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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기사는 사업자? 해결책 동상이몽

생활물류서비스법에 노사 극한 대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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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654호 이성호 기자⁄ 2019.10.21 10:56:10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 제정을 둘러싸고 택배업계 사용자·노동자가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사진은 서울의 한 택배물류센터 모습. 사진 = 연합뉴스

(CNB저널 = 이성호 기자) 지난 8월 박홍근 의원(더불어민주당)이 대표발의한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안(이하 생활물류서비스법)은 택배·배송대행 등 생활물류에 관한 기본계획 수립, 실태조사·통계구축, 창업지원과 전문인력의 육성·관리, 시설 확충을 위한 지원과 특례 등의 내용을 담았다.

현재 육상 화물운송에 관한 유일한 제도인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은 차량의 공급, 운송·중개에 대한 규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택배업도 이 법을 따르고 있지만 운송을 위한 차량뿐만 아니라 물품의 신속한 분류·배송을 위한 정보망, 시설 등 체계적인 시스템이 요구되는 택배서비스를 규제하기에는 불충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은 전통적인 물류인 기업간(B2B) 배송에 맞춰진 법률이어서 O2O(Online to offline) 위주의 택배업종과는 어울리지 않는 측면이 있다는 것. 이에 택배·배송대행 등 생활물류의 발전을 위한 제도와 함께 종사자의 권익증진 및 안전강화, 소비자 보호를 위한 장치를 규율토록 함이 이 법의 제안목적이다.

그 취지에 따라 택배사의 영업점에 대한 지도·감독의무, 산재보험 가입의무 강제 등과 함께 종사자의 보호를 위해 ▲과로를 방지하고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필요한 휴식시간 및 휴식공간의 제공 ▲생활물류시설 내 차량의 안전한 운행을 위해 필요한 주행로, 차량접안시설 등 충분한 공간 및 시설의 확보 ▲혹서, 혹한, 폭우 및 폭설 등 종사자의 활동이 어려울 정도로 기상이 악화될 경우에 대한 안전대책의 마련 등을 명시한 점이 눈에 띈다.

정부도 법안의 제정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앞서 지난 6월 ‘제18차 경제활력대책회의’에서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표한 ‘물류산업 혁신방안’을 보면 생활물류서비스법 제정이 포함돼 있다.

‘주52시간 근무’는 딴나라 얘기

특히 이 법안은 법 사각지대에 놓인 택배 종사자들의 권익 보호와 직결된 문제다.

이들은 수입이 배송 건수와 직결되는 업계의 특성상 장시간 근무에 시달리면서도 사실상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택배종사자의 일평균 근로시간(2017년 4분기 기준)은 12.3시간으로 용달화물차주 10.4시간에 비해서도 높다. 일요일을 제외하고 주 6일 근무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주당 평균 72시간 이상으로 2018년 7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주52시간 근무제와 비교해도 매우 길다.

 

이런 상황에서 택배시장 규모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한국통합물류협회·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국내 택배시장은 2015년 이후 매년 10% 내외의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국내 총 택배물량은 25억4300만개로 2017년 대비 9.6% 성장했다.

국민 1인당 연간 택배 이용횟수도 2010년도에 25회였던 것이 2018년도에는 49.1회로 두배 가까이 늘었다. 택배업종 종사자도 매년 1000~2000명씩 증가해 2017년도에는 총 3만8000여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이에 노동계에서는 택배노동자들의 처우개선은 물론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의 적용을 받던 택배업을 별도로 분리하기 위해 ‘생활물류서비스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돼 왔다.

마침내 지난 8월 ‘생활물류서비스법’이 국회에 제출, 법안 심사를 앞두게 되자 민주노총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참여연대·한국비정규노동센터·한국진보연대·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택배노조) 등은 택배 노동자들의 오랜 숙원이었다며 쌍수를 들어 환영하고 있다.

사측 “택배종사자는 독립된 사업자”

반면, 사용자 측은 불편한 표정이다.

CJ대한통운, 한진, 롯데글로벌로지스, 동원산업, 로지스올, 동부익스프레스, 현대글로비스, 판토스, 천일정기화물자동차, 디티씨, 동방, 카고텍코리아, 인터지스, 명일, 용마로지스, 로젠, 대신정기화물자동차, 경동물류 등을 회원사로 두고 있는 한국통합물류협회는 ‘생활물류서비스법’이 택배시장의 혼란을 가중시킬 수 있다며 전면 재검토를 요구하고 있다.

