달러)의 본 계약과 파나마 도시철도 3호선(26억달러), 알제리 복합화력발전소(8억달러) 등의 수주를 기대하고 있다.
미국發 중동 원전 사업 ‘미지수’
대우건설은 앞서 수주한 나이지리아 LNG 트레인7 사업에 이어 모잠비크 LNG액화플랜트 1공구 사업(추정 사업비 7~8억달러)의 수주를 추진 중이다.
삼성엔지니어링은 알제리 하시메사우드 정유공장(17억5000달러), 미국 PTT글로벌케미칼 에탄 분해공장(11억달러) 등의 수주를 기대하고 있다.
이민재 NH투자증권 연구원은 “건설사 별로 입찰 대기 중인 프로젝트 중 4분기 결과가 예상되는 금액은 현대건설 141억달러, 삼성엔지니어링 106억달러, GS건설 68억달러, 대우건설 50억달러, 대림산업 11억달러 정도”라고 추정했다.
여기에다 최근 미국이 원자력발전소(원전) 40기를 사우디 아라비아 등에 짓는 중동판 ‘마셜플랜’ 관련 공동사업을 한국 전력·건설업계에 제안한 사실이 전해지며, 2440억달러(약 289조원)에 달하는 초대형 건설 프로젝트가 가시화되는 것 아니냐는 희망섞인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가장 큰 수혜가 예상되는 건설사로는 과거 중동 원전 건설에 참여했던 현대건설과 대우건설이 지목됐다.
해외수주 회복의 열쇠 ‘중동 평화’
하지만 긍정적인 전망만 나오는 건 아니다. 우선, 하반기에 주요 건설사들의 해외 수주가 확대되긴 하겠지만 업계 전반의 부진을 만회할 정도는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해외건설협회 해외건설종합정보망에 따르면, 23일 기준 올해 국내 건설사들의 해외 수주는 160억7276만달러(약 16조5300억원) 수준인데,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무려 27.7%나 줄어든 수치다. 남은 기간 수주를 대폭 늘려 전년 수주 총액(321억달러) 수준을 회복한다 해도 이는 해외 수주 전성시절인 2010년 716억달러(82조6000억원)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규모다.
이처럼 해외 수주가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는 건 주요 시장인 중동 지역의 정정 불안 때문이다. 지난 2010년 해외 수주 716억달러를 기록한 이후 2014년까지 5년간 592억달러, 649억달러, 652억달러, 660억달러 등의 실적을 보이며 고공행진을 이어갔으나 2015년 수주액이 갑자기 급감, 462억달러 수준으로 내려왔고, 2016년에는 282억달러로 최저치를 찍었다. 당시 해외 수주 급락의 핵심 요인 중 하나가 2014년 6월 창립돼 본격 활동을 시작한 이슬람국가(IS)가 야기한 중동 전반의 분쟁 위협이었다.
문제는 IS의 소멸로 안정화되는가 싶었던 중동 정세가 최근 사우디-이란의 갈등이 높아지며 분쟁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급기야 지난 14일(현지시간) 사우디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의 주요 석유시설 2곳이 이란의 지원을 받는 예멘 후티 반군에 의해 드론 공격을 받아 석유 공급에 차질이 빚어지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미국의 원전 40기 공동사업 제안이 현실화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민재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과 중동 원전시장 진출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지만, 올해 안에 해당 프로젝트가 발주될 가능성은 낮다”고 분석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아예 미국의 제안 자체가 ‘사실무근’이라고 지적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지난 17일 “미국이 원전 40기를 공동 건설하는 방안을 한국에 제안했다고 보도됐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며 “중동 지역에서 건설 계획 중인 원전을 모두 합쳐도 25기밖에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