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 = 정의식 기자) 게임회사인 넷마블이 뜬금없이 정수기·비데 렌털회사 웅진코웨이의 인수자로 등장하자 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넷마블은 왜 본업과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웅진코웨이에 눈독을 들이게 됐을까? 사실 넷마블이 비(非)게임사에 투자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간 다양한 미래성장산업에 투자해왔고, 웅진코웨이 인수는 그 연장선상에 있다는 게 넷마블 측의 설명이다. 일각에선 ‘인수 시너지’가 명확하지 않다는 우려도 제기되지만, 넷마블은 자신만만한 표정이다.
지난 14일 웅진그룹이 웅진코웨이 매각을 위한 우선협상대상자로 넷마블을 선정하면서 국내 유수의 게임사가 렌털업계 1위 기업을 인수하는 색다른 인수합병(M&A)이 조만간 가시화될 전망이다.
웅진코웨이는 과거 웅진그룹의 핵심 ‘캐시카우’ 기업이었지만 과도한 사업확장으로 웅진그룹이 유동성 위기에 내몰리면서 2013년 MBK파트너스에 매각됐다. 이후 웅진그룹은 올해 3월 MBK파트너스로부터 코웨이 지분 22.17%를 1조6800억원에 인수하고, 다시 2000억원가량의 추가 지분 인수를 통해 25.08%의 지분을 확보하는데 성공하면서 ‘코웨이’의 사명을 다시 ‘웅진코웨이’로 되돌렸다.
하지만 웅진그룹은 코웨이 인수 직후 웅진에너지가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하는 등 재무리스크가 증가하자 다시 코웨이 지분 25.08%를 매물로 내놨다. 6월부터 시작된 매각 절차에서 SK네트웍스, 베인캐피털, 칼라일, 하이얼 컨소시엄 등이 입찰자로 거론됐다. 하지만 지난 10일 이뤄진 매각 본입찰은 넷마블과 베인캐피털의 2파전으로 좁혀졌고, 14일 웅진그룹 이사회는 넷마블의 손을 최종적으로 들어줬다.
웅진그룹과 넷마블은 세부사항을 협의해 이르면 이달 말 주식매매계약을 체결하고, 연내에 인수합병 계약을 마무리할 방침이다. ‘게임’과 ‘렌털’이라는 전혀 다른 두 사업이 결합해 어떤 시너지를 낼지 업계의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구독경제를 ‘미래먹거리’로
투자금융업계에 따르면, 넷마블은 매각 대상인 웅진코웨이 지분을 1조8000여억원에 인수하겠다고 제안했다. 게임기업인 넷마블이 2조원에 육박하는 거액을 들여 렌털기업을 인수한 이유는 무엇일까?
넷마블 측에 따르면, 이는 일부에서 추정하는 ‘게임사업의 불안한 미래’ 때문은 아니다. 게임사업의 전망은 여전히 밝다는 것.
권영식 넷마블 대표는 14일 열린 웅진코웨이 인수 관련 컨퍼런스콜에서 “게임 산업에 대한 한계나 성장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진행한 것은 아니다. 현재 게임 산업은 여전히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다고 판단한다”며 “최근 몇 년간 지속적으로 게임 업계에서 큰 투자를 진행해왔고 앞으로도 적극적으로 진행할 계획”이라고 선을 그었다.
실제로 넷마블은 최근 수년간 게임사 인수합병 전략에 집중해왔다. 2016년 4조원 규모의 글로벌 소셜카지노 게임기업 ‘플레이티카’ 인수를 추진했다가 중국기업에 밀렸지만, 2017년 9000억원 규모의 북미 모바일 게임사 ‘카밤’ 인수에는 성공했다. 2018년에는 카카오게임즈 유상증자에 참여해 주주가 됐다. 그리고, 올해는 무려 10조원 규모의 넥슨 인수를 추진하기도 했다. 넷마블 측에 따르면, 지난 5년간 무려 100개 이상의 게임사에 대한 인수 혹은 투자를 검토했다고 한다.
물론 넷마블이 게임사업에만 관심을 가진 건 아니다. 다양한 산업에 적극적으로 투자했다. 방탄소년단(BTS) 기획사로 잘 알려진 빅히트엔터테인먼트에 지분을 투자한 게 대표적 사례다. 이외에도 카카오뱅크, 클레이튼, 빅 디퍼, 패션 인 테크 등 다양한 미래성장산업에 투자했다.
