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 = 손정호 기자) 올해 재벌 대기업들을 상장 플랜에 있어서 희비가 엇갈렸다. 일부 기업은 과감한 상장으로 ‘핑크빛 미래’에 한발 더 다가섰지만, 어떤 곳은 여전히 플랜을 보류상태에 걸어두고 있다. 명암이 갈린 이유는 뭘까.
올해 기업공개(IPO) 시장은 하반기로 접어들수록 기대감이 조금씩 회복되고 있다.
22일 한국거래소 기업공시채널(KIND)에 의하면, 올해 코스피 시장에 새롭게 입성한 기업은 3곳(우리금융지주, 현대오토에버, 드림텍)이다. 2016년 14곳에서 2017년 8곳, 2018년 9곳으로 줄었다. 올해는 10월 중순까지 3곳에 머물고 있는 셈이다.
우리금융지주는 지난 2월 코스피에 등장했다. 민영화와 지주회사 체제 변화에 따라 우리은행과 우리금융지주의 주식을 1:1 비율로 신규 상장했다. 이후 우리카드와 우리종합금융의 지분을 매입해 지주사 체제를 견고하게 만들었다.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 겸 우리은행장 등 경영진들은 자사주를 매입하는 등 투자자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애쓰고 했다.
현대오토에버는 현대자동차그룹의 시스템통합(SI) 기업이다. 현대자동차(28.95%)가 최대주주다. 정의선 현대자동차 수석부회장이 2대 주주(19.47%)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기아자동차와 현대모비스, 현대건설 등도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현대오토에버는 미래형 자율주행자동차 사업에 있어서 네트워크 인프라를 구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밖에 심사가 진행 중인 곳은 이달 예비심사를 통과한 롯데리츠, 한화시스템, 현대에너지솔루션, 자이에스앤디, 지누스 등 5곳이다.
이중 롯데리츠는 이달 말 상장이 확정된 곳이다. 최근 공모주 청약에서 경쟁률이 63대 1에 이르는 등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이 회사는 지난 3월 롯데쇼핑의 부동산투자회사로 설립됐다. 롯데쇼핑이 보유한 백화점 4곳, 마트 4곳, 아울렛 2곳 등 상업용 부동산이 주요 투자 대상이다. 이 자산의 연면적은 총 63만8779㎡(19만평)이며, 감정평가액이 약 1조5000억원에 달해 국내 상장 리츠 가운데 가장 큰 규모다.
롯데리츠는 이 부동산에서 나오는 임대소득을 투자자들에게 배당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앞으로 롯데그룹의 호텔과 물류 등 다른 부동산 자산도 편입해 포트폴리오를 확장할 예정이다.
한화시스템은 한화그룹의 방위산업과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이다. 삼성전자와 프랑스 방산업체 탈레스가 합작해 만든 삼성테크윈이 전신이다. 한화그룹에서 매입한 후 시스템통합 기업인 한화S&C를 합병했다. 작년 매출 1조1289억원, 영업이익 448억원 수준이다. 한화시스템은 상장을 통해 글로벌 방산, 정보통신 기업으로 도약한다는 포부다.
현대에너지솔루션은 현대중공업그룹의 태양광에너지 기업이다. 현대중공업의 그린에너지사업부를 현물 출자해 설립됐다. 작년 매출 3476억원, 영업이익 139억원 수준이다. 공모 규모는 약 1000억원이다. 상장을 통해 향후 성장 가능성이 높은 친환경에너지 사업에 속도를 내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자이에스앤디는 GS건설의 계열사다. GS건설이 지분 91%, GS네오텍이 8%를 보유하고 있다. 주택 건설과 부동산 임대, 홈네트워크 등의 사업을 하고 있으며, 작년 매출은 2127억원이다. 공모 규모는 369억원으로 예상되고 있다.
내년 등장할 기대주는?