먼저 법안에서는 독립적 책임 주체인 택배운전종사자가 택배서비스 이용자(중소상공인, 농수산물 생산자, 온라인쇼핑몰 판매자 및 일반소비자 등)에게 피해를 입힐 경우에 대한 책임과 의무가 규정돼 있지 않다는 점을 지적했다.

소비자의 편익을 위해서는 택배상품의 집화나 배송을 불법적으로 거부하는 등의 행위에 대한 규제방안도 담겨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또, 영업점과 택배운전종사자가 각자 독립된 사업자임에도 불구하고 택배서비스사업자에게 이들에 대한 지도·감독의무와 보호의무 등을 과도하게 부여하고 있어 비례 원칙 또는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주장했다.

 

9월 23일 오후 서울 중구 CJ대한통운 앞에서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이 연 ‘CJ대한통운 규탄대회’에서 택배노동자들이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 제정 흐름에 동참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독립된 사업자간 지도·감독은 공정거래 관련 법령 위반 소지가 있을 뿐 아니라 불필요한 경영간섭이 문제될 수 있어 기존 공정거래법, 하도급법과 충돌할 가능성도 있다는 우려다.

더불어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인 택배운전종사자 보호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 등을 포함해 기존 노동관계법령을 통해 규율되고 있는데 또 다시 생활물류법을 통해 종사자 보호에 대한 근거를 과도하게 반영하는 것은 법적 충돌을 발생시킨다는 것.

특히 자신이 담당하는 구역에 배달할 상품을 인수받는 작업은 이미 대법원 판결에서 택배운전종사자(택배기사)의 업무라는 것이 확인된 바 있어, 상품인수작업을 택배운전종사자의 업무가 아닌 ‘택배분류종사자’의 별도 업무인 것처럼 생활물류법에서 규정하는 것은 법 적용에 혼란을 가중시킬 수 있다며 고개를 젓고 있다.

이 같은 사용자 측의 강한 반발에 노동자 측도 가만히 있지 않고 즉각 응수하고 있다.

택배노조는 “택배사들이 반대 이유로 ▲택배사의 영업점에 대한 지도 감독의무 ▲산재보험 가입의무 강제 등 택배노동자 보호 의무 ▲분류업무 규정 등을 들고 있는데 이는 하나같이 택배노동자 처우 개선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뿐”이라며 “생활물류서비스법으로 자신들이 짊어질 책임을 회피하기 위함”이라고 꼬집었다.

노측 “처우개선이 우선돼야”

택배노조는 “택배노동자 처우 개선으로 고객 서비스 품질이 올라가고, 택배를 이용하는 소비자가 늘어나 택배사도 성장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할 때”라며 “택배사와 통합물류협회는 전향적인 자세로 ‘생활물류서비스법’ 제정 흐름에 동참해야 한다”고 강하게 촉구하고 있는 상태다.

이처럼 제정안을 둘러싸고 택배업계 사용자와 노동자가 장외에서 정면충돌하고 있어 향후 국회에서의 법안 심사 과정에 촉각이 곤두서고 있다. 타협점 찾기는 쉽지 않아 보여 추이는 지켜볼 일이다.

택배업계 한 관계자는 CNB에 “택배시장이 크게 성장함에 따른 택배기사들의 처우개선은 물론 산업발전을 위한 별도의 법이 필요하다는 요구는 꾸준히 있어왔다”면서도 “발의된 법안은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고 말했다.

한 예로 택배사·대리점에게 택배기사의 지도·감독의무를 명시했는데, 대리점이나 택배기사 모두 개인사업자로 대리점에서 기사에게 이래라 저래라 통제를 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

그는 “폭 넓게 52시간 근로까지 보장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지만 반대로 기사들의 건당 배송 수수료가 줄어들 수 있고, 대리점에서 근무시간을 넘기지 말라며 물량을 적게 주게 되면 갑질이 될 수도 있고 기사들과 다툼의 소지가 다분하다”고 바라봤다.

생활물류법안에는 종사자의 과로를 방지하고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필요한 휴식시간 및 휴식공간의 제공 등을 적시하고 있다.

한편,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생활물류서비스법과 관련해 이해관계자들의 입장이 첨예하게 엇갈리고 있어 아무래도 진통이 상당할 것”이라며 “새로 생기는 법안의 좋은 의도의 취지에 맞게 이해당사자 모두가 한발씩 양보하는 해법이 필요해 보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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