다만 이 투자들은 대부분 소규모여서 이번 웅진코웨이와 비교할 정도는 아니다. 그간의 비(非)게임사업 투자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빅딜’에 나선 이유는 뭘까? 넷마블 측은 ‘구독경제’라는 화두로 이를 설명하고 있다.
서장원 넷마블 투자전략담당 부사장은 “코웨이는 정수기·공기청정기·매트리스 등 실물구독경제 1위 기업”이라며 “기존 비즈니스에 넷마블의 인공지능(AI)·빅데이터·클라우드 기술력이 결합될 경우 글로벌 스마트홈 구독경제 시장의 메이저 플레이어가 될 수 있는 잠재력을 보유했다”고 말했다.
넷마블에 따르면 글로벌 구독경제 시장 규모는 2020년 약 5300억달러(약 600조원) 규모로 예상된다. 국내의 경우 개인 및 가정용품 렌털 시장이 각각 10조7000억원 규모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 시장에서 코웨이는 지난해 매출 2.7조원, 영업이익 5200억원을 달성했으며, 계정 수 701만개(국내 590만개, 해외 111만개)로 성장세가 뚜렷한 매력적인 매물이다.
“시너지 어렵다” vs “충분히 가능”
관건은 새로 확보한 ‘구독경제’와 기존의 ‘게임사업’이 시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느냐 여부다. 넷마블 측은 일단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그간 렌털이나 정기배송 등 실물구독경제가 발전이 느렸지만 AI·클라우드 기술 및 배송망의 발전으로 보다 넓은 커버리지 장악이 가능해졌다는 것. 여기에 스마트홈 기술까지 결합할 경우 한단계 업그레이드가 이뤄질 수 있는데, 넷마블은 관련 신기술과 노하우를 보유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서 부사장은 “그동안 게임 사업을 운영하면서 인공지능(AI)을 이용한 유저 빅데이터 분석·운영 노하우를 발전시켜 왔다”면서 “이런 기술 및 노하우를 코웨이가 운영 중인 모든 제품에 접목해 ‘스마트홈 디바이스’로 발전시키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이어 “성장 중이고 향후 스마트홈 영역으로 발전할 수 있는 플랫폼형 구독경제 사업자를 인수함으로써 기존 게임사업이 더해져 향후 넷마블의 사업 안정성이 더욱 강화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업계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게임사업’과 ‘렌털사업’이 고객층도, 사업방식도 지나치게 이질적이어서 별다른 시너지 효과를 찾기 어려울 것이라는 예측이 우세하다.
윤을정 신영증권 연구원은 “코웨이의 렌탈 서비스 플랫폼을 통한 구독경제 시장 진출 시도는 신선하지만, 현금흐름 개선을 제외하면 구체적으로 기대되는 시너지 효과가 아직 없다”며 “구체적 사업 방향성이 결정돼야 시너지 효과가 발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승훈 IBK투자증권 연구원도 “게임이 흥행에 따라 좌우되는 산업이다 보니 실적 변동성이 커서 모든 게임사는 안정적인 현금을 갖고 싶어 한다”며 “웅진코웨이를 인수하게 될 경우 안정적인 현금흐름과 실적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안정적 현금흐름 외엔 별다른 긍정 요인이 없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더해 게임업계 일각에서는 넷마블이 게임사업 비중을 줄이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까지 나온다. 게임사업에서 벌어들인 돈을 비게임사 인수에 대거 소진했으니 정작 매력적인 게임사 매물이 나왔을 때 손가락만 빨게 될 수도 있다는 우려다.
이런 논란에 대해 넷마블 관계자는 “본업인 게임사업은 여전히 1순위다. 다만 최근 게임 관련 M&A 매물이 거의 부재한 상황이어서 이미 확보한 투자자금을 효율적으로 투자하기 위해 미래성장동력인 구독경제에 집중하게 된 것”이라며 “넷마블은 과거 PC온라인게임에서 모바일게임으로 대전환을 추구할 때도, 리니지2레볼루션 등 IP게임 합작에 선도적으로 나설 때도 매번 특유의 ‘도전DNA’를 입증했다. 이번 구독경제 도전도 그 일환으로 봐주시면 좋겠다”고 설명했다.