하지만 홈플러스리츠, 이랜드리테일 등은 계획을 연기했다. 기대주로 꼽혔던 현대오일뱅크, 교보생명, 호텔롯데 등도 여전히 보류 상태다. 이들은 시장상황을 예의주시하며 내년에 재도전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 SK바이오팜, 현대카드 등도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이중 가장 큰 대어(大魚)는 현대오일뱅크다. 이 회사는 현대중공업그룹의 석유정제 기업이다. 작년 매출만 21조원에 달한다. 공모금액이 10조원 수준으로 예상되고 있다. 작년 하반기부터 상장을 추진했지만 금융당국의 회계감리(다국적 석유기업 쉘과의 합작회사인 현대쉘베이스오일을 자회사에서 관계사로 변경한 문제)가 강화돼 차질이 생겼다.
이후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영 석유회사인 아람코와 ‘프리 IPO(상장 전 지분투자)’를 진행했다. 아람코(에스오일의 지분 63%를 보유하고 있는 최대주주)는 현대오일뱅크의 지분 19.9%를 1조8000억원에 사들였다.
교보생명은 재무적 투자자(FI)와의 문제가 걸림돌이다. 어피니티컨소시엄 등 재무적 투자자들은 풋옵션(투자금 회수를 위한 지분매수청구권)을 요구하고 있는데, 신창재 교보생명 대표와 주당 가격에 있어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신 회장은 재무적 투자자들이 요구하는 가격이 너무 높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교보생명은 이 문제가 해결되는 대로 다시 추진할 예정이다.
호텔롯데도 대기 중이다. 호텔롯데 또한 예상공모액이 6조원에 이르는 대어다. 일본롯데홀딩스 등 일본롯데 관계사들이 전체 주식의 99%를 갖고 있다.
롯데는 ‘오너일가-광윤사-일본롯데홀딩스-호텔롯데-한국롯데지주’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를 갖고 있다. 호텔롯데는 한국 롯데의 중간지주회사 격이자 일본 롯데와의 연결고리다.
따라서 호텔롯데를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하게 되면 국내 일반주주의 지분율이 높아지게 돼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일본 기업’ 논란을 불식시킬 수 있는데다, 명실공히 한·일 공동경영체제를 확립할 수 있게 된다.
아직 구체적인 상장 계획이 나온 건 아니지만, 증권가에 따르면 면세점 사업의 실적 등을 봐가며 알맞은 시점을 찾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홈플러스리츠는 홈플러스(대형마트) 점포 51개를 토대로 한다. 최대주주인 사모펀드 MBK파트너스가 만들었다. 공모규모만 2조원에 달하지만 국내외 기관투자자들이 외면해 연기했다.
하지만 리츠시장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이 높아질 경우 내년에 플랜을 재추진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랜드리테일은 이랜드그룹의 유통기업이다. NC백화점, 2001아울렛, 뉴코아아울렛 등을 운영한다. 2017년 한 차례 연기했지만 다시 훗날을 도모하기로 했다.
이랜드리테일 측은 주식시장의 변동성이 커져서 불확실성이 높아졌다며, 계획을 미루고 자사주 매입을 진행해 투자자들의 신뢰를 얻는 과정을 먼저 진행하기로 했다. 이후 적절한 시점에 계획을 재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상장 시장 살아날까
이처럼 올해 상장 시장이 부진했던 이유는 복합적이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분쟁이 계속 되고, 일본의 수출제재가 겹쳐지면서 코스피 지수가 크게 힘을 쓰지 못한 것이 표면적인 이유로 꼽힌다.
하지만 미중 양국이 무역분쟁에 합의하고, 일본 수출제재 품목에 대한 국산화가 완수되면 대외 불안요인이 일단락되면서 코스피·코스닥 지수가 상승흐름을 탈 가능성도 있다. 지수가 상승하면 상장 시장도 활기를 뛸 전망이다.
SK증권 이소중 연구원은 CNB에 “10~12월에 롯데리츠와 한화시스템 등이 예정돼 있다”며 “현대오일뱅크와 호텔롯데, 교보생명 등 대형사들은 아직 불투명하지만 투자심리가 회복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